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 뉴스메이커 [커버스토리] 이공계 홀대 풍토 ‘과학자 꿈’ 막는다

글쓴이
우경구
등록일
2002-03-06 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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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 의대·인문사회계 선호 갈수록 증가… 재정지원 확대·유인 정책 마련 시급-
“이번 입시에서 전교 1등부터 10등까지 의대를 지망했다. 11등 한 학생도 의대를 가고 싶어했지만 점수가 안 돼 공대를 갔다. 의대 가 려면 내신이 불리하다고 20명이 자퇴했다. 지난해 학급에서 1등 한 학생과 꼴찌 한 학생이 의대 지망을 위해 동시에 자퇴했다.”

‘과학영재’를 육성한다는 취지로 설립한 과학고의 현실이다. 한성 과학고의 교사 조봉제씨는 ‘의대 선호 현상’에 대해서 이렇게 개 탄했다. 그는 “과학영재를 교육한다는 목적으로 설립한 과학고에서 조차 모두 의대를 가고 싶어한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라고 말했다. 학생들이 의대를 지망하는 이유도 ‘의학연구’가 아닌 개업을 통한 돈벌이에 있기 때문에 더 문제다.

이공계 기피 현상이 심각한 사회 문제로 비화하자 여기저기서 개탄 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인터넷에는 연일 정부대책을 성토하는 글 이 올라오고 있고, 이공계 대학과 산업계에서도 강한 우려를 표시하 고 있다. 이공계 출신자와 대학생들은 인터넷에 과학기술인 네트워 크 사이트(www.scieng.net)를 만들어 활발하게 의견을 교환하고 있 다. 사이트가 개설된 지 열흘 만에 회원이 1,000명을 넘었고 연일 수 십 건의 의견이 올라오고 있다.

정부가 지난 2월 8일 이공계 진출 확대 종합대책을 추진키로 하고 입시제도 개선, 정부 출연 연구소 연구원의 처우 개선 등의 개선방 안을 검토하고 있지만 이런 경향은 쉽게 수그러들 것 같지 않다. 대 학의 학부제 실시, 교차지원 허용, 의·약분업 등 정부가 그동안 추 진해왔던 정책의 실패에서 비롯한 측면이 크기 때문이다.

▲1997년 44%서 올해 29%로 지원 감소

과학기술계도 분주하게 대책 마련에 나서고 있다. 지난 2월 22일 기 초과학문화포럼은 서울대에서 ‘이공계 기피 현상에 대한 원인 분석 및 대책’을 주제로 토론회를 열었다. 이 포럼은 학계와 산업계, 언 론계와 시민 등이 모여 첨단과학과 과학기술정책의 방향에 대해 논 의하는 모임이다.

발제에 나선 박승재 서울대 교수는 “한 조사에 의하면 초등학생의 20.2%, 중학생의 20.4%만이 과학자를 희망한다”고 달라진 풍속도를 소개했다. 수능시험의 계열별 지원 결과는 현재 이공계가 처한 현실 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1997년 인문사회계 지원자는 48%에서 2002년 57%로 증가했지만 자연계는 1997년 44%에서 올해 27%로 대폭 줄 어들었다. 예체능계도 9%에서 17%로 늘었다.

박 교수는 “전문대를 포함하면 이공계 비율은 인문사회계보다 10% 이상 높다”고 진단하면서도 “분야별 불균형이 심각해지고 있다” 고 말했다. 물리·화학보다 쉬운 생물을 선택하고 있고 질적 수준도 계속 떨어지는 추세다. 이렇게 된 데는 교차지원제도와 같은 입시제 도에도 원인이 있지만 지도층에 문과 출신들이 편중돼 있는 현상과 과학교육의 위상이 낮아진 탓도 있다. 그는 “질 낮은 이공계 인력 배출과 특수 분야의 고급 인력 공급 미달로 국가경쟁력이 약화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대학은 연구 여건이 열악하고 대기업 연구원은 구조조정 때 제일 먼저 해고된다. 정부 출연 연구소의 연구원도 저임금에 시달리고 있 고 자율적인 연구풍토를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누가 이공계에 지원하겠는가.”

이어서 발제에 나선 장순식 과기노조위원장도 이공계 출신자들의 열 악한 처우가 문제라고 지적했다. 장 위원장은 “이공계 출신의 임금 현실화와 근무조건 개선 등이 이뤄져야 이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 밝혔다.

이공계 출신에 대한 일반의 편견도 지적됐다. 벤처기업 PSIA의 박상 일 대표는 토론에서 “이공계 출신 홀대는 사회가 선진화하지 않은 탓”이라며 “그때그때 유행에 따라 소신없이 진로를 택하는 게 문 제”라고 말했다. 이를테면 기업체 사장이 대부분 문과 출신이고 주 식 등으로 쉽게 돈버는 사람 중에도 문과 출신이 많기 때문에 이공 계를 잘 선택하려 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그는 “실리콘 밸리의 경우 CEO의 70~80%가 이공계 출신”이라며 미국의 예를 들 어 우리의 이공계 홀대 풍토를 우려했다.

토론자로 나선 안창림 이화여대 교수는 “외국은 뛰어난 연구 성과 가 나오면 일선 현장의 과학기술자가 부각하는 데 비해 우리는 기업 회장 얼굴만 매스컴에 비치는 현실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과학기술자 조직화로 결집체 만들어야”

학생과 학부모의 생각은 훨씬 현실적이었다. 영등포고에 다니는 김 정훈군은 “미래의 직업에 대해 토론한 적이 있는데 1등부터 10등까 지 의사나 사장이 되고 싶어했다”고 소개하고 “과학교육의 질을 높이고 의사와 이공계 연구자의 보수가 비슷해져야 한다”고 말했 다. 의대에 다니는 대학생과 의대 지망생을 자녀로 둔 학부모 김안 숙씨는 “구조조정이나 박사 실업 등을 보면 불안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며 “인내심을 갖고 기술인력을 양성하는 풍토가 조성됐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정부 고위직에 과학기술계 출신 비율이 적다는 주장과 함께 인문사 회계에 대한 상대적 차별 등의 문제도 부각되었다. 의사의 보수가 투명해져야 ‘의대 선호 경향’이 줄 것이라는 견해도 제기됐다. 이 공계 대 인문사회계, 의사·한의사 대 이공계의 갈등으로 비화할 수 있을 만한 주장들이었다.

의사들의 경우 집단행동을 통해 이익을 관철시키고 있지만 과학기술 계에서 통일된 목소리를 찾아보기는 어렵다. 이날 토론에서 참석자 들이 “과학기술자들이 집단적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결집체를 만들 어야 한다”고 강조한 것도 이런 맥락이다. 개별적으로 연구를 진행 하는 과학기술의 특성상 조직화된 주장을 하기는 어렵지만 학회 등 을 중심으로 해서라도 목소리를 높여야 한다는 것이다.

1980년대 초반 미국과 영국에도 비슷한 현상이 벌어졌다. 중·고교 학생들이 과학 과목을 기피하고 물리나 화학, 수학을 선택하지 않는 경향이 두드러졌다. 미국은 국가경쟁력이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다는 판단 아래 대통령 직속기구로 국가과학진흥회(AAAS:American Association of the Advancement of Science)를 출범시켜 장기적인 과학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한 바 있다. 그 결과 핼리혜성이 다시 지 구에 오는 2061년을 대비해 국가의 과학을 진흥시킨다는 취지의 ‘프로젝트2061’ 보고서가 제출됐다. 송진웅 서울대 교수는 “미국 은 이러한 꾸준한 노력으로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다”며 “과학기 술에 대한 재정 지원을 확대하고 적절한 유인책을 마련해야 한다” 고 강조했다.

과학기술계는 오래 전부터 이공계 위기를 지적해왔다. 정부는 3월 안으로 이공계 지원대책을 최종적으로 확정하겠다고 하지만 이런 행 태는 문제가 터지고 나서야 서둘러 수습안을 마련하는 꼴이다. 대증 요법만으로 문제를 치유할 수는 없다. 장기간의 투자와 인내가 필요 한 과학기술 분야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김재환 기자 jh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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