이공계 기피문제 해법은? - 박상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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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sop
등록일
2002-02-25 2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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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학교 공과대학 등록률 81.7%, 자연대 등록률 81.9%. 언론에서는 이러한 결과를 두고 좋은 현상이라고 말하고 있다. 학벌타파와 서울대 독점 완화를 향한 좋은 징조라는 것이고, '간판보다 실리'를 추구하게 되는 실사구시적인 분위기라는 것이다.


그러한 좋은 면도 찾을 수 있으나, 그 다음의 수치들을 눈여겨보면 이러한 현상은 이공계 기피현상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임을 알 수 있다. 고려대 의예과의 경우 합격자의 85%가 서울대에 중복 합격했으나 85%가 등록했다. 고려대 의대뿐 아니라 다른 의대, 치의대, 한의대의 경우 매우 높은 등록률을 기록했다. 서울대 이공계 합격자중 다른 대학의 이공계에 중복합격해서 등록을 포기한 경우는 거의 없다고 여겨지는데, 그 이유는 학부제를 통한 모집이기 때문에 전공이 맘에 들지 않아 타 대학 이공계로 옮겨가는 경우는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서울대 이공계 미등록자는 거의 전부 타대학 의학계열 학과에 등록한다는 뜻이다. 애초에 이공계에 아예 지원하지 않은 상위권 학생들이 많다는 것을 고려한다면, 최상위권 수험생들의 이공계 기피, 의대 진학풍조가 얼마나 심한지 알 수 있다.


이제는 이공계 기피현상 뿐 아니라 10년 후의 의사들까지 걱정해야 한다. 최상위권 학생들이 모두 너나 할 것없이 전문의가 되어 쏟아져나오면, 의사들이 더욱 높은 사회적 경제적 처우를 바랄 것이고, 가뜩이나 최근 수년간 늘어난 의대정원 때문에 의대 중에서도 명문 의대출신 의사들만이 기득권을 누릴 수 있을 것이며, 지방의대나 신생의대를 졸업한 의사들은 10년 전에 최상위권 학생이던 자신들에게 걸맞는 대우를 기대할수 없을 것이다.


2월 8일 이공계 기피 대책마련을 위한 정부부처 회의가 열려 정부차원의 논의가 이루어진다. 2월 7일자 신문기사를 인용하면,

회의는 부처별로 산발적으로 제시되고 있는 방안을 조정,정부 차원의 종합대책을 마련하기 위한 것으로 ▶고교생의 이공계 지원 기피 현황과 대책 ▶과학기술 인력 양성과 유인책 ▶대학 이공계 교육 내실화 방안 ▶초.중등 과학교육의 내실화 방안 등이 논의될 예정이다...중략...내년 대학 입시부터 자연계 학생이 자연계 대학을 지원할 경우 동일계 진학 가산점을 주는 것을 확대하는 방안과 매년 과학에 재능이 있는 고교생(대통령 과학장학생)과 우수 과학고생을 각각 1백명씩을 뽑아 학비를 지원하거나 해외 유학의 기회를 부여하는 방안 등을 고려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의 인식은 여전히 고등학생들을 이공계 대학생으로 유인해야 한다는데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연구인력의 처우를 개선하고 과학기술자가 존경받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조치는 그들의 두뇌속에서 아직 생각조차 떠오르지 않았다. 이러한 조치는 임시방편조차도 되지 못한다.


과학기술자 처우 개선을 통해 근본적으로 이공계 기피현상을 없애고 나아가 국가경쟁력을 제고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해 구체적 제안을 할 필요가 있다.


1. 경제적 처우 개선

임금이란 시장경제 상황에서 결정되는 것이나 연구인력의 경우 그렇지 못한데, 그 이유는 연구란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혼자 연구실을 갖추고 연구하여 성과를 내는 것은 18세기에나 가능했던 일이고, 연구활동은 시스템에 의해 이루어진다. 또, 현대 과학에서 한 사람의 연구분야는 극히 폭이 좁고, 그 분야의 연구를 필요로 하는 기업이나 연구소의 수는 제한되어 있으므로, 한 명의 연구인력이 자신의 전공분야를 살리면서 영업사원이나 관리직이 아닌 연구원으로 취업을 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 결과로, 연구인력 시장은 사용자가 지배하며, 임금은 사용자인 기업과 연구소들의 묵시적 담합에 의해 결정된다. 외국 기업의 인력을 빼어 오는 것이 아닌 이상, 고급연구인력을 두고 사용자들끼리 채용을 경쟁하는 일은 대단히 드물다.


박사학위를 마친 고급 연구인력은 첫 취업의 시기가 30대 초·중반으로, 사회 진출이 가장 늦은 직업이다. 연구인력의 초봉은 20대 초반에 취업한 고졸 또는 대졸 일반직 경력사원의 경우와 비교해도 현저히 낮은 경우가 많다. 사회 진출을 늦게 하고 싶어서 늦게 하는 것이 아니므로, 학업 수행기간이 충분히 고려된 임금체계가 필요하다.


연구라는 일의 특성상 제품을 팔아 이익을 남기진 않으나, 개인별 연구성과와 연구수행의 양이라는 점에서 연구원 개개인에 차이가 생길 수 밖에 없고, 그것이 임금에 성과급의 형태로 반영되고 있다. 그러나 눈 앞에 보이는 이익이 없는 경우의 성과급은 기대하기 힘들 뿐 아니라, 현재 연구원이 받는 성과급의 액수는 그가 개발한 기술술의 부가가치에 비하면 턱없이 작은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성과급제를 개선할 수 있는 방법은, 연구 프로젝트에 따른 인건비 체계를 현실화하는 것이다. 정부출연연구소뿐 아니라 많은 기업연구소에서도, 정부주도의 연구과제에 참여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때 연구원 인건비의 경우 민간기업이나 학교에서 급여를 받는 연구원은 추가적인 인건비 수령이 현실적으로(그것이 계상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어렵게 되어 있으며, 아예 인건비 청구를 하지 못하도록 되어 있는 과제들도 많다. 연구프로젝트에 참여할 경우의 인건비는 직장에서 받는 급여와 별도로 수령할 수 있도록 하면 실질적인 처우 개선의 효과뿐 아니라 연구원 사기 진작과 의욕 증진에도 크게 효과를 볼 것이라고 생각된다.


2. 수도권 연구단지 개발

현재 우리나라에서 각종 정부출연 연구소와 기업 중앙연구소가 모인 곳은 널리 알려진대로 대덕이다. 산업의 수도권 집중을 억제하고, 좀 더 쾌적한 환경에서 연구에 정진토록 한다는 취지에서 대덕에 연구소들을 집중시켰으며, 그러한 정책이 실패했다고는 보지 않는다. 대덕은 꽤 큰 연구단지가 되었으며, 넓은 부지에 지어진 쾌적한 연구시설들이 들어차 있고 활발한 연구활동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모여있으므로 해서 시너지효과도 기대된다.


그러나 연구시설이 몰려있으므로 해서 또 문제가 생긴다. 이공계 고급 연구인력에게 있어서 대학 교수 외에는 취업=대덕행 이라는 등식이 성립하는 것이다. 쾌적하고 넓은 환경은 바꾸어 말하면 동떨어진 곳에서 연구밖엔 할 것이 없다는 것이다. 연구인력이 모인 대덕은 마치 "고급 연구인력들의 격리 지역"처럼 되어 그들에게 사회적 소외감을 느끼게 하는 하나의 원인이 되었다. 현실적으로도 많은 대덕 연구인력들이 서울과 대덕에 두집살림을 하거나, 자녀들을 어려서부터 서울로 유학시키는등 연구활동에 부정적 요인들이 존재한다.


그 많은 수도권 신도시를 계획할 때, 그중 하나에 새로운 연구단지를 유치했다면, 서울의 베드타운이라는 오명에서도 벗어나고, 연구인력의 해외유출도 방지할 수 있었을 것이다. 새로 만들어지는 신도시에 연구단지를 계획할 순 없을까?


3. 사회적 인식 개선

과학기술 관련 포상과 포상금액을 늘리고, 정부차원에서 과학기술자가 꼭 필요한 존재라는 것을 일반 대중에게 나서서 알려 나가야 한다. 과학관련 단체와 학회에 대한 홍보활동비 지원을 늘려서 각 단체들의 대국민 홍보를 장려해야 한다. 이공계 대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줄 때에도, 이공계로 학생들을 유인하기 위해서 주는 것이 아니라, 뜻있는 일을 하기 때문에 주는 것이라는 것을 분명히 하여 이공계를 선택한 학생들에게 자긍심을 주어야 할 것이다.



이공계 기피현상이 수면위로 떠오르면서, "이공계 연구원이 어차피 부귀영화를 누리는 직업은 아니지 않느냐"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이공계 연구인력들은 과거에도, 현재에도 그저 묵묵히 일하는 사람들이다. 의사, 변호사, 증권맨들이 높은 경제적 혜택을 누려도 일부러 귀를 닫고 눈을 감고 남의 일이겠거니 하고 침묵해왔다. 그러나 이제 아예 이공계에 진학하길 기피하는 풍조가 되어서는 이야기가 다르다. 이 참혹한 결과가 그동안의 침묵의 업보일 수도 있지만, 분명한 것은 절대로 일어나선 안되는 일이 현실로 다가왔다는 것이다. 미봉책이나 유인책으로는 절대로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은 자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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