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에 대한 스티븐 제이 굴드의 헛소리 – 『Rocks of Ages』 비판

글쓴이
이덕하
등록일
2009-04-02 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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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cks of Ages: Science and Religion in the Fullness of Life』, Stephen Jay Gould, Ballantine Books, 1999



--- 머리말 ---

나는 종교 문제에 대해서는 도킨스(Richard Dawkins)의 『만들어진 신(The God Delusion)』에 거의 전적으로 동의한다. 종교는 궤멸되어야 한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다. 종교는 과학적 사고를 가로 막는다. 그리고 종교는 온갖 사악한 도덕 규범의 근원지다.

반면 굴드는 종교를 옹호한다. 이것은 굴드가 진화 심리학(또는 사회생물학)이나 행동 유전학에 대해 매우 적대적인 것과는 대조적이다. 하지만 어떤 면에서는 굴드의 행동에 일관성이 있다.

굴드는 한편으로 마르크스주의자들, 가부장제 이론가들, 주류 사회학자들, 문화 인류학자들이 말도 안 되는 헛소리를 하면서 책을 팔아먹고 교수질을 해 먹는 것을 도와주고 있다. 그들은 “보라. 저명한 진화 생물학자인 굴드가 진화 심리학이 엉터리라고 하지 않는가? 따라서 우리의 말이 틀렸다는 진화 심리학자들의 말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없다”라고 말할 수 있었다. 물론 진화 심리학에 대한 굴드의 비판을 말도 안 되는 헛소리며 이에 대해서는 다른 글에서 상세히 다룰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굴드는 종교를 옹호함으로써 성직자들이 십일조를 계속 챙길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다. 이 글에서는 그의 종교 옹호가 얼마나 한심한지를 보여줄 것이다.

굴드는 인문학이나 사회 과학을 여전히 장악하고 있는 빈 서판(blank slate)주의를 위해 진화 심리학과 전쟁을 벌였다. 또한 이 책에서는 미국 대중을 여전히 장악하고 있는 신앙주의(fideism) 기독교를 사실상 옹호하고 있다. 내 생각에는 이렇게 권력(학계의 권력과 종교계의 권력)에 아부했던 것이 굴드의 엄청난 인기에 한 몫 했던 것 같다. 그가 온갖 헛소리를 나불댔음에도 말이다. 아니 오히려 그것들이 헛소리였기 때문에 권력에 아부할 수 있었을 것이다.





--- 자연주의적 오류와 NOMA ---

자연주의적 오류(naturalistic fallacy)라는 용어를 만든 사람은 무어(George Edward Moore)이며 그는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자연주의적 오류를 정의했다. 하지만 지금은 보통 그가 정의했던 것과는 다른 의미로 이 용어를 쓰고 있다. 이 용어는 보통 설명과 정당화를 혼동하는 오류를 의미하며 나도 그런 의미로 쓸 것이다. 즉 사실로부터 부당하게 당위를 이끌어내는 것을 자연주의적 오류라고 한다. 사실에 대한 설명을 다루는 영역인 과학과 당위에 대한 정당화를 다루는 도덕 철학은 별개인 것이다. 나는 이런 구분과 절연이 옳다고 생각한다. 문제를 복잡하게 하는 측면이 있긴 한데 여기서 자세히 다루지는 않을 것이다(나의 글 「『과학적 윤리학을 위하여』 --- 설명과 정당화」를 참조하라).

NOMA는 “Non-Overlapping Magisteria”의 약자다. ‘magisterium’은 ‘교권(敎權)’을 뜻한다. 굴드는 사실을 설명하는 과학의 교권과 가치와 도덕성을 다루는 교권이 별개라고 주장한다. 사실로부터 도덕성을 추론할 수 없으며 가치와 도덕성에 대한 믿음으로부터 사실을 추론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것은 어떤 면에서 보면 자연주의적 오류 개념에 새로운 이름만 붙인 것이다. 만약 굴드가 이런 이야기만 했다면 내가 굳이 그의 책을 비판하는 글을 쓰지는 않았을 것이다.





--- 도덕 철학과 종교 ---

문제는 굴드가 가치와 도덕성을 다루는 교권을 종교라고 부른다는 데 있다.

과학은 자연 세계의 사실적 특성을 기록하려고 하며 이런 사실들을 통합하고 설명하는 이론들을 개발하려고 한다. 반면 종교는 인간의 목적, 의미, 가치 등의 영역 – 이 영역은 똑 같이 중요하지만 지극히 다른 영역이다 – 에서 작동한다. 그런 주제들은 과학의 사실 영역이 해명을 해 줄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결코 해결할(resolve) 수는 없다. 마찬가지로 과학자들이 자신의 연구에 어느 정도 특정적인, 윤리적 원칙들에 따라 행동해야 하지만 이런 원칙들의 유효성은 과학의 사실적 발견들로부터 결코 추론될 수 없다. (『Rocks of Ages』, 4쪽)

약간 반복됨을 무릅쓰고 정리를 하자면, 과학의 망(net) 또는 교권은 경험적 세계 – 우주는 무엇으로 만들어져 있는가(사실), 왜 우주는 이런 식으로 작동하는가(이론) – 를 다룬다.  종교의 교권은 궁극적 의미와 도덕적 가치의 문제들로 뻗친다. 이 두 교권은 겹치지 않으며 모든 탐구를 포괄하지도 않는다(예컨대 예술의 교권과 미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보라). (『Rocks of Ages』, 6쪽)

이 책의 제목 “rocks of ages”는 사람들이 영원히 의지할 수 있는 신을 뜻하는 말인 “rock of ages(영원한 반석)”의 복수형이다.

너희는 영원토록 주님을 의지하여라. 주 하나님만이 너희를 보호하는 영원한 반석이시다. (이사야서 26:4, 표준새번역)
So always trust the LORD because he is forever our mighty rock. (Isaiah 26:4, CEV)

굴드는 과학이라는 교권과 종교라는 교권이 두 개의 영원한 반석으로서 인류와 함께해야 한다고 보는 것이다. 이 책의 거의 모든 문제가 여기서 출발한다.





--- 범신론과 이신론 ---

종교를 창세기에 대한 문자주의적 해석(Genesis literalism), 성 야누아리우스(Saint Januarius)의 액화하는 피(liquefying blood)의 기적(이것은 적어도 뉴욕의 거리에서 매년 굉장한 성 제나로 축제San Gennaro Festival가 열리는 것에 대한 구실을 제공하기는 한다), 밀교(kabbalah)의 성경 암호(Bible codes), 현대의 대중 매체의 속임수(hype, 과장) 등과 동일시할 수는 없다. 만약 이런 사람들이 미신, 비합리주의, 속물주의, 무지, 독단, 그리고 인간 지성에 대한 다른 일련의 모욕들(이것들은 때때로 살인과 억압의 위험한 도구로 정치적으로 변환되기도 한다)과 싸우고 싶다면 신의 축복을 빌겠다. 하지만 이런 적을 “종교”라고 부르지는 말라. (『Rocks of Ages』, 209쪽)

모든 버전의 NOMA의 첫 번째 계명은 다음과 같은 선언으로 요약될 수 있을 것이다: “너희는 과학으로는 알 수 없고 오직 계시를 통해서만 알 수 있는 특별한 개입을 통해서 신이 자연의 역사에서의 중요한 사건들을 직접 정한다고 주장함으로써 교권들을 뒤섞지 말라.” 통상적인 어법에서 우리는 그런 특별한 개입을 “기적” – 이것은 신성한 명령으로 자연의 사실들을 재정리하기 위해 특유하고 일시적으로 자연 법칙을 중단하는 것으로 조작적으로(operationally) 정의된다 – 이라고 부른다. (『Rocks of Ages』, 84쪽)

근본주의적 극단주의와 같은 오류들은 쉽게 알아챌 수 있다. 하지만 단지 보이지 않으며 도도한, 시계태엽을 감는 존재(clockwinder, 우주라는 시계의 태엽을 감은 후에는 개입하지 않는 신)로는 만족하지 못하고 자신의 모든 창조물들의 삶에 몸소 신경을 쓰는 사랑하는 신이라는 신 개념을 품고 있는 사람들이 보통 범하는 NOMA에 대한 좀 더 미묘한 위반은 어떤가? (『Rocks of Ages』, 93쪽)

굴드에 따르면 NOMA를 위반하지 않기 위해서는 경전을 무시해야 하며, 기적을 믿어서도 안 된다. 신을 믿더라도 우주의 법칙을 창조하고 우주를 처음 작동시킨 다음에는 절대로 자연의 역사에 개입하지 않는 신만 믿어야 한다. 실제로 이런 식으로 믿는 사람들이 있기는 하다. 그들은 이신론자라고 불린다. 이신론(deism)은 경전, 기적, 계시 등을 받아들이지 않으며 오직 이성으로만 신의 속성을 알 수 있다고 주장한다. 범신론(pantheism)은 이신론보다 무신론에 더 가깝다. NOMA를 위반하지 않는 종교인은 이신론자와 범신론자밖에 없다.

실제로 이신론이나 범신론을 일관성 있게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이신론자로 불렸던 사람들 중 다수는 실제로는 일관된 이신론자가 아니었다. 어떤 ‘이신론자들’은 인간의 영혼이 영생한다고 믿었으며 어떤 ‘이신론자들’은 인간이 도덕적으로 사는 것이 신의 뜻이라고 보았다. 물론 그들이 그렇게 믿었던 이유는 이성으로 그것을 입증했기 때문이 아니라 신앙주의 즉 경전, 계시, 기적의 종교의 영향력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나마 이신론자나 범신론자라고 불리는 사람들은 전체 종교인 중에 소수다. 그리고 아인슈타인처럼 일관되게 이신론이나 범신론을 받아들이는 사람은 극히 소수다. 즉 굴드의 표현대로 하자면 NOMA의 원칙을 일관성 있게 제대로 지키는 종교인은 극소수다. 그럼에도 굴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는 과학과 종교 사이에 있다고 가정되는 갈등에 대해, 즉 완전히 다르지만 똑 같이 필수불가결한 이 두 주제들의 논리나 고유의 유용성(proper utility)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마음과 사회적 관습에만 존재하는 논쟁에 대해 이야기하려 한다. 기본적 테제를 표명함에 있어 내가 독창적인 것을 제공하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아마 실례들을 선택하는 데에 있어서는 창의성이 있을 지 모르겠다). 왜냐하면 나의 논증은 수십 년 동안 지도적인 과학 사상가들과 또는 종교 사상가들이 한결같이 받아들이는 강한 동의를 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Rocks of Ages』, 3쪽)

(나의 서문Preamble의 첫 부분에서 표명했듯이, NOMA는 논쟁의 여지가 있거나 특이한 해결책이 아니라 과학 지도자들과 종교 지도자들 중 압도 다수가 오랜 기간 동의해오던 것이라는 점을 또한 되풀이해서 이야기해야겠다.) (『Rocks of Ages』, 64쪽)

일관된 이신론과 범신론은 종교라고 보기도 힘들 정도다. 아인슈타인은 스스로를 종교인이라고 우겼지만 나는 아인슈타인에게서 종교적인 모습을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반면 대다수의 종교인들은 신앙주의자들이다. 종교의 논리 자체가 과학과 충돌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 교황 ---

로마 가톨릭의 전통 하에서 자라지 않은 사람들은 무지와 고정 관념이라는 잘못된 이유 때문에 교황을 정의상 과학에 적대적일 수밖에 없는 독단적인 전통주의의 원형적 상징이라고 보는 경향이 있다. (『Rocks of Ages』, 70쪽)

나도 그렇게 보는 경향이 있는 사람이다. 과연 굴드는 무슨 근거로 그것이 “무지와 고정 관념” 때문이라고 보는 것일까?

결국 매우 보수적인 교황 피우스 12세(Pius XII)는 1950년에 발표한 <인류(Humani Generis)>라는 회칙(回勅, encyclical)에서 적합한 탐구로서의 진화를 방어했으며 그것도 NOMA를 중심적으로 그리고 명시적으로 끌어들임으로써 그렇게 했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즉 육체적 진화에 대한 연구를 자신의 교권 밖에 있다고 인정하는 한편 더 나아가 그런 다윈주의적 생각들을, 과학적 주장과 혼동되지만 종교의 교권 안에 있는 어떤 것 즉 인간 영혼의 기원과 구성과 구분했다. (『Rocks of Ages』, 75쪽)

이 인용문만 보면 인간의 육체는 진화론으로 설명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인간의 정신은 신의 창조물이라는 것이 교황 피우스 12세의 생각으로 보인다. 교황이 정신과 영혼을 구분해서 정신은 진화의 산물이고 영혼은 신의 창조물이라고 보았을 리는 없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은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1996년 연설로 이어진다.

인간의 몸은 그 이전에 존재했던 생명체에서 생겨났다 하더라도(If the human body take its origin from pre-existent living matter), 영혼은 하느님이 직접 창조하셨다. ...... 결과적으로, 영혼이 생명체의 힘에서 출현한다고 또는 생명체의 부수적 현상에 불과하다고 간주하는 – 이것은 진화론을 부추기는 철학과 부합한다 - 진화론은 인간에 대한 진리와 양립하지 못한다. 또한 개인의 존엄을 뒷받침할 수도 없다. (『빈 서판』, 332쪽, page 186, 교황이 1996년에 했던 연설)

굴드는 교황의 1996년 연설도 NOMA의 원칙을 지킨 예로서 높이 평가하고 있다. 이것은 웃기는 얘기다. 육체는 진화의 산물일지도 모르지만 정신은 신이 창조했다고 보는 것은 결코 진화론을 온전히 인정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동물은 진화의 산물일지도 모르지만 인간은 신이 창조했다고 보는 것이 결코 진화론을 온전히 인정하는 것이 아닌 것과 마찬가지다. 물론 진화론으로 인간의 정신, 문화, 사회를 설명하는 것을 사실상 거부하는 굴드 같은 작자에게는 별 문제가 안 될 것이다.

굴드는 제스처에 불과한 것과 진실된 믿음을 구분할 줄 모르는 듯하다. 물론 교황은 갈릴레오를 협박한 교황청의 잘못을 사과했다. 하지만 이것은 교황이 진정으로 과학을 존중하게 되었기 때문이 아니다. 20세기 말에 물리학을 통째로 무시하다가는 대중들의 눈에도 너무 한심하게 보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육체가 진화의 산물일 수도 있다고 인정했다는 피우스 12세가 뭐라고 했는지를 보라.

흥미롭게도 이 문단들의 주된 취지는 진화 일반을 다룬 것이 아니라 피우스가 “다원 발생설(polygenism)” – 다수의 부모들로부터 인간 조상이 기원했다는 생각 – 이라고 부른 교리에 대한 논박에 있었다. 그는 그런 생각이 “개인 아담이 실제로 저지른 죄로부터 시작하여 세대를 거쳐서 모든 사람들에게로 전해져서 모든 사람들의 것으로 된” 원죄의 교리와 부합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이 한 예에서 피우스는 NOMA의 원칙을 어겼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가톨릭 신학에 대해 자세히 알지 못해서 이런 문장이 어떻게 상징적으로 독해될 수 있는지를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나는 판단을 내릴 수 없다. (『Rocks of Ages』, 77쪽의 주3)

피우스는 사실 인간 육체의 경우도 진화의 산물이라고 인정할 용의가 전혀 없었다. 왜냐하면 원죄의 교리가 성립하려면 인간은 아담과 하와로부터 시작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교황이 진화론이 어느 정도 맞을지도 모른다고 한 마디 한 걸 가지고 굴드는 NOMA의 원칙을 표방했다는 식으로 떠들어대는 것이다. 그러면서 상징적으로 해석하면 모든 것이 해결될 듯이 이야기한다. 이렇게 명백하게 NOMA의 원칙을 거부한 것도 상징이라는 방식으로 면죄부를 줄 수 있다면 도대체 상징을 들이대며 얼버무릴 수 없는 것이 무엇이란 말인가? 교황이 어떤 헛소리를 해도 굴드는 “상징일지도 모른다”라고 발뺌할 것이다.

교황은 다른 측면들에서도 NOMA를 기꺼이 어긴다. 예컨대 가톨릭과 개신교 모두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차지하는 예수의 기적을 생각해 보라. 기독교에서 예수 빼면 앙꼬 없는 찐빵이다. 굴드는 NOMA의 원칙을 지키려면 기적을 인정해서는 안 된다고 보았다. 그렇다면 예수는 존재하지 않았거나, 기적을 행한다고 주장하지 않았거나, 사기꾼이다. 물론 어떤 교황도 이런 발칙한 생각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내가 알기로는 현재에도 교황청은 기적의 사례들을 조사해서 그 중 일부를 기적으로 인정해준다.

교황과 교황청의 행적 전체를 보지 않고 이런 식으로 몇 가지 부실한 증거를 들이대며 교황이 NOMA를 존중했다고 우긴다면 스탈린, 김일성, 히틀러가 한 말 몇 마디를 인용하며 그들이 진실한 민주주의자였다고 우길 수도 있을 것이다.





--- 근본주의자들만 문제다? ---

명백히, 소위 기독교 우익(Christian right)이라고 불리는 극단주의자들 특히 미국 공립 학교의 과학 과정에 창조론을 강요하려고 노력하는 작은 분파는 이런 당파주의자들 중 가장 눈에 띄는 집단이다. 하지만 우리 과학자들 중에 종교 개념이 편협해서 그 미묘함과 다양성을 전혀 포착하지 못하고, 뉴저지의 자동차 전시장 유리 창의 아침 이슬이 말라가는 모양에서 신이 만든 성모상을 보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어리석고 미신적인 믿음들과 전체 교권을 동일시하는 과격 무신론자들도 이런 당파주의자들에 포함된다고 나는 생각한다. (『Rocks of Ages』, 68쪽)

신이 유리창에 성모상을 새겼다고 보는 것이나 성모가 처녀임에도 예수를 낳았다고 보는 것이나 말도 안 되는 기적을 믿기는 마찬가지다. 즉 두 경우 모두 NOMA를 어긴 것이다. 그럼에도 굴드는 불쌍한 뉴저지 사람은 바보 같다고 놀리는 반면, 교황은 NOMA를 제대로 실천한다고 우기고 있다. 스스로를 마르크스주의자라고 부르는 굴드에게 높은 평가를 받기 위해서는 교황처럼 막강한 권력이 있어야 하는 것일까?

물론 미국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이 20세기 초반과 후반에 진화론을 학교에서 가르치는 것에 시비를 건 것은 큰 문제였다. 그리고 굴드는 그런 시도에 맞서 싸웠다. 하지만 굴드가 한 다음의 말은 기가 막힌다.

따라서 미국에서 모든 창조론 집단들 중에서 가장 크며 잠재적으로 가장 영향력이 있는 여호와의 증인(Jehovah’s Witnesses)에게는 문제가 없다고 본다. 왜냐하면 그들은 공립 학교의 과학 과정에 자신의 신학적 믿음을 강요하려고 하지 않으며, 그런 개인적이며 당파적인 교리들은 교회와 집에서 가르치는 것이 적절하다는 나의 견해에 동의하기 때문이다. (『Rocks of Ages』, 127쪽)

공립 학교에서만 가르치지 않으면 만사 형통이다. 따라서 온갖 인종주의적 편견을 나치의 정당 모임이나 나치 개인의 집에서만 가르친다면 굴드가 보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이다. 진화 심리학이나 행동 유전학에 대해서는 공립 학교에서 가르치든 말든 개의치 않고 온갖 헛소리를 근거로 온갖 욕을 해대던 인간이 종교에는 그렇게 관대할 수가 없다. 종교의 이름이면 모든 것이 통한다. 단지 공립 학교에서만 가르치지 않으면.





--- 자유주의적 기독교인 ---

하지만, 다시 말하건대, 현대 개인교도들 절대 다수는 자신의 성스러운 텍스트들을 그런 식으로 교조주의적이고 비타협적인 방식으로 독해하지 않을 것이다. 주로 자유주의적(liberal) 형태 내에서 한정된 다양성이 있는 유럽의 국가들에서는 특히 그럴 것이다. (『Rocks of Ages』, 131쪽)

굴드는 뉴스도 안 보고 살았던 것일까? 굴드가 이 책을 쓸 당시에 한 설문 조사 결과를 보자.

유대-기독교의 개념은 여전히 미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인간 본성 이론이다. 최근의 여론 조사에 따르면 미국인의 76퍼센트가 성서의 창조 이야기를 믿고, 79퍼센트가 성서에 기록된 기적들이 실제로 일어났다고 믿으며, 76퍼센트가 천사와 악마를 비롯한 비물질적인 영혼을 믿고, 67퍼센트가 어떤 형태로든 사후 세계가 존재할 것이라고 믿는 반면, 단 15퍼센트만이 다윈의 진화론이 지구상에 출현한 인간의 기원을 가장 적절히 설명하는 이론이라 믿는다. (『빈 서판』, 27쪽)

미국인 다수는 여전히 NOMA를 개무시하고 있다.

하지만 성경을 “글자 그대로(literally, 문자주의적으로)” 독해하는 것이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나는 도통 이해할 수 없다는 점을 이야기해야겠다. 왜냐하면 여러 원천들에서 이어 붙인 그런 텍스트에는 불가피하게 많은 모순들을 포함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성경이 도덕적 진리로 가득 차 있는, 영감을 받고 쓴 문서(inspired document)라고 보며 인간 역사에 대한 정확한 연대기도 자연적 사실에 대한 완벽한 서술도 아니라고 보는 절대 다수의 종교인들에게는 이런 다양한 독해들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Rocks of Ages』, 130쪽 주2)

물론 성경에는 온갖 모순들이 있다. 하지만 사실에 대한 모순들만 있는 것이 아니다. 도덕성과 관련해서도 온갖 모순들이 있다. 특히 구약의 도덕과 신약의 도덕은 극단적으로 충돌한다. 그리고 성경이 도덕적 진리로 가득 차 있다고? 굴드는 과연 성경을 읽어보기나 한 것일까? 성경은 온갖 도덕적 헛소리로 가득 차 있다. 이에 대해서는 여러 사람들이 수 많은 목록을 만들었으며 나도 「미신 없는 세상을 위하여 – 사악한 성경 구절들」라는 목록을 만들었다. 물론 성경에는 착하게 살라는 말도 있다. 하지만 그런 식으로 따지면 히틀러의 『나의 투쟁』도 도덕적 진리로 가득 차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굴드의 방식을 적용하면 된다. 히틀러의 온갖 사악한 헛소리는 ‘상징적으로’ 해석하고 그 책에 있는 별 문제가 없어 보이는 문장들만 인용하는 식으로 말이다.





--- 굴드는 NOMA를 실천했나? ---

하지만 과학은 도덕의 도덕성(morality of morals)에 대해서는 어떤 말도 할 수 없다. 즉, 인류학자가 살인, 유아살해, 대량학살, 그리고 외부인 혐오가 많은 인간 사회의 특징이었음을, 특정한 사회적 상황에서 더 많이 일어났음을, 그리고 심지어 어떤 맥락에서는 적응적으로 이득이 되었음을 새롭게 발견한다 하더라도 그것은 우리가 그런 식으로 행동해야 한다는 도덕적 명제에는 어떤 뒷받침도 제공하지 않는다. (『Rocks of Ages』, 66쪽)

생물학적 진화의 사실들이나 이론들이 도덕에 관련된 어떤 행동을 금지하거나 정당화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은 다윈의 위대한 통찰을 심각하게 오용하는 것이며 NOMA를 중대하게 위반하는 것이다. (『Rocks of Ages』, 162쪽)

자연은 따뜻하고 포근한 쪽으로도 추하고 역겨운 쪽으로도 어떤 통계적 선호를 보이지 않는다. 그 모든 복잡성과 다양성과 함께, 우리의 욕망에 대한 그 모든 숭고한 무관심과 함께 자연은 그냥 존재할 뿐이다. (『Rocks of Ages』, 195쪽)

하지만 진화 심리학(또는 사회생물학)과 행동 유전학이 문제일 때에 굴드의 태도는 돌변한다. 굴드는 진화 심리학이 온갖 사회악(계급, 여성 차별, 인종주의, 강간 등)을 정당화한다고 1970년대 이후로 20여 년 동안 줄기차게 나불대고 다녔다. 진화 심리학자들이 설명과 정당화를 혼동하지 말라고 아무리 이야기해도 소용 없었다.

또한 굴드는 흑인이 백인보다 선천적으로 IQ가 낮을 리가 없다고, 강간 등이 적응일 리가 없다고 굳게 믿고 있는 듯하다. 나는 흑인이 백인보다 선천적으로 IQ가 낮다고, 강간이 적응이라고 주장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그것들이 순전히 과학의 기준으로 검증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굴드는 자신의 도덕적 기준이나 소망에 따라 이런 문제에 접근하는 듯하다. 이런 문제에 대해서는 나중에 (아마 다른 글에서) 굴드의 글을 상세히 인용할 생각이다.

요컨대 굴드는 『Rocks of Ages』라는 책에서만 NOMA의 원칙을 실천에 옮긴다.




2008-10-20

  • 김재호 ()

      굴드가 생물학 분야에 어느정도 업적이 있긴 하지만 과학자로서의 지적 자신감 그리고 지적 정직함 (intellectual honesty) 은 문제가 있었습니다. 진실은, 진실이거나 아니거나 둘중에 하나인데,굴드는 욕먹는게 무서워서 종교인들의 눈치를 보면서 살다가 비굴한 면이 있었습니다. 

    제가 보기에 굴드는 reletivism 의 희생양입니다. 사실 과학/수학/공학 하는 사람들을 제외하고 인문학이나 사회학에서 박사이상을 한 많은 사람들이 reletivism 의 희생양이 되는데 (뭐가 옳은 것인지 그른 것이지 무엇이 더 정확한거지 수치화 하기가 힘들기 때문에) 과학자인 굴드는 의외였습니다.

    그나저나 올해 9월달에 도킨스의 신간이 나온다고 합니다. The Greatest Show on Earth: Evidence for Evolution 이라고 합니다. 매우매우 기대하는 중..

    그나저나 God delusion 을 재미있게 읽으셧다면 Christopher Hitchens - God is not great, Sam Harris - End of Faith 등도 한번 읽어보시길 바랍니다

  • Wentworth ()

      제목만 보고 김재호님이 댓글을 달 거란 생각을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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