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님과의 상담 후

글쓴이
길가다꽝
등록일
2017-07-24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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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서울에서 화학과에 진학중인 이제 학부 4학년 올라가는 학생입니다.
진로에 대한 막연한 생각을 정리하는 데 도움을 얻고자 학교에 계신 여러 교수님들께 상담을 요청하였는데
그중 한 교수님을 이번에 만나뵙게 되었습니다. 제가 교수님 방에 들어가자마자 몇학년인지부터 물으시더군요. 4학년이라고 하니 4학년씩이나 되어서 아직 진로도 못 잡으면 어떡하느냐. 공부할 생각은 있느냐고 물으셨습니다. 여기서 공부할 생각이라는 건 졸업 후 취직을 하는 게 아닌 계속해서 이 분야에서 꾸준히 공부하면서 연구를 할 생각인지에 대한 질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렇다고 했더니
"자네가 여태까지 공부한 것들 중에서 자네가 가장 잘 할 거 같은 게 뭔지 생각해봐. 아마 한 분야라도 끌리는 게 있을거야. 어느 분야 수업의 학점이 높고 낮은 게 중요한 게 아니야. 열심히 외우기만 하면 학점이 잘 나올수도 있지. 그거 말고 자네가 공부하면서 느낀 점에 대한 거 말이야. 화학이란 과목에 세부적인 분야가 많은데, 다 서로 너무 달라서 한 과목으로 묶기 어려울 정도지. 그 중에 하나만 끌리지 않는다는 건 자네가 공부를 헛으로 했거나, 아니면 이미 마음 속에는 어떤 분야가 있는데 막연한 불안함 때문에 쉽게 고르지 못하는 거겠지."
와닿는 말이면서도 아리송했습니다. 교수님께서는 자신이 줄 수 있는 건 해당 분야에 대한 정보 정도지, 제가 분야를 선택하는 건 스스로 해야 할 일이라고 하셨습니다. 학점이 중요하지 않다는 말도 여러 번 하셨습니다.

"자네같은 학생들은 학점을 따려고 그렇게들 노력하는데, 도대체 학점을 왜 그렇게들 높게 따려고 하는거야? 자네 친구들한테도 좀 물어봐봐. 취직하려고 하는 사람들이면 그나마 이해해 줄 수 있지. 그쪽은 내가 잘 모르니까. 학점이 높은 학생을 데려가려고 하는지는 내가 잘 모르겠어. 그런데 공부를 하려고 하는 학생들이 왜 그렇게 학점에만 집착해서 필요한 것들을 놓치는지 모르겠어"
그러면서 저희 과의 커리큘럼에 생물이 빠졌다는 것과, 학부생 때 연구를 적극적으로 시키지 않는 것에 대한 불만을 표출하셨습니다. 연구실이 충분히 넓어졌음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을 랩에 들이는 커리큘럼 자체가 없다는 것이 큰 문제라고 지적하셨습니다. 랩에서 대학원생들, 연구원들과 같이 생활하면서 연구 실적을 내는 게 아닌 분위기를 파악하는 것, 손기술을 늘리는 것, 이런 것들이 중요하지 학점 높은 학생들 데려다가 연구 시켜봐야 아무것도 할 줄 아는 게 없다고 하셨습니다. 과학을 하는 건 학점이 아니라 왜? 라는 끊임없는 질문과 그에 답하기 위한 노력이라고도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자네가 고등학교 때 국어, 역사, 수학, 물리 이런거 다 잘했지만 화학을 선택한 이유가 있을 거 아니야. 어떤 이유든지간에. 그러면 이것도 똑같은거야. 그 중에 하나를 골라야지. 생각할 시간이 필요한 거 같으니까 한 달 후에 다시 찾아오게"
한 달 후에 다시 찾아오라고 하셨는데, 교수님이 하시는 말씀들이 정확히 저에게 시사하는 바를 잘 모르겠습니다. 통합해보면 '과학을 하기 위한 준비를 하는 기간이 4학년이다' 인 것 같습니다. 한 달 후에 교수님께서 저에게 묻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참 궁금합니다. 교수님은 저더러 생화학 수업과 분자생물학 수업을 꼭 들으라고 하셨습니다. 21세기는 생물이 대세기 때문에 생물 없이는 화학과에서 할 게 많지 않다는 이유에서였죠. 그동안 자네는 반쪽짜리 화학을 했다고 저에게 그러셨습니다. 제가 생물 수업을 처음 들었다고 말씀드려서 그런 거 같습니다. 그래서 생물 수업은 들어보려고 하는데,,,한 달 후에 어떤 대답을 듣고 싶으셔서 저에게 다시 보자고 하신건지 ㅠㅠ 생물 수업을 들어보고 천천히 분야 선택을 하라는 건지 아니면 한 달 안에 생각을 정리해서 분야를 결정해서 오라는 건지 잘 모르겠습니다.

교수님 말씀들을 여기에 다 적을 수는 없지만, 진짜 과학자라는 생각이 들긴 했습니다. 랩에 들어가서 책상 하나 다짜고짜 달라고 그러라는 교수님의 말씀을 들으니 제가 그동안 너무 수동적으로 커리큘럼만 따라가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지금 졸업 1년을 남겨둔 상황에서 당장 분야를 결정하고 다음 두 학기를 그를 뒷받침할 지식과 기술을 쌓기 위한 토대로 삼아야 할지 아니면 좀 더 다양한 분야의 수업을 들어본 후에 선택하는 것이 옳을지 여러분의 고견 부탁드립니다.

  • 벤스트리트만 ()

    분야를 정해서가면 그에 대한 정보를 주시겠죠. 커리큘럼은 화학과 내 과목들은 다 들으시고 학점 남으시면 인접 학과들 과목 수강하면 될 것 같고요. 저도 비슷한 내용으로 상담을 받아봤었고 비슷한 답변을 들었습니다.

  • Allen ()

    굳이 수업을 듣지 않아도 지식은 충분히 얻을 수 있습니다. 한달간 스스로 책을 볼 수도있고 인터넷을 통해 무료 강의를 들을 수도 있죠.

    교수님의 말씀은 듣기엔 좋은 말이지만 너무나 이상적인 말입니다. 이공계에서 학부때 논문을 쓸 정도로 특출나지 않은이상 학점 외에는 결과가 없고, 대학원진학시에도 이는 매우 중요하게 작용합니다.
    즉 학점이 중요하지 않다 라는 말은, 학점을 잘받는 정도의 공부는 지극히 당연한거고, 배우는 학생은 그것보다 더 본질적인것을 깨닫기 위해 공부해야한다 생각합니다.
    A 를 받았다는것이 그과목을 잘한다고 할 수 없지만 최소한 그 과목을 성실히 공부했다 정도는 될테니까요.

    그리고 대학교때 굳이 화학을 선택한 이유라.... 작성자 님은 잘 모르겠지만 학과 동기중 60% 이상은 '점수에 맞춰서 지원했기 때문' 이 답일거에요. (이것도 상당히 널널하게 잡은거라 생각해요)
    과연 고등학교때 배운 화학이 재미있고 더 배우고 싶어서 굳이 화학과에 지원한 학생이 몇이나 될까요..

    개인적인 생각으로 졸업전 마지막 학기를 앞두고 진로에 대해 고민할때 이전에 배운 전공과목들이 재밌었고 더 공부하고 싶은게 너무 많아 어느분야로 가야할지 고민이라면 상관없지만, 그게 아니라면 그냥 취업하는걸 추천합니다.
    이제와서 학문에 흥미를 찾기란 쉽지 않지요. (물론 저의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 mhkim ()

    교수님 말씀만 듣지마시고 그 방 연구실 대학원생말을 한번 들어 보세요. 내가 선하면 다른 사람도 선하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은데, 세상은 그렇게 돌아가지 않습니다. 그 교수님께서 대학원생을 낚으려는 사탕발림의 말을 하시는것일수도 있습니다. 모든 것을 거짓으로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거짓과 진실을 적당히 섞어서 이야기하고, 내가 거짓에 걸려든것인것을 알았을때는 때가 늦은경우도 많습니다. 전 근본적으로 우리나라 교수들을 잘 믿지 않습니다. 최근 일련의 사태들을 보면 우리나라 교수 집단이 어떤지 잘 아실수 있을것입니다. 제 이야기를  듣고 한번 확인하는것도 나쁘지 않을것입니다. 인생이 걸린일인데 확실히 알아는 보셔야죠. 특히 대학원생들에게 악독하게 하는 교수들이 학부생에게 유별나게 친절한 경우가 많습니다. 정신 바짝 차리시길.

  • 짜이한잔 ()

    화학과 출신 박사학생으로 교수님이 언급하신 말에 대해서 반박할 것이 하나 없습니다. 그 이유를 들어드리죠.

    1. 4학년 때까지 진로를 못 정했다는건, 학사 졸업 후에 공부를 더 해야겠다는 큰 믿음이 없어서 입니다. 저를 포함한 제 동기들은 학점에 목숨을 걸었고 그 이유가 의전.약전.미국유학 세개였습니다. 보통 2학년 말에서 3학년 초 되면 진로가 다 잡힙니다. 그게 아니라면 보통 취업합니다. 그래서 화학과에서 바로 취업하는 애들은 보통 최상위권은 아니죠.

    2. 실험의 중요성...

    화학자에게 실험을 잘 하는건 필수 요건 입니다. 아이디어를 현실로 바꿔야 실적이 되니까요. 실험을 못하면 엄청 괴로울 겁니다. 똑같은 실험도 다른 사람이 하면 결과가 다르게 나와요. 똑같은 실험도 다른 날에 하면 또 다르게 나오고요.
    실험을 하다보면 실험을 구현하는 능력이 올라갈 뿐 아니라..새로운 문제에
    봉착하면서 또 다른 아이디어가 생기기도 합니다. 그래서 실험을 많이 해야 한다고 하는 것이죠.

    3. 생물의 중요성은.. 학부생은 이해 못하실 수도 있습니다.

    실험 데이터를 생화학 분야에 적용한 데이터를 논문에 실으면 소위 말하는 좋은 논문에 내기 수월해집니다.

  • 댓글의 댓글 짜이한잔 ()

    글쓴분의 문제는 수동적으로 커리큘럼을 따라간 것도 있지만, 궁극적으로 자신이 뭘 원하는지, 뭘 관심있어하는지 모른다는 겁니다.
    이걸 교수가 답답해 하는 거구요. 그래서 한 달 시간 줄테니 생각 정리해서 오라고 하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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