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펌]딴지일보-0점자와의 인터뷰...

글쓴이
송이
등록일
2002-12-24 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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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 0점자와 인터뷰를 했다는데...넘 웃겨서...






지난 기사 <수능빵점받기>가 나간 후, 본 기자, 여러 분의 질풍노도스런 격려 멜질에 감동 받았음을 뻘쭘하게 고백한다. 가장 많았던 멜인 즉, 삼고초려를 해서라도 그 3분을 제발 이너뷰 해달라는 간곡 무식한 협박 멜이였다.

그러나 사실 이너뷰까지 할 생각, 별로 없었다. 문제 제기로도 충분한 오바였는데 뭔 이너뷰까지냐 하는 생각, 없지 않았다.

허나, 니들의 열화와 같은 멜질에 감명받은 윤호. 맘을 돌리기로 하였으니…

지성이면 감천이요, 진인사 해버리면 대천명이라 했던가.

그가 나타났다. 그리고 그를 만났다.

베일 속에 가려져만 있던… 박제되어 버린 이 땅의 우등생들을 고고히 비웃고 있을지도 모른다던 바로 그 군계일학!


그 넘이 보낸 감동 만점의 메일..



만난 곳은 문래동 딴지사옥의 대회의실, 때는 12월 18일 늦은 2시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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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호 : 안녕하신가, 먼 길 오느라 수고하셨다. 옆에 계신 아리따운 분은...?
그넘 : 여자친구다.

윤호 : 여친을 대동할 지는 몰랐다. 기왕이면 예쁜 친구로 1명 더 데려오면 좋았을 것을... 머, 하여간 본론에 들어가기 전에 간단히 자기 소개부터 부탁한다.

그넘 : 재수했고, 모 한의대에 재학 중이다.
윤호 : 여자 친구 분도..?
그넘 : 그런 건 묻지마라.

윤호 : 알겠다. 사는 곳이 지방인데, 낼 투표는?
그넘 : 안한다. 아니 못한다. 아직 선거권이 없다.

윤호 : (잠시 당황) 음, 그렇게 영계인진 몰랐다.
그녀 : 호호..나는 내일 투표한다. 집이 인천이다.

윤호 : (조금 더 당황) 음, 연상연하 커플...
그넘 : 게다가 우린 씨씨다. 200일쯤 되었다. 으하하.

윤호 : 어떻게 만났나?
그녀 : 내가 야학에서 신입교사 교육담당이었는데, 그 때 이 넘이 신입교사로 들어와서... 참고로 내가 두 학번 위다.

윤호 : 대단한 능력이다. 부럽다.
그년넘 : 으하하.

윤호 : 딴지일보는 자주 보시는가?
그넘 : 일주일에 2-3번은 본다. 애독자라고 자부한다. 특히 정치면을 즐겨본다.


그 넘의 요구에 따라 모자이크 처리하였으니 양해하시라.

윤호 : 좋다. 그럼 궁금하니까 얼릉 본론으로 들어가보자. 0점을 일부러 받으려 했던 것인가?

그넘 : 그렇다. 당연 의도적이였다.

윤호 : 그런 결심을 하기도 어렵겠지만, 실행을 한 것도 쉽지 않았을텐데... 저지른 배경을 듣고 싶다.

그넘 : 나는 이미 재수를 해서, 한의대에 다니고 있는 상황이었다. 재수 시절 같이 한 가닥 놀던 친구가 3명 있었는데, 너무 놀아서였는지 성적이 다들 꽝이 돼버렸다. 근데 나만 혼자 그럭저럭 성적이 나왔다. 그 기분, 아는 놈은 알겠지만, 졸라 미안했다. 그래서 술자리에서 의리 반, 객기 반으로 담 수능 때 도와주기로 약속했었다. 그래서 올해 같이 보게 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윤호 : 잠깐... 뭘, 어떻게, 도와준단 말인가?

그넘 : 알 넘은 알겠지만, 문자메세지로 하는...머, 그런 게 있다. 나중에 얘기해주마. 하여간 이번 수능은 직접적으로 대학 진학에 상관이 없었던 것이고... 그래서 이왕 수능을 보는 김에 예전부터 생각해 왔던 0점 성적표에 대한 꿈에도 도전해 본것이다.

윤호 : 0점 성적표에 대한 꿈?
그넘 : 그렇다. 고딩 때부터 친한 친구들과 0점 성적표에 대한 야그들이 꽤 있었다. 호기심이라 해도 좋고, 약간의 반항심이나 도전정신이라 할 수도 있겠다. 그래서 사실 고딩 모의고사 때도 시도해 본적이 있다. 당연히 이중 마킹이나 백지답안은 하지 않았다. 그건 진정한 0점이 아니지 않은가. 뭐라 정의하긴 힘들지만, 0점 성적표, 하나쯤 갖고 싶었다.

윤호 : 원래 성적은 어느 정도인가?
그넘 : 01년도에 383점, 02년도 373점이였다. 상위 0.5%정도였던 걸로 기억한다.

윤호 : 음, 본 기자 전성기때랑 비슷한 것 같다. 하여간, 그렇다면 정상적으로 시험을 보면 10-15개 정도를 틀리는 성적이다라고 보면 되겠는가?
그넘 : 그렇다. 정상적으로 최선을 다하면 그 정도일 것이다.

이 즈음, 피치못할 사정으로 대회의실에서 쫓겨나 총수 방으로 자리를 옮겼다. 참고로, 총수도 방 안에 있었다. (졸라 엿듣는 것이 분명했다.아님 말고...)





윤호 : 본 기자는 0점의 전제 조건(당연 이중마킹이나 백지답안 류의 편법제외)으로, 발상 전환의 마인드, 그 생각을 실제로 옮기는 실행력, 그리고 최종적으로 운이라 생각하는데…

그넘 : 동의한다. 하지만, 거기에 현실적으로 개인적인 실행 배경도 더해져야 한다. 내 생각에 일단 고3은 힘들다. 이번 과정에서 느낌 점이 경험과 여유의 중요성이었다. 나도 고3때는 긴장감과 시험장 분위기, 대학진학의 부담감에 눌려 꿈도 못 꿨다. 재수 때는 상대적으로 정신적 여유가 생겼고, 세번째 볼 때는 뭐... 시험장이 내 안방이었다.

윤호 : 연변 총각의 ‘500년 묵은 산삼은..’같다. 짬밥론인 거 같은데…

그넘 : 그렇게되나? 덧붙여, 말로 하는 것과 실제로 하는 것의 차이도 있다. 대학진학이라는 이해관계가 없는 상황에서, 학교 찾아가서 원서 쓰고, 돈내고, 수업 땡땡이 쳐야 하고, 하루 내내 시험봐야 하고... 웬만한 각오 없인 힘들거다.

수능 공부를 한 지 꽤 되었다는 것도 핸디캡이 될 수 있다. 과외를 쭈욱 했었다면 좀 낫겠지만, 그래도 전 과목을 빠릿하게 긴장해서 정리되어 있던 상태랑은 틀리다. 암기 쪽은 잊어먹은 것도 꽤 되고, 감각도 좀 무뎌지고...

윤호 : 학원강사의 0점 도전설도 있던데...
그넘 : 택도 없는 소리다. 수능은 한 과목이 아니다. 전 과목 가르치는 학원강사 봤나?

윤호 : 개인적으로 수능입시 제도에 대한 생각은?
그넘 : 기본적으로 입시제도란게 경쟁을 전제로 하고, 어떻게 바뀌어도 사실 갈 놈은 다 간다. 문제는 현 제도는 부익부 빈익빈을 조장, 적어도 방조한다는 거다. 이런 식이 계속된다면, 내 아이는 초등학교 때 외국에 유학 보내서 영어 마스터 시키고, 그 때부터 과외로 안전빵 선행학습 시키면 입시는 거의 필승할 수 있다는 확신이 든다. 이거 아무나 할 수 있겠나? 결국 돈 많은 넘만 가능하지..

윤호 : 나름대로 일리있는 말이다. 그나저나, 잠깐 수능 성적표를 볼 수 있겠는가?

그넘 : 어... 그, 그게...

윤호 : 원한다면 당연 익명은 철저히 지켜준다. 이너뷰의 신뢰성을 위해서니까... 너무 기분나뻐할 꺼 없다.

그넘 : (쭈삣쭈삣) 여기 있다.

윤호 : 정말 오랜만에 보는 성적표다. 꿈에도 그리던 0점... 근데 엥?



윤호 : 아니, 0점이 아니자나...?

그넘 : 그, 그게... 사실은...

( 일동 잠시 침묵,고요,적막... )

그넘 : 본의아니게 0점이 아니어서 미안하다. 정말 정말 빵점으로 알고 있었는데, 딴지사옥에 오기 전에 성적표 받으러 갔더니 무려 15점이나 되서, 졸라 당황했다. 졸라 미안하다.

윤호 : 으허허허헉... 15점!

그렇다.

그는 0점자가 아니었다. 상황인 즉슨, 그는 원래 성적표를 학교에서 찾아가지도 않았었다. 왜냐? 친구를 도우러 시험 본 것이었기 때문에 성적표를 사용할 일이 없었던 것이었다. 허나 그의 성적표를 받아 보고 어이없는 점수에 놀라버린 출신학교 옛 담임선생님. 그 넘에게 점수가 어떻게 빵점이냐고 전화로 말씀하시고, 그넘은 자기점수를 0점으로 철썩같이 믿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딴지에 위와 같은 멜을 보냈던 것이고.

그런데 아뿔싸, 딴지의 요청에 따라 현재는 필요도 없는 성적표를 받으러 애써 출신학교를 들렀는데... 선생님에게서 받은 성적표는 무려 15.8 점이었던 것. 그넘 왈, “샘님, 빵점 아니자나요.”, 선생님 왈, “얌마 이게 빵점이나 마찬가지지...”



윤호 : 허탈하다. 하긴 머, 15점도 아무나 받는 게 아니긴 하다.

그넘 : 그렇다. 나도 진짜 아쉽다. 하지만 절대 의도하지 않고는 15점도 받을 수 없을 것이다. 그냥 찍어도 7,80점은 나올 것이다.

윤호 : 15점이면 약 7-9개 정도는 틀린 답도 못 찾았다는 야그가 되버린다.

그넘 : 그렇다. 0점은 진짜 쉽지 않다. 내가 15점이나 받은 이유는, 여러 가지 변수가 있었지만, 친구 돕는 게 사실 더 우선이었기 때문에 빵점달성에 100% 신경쓰지 못한 점이 가장 컸겠고, 그래서 언어영역 같은 경우 막판에 시간이 약간 부족했다... 사탐, 과탐의 경우 공부한 지가 꽤 되어서인 이유도 있겠고...

그리고 몇 문제는 틀린 답 골라내기조차도 아리까리한 것이 꼭 있게 마련이다. 수리영역은 틀린 답 찾기가 상대적으로 더 애매할 수도 있고. 나 같은 경우 최상의 컨디션에서 위와 같은 변수가 적었다면, 15점 까지는 받지 않았을 것이다. 충분히 0점의 가능성은 있었다고 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제 해본 경험으로는 위에 말한 여러 변수들 때문에 0점을 완벽하게 보장할 순 없을 것 같다.



윤호 : 아, 아무리 생각해봐도 아쉽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 있음 해봐라.

그넘 : 수능에 목 매고 있는 수험생들에겐 미안하다. 다양성의 차원에서 이해해달라. 그리고 중요한 건... 정말로 나도 0점자를 함 만나 보고 싶다. 의도한다면 분명히 가능성은 있다. 물론 실제 0점을 받는 건 별개의 문제지만...기회가 되면 나도 다시 도전해 볼 것이다.

똘똘하고 야무진 인상의 그 넘은 이렇게 훗날 재도전의 의사를 밝히고, 아리따운 그녀의 손을 꼬옥 잡은 채로 딴지 사옥을 총총히 떠나갔다. 비록 15점이나 맞아버렸지만, 본 기자가 기대했던 나름의 논리와 소신으로 뭉쳐있는 개성있는 넘임을 느낄 수 있었다.

그렇다. 어케 보면 정말 할 일 없는 또라이라 생각할 지도 모른다. 그러나 본 기자, 단언컨데 그 넘, 또라이 아니였다. 다만 남들보다 좀 더 발상전환적이며 지적 호기심이 많고, 그 것을 직접 행동으로 옮기는 실행력과 지적 능력에 약간의 객기를 가진 넘일 뿐.

하여간 이너뷰는 그렇게 끝나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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