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좌담 '과학기술 중심사회 어떻게' [03.02.04/한겨레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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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ie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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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2-20 1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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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국정 10대 과제로 ‘과학기술 중심사회의 구축’을 내세웠다가 ‘과학기술 혁신과 신성장 전략’으로 수정한 데다 청와대 비서실 개편안에 과학기술 수석비서관이 빠지면서 과학기술계에서 때이른 실망과 불만의 소리가 높다.

새해 들어 잇따른 과학기술 혁신 관련 토론회에서 새 정부의 과학기술 정책 기조에 대한 갖가지 제의가 봇물처럼 쏟아지고 있다. 그러나 과학기술계의 자기반성을 토대로 하지 않은 ‘새틀 짜기’는 말의 성찬이나 모래 위에 집 짓기에 그칠 우려가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과학기술 중심사회를 세워가는 데 필요한 전문가들의 제언을 좌담회를 통해 모아본다.

● 참석자
박익수 전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위원장
이원근 과학커뮤니케이션연구소 소장
박상욱 한국과학기술인연합 운영위원

● 때와 곳
1월29일 한겨레신문사 8층 회의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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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빠진 독' 물붓기 앞서 전략수립부터

이원근=요즘 과학기술계의 최대 관심사는 청와대 과학기술 수석비서관 신설 여부였다. 과학기술계가 가장 강력하게 요구해왔고, 지난 대선 때 주요 3당 후보 모두 공약으로 내걸었던 사인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청와대 개편안에서 이 부분이 빠져버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과학기술의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의구심을 갖게 됐다.

박상욱 = 과학기술계가 왜 수석을 요구했는지 배경 설명이 필요하다. 과학기술처에서 과학기술부로 승격되면 힘이 실릴 줄 알았는데, 실제로는 과학기술부가 힘이 없어 다른 부처에 이리저리 치이다보니 하나 더 만들자는 의견이 나온 것이다. 과학기술 진흥에 대통령 의지가 중요하다고 하면서도 정작 대통령의 근접거리에서 과학기술계 목소리를 내는 사람이 없었다는 얘기였다. 과기부, 산자부, 정통부 등 유관부처를 가운데서 조절하고 의사소통을 이뤄낼 수석급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대통령과 의사소통 문제

박익수 = 과학기술 수석은 예전부터 제기된 문제다. 현재 대통령에게 과학기술 현안을 보고하는 기구는 국가과학기술위원회와 대통령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가 있다. 3년 동안 자문회의 위원장을 맡아보니 현 체제는 오히려 대통령에게 과학기술과 관련한 언로를 가로막는 벽 구실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자문회의의 경우 위원장만 대통령이 임명하고, 행정처장은 과기부장관이 임명하게 돼 있다. 행정처 다른 직원은 기타 부처에서 파견나와 근무한다. 이런 구조로는 대통령 자문기구가 아니라 과기부장관을 자문하는 자리밖에 안된다.

국가과학기술위원회의 경우도 위원장은 대통령인데 간사는 과기부 장관이다. 안건을 사전 조정·협의하는 운영위원회는 각부 차관급으로 구성되는데, 위원장이 과기부 장관이다. 또 국가과학기술평가원의 원장 인사권을 과기부 장관이 가지고 있다. 사실상 과기부 장관이 과학기술위원회를 장악하고 있는 것이다.

대통령 과학기술 비서관도 과기부에서 추천하게 돼 있다. 비서관은 청와대에서 나올 때 한 단계 진급하게 돼 있다. 진급이 되면 장관은 없는 자리라도 만들어줘야 한다. 청와대에 과학기술 전문은 그 사람뿐이니 과기부 대변하는 일을 한다. 대통령이 이런저런 얘기를 듣고 판단할 경로가 애당초 틀어막혀 있는 것이다.

이원근 = 과학기술 수석이나 특별보좌관이 만들어졌을 때 과학계가 원하는 준비된 사람이 있느냐도 살펴야 한다.

박상욱 = 과학기술부 장관은 주로 정치인이나 과학기술 원로가 해왔는데 원로 중에는 훌륭한 분들도 많지만 일부는 평생을 정치교수로 살아온 사람들이 과학기술계 수장이라는 분위기로 장관을 노려온 게 사실이다. 그런 분들은 눈치보기식 업무처리를 할 수밖에 없었고 과학기술계의 독자적 목소리를 낼 수 있었던 것은 오히려 정치인 출신이었다는 얘기가 나온다. 수석이나 특보는 원로가 아닌 현장의 목소리를 전달할 수 있고, 연구와 행정경험을 두루 갖춘 인물이어야 한다.

박익수 = 행정에서 떠나 다시 돌아간다 생각하지 않고 대통령에게 봉사·충성한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이 들어가야 한다. 과학기술 시스템의 업그레이드를 위해서는 국가과학기술위원회를 국무총리 직속으로 두고 정책·연구 기능을 부여해야 한다. 과학기술연구평가원은 제3자가 해야 한다. 행정부가 1차 자체 평가하는 것은 좋은 데 궁극적 평가기관은 헌법기관인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아래 두어야 한다. 자문회의 행정처 직원은 과기부에서 파견하지 말고 독립 기관으로 만들어 외부의 모든 여론은 여기서 수집평가하도록 해야 한다.


경제발전 도구삼는 오류 말아야

이원근 = 인수위가 설정한 ‘과학기술 혁신과 신성장 전략’ 과제의 세부 목표를 보면 태스크포스 3명이 감당하기에 벅차다는 생각이 든다. 다양한 부처가 연결돼 있는 사안들을 하나로 엮으려는 노력으로 볼 수도 있지만 너무 과중해서 밑그림이 나오지 않는 것 아닌가 하는 염려도 든다.
‘과학기술 혁신’과 ‘신성장’ 두가지를 각 단위가 아닌 시스템 차원의 변화로 이끌어가려면 우선 인적 시스템을 선진화해야 한다. 국내외 분야별로 전문성을 가진 인력이 얼마나 포진해 있는지 인력 지도와 향후 예상 인력 지도도 나와야 한다. 이를 바탕으로 전체 국가전략에 따른 인력 조절 시스템이 갖춰져야 한다. 둘째 관리 문제다. 관리의 핵심은 과학자의 자율성 얼마나 보장해주느냐에 초점 맞춰야 한다. 셋째 시대가 워낙 빠르게 변하기 때문에 예측시스템이 필요하다. 선진국 모방 경향을 벗어나려면 외국에 앞서 예측하는 시스템이 있어야 한다. 마지막은 평가시스템으로, 지금은 평가라고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부끄러울 정도다. 평가의 객관성을 담보할 시스템이 필요하다.
‘신성장’이 과학기술과 연결됐다면 철학을 달리해야 한다고 본다. 과학기술은 하나의 결과로 나오기 위해서는 긴 시간이 필요하고, 오랜 시간을 기다릴 수 있는 인내가 필요하다. 임기 안에 무엇을 성급하게 얻겠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신성장 얘기하면서 과학기술을 또다시 경제발전 수단이나 도구로 삼는 오류는 저지르지 말아야 한다.

박상욱 = 성장과 관련해 이공계 기피 얘기를 안할 수 없다. 일단 과학기술이 성장의 동력이다는 전제를 인정한다면 이공계 기피는 성장에 분명 방해가 된다. 이공계 기피가 심각한 것은 우수학생들이 의대·약대·한의대로 몰리면서 나타나는 질적 저하뿐만 아니라 절대 수치 자체가 줄어드는 양적 저하 현상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가구공장, 염색공장 등 3디 업종 기피와 같은 정서다. 지금의 육체노동인력처럼 연구개발인력, 현장엔지니어도 부족하게 된다는 것이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대책이 나오고 있는데 하나는 유인책, 하나는 견인사기진작책이다. 그러나 유인책은 고등학생들을 장학금·해외유학 등으로 일단 이공계 대학으로 끌어들이려고만 했지 졸업해서 어디에 취직할 수 있는지, 대우를 잘 받을 수 있는지에는 대책이 없다. 견인사기진작책도 명예전당이다 국가지정연구원, 영연직 연구원이다 해서 원로 과학기술인을 예우를 해줌으로써 그것을 보고 후진들이 늙으면 예우받을 수 있겠구나, 명예롭게 묻힐 수 있겠구나 생각하라는 차원에 그쳤다. 실제로 일하고 있는 30~50대를 위해 급여 인상·정년보장 등 실질적 사기진작책은 나온 게 없다.


미봉적 유인책 사기진작 못해

이원근 = 사회문화적 가치 기준이 변하기 때문에 이공계가 소외되는 측면이 없지 않다. 요즘 청소년의 관심은 수익과 대중적 인기이다. 대중성이라는 것은 대중이 필요로 하는 것을 그 집단이 주고 있는가를 진단하는 척도다. 그런 면에서 과학기술계는 실패했다.
과학이 당장 결과가 보이지 않는 것이라 하더라도 과연 세금을 낸 국민에게, 물건을 산 기업의 고객에게 과학자들은 무엇을 줬는가 자성해야 한다. 지금은 연구소가 너무 닫혀 있다. 과학이 중요하다고 하면서도 보여주려 애쓰지 않는다. 연구소가 대중과 커뮤니케이션을 위해 벽을 허물고 문을 여는 작업이 필요하다. 과학기술자들이 고객을 만드는 작업부터 시작해야 한다. 청소년 따라가는 곳 보면 고객이 있다. 의사에게는 환자가, 변호사에게는 의뢰인이, 연예인·스포츠 스타에는 팬과 관객이 있다. 공급자가 소비자가 원하는 것, 즐거움을 주기 때문에 고객들이 다시 힘을 주는 것이다. 국민에게 무엇을 줄 것인가. 과학계는 자신의 연구를 알리는 작업부터 시작해야 한다. 우리와 똑같이 이공계 기피현상을 겪고 있는 영국의 왕립학회는 연구개발프로젝트 예산의 10% 이상을 자기 연구와 대중의 커뮤니케이션에 사용하도록 의무 규정을 두고 있다. 1996년 노벨 화학상을 받은 해리 코트도 왕립학회 프로젝트를 받으면서 12%를 과학대중화에 쓰라는 강제조항에 서명했다. 이렇게 되면 제도적으로 과학 대중화에 나설 수 있는 입지가 마련된다.

박익수 = 나는 다른 각도에서 본다. 과학기술계 혁신은 대덕단지의 연구 풍토 조성에서 시작해야 한다. 카이스트는 애초 경제개발을 목적으로 설립돼 과학기술부 산하에 두었다. 지금은 카이스트조차 일반 대학을 닮아가고 있다. 교육부로 가지 않으려면 차별화를 해야 한다. 현 출연연구소가 대다수 키스트, 카이스트에서 갈려 나온 연구소들인데 서로 협의하는 공식기구가 없다. 연구과제중심운영제도(피비에스)는 연구소가 먹고살기 위해 아무 연구나 손을 대게 하고, 기관장이 소신껏 연구소를 운영하는 데 걸림돌이 되고 있다. ‘대덕에 들어오면 연구하고 싶다’는 분위기가 만들어져야 하는데 그게 안돼 있다.

이원근 = 노무현 당선자는 과학기술 연구개발 예산의 대폭 증액을 약속했다. 그러나 예산을 늘리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늘리되 어떤 방식으로 늘리느냐가 중요하다. 인력과 미래예측, 과학기술 세부분야의 발전예측이 없는 상태에서 숫자 늘리기는 밑빠진 독에 물 붓기다. 기초 과학도 전략이 있어야 한다. 미국과 영국에는 프로젝트 매니저(코디네이터)라는 신종 직업인이 있다. 동일분야 또는 다른 분야 전문가들을 엮어 프로젝트를 성사시켜 예산 중복을 피하고 융합기술을 급속 발달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이공계 출신들이 대학이나 연구소에만 가지 말고 필요한 분야에 새로운 일을 만들어갈 필요가 있다. 프로젝트 매니저는 궁극적으로 평가 전문가가 될 수도 있다.

박상욱 = 후발 공업국이 선진국을 따라잡으려면 선택과 집중을 할 수밖에 할 수 없다. 일본 연구개발비의 16분의 1, 미국의 40분의 1에 불과하면서 모든 연구를 다하자는 것은 현실적·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따라서 집중과 선택이 객관적이고 전문적으로 설정돼야 하는데, 지금은 선진국이 하면 무조건 따라가는 형국이다. 생명공학(비티)이 돈과 연결된 나라는 미국뿐이고, 나노과학(엔티)은 아직 사례가 없다. 국가 연구개발 전략을 수립할 때 먹고 사는 데 필요한 분야는 선택과 집중을 원칙으로, 기초분야는 다양하게 지원해야 한다.

이원근 = 불합리한 예산 집행도 개혁 대상이다. 현재 영수증 처리를 감사기준에 맞춰서 하도록 돼 있으나, 연구 집행 항목 자체가 비현실적이다 보니 정해진 항목 범위를 벗어날 경우 감사에 걸릴까봐 영수증 가짜로 만들 수밖에 없게 돼 있다. 한 조사에서 대학원생들의 48%가 영수증 조작에 가담해봤다고 답변할 정도다.

박상욱 = 전체 연구개발비를 총괄하는 기구가 없다. 기획예산처는 일단 예산을 지출하고 나면 관리를 안하고 있다. 산자부에 어떤 과제가 진행되고 있는지 과기부에서는 모르고 있다. 국가과학기술위원회 산하에 만들든지 별도 기구로 하든지 연구비 통제는 어렵더라도 최소한 관리는 해야 한다.

이원근 = 미국 백악관은 저명한 과학자들을 불러 강의를 듣는다. 영국 수상관저에서도 정규 강좌가 열린다. 노무현 당선자에게 청와대에서도 과학자 두루 불러 공부해달라는 부탁을 하고 싶다.

정리/이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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