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원생은 학생이 아니다’ [04.03.15/과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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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ieng
등록일
2004-03-16 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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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과학도가 방황한다 ① 국내 대학원 교육 이것이 문제다

행정업무에 교수 심부름까지 도맡고 프로젝트에 보장된 인건비도 못받아

이공계 진학생에 대한 지원 확대와 일자리 창출 등 다양한 과학기술계 사기 진작책이 발표되는 가운데, 현장에서는 이공계 대학원의 현실을 직시하는 것이 급선무라는 목소리가 일고 있다. 이미 이공계에 진학한 학생들마저, 불투명한 미래와 열악한 환경에 절망하는 일이 빈번하다는 것이다. 이에 본지에서는 이공계 대학생과 대학원생의 생생한 증언을 통해 문제점을 짚어봄으로써, 현실적인 대안을 모색한다.

“잘 모르는 사람들은 대학원생이라니까 수업 듣고 자기 공부하는 줄 알더군요. 방학엔 뭐 하느냐는 질문도 자주 듣습니다.” KAIST 물리학과 박사과정에 재학중인 채모씨가 하는 말이다. 실제는 어떤가 되물었다. “사실 학생보다는 직장인에 더 가깝죠. 아침에 출근하고 저녁이나 밤에 퇴근합니다. 하는 일도 공부보다는 회사에서 하는 일과 비슷해요.”
지난 6월 4일, 한국과학기술인연합(이하 과기인연합) 주최 현장 과학기술인 토론회. 패널 발표자로 나선 대학원총학생회장 출신 정우성씨(26, KAIST 박사과정)는 “국내 이공계 대학원생의 위상은 이중적이다. ‘학생’이라는 신분과, 국가 연구개발의 큰 축인 ‘학’ 부분을 떠받치는 ‘연구 실무자’라는 신분이 그것이다.” 라고 주장했다.
두 가지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 대학원생들. 이들에게는 경제적 어려움. 개인 연구시간의 부족, 위험한 작업환경 등의 어려움이 따르고 있는 게 현실이다. 한 대학 재료공학 전공 연구실. 책이나 논문을 읽고 있는 대학원생은 거의 없다. 흰 가운 차림도 눈에 띄지 않는다. 구멍 난 청바지 위에 더러운 앞치마를 입고 털털거리는 진공펌프를 바라보며 실험하는 ‘가난한’ 연구원들의 모습뿐이다.
“대부분 연구는 프로젝트를 통해 이루어지죠. 정부나 기업의 돈을 받아 진행하는데, 받는 만큼 결과를 내 줘야 해요. 학문연구를 위해 순수히 투자되는 돈 같은 건, 못 봤는데요.” 이 실험실 김모씨의 얘기다. 그럼 학위를 위한 공부는 언제 하나? “프로젝트 보고서 몇 개 쓰고 나면, 그거 모아서 논문으로 내는 거죠.”
연구과제(프로젝트)를 수행할 때 대학원생들의 인건비도 분명히 계산되어 있다. 적어도 과제 예산상에서는 대학원생이 ‘일하는 사람’으로 인정받는 셈이다. 그러나 작년 과기인연합의 조사에 따르면 많은 대학원생이 인건비를 제대로 못 받는다고 답했다.[그래프 1. 참조]
지난해 5월 13일, KAIST 항공추진실험실에서 폭발사고가 일어나 박사과정 대학원생 한 명이 숨지고 한 명이 중상을 입었다. 지난 99년에는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실험동에서 폭발사고가 일어나 대학원생 세 명이 목숨을 잃었다. 대학원생은 이렇듯 위험한 환경에서 일하고 있는데도, 산재보험은커녕 직장인이 아니라는 이유로 직장의료보험 혜택도 못 받고 있다. 기업체나 정부출연연구소에 비해 안전관리가 허술한 것도 문제다.
과도한 프로젝트와 열악한 환경 탓인지, 대학원 본연의 기능 중 하나인 강의와 학술연구는 뒷전으로 밀리고 있다. 국내 대학원에서 석사과정을 마치고 미국 유학을 준비 중인 김모씨는 “유학을 가는 이유는 여러 가지 있겠으나, 무엇보다 하고 싶은 연구에 매진할 수 있다는 것이 큰 매력”이라며, “2년간 국내 대학원에 다녀봤지만, 각종 행정업무, 프로젝트 관련 업무, 회계처리, 지도교수 심부름까지 모두 대학원생 몫이었다.”
“미국 대학원은 RA(연구조교)로서 학비는 물론, 생활이 가능한 수준의 인건비도 받을 수 있으니 내 돈 내고 남 일하는 국내 대학원보다 비용도 오히려 적게 드는 셈이다.”고 말했다.
우리보다 잘 살고 과학기술 수준이 높은 선진국과 연구 여건을 직접 비교하는 것은 무리일 것이다. 하지만 분명 국내 과학계에 문제는 있다. 박사과정 신모씨는 이렇게 말한다.
“졸업 후가 보장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제대로 배우고 마음껏 연구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생활고에 시달리며 서른 넘어 박사학위를 받고 나면, 자신이 소모품이라는 느낌이 들 것”이라고 말하며, “국내 박사들이 프로젝트 제안서와 보고서 쓰는 능력은 외국 박사보다 낫다”며 자조적인 표정을 지었다.
비어가는 국내 이공계 대학원 실험실을 어떻게 살리고, 대학원 교육을 정상화 할 것인가? 설문조사에서 대학원생들 스스로 답한 내용은 이 같은 문제제기에 대해 시사하는 바가 크다. 대학원을 ‘다닐만한 곳’으로 만드는 것. 이것이 급선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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