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 과학도 님의 글을 보니 생각나는 책 시리즈...

글쓴이
천칠이
등록일
2002-09-27 05:30
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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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학교 2학년, 다른 사람 집에 얹혀 살던 시절이었습니다. 빚쟁이들에게 맨날 뜯기던 무렵인데도 어느 날 밤 아버지가 이만한 박스를 하나 들고 오셨습니다. 전부 15권인가 14권인가 하는 두꺼운 칼라 종이로 된 엄청 좋은 책이었는데, 제목이 전부 "~의 비밀"이라고 되어 있는 책들이었습니다. 제 1권이 우주의 비밀, 2권이 지구의 비밀, 3권이 인체의 비밀, 이런 식으로 해서 동물의 비밀, 곤충의 비밀, 식물의 비밀, 공룡의 비밀, 쭉 가서는 과학의 비밀로 대단원의 막을 내리는 시리즈였죠. 아마 제 또래 많은 분들이 기억하실 텐데, 육영재단에서 나온 어린이용 과학서적이었습니다. (제 친구 하나는 책 제목 가지고 딴지를 걸더만요. 비밀 시리즈가 아니라 신비 시리즈라고. 계속 싸우다가 결국 합의를 봤습니다. 둘 중의 하나였다가, 시간이 좀 지나서 제목이 다른 하나로 바뀐 걸로.)

 과학도 님이 쓰신 글에 나온 파이어니어 호의 금박두른 판은 바로 그 시리즈 물의 1권인 우주의 신비에서 처음 보았던 것입니다. 당시에는 벌거벗은 남녀의 사진이 너무나 충격적이고 이색적이어서 몇 번이고 보았었습니다. 피코라는 안드로메다 성운(성운이 맞나요?)의 외계인을 지구의 두 소년과 소녀가 만나면서 펼쳐지는 이야기들이었죠. 그 당시 외웠던 수치들이 여태 기억이 나네요. 빛이 1초에 지구를 7바퀴 반을 돌고 태양까지는 8분 19초가 걸리고 태양의 표면온도는 섭씨 6천도인데 중심부는 만 5천도이고 흑점은 평균온도가 4천 5백도 정도 되고, physics나 mechanism은 아주 미숙한 수준이지만 마냥 신기하고 재밌는 마음에 저절로 외워지던 것들이었죠.

 지금 돌이켜 보니 조금 서글프네요.

 처음 그 책을 읽고 접한 세상의 비밀스런 아름다움에 감동을 받아 지금껏 이 바닥에서만 살아오고 있는데 어린 시절 제가 바라보고 꿈꾸던 미래는 너무 다른 모습으로 다가와 버렸군요.

 이제는 제 아이들을 꿈꿔 봅니다.
 미국 NBC의 시트콤인 프렌즈를 보다보니 주인공 로스가 말하는 소박한 꿈이 있더군요. 일요일 아침 늦으막하니 침대에서 일어나 아내가 차려주는 토스트와 커피를 마시고 어린 아들과 함께 서로 신문의 "science section"을 보려고 다툰다는 꿈. 물론 그 시트콤에선 재미없고 따분한 화석 얘기나 늘어놓는 고생물 학자의 아주 고리타분한 소망으로 비춰졌지만, 저에게는 왠지 반드시 이뤄야 하는 숙원처럼 느껴지네요.

  • 빅벅 ()

      하하.. 저희 집에 '신비' 시리즈가 있습니다.

  • 천칠이 ()

      헉, 빅벅님, 그 오래된 책을 아직 그대로 가지고 계시다는 말씀? 근데, 신비 시리즈라고 하시면 결국 비밀 시리즈가 맞다고 주장하던 제가 틀린 걸까요? 아니면 진짜 비밀이었다가 출판사 바뀌면서 신비로 바뀐 걸까요? 제가 본 책은 육영재단 거였는데 금성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네요. 아, 무척 보고 싶네요. 그 만화의 주인공들. 만화로만 봐도 재밌는 내용들이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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