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자부심을 갖고싶다. 무시당하지만 않아도 참을 수 있다.

글쓴이
박상욱
등록일
2002-03-08 12:20
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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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기술인의 권익 증진과 처우 개선.
좋은 말이지만 모든 문제의 치유책이 경제적 보상으로 귀결되는 것은 경계할 소지가 있다.
분명 능력과 노력의 양과 질, 일할 수 있는 수명등에 비춰 경제적 처우가 못미치는 것은 사실이며, 분명히 개선되어야만 마땅하다.

그러나 또 한가지 분명한 것은, 월급장이 과학기술인이 떼부자 직종이었던 적은 한번도 없었으며, 우리들은 그러한 사실을 이미 오래 전부터 잘 알고도 이 길을 택한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의사 변호사 돈거래사 땅장사가 돈 많이 번다는 것을 알면서도, 적성에 맞춰, 보람을 찾아, 그저 무언가를 새로 만들어낸다는 것이 좋아서 이 길을 택한 사람들이다. 한마디로 '과학자를 동경'했던 어린이들이 지금의 과학기술인이 된 것이다.

그렇게 생각해보면, 우리가 지금 현실에 대해 분노하고, 절망하고, 또는 망연자실하여 힘없이 살아가야하는 근본적인 원인은 반드시 돈에 있지 않을 수도 있다. 정확히 말하자면, 돈문제는 무언가 근본적인 원인에 동반된 2차적인 문제일 수 있다.

가난한 사람도 자부심이 있으면 살아가는 데에 비애를 느끼지 않는다. 뭐한 비유이지만, 경제적으로 몰락한 뼈대있는 가문의 후손은, 자식에게 흰쌀밥을 먹이지 못할지언정 조상과 집안에 대한 자긍심을 잃게 하지는 않는다. 과학기술인도 마찬가지이다. 일부 직종 종사자가 그러는 것처럼 강남의 80평 빌라에 살 수 없고, BMW를 몰 수 없고, 부인에게 명품 백을 사줄 수 없다고 해서 과학기술인의 길을 후회하고 삶의 비애를 느끼는 것은 결코 아니다. 사실 우리는 먹고 살 양식과 가족이 모여살만한 작은 집과 연구할수 있는 내 랩벤치만 있다면 만족하고 살 수도 있는 사람들이 아니었던가?

그런데 지금의 상황은 어떠한가? 자식에게 "너도 아빠의 길을 가렴. 과학기술인은 보람되고 좋은, 할만한 일이란다." 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가? 부인에게 "여보. 내 비록 호강시켜주진 못하지만 그래도 인류의 미래를 위해 일하고 있다오."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가? 친구에게 "자네가 돈은 나보다 많이 벌지만 그래도 내가 하는 일이 더 값진 일일세."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가?

자식에게 이공계 진학을 권유하겠다는 과학기술인이 20명중에 1명이라고 한다. 아내에게 미안하다고 느낀다는 과학기술인의 게시물과 이메일을 수도없이 보았다. 동창회에 나가서 위축되었다는, 그래서 다음부터 안나가야겠다는 얘기를 여러차례 들었다.

왜 우리는 과학기술 발전을 위해 이바지하고 있다는, 우리의 최후의 재산인 자부심을 빼앗겼는가? 무엇이 자부심을 빼앗아갔는가? 과학기술인은 기계부품 취급을 받고있고 고급 연구인력들은 저수지에 담을 대상으로 여겨진다. 이공계 기피현상이 불거지자 저수지에 물이 마를까봐 물을 짜낼 생각, 수문을 막을 궁리만 하고 있다.

우리는 사회적으로 약자이며, 무시당하며, 심지어 천시당하고 있다. 돈으로 돈을 사고파는 외환딜러, 남의 돈을 굴리는 펀드매니저같은 천박한 직업은 최고의 선망을 받고 있고, 부동산 투기와 유통상의 폭리로 부당한 부를 축적한 이들이 돈의 힘으로 존경을 사고 있다. 세금을 피하려고 신용카드도 안받는 변호사와 의사들은 독점성을 무기로 자신들의 몫을 늘리고 있다. 돈 있고 힘 있는 자들은 돈 없고 힘 없는 과학기술인들을 무시하기 시작하였고, 돈 밝힐 줄도 힘 모을 줄도 몰랐던 순진한 과학기술인들은 그 무시를 인내하며 사는데 너무나 익숙해져버렸다. 급기야 "그런 길을 왜 가, 바보 아냐?" 라는 소리까지 듣게 되어 이젠 집단 바보가 되어버렸고 "어서 탈출해. 왜 거기 여태 있어?" 라는 소리를 듣고는 자신의 어릴 적부터의 꿈을 팔아버려야 할 처지가 되었다. 고생하는 가족을 보며 자신의 선택이 옳았었나 회의하는 사람이 어떻게 자부심을, 당당함을, 자신감을 가질 수 있겠는가?

우리는 계속, 더더욱 심화되기만 할 이 모든 무시와 천대를 자손에게 물려주며 참고 지내야 하겠는가? 우리의 자녀가 학교에서 "너네 아빤 과학자야? 바보아빠구나?" 라는 소리를 듣게 할텐가? 우리는 스스로의 가치관과 선택에 끊임없이 물음표를 던지며 여생을 지내야 하는가?

우리 스스로 무언가를 울컥 하고 느끼는, 그 깨어남을 애타게 기다린다..

  • 관전평 ()

      펀드매니저가 천한 직업은 아니죠.  어느 직업이 "천하다"는 표현은 좀 삼가하는 게 좋지않을까요?

  • 박상욱 ()

      '천하다'가 아니고 '천박한'이라했네요. '천시'라는 표현도 삼가해야겠군요. 죄송합니다. 근데 어쩜 그렇게 지엽적인 부분만 찝으시는지요? 아이디 실명화 부탁드립니다.

  • 한대희 ()

      최소한 사회시스템적 불평등과 상대적 박탈감만 없다면 자부심을 가지고 열심히 자신의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다.

  • 김덕양 ()

      제가 보기엔 관전평님이 '악의'는 없으신 것 같네요. '천박한' 보다는 '비생산적인' 이 어떨까요? 논리적인 글에서는 최대한 감성을 배제해야한다고 보는데(원래 의도와는 다르게 해석

  • 김덕양 ()

      될 여지가 생기기때문입니다.) 박상욱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 표현력이 떨어지는 것은 감안하더라도, 워낙 요즘 꼬투리 잡는 사람들이 많아서요. 후후.

  • 관전평 ()

      실명을 쓰기엔 너무 아는 사람이 많아서 부끄럽네요.  때가 되면 실명으로도 글을 올리죠.  저는 모든 먹고사는 직업은 귀천이 없다 이렇게 생각합니다.  박상욱님의 글의 요지는 이해

  • 관전평 ()

      하고 또 적극 동의하기때문에 이렇게 글을 올리지만, 좋은 뜻이 일부 표현으로 인해 왜곡될까싶어 말씁드린 겁니다.

  • 관전평 ()

      다시 생각해보니 힘든 분에게 괜히 딴지 걸었다는 생각도 드네요.

  • 박상욱 ()

      에구.. 힘들겠다고 딴지 안거시면 발전이 없습니다.. 그건 제가 바라지 않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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