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가 텅텅 비어가고 저능아가 되는 느낌이 들어서 괴롭습니다.

글쓴이
취업고민
등록일
2016-09-18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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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저는 인서울 중위권 대학의 전자공학과에서 2학년을 마치고 현재 휴학 중입니다.

다름이 아니라, 저의 고민은 제가 바보 천치 저능아가 되어가는 느낌을 받는다는 겁니다.

사실 전 그렇게 공부를 잘 하는 편은 아닙니다. 사실 공부를 끈덕지게 완벽히 지식을 내것으로 만들어서 시험이 끝난 뒤에도 영원히 기억에 남을 정도로 그렇게 피눈물나게 공부를 해본 적도 없고 그저 상위 10% 정도의 학업능력임을 인증받은 채 학교에 왔습니다. 그래도 여태까지는 새로운 지식을 익혀간다는 게 즐거웠고 또 공부를 해서 뭔가를
익혀낼 수 있으며 자격증을 따고 중요한 시험을 통과하는 정도는 충분히 할 수 있을 거라고 믿어 왔습니다.

그리고 1,2학년 때는 끊임없는 교수님 말 베껴쓰기와 시험 2주전부터의 벼락치기를 통해 성적을 4점대 초중반으로 유지하였습니다. 숫자로서의 성적은 상당히 좋은 편이라고 자부할 수 있고 현재까지는 저희 과 저희 학년에서 차석입니다.

하지만 저는 어느 학기에도 지식을 완벽하게 익혀내지 못했습니다. 시험이 끝나고 나면, 제딴에는 그 과목에 최적화 됐다고 생각했던 저의 두뇌가 순식간에 문제의 풀이법을 잊어갔으며, 저는 흔한 유형의 문제조차도 풀어내지 못 하는 제 자신을 발견했습니다. 비참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기말고사가 끝나고 몇 주가 지난 후마다 한 학기에 죽어라 노력해서 결국 얻어낸 것은 성적표 상의 허울 좋은 숫자 뿐인가 하는 생각에 허탈한 기분이 들곤 했습니다.

2학년 겨울방학 때 저는 휴학을 하였고, 이 휴학기간을 발판삼아 전공을 2학년 때 배운 회로이론과 물리전자와 논리회로 및 기타 등등의 과목을 흠뻑 물씬 공부해보는 즐거운 시간을 가져보자고 생각했습니다. 공부에 흥미가 있었고 학기 중에 공부에서 많은 즐거움을 느꼈으니까요. 하지만 저는 곧 충격에 빠졌습니다. 회로이론을 복습하려 했지만 여러 유형의 문제들은 너무나도 어렵고 아니 어렷다기보다는 한 번에 외워지지가 않고 여러번 봐도 익혀지는 속도가 느린데다 양은 방대하다는 사실이 저를 질리고 겁먹게 만들었습니다. 전엔 결코 느끼지 않았을, 공부를 즐기는 제가 결코 느껴서는 안 될 아주 낯선 감정이었습니다. 결국 저는 체계적인 반복학습이 모든 것을 해결해줄 거라는 사실을 깊이 이해하고 있었음에도 더 이상 공부를 진행하지 못하고 전공책을 구석에 박아둘 수밖에 없었습니다.
요컨대 갑자기 공부에 흥미이고 동력이고 모두 잃어버린 겁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불쑥 떠오르는 생각이, "남들도 다 이렇게 하나? 안 하지 않나? 이 방대한 양을 따로 시간을 들여서 또 학습한다? 너 취업 준비는 안 해? 이딴 부모 등골 탑 위에서 하는 신선놀음이 그렇게 좋디? 네가 대학원을 갈 거든 취업을 할 것이든 이건 미친 짓이고 시간낭비에 불과해. 휴학까지 하면서 전공을 복습한다? 학기중에 더 잘 하지 그랬어? 최선을 다했어도 결과가 그 모양이면 최선을 다한 게 아니지. 그리고 전에 박 교수님도 글케까지 할 필요는 없다고 하셨잖아." 라는 내면의 목소리가 절 괴롭히는 겁니다.

'아, 내가 미친 짓을 하고 있었구나. 휴학을 괜히 했구나.', '스펙도 쌓아야 하는데? 공모전은 뭘 어떻게 어디서부터 시작을 해야 하지?', '난 아무 것도 할 줄 아는 게 없어. 취업 준비조차도.' 이런 생각이 들면서 눈앞이 깜깜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뭘 해야 할지 아무것도 생각이 안 나서 한 달 동안 티비보고 게임만 하고 놀기만 했습니다. 그 와중에도 스트레스로 4kg이나 빠졌고요. 그렇게 놀 수밖에 없던 제 자신이 괴로웠습니다. 현재는 토익스피킹 학원을 다니곤 있는데 그 이후에는 뭘 해야 할지 막막한 채로 있는 참입니다.

제가 안타까운 건 이겁니다. 우선, 저는 고졸 중졸보다 나은 게 없는 것 같습니다. 그 흔한 공모전이나 대외활동, 알바 경력도 없는데다, 저의 전공실력의 무결성을 결코 보증하지 못하는 껍데기 뿐인 학점 + 이력서를 채우기 위한 pseudo-영어(토익이라 불리우는, 진짜 영어라고 할 수 없는 가짜영어인)의 800점대 점수만이 저의 자랑(?)이고, 그리고 그것들은 정작 회사에 들어가선 아무런 쓸모도 없을 것을 거라는 겁니다.

게다가 저는 텍스트 공부에 손을 놓은 지도 한 달이 넘었고 요즘 혼자여서 말도 많이 안 하는데 점점 바보 멍청이 백치 IQ 44의 저능아가 돼가는 느낌입니다. 말도 서툴어져 가는 느낌이고요.

학교 다닐 때는 난 뭐든지 할 수 있어 대학원은 Stanford University로 가겠어! 5급 공무원도 뚫어주겠어!라는 하늘을 찌를 듯한 의기가 있었는데(그리고 5급 공무원이 되는 것에 대해서 매우 진지하게 생각해보기도 했습니다),

요즘은 나한텐 7급은 커녕 9급 공무원도 힘들어, 3년 공부해도 못 붙을 거라고, 초봉 2500인 중소기업이나 보내주시면 감사하다는 생각 뿐입니다. 취업 안 될까봐 두렵기도 하고요.

제 목표가 명문대 대학원 또는 견실한 중견기업이나 공기업에 들어가는 거였는데, 참 이렇게 저능해져서야 연봉 2천은 받을지 모르겄어요.

저 어떡하면 좋죠? 그냥 사기가 떨어졌을 뿐이고 실제로 저는 제가 원하는 것들을(5급, 7급 공무원까진 아니더라도) 이룰 힘이 여전히 있는지, 아니면 취업의 전장에서 무기도 전투복도 없이 빨개벗은 저능한 제 자신을 발견한 현실인식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다시 복학이라도 하지 않으면 방법이 없는 건가요?

  • Hithere ()

    자기를 객관적으로 들여다 보면 좌절밖에 남지 않습니다, 군대 갈거 아니면 빨리 복학하시고요. 일단 학부과정을 복습하지,마시고 4학년까지,다니시면서 천천히 지켜서 끝까지 보세요.  예습과 복습이 우리 나라의 가장 잘못된 교육 과정인데, 그냥 지금 배우는 것을 정확하게 배우시고 나중에 뒤돌아 보시면 됩니다.  네 빨리 복학하세요.  높은 곳을 오를 때 밑을 보면 어지러울 수 밖에 없습니다.

  • 320ddd ()

    만약 여기서 다른사람들이 "모든 사람이 그러니 괜찮습니다."라고 하면
    글쓴 분께서 가지고 계신 모든 고민이 사라질까요??

    모르겠습니다. 저또한 공대를 나와 기업을 다니고 있으며
    대학교를 차석으로 졸업했지만 그때의 전공을 지금까지 기억하지 못하고 있네요...
    또한 지금 다시 공부를 한다손 치더라도 지금의 학생들보다 잘할 수 있을까요

    근데 제가 느낀건요
    대학이후의 공부는, 고등학교때처럼 양치기로 많이 한다고 실력이 팍 느는것도아니며
    정말 뛰어난 학생 또한 모든것을 다 알고 있지 않고
    똑똑해보이는 박사나 교수 또한 그렇지 않다고 생각이 듭니다.

    따라서 글쓴분이 정말 모자라거나 그래서 이런 느낌이 드는 것이 아니라,
    현실이 너무 힘들어 보이니 조급한 마음 때문에 그런 것은 아닌가.... 생각이 드네요

    글쓴분의 인생이 정말 토익800대/학점4점대 라는 숫자만으로 판별이 가능한건가요?
    아닙니다.. 이 말이 너무 이상적으로 들릴 지 모르겠으나
    회사에서 인력을 뽑을 때 서류상의 숫자도 중요하게 보지만..
    그 외적으로 사람을 평가하는 무수한 항목들이 많기에
    너무 그 작은 숫자 하나를 바꾸기위해 자신을 학대하면서 살지 않았으면 합니다.

    실제 존재하는 공포는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작습니다.
    항상 자존감 잃지 마시고, 해왔던 것만큼만 사세요.
    그정도 학습능력이면, 대한민국에서 잘하는 수준입니다.
    굿럭!

  • 엔리코 ()

    메타인지 학습법이 별 소용 없던가요.
    인간이라면 누구나 시행착오를 겪기마련입니다.
    완벽주의로부터의 해방이 우선일듯 싶습니다만...

  • 댓글의 댓글 엔리코 ()

    '완벽주의로부터의 해방'은 제가 20대초에 읽었던 책 이름입니다.
    뭔가 기독교적인 내용도 있던데 암튼, 책내용에 따르면, 우월감과 열등감은 종이한장 차이,
     동전의 양면과 같아서.. 열등감에 사로잡힌 사람은 쉽게 우월함을 느끼고, 반대로 우월함을 느끼는 사람은 반드시 열등감을 느끼게 된다고 나옵니다.

    반면에 자신의 본연의 가치를 깨닫는 사람은 결코 다른 사람을 무시하는 법이 없으며, 더 잘난 누군가를 보며 비교의식이나 열패감을 느끼지않는다고 합니다.

    이러한 심리서적이나 치유서가 시중에 꽤 많이 나와있던데, 말을 안해서 그렇지 열패감을 느끼며 괴로워하는 사람이 굉장히 많은것 같습니다. 특히 어려서부터 경쟁이 치열한 한국에선 더 그렇죠.

  • 엔리코 ()

    완벽해지면 부모친구친척으로부터 인정받고 여자한테서 사랑받고  자아실현도 되고 행복할것같죠?
    그런데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아무런 상관관계가 없습니다.  이런건 나이가 들면 깨달아지는 거라서 와닿지 않을수도있는데요.
    왜 완벽해야만하는지 스스로에게 곰곰히 물어보십시요.
    진짜 자신의 가치를 발견해보십시요. 그걸 발견하게해주는 매개체는 많습니다.

  • 댓글의 댓글 반도체물성 ()

    엔리코님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그렇다면 학업이나 커리어의 완벽함과 사랑받는 것이 관련 없다면, 인간성과 소통능력은 완벽해질수록(?) 주변 사람들로부터 사랑받고 본인도 행복할 확률이 높아진다고 볼 수 있나요?

  • 댓글의 댓글 엔리코 ()

    제 생각에는 행복을 느끼는 순간이 많이 있을 테지만, 자신의 가치를 발견하고 스스로 만족감을 느낄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여행이나 독서 사색 등을 통해 깨우치기도하고,, 연애 가족 간에 조건없는 사랑을 느끼면서 깨닫는경우도 있을테고요.
    인간성과 소통능력이 원만하다면 행복을 느낄 확률도 그만큼 높지않을까요. 어느정도 관련은 있을거란 생각이 듭니다. (물론 제 생각이 정답은 아닙니다. 저도 인생을 배우는 중입니다)

  • 긍정이 ()

    수확없이 복학하면 그러하니, 기사 공부를 미리 해두시고, 3학년 2학기 마치고 나면 바로 기사라도 따두세요.

    여기 계신 분들이 좋은 스펙에 박사학위나 그 이상 하신 분들이 많아서 저평가 하실지는 모르지만 우선 작은 것 부다 끊어서 취득하시는 것도 방법입니다. 기사를 취득 후에 기술사까지 취득하시고(그때까지 질문자의 고민에서 해방이 안될 수도 있으니) 그 후에 다시 고민 또 하셔도 늦지 않을 것 같네요.

  • 엔리코 ()

    성취로 얻어지는 행복감도 물론 있습니다.
    그 방법론과 관련해서는 '승자의 뇌'라는 책을 추천합니다.

  • 빨간거미 ()

    완벽이라.... 성장할수록 부족함만 더 보이던데요.

  • 댓글의 댓글 취업고민 ()

    각 전공과목들에 대해서 문제를 보기만 해도 바로 답이 튀어나오는 수준을 완벽이라고 한 건데 그거랑은 궤가 다르죠. 님이 몰라서 그랬겠지만 결과적으로 말꼬리잡기를 한 셈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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