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펌] 글 잘 쓰는 과학자가 성공할 확률이 높다.

글쓴이
신진철 (dawnsea)
등록일
2002-02-23 2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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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한 제목입니다만. 퍼 온 글입니다.

 

 

 

 

글 잘 쓰는 과학자가 성공할 확률 높다 (공개기사) 
 
갈릴레이 · 다윈 · 프로이드는 베스트셀러 작가
 
신동호 기자
과학동아 2002년 2월 dognho@donga.com
 
 
 
 
세계 최고의 공과대학 MIT의 근처 서점에서 수십년 동안 가장 많이 팔린 책은 무엇일까. 뜻밖에도 작문 책이라고 한다. 우수한 공과대학 학생들이 왜 이토록 작문 책을 사보는 것일까. 직접 현장을 찾아가 그 내막을 알아보았다. 
 
 
 
매사추세츠공대(MIT) 학생들이 가장 많이 지나다니는 보스턴시의 MIT켄달 지하철역 앞에는 MIT COOP이란 이름의 커다란 책방이 있다. 오후가 되면 북적대는 학생들로 이 책방은 활기가 돈다.

학생들이 책방을 들락날락 거리는 출입구 옆 쇼윈도에는 잘 팔리는 책 몇권이 늘 전시된다. 여기에 진열된 손바닥 크기의 작문 책인 ‘스타일의 요소‘ (The Elements of Style)는 수십년 동안 이 책방에서 가장 많이 팔린 책이다. 미국 최고의 이공계 대학에서 작문 책이 가장 잘 팔린다는 것은 처음에는 정말 의외였다.

이 책은 윌리엄 스트렁크라는 대학 교수가 1919년에 강단에서 작문을 가르치면서 만들었던 강의록을 그의 제자이자 작가인 E. B. 화이트가 수정해 40년 뒤에 만든 것이다. 글은 간결하고 짧게, 두개의 문장을 절대 붙여서 길게 쓰지 말고, 수동형은 피하고, 불필요한 단어는 무조건 빼라고 이 책은 강조한다.


졸업하려면 2번의 쓰기 관문 통과해야

MIT에서 1년여 동안 연수를 받으면서 필자는 왜 학생들이 그토록 글쓰기에 열심인지 조금씩 그 내막을 알게 됐다. 그리고 우리나라 이공계 출신들이 ‘글’에 맥을 못추는 것은 관심과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제대로 쓰기 교육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확신이 생겼다.

이 대학 입학생은 2학년 초까지 쓰기 1단계, 졸업 전에 쓰기 2단계라는 두개의 관문을 넘어야 졸업할 수 있다. 그러려면 쓰기 과목을 수강하거나, 글을 제출해 일정 점수 이상을 받아야 한다. 한해에 쓰기 과목을 배우는 대학생 숫자가 전체 4천2백명 가운데 9백명. 졸업할 때까지 평균 한과목 정도는 수강하는 셈이다.

대학에는 ‘쓰기 프로그램과’가 있으며, 여기에 소속된 교수와 강사가 29명이나 된다. 교수진은 소설가, 에세이작가, 시인, 번역가, 전기작가, 역사가, 과학자 등 다양하다. 교육 과목은 설명 및 수사학, 창작, 과학기술 쓰기 등 크게 세분야로 나뉘어진다. 학생들은 현대공상과학소설, 과학에세이, 과학저널리즘, 사이버스페이스에서의 커뮤니케이션, 수사학 등 36과목 가운데 자신의 구미에 맞는 것을 고를 수 있다.

대학이 글쓰기를 강조하는 분위기여서 필자도 여기서 글쓰기를 다시 배웠다. 지도를 맡았던 바바라 골도프타스 교수는 “MIT가 쓰기를 강조하는 이유는 쓰기를 통해 명쾌한 사고 능력이 생기게 되고, 이것이 연구 능력과도 직결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녀는 “실제로 MIT에서 글을 잘 썼던 학생들이 졸업한 뒤에도 성공하는 가능성이 높다는 조사 결과도 있었다”고 덧붙였다.

MIT 쓰기 프로그램과 학과장인 제임스 패러디스 교수는 아예 과학과 기술을 일종의 커뮤니케이션으로 보는 인물이다. 그는 쓰기의 중요성을 이렇게 설명했다. “과학기술자에게 쓰기는 지식 형성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대중은 물론 같은 분야의 전문가들이 정보를 습득하는데 큰 도움을 준다. 또한 요즘 과학기술 논문은 대부분 공저이기 때문에 글쓰기가 하나의 협동과정이다. 특히 요즘에는 자료들이 e메일을 타고 빠르게 돌아다니기 때문에 글쓰기가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리포트가 성적 평가 50% 차지

MIT에서 가장 인기 있는 교양과목인 스티븐 핑커 교수의 심리학은 쓰기가 학과목에 얼마나 구석구석 침투해 있는지 잘 보여준다. 핑커 교수는 마음을 컴퓨터로 보고 리엔지니어링하는 학자로 유명하다.

심리학 과목의 학점은 10% 출석, 40% 시험, 50% 리포트로 매겨진다. 쓰기가 학점의 절반을 좌우하는 셈이다. 리포트의 주제는 자유롭다. 하지만 리포트를 한번 제출하면 끝나는게 아니라 처음 낸 리포트를 계속 수정·보완해 3차 리포트까지 제출해야 한다.

일단 6-8장 정도로 리포트를 써내면, 조교들이 문제점과 개선 방향을 지적해 되돌려준다. 그러면 학생들은 이를 수정해 8-10장으로 다시 내야 한다. 학생들은 수정 경험을 바탕으로 3차 리포트를 12-15장으로 다시 써낸다. 물론 1, 2, 3차 리포트의 점수는 각각 별도로 매겨진다.

리포트가 성적을 좌우하므로 많은 학생들은 조교가 지적한 리포트의 논리적 허점, 표현 미숙 등을 해결하기 위해 밤새 씨름을 하고, 그래도 부족하면 교내의 쓰기 센터에 가서 개인적인 도움을 받는다. 그냥 써서 교수의 편지함에 집어넣으면 끝나는 한국의 대학생들은 행복하다고 할까. 하지만 이런 고통 속에서 MIT 학생들은 졸업할 때쯤 되면 유능한 과학자나 엔지니어뿐 아니라 훌륭한 작가로 단련된다.

또한 과학 쓰기 시간에 교수들이 학생에게 내는 숙제 가운데 빼놓을 수 없는 것은 무엇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설명하는 것이다. 재봉틀이나 펌프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사과는 왜 떨어지는지, 눈은 본 것을 어떻게 뇌에게 알려주는지 설명하라는 것이다. 숙제를 하면서 장래의 과학자들은 지금까지 모호하게 알고 있던 작동 메커니즘을 확실히 깨닫게 된다. 또한 이런 숙제를 해본 학생들은 나중에 과학자나 엔지니어가 돼도 과학과 기술을 정부 관계자나 대중에게 훨씬 쉽게 설명한다.

미국의 한 학자가 20개 연구기관에서 일하는 과학자와 엔지니어 2백65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바에 따르면, “쓰기 능력이 자신의 개인적 경력과 출세에 아주 영향을 많이 주었다”고 동그라미를 친 응답자가 절반이나 됐다. 특히 매니저는 그렇다고 응답한 비율이 71%에 달한다. “자신의 생각을 명쾌하고 논리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젊은 엔지니어는 졸업 후 5년 안에 매니저가 될 수 있다.” “형편없는 제안서와 보고서로는 연구비와 고객을 얻을 수 없다.” “커뮤니케이션의 질은 아이디어의 습득에 매우 강한 영향을 미친다.” 이들이 설문지에 써놓은 내용이다.

또한 이 과학자와 엔지니어들은 적어도 자신의 시간 중 1/3을 쓰기, 읽기, 편집, 프레젠테이션 준비 등 쓰기와 관련된 일에 소모했다. 승진할수록 비율은 더 늘어나 평연구원은 34%, 중간관리자는 40%, 그리고 매니저는 50%를 쓰면서 보낸다.


베스트셀러 작가 반열에 오르기도

그렇다고 글쓰기가 꼭 출세와 승진을 위한 것만은 아니다. 위대한 과학자들 가운데는 위대한 작가가 많다. 지난 5백년 동안 과학혁명을 주도해 왔던 코페르니쿠스, 갈릴레이, 뉴턴, 다윈, 프로이드, 베게너, 슈뢰딩거, 자크 모노, 제임스 왓슨, 레이첼 카슨 등은 단지 논문뿐 아니라 대중이 읽을 수 있는 훌륭한 책을 쓴 사람들이다.

갈릴레이는 지구중심설과 태양중심설을 믿는 두학자와 한명의 지식인 간의 논쟁을 희곡처럼 구성한 ‘대화록’을 써 단숨에 유명해졌다. 이로 인해 결국 로마 교황청에 끌려가 무기징역을 선고받기도 했다.

다윈이 5년 동안 남미와 갈라파고스를 둘러보고 돌아와서 쓴 ‘비글호의 항해’는 보고 경험한 것을 너무도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어 문학사에서도 고전으로 꼽힌다. 진화론을 체계화한 ‘종의 기원’은 판매가 시작되자마자 매진된 베스트셀러였다.

감춰져 있던 무의식의 세계를 파헤친 정신과 의사 프로이트는 ‘꿈의 해석’을 고전으로 남겼다. 양자역학의 기초를 세운 슈뢰딩거는 말년에 15년 동안 아일랜드에 살면서 물리학, 철학, 과학사를 섭렵해 ‘생명이란 무엇인가’를 썼다. 젊어서 이 책을 읽고 감명 받은 DNA 나선구조 발견자 제임스 왓슨은 나선구조를 밝혀내는데 관여한 사람들의 도전과 욕망을 그린 ‘이중 나선’을 써서 과학자들의 애독서가 되고 있다. 미국의 해양생물학자인 레이첼 카슨이 쓴 ‘침묵의 봄’은 환경운동의 기폭제 역할을 했다.

요즘도 선진국에서는 과학자들이 책을 통해 대중의 지적 욕구를 채워주는 지식인 역할을 많이 하고 있다. 대중 저서로 퓰리처상을 두번 받은 사회생물학자 에드워드 윌슨, ‘이기적 유전자’를 쓴 리처드 도킨스, ‘시간의 역사’를 쓴 스티븐 호킹, 가이아 학설을 주창한 제임스 러브록과 린 마굴리스, 마음을 파헤치는 이론 물리학자 로저 펜로즈 등은 전문 작가 뺨치게 글을 써 베스트셀러 작가의 반열에 오른 인물들이다.


우리나라도 작문교육 강화될 전망

우리나라에서도 서울대가 현재 고교 2년생이 대학입시를 치르는 2003학년도 수시모집에서 과학논술, 언어논술, 논리논술, 수리논술을 도입하는 방안을 검토중이다. 이렇게 되면 논술이 학생의 당락을 결정적으로 좌우하게 돼, 고등학교 글쓰기 교육이 한층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고교생에게만 쓰기 교육을 시킬 것이 아니라, 글쓰기가 미숙한 이공계 대학생들에게도 작문교육을 철저히 시켜야 한다. “사인, 코사인만 배워서 그런지 문과 출신 친구들이 잘 쓰는 것을 볼 때 한계를 느낀다”는 말이 나오지 않게 해야 한다.

요즘 글을 잘 쓰는 과학기술인으로, 김영환 과학기술부 장관과 서울대 생물학과 최재천 교수가 꼽힌다. ‘방귀에 불이 붙을까요?’란 동시집을 최근 펴낸 김장관은 민주화 운동을 하다가 옥중에서 시 쓰는 공부를 했다. 한편 최교수는 고교시절 문예반 학생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교수가 된 뒤 다시 글쓰기 과외 지도를 받았다. 하지만 대부분의 이공계 학생들은 한창 문학에 심취할 중·고교 시절에 독서나 작문보다 수학에 매달리고, 대학에서도 쓰기 교육이라고는 거의 받아본 적이 없다.

글은 엉켜진 생각을 질서 있게 정리해주는 묘한 마력을 지니고 있다. 그래서 글쓰기를 ‘마음의 서치엔진’이라고도 한다. 과학은 ‘생각하는 방식’이다. 생각하는 방식을 바꾸지 않고서는 새로운 것을 발견할 수 없다. 하찮은 실험 결과도 자꾸 글로 정리하면서 마음의 서치엔진을 작동시키다 보면 대발견에 이를 수 있는 것이다.
 

  • 허민오 ()

      이거 신동호 기자님께서 예전에 올려주셨던 글이군요 ^^ 

  • 익명좋아 ()

      정말 좋은 글입니다. 공학도로서 싸이엔지 들어온 것에 큰 기쁨을 느끼게 하는 글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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