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융합','공학'분야에서 박사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글쓴이
석박통합꽥
등록일
2018-03-04 18:49
조회
3,263회
추천
1건
댓글
9건
안녕하세요. 융합분야에서 석박통합학위를 5년째 하고 있습니다.

제목은 저렇지만, 사실 지극히 사적인 심경 토로입니다.
박사과정인만큼 스스로 먹거리를 찾아야 하지만, 5년째 한편의 논문도 못쓴채로 너무 지친 것 같습니다.
그래서 넋두리도 하고, 쓴소리도 들을겸 글을 씁니다.

제 연구실은 '의학'및 '바이오'분야에서 이용할 '장비'를 개발하는게 주 테마입니다.

그런데 전 이 연구실에서 저 혼자 다른 테마의 연구를 진행하고 있어요. 처음엔 다른사람과 똑같이 같은 연구를 하고 있었는데, 교수님께서 '너는 할 수 있을테니, (연구실에 먼지쌓여가던)이걸 해봐라' 이런 식으로 분야를 배당해 주셨어요.
 약 1년 반 동안 A라는 전혀 다른 분야의 연구를 했습니다. 가까스로 시스템을 만들고, 동물실험 직접하고 하면서 다른 논문과 비교해볼 만한 데이터가 나왔는데, 말씀드리기 어려운 정치적인 이유로 모든 연구데이터와 연구했던 사실 자체를 봉인하였습니다. 그냥 없던일이 되었어요.
이 이후 B라는 또 새로운 연구장비를 구현하는 일로 던져졌습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로 주먹구구로 프로토콜 논문들을 보고 따라 만들어서 구현은 하였지만, 당연히 독창성은 커녕, 이 자체로는 논문거리가 안됩니다. 결정적으로 이 장비의 핵심기술은 물리학과 대학원 수준의 물리지식을 요구하였습니다. 그래서 더 이상 나갈수가 없엇습니다. 그래도 하드웨어 주먹구구 개발, 소프트웨어까지 코딩하며 여기까지 오는데 2년 걸렸습니다.

장비가 안되면 분석으로 가보자 하여, 어떠한 영상기술 분석방법 C를 조금 배워서(다른 곳에서 배워왔습니다), B에서 제작한 장비와 C라는 기술의 궁합이 좋기에 바이오 연구에 좋은 툴이 될 수 있다는 주장으로 논문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너무 엉성하고 지도교수님의 지도를 못받으면서 다른 연구실의 마찬가지로 잘 모르는 코워커와 진행하다보니, 힘에 너무 부칩니다. 여기까지 또 1년 반이 걸렸습니다. 기껏 준비한 논문으로 작년에 2번째 리젝을 먹으면서 가장 절실하게 든 생각은 석박통합을 괜히 했다는 생각이었습니다.


저희 연구실 사람들은 저 빼고 대부분이 같은 분야를 합니다. 그들은 장비를 만들고, 서로 논의하며 개발하여 장비로 논문을 냅니다. 박사과정중에 혼자하는건 저밖에 없어요. 저는 그들이 보기엔(아니면 적어도 제가 느끼기엔) 혼자서 잘하지만 운이 없는 똑똑한 동료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본질적으로 저는 혼자서 허우적대며 연구를 흉내내고 있습니다. 그저 남이 다 쓰고 남은 기술들만 찾아서 배우고 기워서 철지난것만 만들고, 언제나 열등감에 쌓여서 깊은 연구가 아니라 남의 분야를 기웃거리기만 하게 됩니다.

안일히 다니던 학부에 안주하면서 박사를 진학한 것도 후회스럽고, 멍청하게 교수님을 제대로 판단하지 못한것도 후회스럽고, 기민히 판단하지 못하여 목까지 물이 잠겨와서야 상황의 심각성을 깨달았다는 것도 후회스럽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다 버리고 학사학위로 돌아가야 할까요, 아님 어찌저찌 저열하게 버티고 줏어먹어서 물박사라도 따야 할까요? 사실 박사논문의 큰 틀 조차도 못정했습니다. 1달째 고민하고 있지만 교수님은 미팅때만 잠깐 고민하는 척 하고, 저는 포화상태라서 어떠한 것도 부정적으로만 보이네요. 이런식으로 박사를 따면 어차피 학계에서는 쓸모없지 않을까요?

가장 궁금한건, 요즘같이 '융합'이라는 말이 많은 상황에서 박사학위는 어떤것을 의미하는걸까요?

글 쓰는게 두서없는걸 보니 전 정말 물박사과정이 맞나봅니다. Orz

  • 석박통합꽥 ()

    글이 넘 길어졌네여 안읽고 내리셨을 분들을 위하여..
    기초과학이 아닌 분야에서
    융합분야, 공학분야의 박사학위는 어떤 것을 위한것일까요?

  • 크립토 ()

    논문이 쏟아지는 연구를 하는 희망은 모두가 같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연구는 결과 얻어내기가 쉽지 않습니다. 오히려 현재의 노력과 다양한 경험이 나중에 더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같은 랩의 전문가들은 안해보거나 못해보는 연구를 시작한 것이 오히려 더 큰 도움이 될 수도 있습니다.

    저도 학위가 있고, 예전에 배울때부터 "교수님들께 박사가 모든 것을 아는 사람이라는 뜻은 아니다." 라고 배웠습니다. 석사때 교수님들, 박사때 미국교수님들의 대부분 같은 말씀들을 하셨습니다.

    다만 박사는 "본인 스스로 새로운 일을 시작할 수 있고, 만들어 나갈 수 있고, 결과를 낼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이라는 의미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설계도 대로 시공하는 사람이 석사라면, 박사는 허허 벌판에 신도시를 건설할 수 있는 비전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만 막 박사를 받는 사람이 처음부터 신도시를 지을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졸업하는 경우는 1% 미만으로 봅니다.

    진짜 능력은 박사를 받고, 연구소나 기업에 가서 직접적인 현업을 해 보면, 진짜 능력이 나타나게 되더군요.

    따라서, 제가 드리고 싶은 결론은, 노벨상 받을 연구가 아니시라면, 빨리 학위를 받고 현업에 가셔서 더 많이 배우고 경험하시길 바랍니다.

    40세, 50세가 지나도록 꾸준히, 아주 많이, 쉬지않고 계속 연구하시면, 그때쯤 되서야 전문가가 되는 것 같습니다. 

    박사를 너무 거창하게, 너무 과하게 생각하지 마시고, 빨리 학위를 받고 사회에서 진짜연구를 시작하시길 바랍니다.

    박사는 진짜 연구를 할 자격이 있다는 티켓의 의미가 더 강한 것 같습니다.^^

    50세 넘은 현업(?) 종사자의 생각이었습니다.^^

  • 댓글의 댓글 석박통합꽥 ()

    감사합니다. 위안이 되었습니다. 너무 큰 욕심 내지 않고, 할 수 있는 것 부터 해 보겠습니다.

  • 그리피스 ()

    어떻게라도 학위따고 빨리 졸업하세요. 학위따러 석박통합간거 아닙니까? 그럼 빨리 따고 졸업해서 자기 살길 찾아야죠. 박사는 학위이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박사라고 사회에서 기대하는 것 없고요. 회사가면 그냥 월급쟁이에요. 회사가면 돈 많이 벌어다 주는 사람이 장땡이구요. 운좋게 정출연이든 공공기관 연구소 가면 과제 많이 따는 사람이 장땡입니다.
    심플하게 생각하세요. 물박사든 뭐든 빨리 따서 졸업하고, 지금의 고생이 나중에는 좋은 토양분이 될 겁니다. 그럼 수고...

  • 댓글의 댓글 석박통합꽥 ()

    과제 많이 수월하게 따고 연구 시원시원하게 하는 사람이 되고 싶은데,
    그런 사람이 될 수 있을지 자꾸 걱정이 됩니다.
    그런데 그런 고민은 우선 어떻게 받던 박사학위를 받은 이후부터 걱정하라는 말씀이시겠지요?

  • 돌아온백수 ()

    박사는 빨리 끝내는게 최선입니다. 논문도 졸업요건이라고 생각하시고, 마감시간에 맞추는 연습이라 여기십시오.

    박사라는 일종의 면허는 아무것도 보장하지 않습니다.

  • 댓글의 댓글 석박통합꽥 ()

    조금 마음이 가벼워진 것 같습니다.
    면허로 생각하고, 우선 학위를 딸 수 있는 방법부터 생각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 작은고기 ()

    박사학위때 고생한것이 후에 도움이 되기도 합니다. 위에 여러분들이 말씀하신대로 빠른시일내로 하신일을 간추려 학위를 마치시기 바랍니다. 물박사는 빨리 따실수 있으신지요? 제가 돌아볼때 6년이 지나면 지치기 시작하여, 크게 배우는 것도 없이 시간만 허비하게 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사람을 뽑을때 학위때 고생하며 실패한 경험이 있는 분들을 선호합니다.

  • 댓글의 댓글 석박통합꽥 ()

    ㅎㅎㅎ 감사합니다. 말씀하신대로, 마음이 닳아서 요즘 시간만 잡아먹고 아무것도 못하고 있습니다.
     요즘에는 일을 붙잡고 고민하고 있으면 감정이 동요되어서
    집중을 못하겠더라구요. 논문을 읽을게 아니라 당장 주제를 쥐어짜야 되는거 아닌가 생각이 들고, 억지로 읽으면 논문 한문단 읽고 갑자기 가슴이 먹먹해지고 목이 뻣뻣해지고..
    만약 저와 같은 고민을 하는 사람을 제가 봤다라면,
    '훌훌털고 할 수 있는것부터 고민해야지' 라고 말해줄 것 같은데, 막상 제가 그러니 감정이 뒤죽박죽이 되어서 안되네요...

목록


자유게시판

게시판 리스트
번호 제목 글쓴이 등록일 조회 추천
공지 질문과 상담은 용도별 게시판을 이용하세요 댓글 5 sysop 04-20 5074 0
14719 겸임교수 유감 댓글 2 tSailor 01-18 1085 0
14718 나폴레옹과 산업혁명 댓글 1 묵공 12-10 922 0
14717 LK99 논문에 대한 단상: 저항률을 중심으로 댓글 13 묵공 08-09 3144 0
14716 배터리 전기차 과연 친환경인가? 댓글 21 tSailor 07-13 2721 0
14715 답변글 Re: 배터리 전기차 과연 친환경인가? 댓글 4 tSailor 07-26 2170 0
14714 국가기관은 정신건강의학과와 연게하여 음주운전/묻지마 폭행/살해/살인 등의 문제를 예방 dfgh 06-28 1525 0
14713 국힘당 정체성은 뭘까요? 댓글 8 시나브로 06-08 2489 0
14712 결국 한동훈 딸은 MIT에 가려나 봅니다. 댓글 9 늘그대로 04-13 4608 1
14711 미국의 금리 딜레마 댓글 9 예린아빠 03-22 2657 1
14710 인간답게 사는 세상은 언제 올까? 댓글 15 펭귄 02-22 3119 0
14709 AI 챗봇 chatGPT를 사용해 본 소감 댓글 10 시나브로 01-19 4197 0
14708 2023년 새해 전망 댓글 13 예린아빠 01-01 2881 0
14707 관성 핵융합이 해결해야할 과제 댓글 11 묵공 12-23 2387 0
14706 사기꾼, 범죄자 천국인 나라. 댓글 2 펭귄 11-23 3122 0
14705 갑자기 공허한 생각 댓글 11 늘그대로 11-09 3344 0
14704 시진핑 3기 집권의 의미 댓글 43 예린아빠 10-26 3570 0
14703 서버 분산에 대해서 댓글 4 늘그대로 10-18 2652 0
14702 현 금융위기에 대한 간략한 설명 댓글 13 예린아빠 10-08 2946 0
14701 우리나라 어디까지 추락될까요? 댓글 52 시나브로 09-22 4378 0


랜덤글로 점프
과학기술인이 한국의 미래를 만듭니다.
© 2002 - 2015 scieng.net
모바일 버전으로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