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재 의원에게 쓰는 편지

글쓴이
오호통재
등록일
2004-11-13 01:15
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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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재 의원님 그리고 보좌진 여러분

산업계와 과학기술계에서 영향력 있는 신문인 전자신문 1면 탑에 이름을 올리신 것, 그리고 추진중인 법안이 자세히 소개된 것 정말 축하드립니다. 실적 확실히 올리셨네요! 인지도도 크게 상승하고..

오늘 대덕 카이스트 옆동네 식당에서 점심 먹는데 주변 테이블에서 전부 '..광재.. ', '이광재...XXX', '..기술유출방지..' 이런 얘기들이 들리더군요. 길거리 걷다가도 지나가는 사람들이 얘기하고. 거참. 대단하십니다. 정치인은 일단 인지도가 짱 아닙니까? 우리가 김용갑, 정형근 직접 만나본 적 없는 사람도 다 알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그분들이 다선을 하지요.

이광재 의원님은 이번 일을 계기로 이공계쪽에서 정형근 김용갑의 반열에 오르셨습니다. 그러니까 반이공계 정서가 강한 곳을 골라서 출마하시면 다선은 문제없습니다! 아하! 연구개발로 피땀흘려 돈 버는 곳이 아닌, 태백 정선 카지노가 있는 지역이라면 따놓은 당상입니다! 이공계따위가 필요하겠습니까? 아 슬롯머신 고치려면 필요한가요.. 까짓, 일제 수입해다 쓰죠 뭐.

근데 이광재 의원님 홈피의 언론보도 모음에는 전자신문 1면 톱기사는 없네요. 강원도민신문에 조그맣게 난 인물동정은 있던데.. 중앙지인 전자신문이 강원도민신문보다 못한가봅니다.. 하긴 홈피 브라우저창 맨 위 제목을 보니 '강원도를 위하여... Yes! 광재' 네요. 강원도를 위하는 분께서는 강원도 의회가 더 적절하지 않나 생각되는데 아닌가요?

아, 퍼뜩 든 생각인데 설마 강원도를 위해 산업기술유출방지법을 만드신 건가요? 왜냐면 강원도에는 아직 이렇다할 산업단지나 R&D 시설이 없지 않습니까? 이 법이 시행되고 국내에서 연구원으로 일하는 것에 환멸을 느낀 사람들이 조기에 은퇴하여 산좋고 물좋은 강원도에서 화전민으로 새 삶을 시작할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세수가 증대되겠군요! 물론 이공계 비전을 상실한 젊은 과학도 공학도들이 공부를 포기하고 한탕 하러 카지노에 가서 돈을 뿌릴지도 모르겠습니다!

강원도에 제조업 기반이 없고 상대적으로 낙후되어 있으니, 노무현 정부 최고의 국정 아젠다인 '균형 발전'에 발맞추어, 다른 지역의 제조업 경쟁력을 결정적으로 고사시키려는 것이군요! 아 이런 깊은 뜻이... 우리 모두 동북아 관광 허브, 물류 허브 국가로 다시 태어날 고민을 3초만 쉬어도 시간 아까운 이런 때에 과학기술 살리자는 얘기를 하고 있었다니 정말 제가 미쳤나봅니다. 한류 열풍에 계속 온풍기를 불어대서 관광 한국을 만들고, 경인공단을 밀어버리고 튜울립과 장미를 심어서 인천공항을 통해 중국에 열심히 수출하는 아름다운 생태국가가 될 수 있는 길이 있는데 말입니다!(아참, 관광한국을 만들려면 성매매특별법을 좀 개정해야하나요? 외국인은 괜찮다는 식으로 말입니다)

강원도민 여러분. 저는 강원도를 폄하하려는 의도는 전혀 없습니다. 그러니 제 글을 오해하지 말아주십시오. 다만 이광재 의원을 뽑으신 분들은 유권자로서, 이광재 의원이 중앙 정치판에 나가서 무슨 짓을 하고 다니길래 강원도가 자꾸 들먹여지는지는 관심있게 지켜봐 주십시오.

변리사가 꿈이어서 공대에 들어갔다는 야무진 소년이(아 정말 야무집니다. 저는 고등학교때까지 변리사가 뭔지도 몰랐는데요. 그것도 공대 나오면 유리하다는 것은 또 어떻게 아셨을꼬!) 이공계를 지배하는 것은 법이라는 것을 빨리 깨닫고(진실로 영특하다!) 법학으로 전공을 바꾸었죠.. 법을 만드는 것은 입법부라는 것을 또 깨닫고 국회의원이 되셨네요. 아니.. 그렇다면...

이번 산업기술유출방지법은 이광재 의원의 필생의 역작이었단 말입니까! 그 어린 시절부터 꿈꿔온 바로 그 '장래희망'을 이루는 것이 아니던가요? 아아 우리는 그 영특했던 소년의 자아실현을 지켜보고 있는 감동적인 모멘트에 와 있습니다. 우리가 이 고귀한 순간을 함께 공유했다는 것은 역사에 길이 남을 것입니다. 그의 자아실현을 과연 저지해야 하는 것인지 사뭇 고민하지 않을 수 없군요.

게다가 그의 신념에 찬 행동이 오래도록 역사교과서에 등장할지도 모르는데 말입니다. 인물은 역시 인지도가 짱 아니겠습니까? 이완용 직접 만나본 적 없지만 온국민이 알고 있습니다. 옛말에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 했습니다. 이광재 의원은 지금 과학기술인의 사기를 일거에 바닥으로 떨어뜨리고 인재 유출 러시를 일으켜서 대한민국을 동북아의 생태국가로 만들 중대한 법안을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차세대 몰락동력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이광재 의원 본인이 직접 써 올렸다는 홈페이지의 '과기인에게 드리는 편지'인지 뭔지에서, 참여정부의 주요 과학기술 치적으로 '이공계 공직진출 확대'와 '전문연 복무기간 단축'을 들었습니다. 아아아 이 봉황의 깊은 뜻이여. 이공계를 말살할테니 미리미리 공무원으로 빠질 준비를 하라는 신호탄이며, 전문연 빨리 마치게 해줄테니 여권 만들어 외국으로 튀라는 싸인임을 왜 미처 몰랐단 말입니까. 정녕 우리는 근시안이었단 말입니까.

역사의 무게가 심대히 느껴지는 밤입니다. 필연성과 운명에 대항하는 인간의 존재가 부끄럽게 느껴집니다. 우리가 단군이래 가장 잘먹고 잘 살았던 20여년 세월의 한귀퉁이를 붙들고 살아봤다는 것에 진심으로 감사해야 하겠습니다. 이땅의 후손들이여. 미안합니다. 부디 현명한 판단을 하시어 주변국에 꽃이라도 팔면서 근근히 연명하시길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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