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박한 번역, 천박한 사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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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WistheTIME
등록일
2017-12-25 1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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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생각을 한다.
생각이란 무엇일까?

생각이란 객체화, 시간 흐름 인식, 논리 등을 수반하는 정신적 활동이다.
Sapir-Whorf는 인간의 사고가 언어에 영향을 주는 것과 같이 언어 자체가 사유의 방식에 영향을 준다고 하였고, 이는 100% 맞다.
왜냐하면 객체화, 시류 인식, 논리 등은 언어에 그대로 반영되고 언어가 바로 이러한 기능을 가능케 하는 도구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언어가 변질되면 사고도 변질된다.

지금 적폐청산이라는 사회적 대의가 작동하고 있다.
정치 경제에 대한 적폐 청산이 어느 정도 진행되면
민도도 올라갈 것이고  끝나면 언젠가는 학계에 대한 적폐청산도 이루어지리라고 본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가장 심각한  문제로 나는 "번역의 문제"를 꼽는다.
왜냐하면 번역의 오류는 사유의 오류를 낳고
이는 단순히 법 해석을 어떻게 하느냐의 문제를 넘어서,
이성적 활동의 근간을 흔들어놓기 때문이다.
가장 눈에 안 띄지만
가장 근본적으로 이성을 망가뜨리는 것이다.

번역의 문제는 크게 두 가지 측면으로 나뉜다.
1) 개별 단어 번역의 문제
2) 언어 구조 변형의 문제

1) 개별 단어 번역의 문제
개별 단어를 번역할 때 X같이 하는 문제다.
단적인 예로 영어를 배울 때 happy=행복 이라는 저열한 등식으로 배우고 말기 때문이다.
happy=행복 이 아니다
happy라는 단어는 행복이라는 단어와 일부 의미가 겹칠 뿐 사용되는 영역이 전혀 다르다.

2) 언어 구조 변형의 문제
요즘보면 개나소나
"이런 구매를 하는 것은 좋은 선택이 아니다"
따위의 말을 나불거린다.

이건
“It’s not a good option……” 류의 영어 번역체이다.

문제는,
원래 한국어 어법이 훨씬 간단하고 의미가 와 닿는다는 것이다.
"이런 구매는 좋지 않습니다"
그냥 이렇게 말하면 가장 효과적이고 자연스럽게 의미전달이 되는데
이걸 백치 아다다처럼
"이런 구매" 는 "좋은 선택이 아니다"
이런식으로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모두
영어 문장을 직역한 저열한 번역체를 너무 많이 읽은 탓이다.
그리고 그와 더불어
책을 읽지 않기 때문이다.

인터넷에서 횡행하는 짧은 글들만 읽으니
제대로 된 언어를 접할 길이 없고
결국 교정되지 못한 채 그대로 쓰고 마는 것이다.

한편
국립국어원은 "효꽈"를 "효과"라고 하라고 했었다.
그래서 아나운서들이 "이는 좋은 효~과가 있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따위 코메디를 벌여왔었다.
그러다가
얼마전에는 다시 "효꽈"라고 해도 좋다고 했단다.
국어원이 이따위 짓을 해온게 한두번이 아니다.

그런 생각을 해본적이 있는가?
수천년 이상 우리는 국립국어원 없이도 인류 역사상 가장 찬란한 언어 생활을 해왔다.
그런데 스스로의 학문적 패러다임의 오류를 발견할 능력도 없는 집단 하나가
왜 민족의 언어 생활을 규정해야 할까?

몇 년 전 쯤 나꼼수에서 비키니 사진이 논란이 되었었다.
그리고 잊을만하면 간간이 보이는 몇 덜떨어진 인간들의 "여성 인권" 운운하는 사례에서,
약방의 감초처럼 등장하는 단어가 있다.
바로 "대상화"라는 단어다.

그들은 주장한다
"여성을 대상화하지 말라"

근데 잘 생각해보면 이 "대상화"라는 말이 쪼께 이해하기가 거시기하다.
대저 모든 인간은 필연적으로 다른 누군가의 "대상"이 아니던가?
엄마는 나에게 엄마라는 상대자로서 존재하는 대상, 아들은 아들 역할을 하는 대상, 선생님은 나에게 가르쳐주는 대상, 아내는 아내로서의 역할을 하는 대상...이 아니던가 말이다.

우리가 스스로를 하나의 "개체"로서 인식하는 순간
나 외의 모든 것들은 "대상"일 뿐이다.

이 우주에서 개체로서의 자신이, 자신 이외의 그 무언가를 대상이 아닌 것으로 인식할 방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김어준은 나꼼수에서 항변했다.
"우리 모두는 누군가에게 대상이다. 안 그러면 섹시한 동지는 존재할 수가 없다. 그러나 성적 대상으로서의 느낌은 짧은 순간일 뿐이고 그 다음은 동지라는 인식이 길게 간다..."라고 말이다.

그런데 나는 그보다도 그 단어에 주목했다
X바 "대상화"가 대체 뭐야?

조금 생각해보니
이 단어는 “objectification”의 번역이었다.

나는 또 한번 개발번역의 폐해에 분노할수밖에 없었다.
영어 번역의 가장 고질적 문제는
번역하는 인간들이 맥락에 따라서 변하는 단어의 의미를 적절한 한국어로 옮기지 못한다는 데 있다.

obejct=물건, 대상 이라고 배우니
objectification = 대상화 라고 번역해버린 것이다.

나 자신을 제외한 모든 것은 "대상"이 될수밖에 없는데
그걸 비판의 용어로 사용하면
바로 존재의 기제 자체를 부정하라는 말이 된다.
그럼 살지 말라는거냐...?

결국
"대상화"라는 말은 의미가 성립되지 않는다.
의미가 성립되지 않기에
이 단어를 써서 비판을 하게 되면
비판의 논리도 성립되지 못하고
이를 반박하려 해도 반박의 논리도 성립되지 못한다.
단어가 의미를 전달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온전한 비판과 반박을 하려면
단어의 본 의미를 살려서 번역을 해야 한다.

그 온전한 번역은 바로
"수단화" 이다.

상대를 어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한다는 의미이다.
즉, 상대의 존엄성이나 인격을 고려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래서
"성적 대상화"라는 웃기지도 않은 번역의 코메디를 멈춰야 한다.
여자가 당연히 남자의 성적 대상이지 그럼 뭐란 말인가?
성적 대상이 아니라면 연애의 대상이고
그도 아니라면 사랑하는 대상이고
같이 밥먹는 대상이고
이야기하는 대상인거다.

제발 단어의 뜻을 온전하게 쓰자.

우리모두는 다른 누군가의 대상이다.
그리고 그러한 "대상"에게
나에게 대상이 되어주는 것에 대한 고마움을 표하고 소중하게 대해주어야 하는 것이다.
올바른 번역을 했을 때에 이러한 제대로된 도덕적 결론도 나오는 것이다.

이걸 어이없이
"대상화"를 한다고 비판하면
대체 어쩌란 건가?
상대랑 융합이라도 하라는 말인가?

문제는
상대를 나의 욕구를 풀기 위한 "수단"으로만 생각하고
인격이나 존엄성을 부여하지 않을 때에 발생하는 것이다.

이놈의 번역 문제좀 어떻게 해보자.
요새 인터넷을 정말 눈 뜨고 볼 수가 없다.
요즘 인터넷 보다보면 나 혼자만 갈라파고스처럼 동 떨어진 언어관을 가진 채 정신이 이상해지는듯 하다.

  • 통나무 ()

    객체화에 대한 페미니즘의 관점들
    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01368320

    여기서는 objectification을 객체화로 번역했습니다.
    그리고 사람을 객체로 대하는 사고방식에 담긴 특징을 설명하기를
    1. 도구성, 사람을 객체화하는 자의 목적을 위한 도구로 대함
    2. 자율성의 부정, 사람을 자율성과 지기결정권이 없는것으로 대함.
    3. 비자발성, 사람을 행위주체성이 없는것으로 어쩌면 활동조차 없는것으로 대함
    4. 대체가능성, 사람을 다른 객체와 교체가능한것으로 대함
    5. 시체 경계선의 침범가능성, 사람을 신체 경계선에 따른 온전성이 없는것으로 대함
    6. 소유, 사람을 다른이가 소유할수 있는 것으로 대함
    7. 주체성의 부정, 사람을 경험이나 감정을 고려할 필요가 없는것으로 대함.
    8. 몸으로의 격하. 사람을 몸이나 몸의 부위와 동일시하여 대함
    9. 외모로의 격하. 사람을 주로 어떻게 보이는지 혹은 감관에 어떻게 나타나는지에 따라 다르게 대함.
    10. 침묵시키기. 사람을 마치 말할 능력이 없어 침묵하고 있는 것처럼 대함.

    이런 범위를 가르키는데 마지막에 이런 개념을 제안한것이 마사 누스바움이고 정의자체가 미끄러지고 다면적이기 때문에 정의하기 어려운개념이라 계속적으로 논의해가고 있는 식으로 얘기하는데요.

    수단으로 번역은 오히려 더 일면적인 번역이 될수도 있습니다.
    번역이 잘되는것과 더불어 다양한 용어 사전들이 더 많아져야죠.
    각각의 철학자들의 용어사전부터, 각각의 분과 용어사전, 시대별, 계층별 벼라별 사전이 다 필요하겠죠.

  • 댓글의 댓글 통나무 ()

    위에 링크한 책을 번역한 분이 페미니즘에 대해서 다른 철학사전 항목들도 번역을 하고 있는데요. 몇달전에 번역자 트윗에 계폭되는것을 실시간으로 보고 있었는데,
    어느 여성분이 남자분에게 위협받는것을 도와준것을 트윗에 적었는데 페미니즘을 얘기하는 어느 여자분이 자랑질이냐부터 해서 반성하라는 얘기를 하니 우루르 달려들어서 이러저런 얘기가 나오다가, 번역자가 자기 집에서 세미나하는데 거기 갔던 여성분이 자기집에서 하는 세미나에 위협을 느꼈다 어쩌고 저쩌고 하는 상황을 실시간으로 보다 계폭하는것까지 봤는데.

    한국에서 문제는 뭘하든 현실에서 유리되어 괴상망칙한 사고로 강하게 주장하는게 뭐라도되는것처럼 되어버리고 이게 공부만 하는 인문학 하는 분들도 한발자욱들어가면 실제로 철없는 상태인지라. 여기에 맞추어 여자 군대보내라는 이런소리하는 남자들도 생기고 혐오하면서 표현의자유를 주장하는 식이 되어버리는지라.

    요즘은 뭔 주장을 보고 먼저 저 얘기를 하는게 과연 정상적인(아주 상식적인 상태에서) 생활이 가능한 정신상태인지부터 먼저봐야하는게 한국상황이라고 봅니다.
    번역이나 학문이전에...현실에서 벗어나 날라다니는 상태가 너무 많거든요. 특히 배운사람들중에.....

  • UNIQLO ()

    말씀하신게 가능하려면, 번역자 개개인이 본인이 주체라는 자각을 해야하는데

    기존 40~70대 분들 세대에서는 거의 그러지 못한거죠... 뭐 딱히 그분들을 비난하고 싶지는

    않구요. 축적된 토대가 워낙 적었던 시절이어서 그러지 않았을지.

    이런 문제의식이 싸이엔지에서 제기되는 것 자체가 이미 변화의 조짐 아닐까요?

  • 예린아빠 ()

    에고 제가 페미니즘을 1도 모르지만은 거기서 말하는 "대상화" "성적 대상화"는 김어준이
    말하는 "대상화"가 아닙니다.
    번역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 김어준이 모르고 한 소리 입니다.

    (아마도)페미니즘에서 말하는 대상화는 헤게철학에서 나온 말입니다.
    헤걸은 "자신에게서 나온것"인데 "자신과는 다른것"을  "대상"이라고 말했고 그 과정을 "대상화" 라고 했습니다.
    막스식으로 말하며는 "자신의 노동으로 나온 것=상품"이 자신의 것이 아닌것 과 논리구조가
    비슷합니다.
    아마도 페미니즘에서도 "대상화"에 소유개념을 넣었을 겁니다.
    그럼 남성이 여성을 "성적 대상"으로 본다는것은
    남성이 소유(지배)하고 있는 사회에서 여성을 남성에서 나왔으나 남성은 아닌 그 어떤걸로
    보지 말라는 의미일수 있습니다.
    설마 페미니스트가 김어준도 아는 그런 착각을 했을까요?

  • 시나브로 ()

    적폐의 대상중 번역을 제1의 위치에 놓는 건 정말로 어처구니가 없습니다.
    번역이 더러 잘못되는 경우가 있지만, 의도적으로 나쁜 사상을 쇠뇌시키려는 글에 비할바가 아니죠. 저런 세력들을 척결하고 난 뒤에 번역의 질을 논하는게 순리죠.

  • 정촉매 ()

    유명 페미니즘의 시초인 사람들의 끝이 어쨋는지 보시면 알수 있습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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