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에세이] 고유가 시대의 반복되는 해프닝 [2008. 7. 14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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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ie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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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0-31 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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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언스 에세이/7월 14일] 고유가 시대의 반복되는 해프닝


최성우 한국과학기술인연합 운영위원


근래에 국제유가가 가파르게 치솟으면서, 우리나라 뿐 아니라 세계 경제 전반에 짙은 암운을 드리우고 있다. 정부 차원에서 에너지 절약 방안 등 갖가지 대책이 강구되고 있기도 하지만, 신재생에너지와 미래 대체 에너지 개발의 중요성 역시 다시금 부각되곤 한다.
그런데 이와 같이 고유가 시대가 오거나 인류의 에너지 위기가 고조될 때마다, 가끔씩 비슷한 해프닝이 반복되기도 한다. 즉 미래의 에너지 문제를 단박에 해결할 수 있는 획기적인 장치를 발명했거나,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새로운 방법을 개발했다고 떠벌리는 사람들이 심심치 않게 등장한다는 점이다. 또한 일반 대중이 이들의 황당한 주장에 귀를 기울이고, 여러 언론에서조차 솔깃해 하면서 관심 있게 보도하는 어처구니없는 일도 자주 반복된다.

얼마 전에도 이웃 나라에서 어느 기업이 ‘물을 연료로 하여 달리는 자동차’를 개발했다는 해외 유명 통신사와 국내 언론의 보도가 나와서 많은 사람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 이어서 국내에서 신재생에너지를 연구하는 사람들을 취재한 어느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도 물을 마치 도시가스처럼 연료로 사용하여 조리를 하는 것이 새롭고 효율적인 방식인 양 소개되기도 하였다.

물론 좀 억지스럽게 말한다면, 물을 수소와 산소로 분해한 후 수소를 연소시켜서 동력을 얻거나 열을 발생시킬 수도 있을 터이니, 물로 가는 자동차나 물 연료 가스레인지 등이 원리적으로 불가능한 것은 아니라고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물을 분해하는 과정에서 도리어 더 많은 에너지가 들 것이니, 이들이 에너지 문제에는 전혀 도움이 안 되는 무가치한 것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이른바 ‘영구기관’(永久機關;Perpetual Mobile), 즉 외부에서 에너지나 동력을 공급하지 않아도 스스로 영원히 움직이는 장치나 기술을 개발하는 일은 옛날부터 많은 사람들이 매달려온 인류의 오랜 꿈이었다. 수많은 과학자나 기술자들이 다양한 종류의 영구기관들을 고안하여 실험해 보았지만, 물론 그 중 제대로 작동된 것은 단 하나도 없다.

19세기 중반 이후 여러 물리학자들에 의해 에너지의 보존법칙과 열역학 법칙이 확립되어, 에너지는 서로 형태가 바뀔 뿐, 자연계 전체의 에너지는 항상 보존된다는 것이 밝혀진 이후에도 영구기관의 발명자들은 전 세계적으로 끊이질 않았다.

역사적으로 보면 영구기관의 발명자들 중에는 잘못을 미처 깨닫지 못한 채 자기의 발명이 옳다고 확신한 사람들이 많았지만, 고의적인 사기꾼들도 적지 않았다. 영구기관을 만들었다고 하면 관심 있는 부자나 권력자들로부터 큰 돈을 후원 받을 수 있는 점을 노렸던 것이다. 몇 년 전에는 국내에서도 한 저명 정치인이 어느 영구기관 발명가를 후원하고 외신기자회견까지 하겠다는 기사가 보도되어 실소를 자아내게 한 적이 있다.

국제 유가가 고공 행진을 계속하고 인류의 에너지 위기가 고조되는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영구기관의 유혹’에 다시금 빠져들지도 모른다. 그러나 자연은 에너지를 그저 공짜로 얻어 쓰기만 하려는 인간의 헛된 욕망을 들어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중학생 정도의 과학 상식만 있어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을 텐데, 비슷한 해프닝들이 반복되고 일부 언론과 사회지도층에서마저 부화뇌동(附和雷同)하는 것을 보면, 과학에 관한 대중적 이해 수준을 반영하는 것이 아닌가 싶어 가끔 씁쓸하기 그지없다.

<ⓒ 인터넷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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