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아직도 물리하니?

글쓴이
하상근
등록일
2002-03-10 01:11
조회
6,772회
추천
40건
댓글
13건
아래의 박상욱 님의 글을 읽고 느끼는 바가 있어서 글을 올립니다.

먼저, 나의 전공은 같은 이공계중에서도 특히(아니 가장) 돈벌이가 안되는 물리이다.
내가 물리를 선택한 이유는 대학교 1학년때 배웠던 일반물리 원서 교재를 통해서
고등학교 때는 전혀 느껴보지 못했던, 그리고 어렸을때 꿈꾸었었지만, 암기 위주와
강압식의 교육과정을 통해서 스스로도 잊고 있었던 과학과 자연에 대한 동경의 마음을
다시금 느낄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 그러니까 1994년 영어로만 씌여져 있어서 원서를 처음 보는 내겐 읽는것 자체가
거북하기도 했던 그당시 물리를 처음 접했던 나의 느낌은 한마디로 사랑하고 싶은
여자를 만난 느낌, 지금껏 목마르게 기다렸던 사랑스러운 여성을 드디어 우연히 만난
느낌, 바로 그것에 다름 아니었다.
나는 벅차오르는 기쁨과 행복감에 다른 과목 숙제는 내지도 않으면서 일반물리 하나
만큼은 이책 저책 뒤져보면서 오로지 물리 공부만 했었다.
속된 말로 눈에 깍지가 씌여져서 다른건 보이지가 않았다.
그래서, 지금도 일반물리를 제외한 일학년때의 대부분의 과목에서 낙제학점을 받았던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 아니, 그때의 열정이 새삼 떠올라 요즘 현실에 지쳐가는 나를
스스로 달래 보기도 한다.

하지만, 철이 들면서 사람이 (특히 우리나라의 현실에서는) 좋아하는 공부만 해서는
생활비를 벌어야하는 집안의 가장이나 부모님의 노후를 보살펴 드려야 하는 집안의
장남 같은 사회적인 역할을 하기 힘들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가끔 만나는 초,중,고등학교 시절의 동창들 부터 간혹 이런 말을 듣느다.
"너 아직도 물리하니? 그거 뭐가 돈된다고 아직까지 하고 있냐? 철좀 들어라"
물론, 허물없는 친구 끼리 농담조로 그 어려운 공부 아직까지 하느냐는 말을 그런식으로
장난삼아 돌려 말하는 이도 있었지만, 분명 그 한줄의 물음 속에는 "피식~~"하는
외마디의 비웃음과 함께
"어렸을 때는 늘 공부 제일 잘하는 네가 부러웠지만, 지금 너 하는걸 보니깐 내가 훨씬
낫다. 오히려 평생 돈도 안되는 책만 붙잡고 있어야 하는 네가 불쌍하다"
라는 식의 자기 보상적 동정과 멸시의 느낌이 베어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이런말은 자칫 고루한 학벌주의의 발로일 수는 있으나, 10여년 만에 만난 동창들에게
"나 Kxxxx 다녀"라는 말에 "와~~"하던 친구들이 "전공은 물리야"하는 말에 금방
"그러냐?"라며 애써 감추는 비웃음과 동정의 표정 속에서 너무나 많이 그리고 너무나
뼈져리게 그런 생각을 느낄수가 있었다.

나는 그런 식의 질문을 들을때마다, 별 대수롭지 않게 대꾸하곤 하지만, 가슴 한구석에서
느껴지는 인생자체에 대한 씁쓸함을 완전히 지울 수는 없었다.
열강의 간섭속에 아래로부터가 아닌 위로부터의 강압적인 개화가 이루어진 역사적
토양에서 형성된 우리나라의 천민 자본주의와 물질 만능 주의에서 다른 어떤 가치보다도
돈이 우선시 된다는 뻔한 사실을 진작 못 깨달았다는 사실에서 느끼는 씁쓸함은 결코
아니었다.
왜, 인생의 모든 가치가 돈의 아래에 놓여야 하는지, 그 돈을 위해서 자신이 싫던 좋던
돈벌이 되는 일에만 한번뿐인 인생을 걸어야 하는 우리 동시대인의 자화상에서 느껴지는,
돈 못버는 자의 힘없는 위치에서 그런 사회를 바꿀수 없는 나약한 나 자신에 대한
씁쓸함이요 자괴감이었다.

그래서, 지금이라도 이런 모임이 만들어졌다는 사실은 지금의 나에게 내가 선택한
이 길을 끝까지 갈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분명 안겨준다.
어차피 돈만을 위해서 선택한 길이 아니었으니, 자신에게 주어진 최소한의 사회적
역할만 할 수 있을 정도의 토양만 닦여 진다면, 훗날 내 자식에게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난 후회없이 내가 원하는 것을 할 수 있어서 행복하다"고......

-- 전공이 뭐냐는 물음에 "물리요"라고 했더니, "아~~ 물리 치료사하세요?"라고 되묻는
사회적 무관심이 없어지길 바라며...

  • 배성원 ()

      기계과라고 하면 자동차 고치는 거 배운줄 알아요..저는 우리 국민들의 문맹율이 3% 밖에 안돼는 것이 믿기지 않습니다. 정말...X식합니다.

  • 진현석 ()

      토목과라고 하면 땅파고 건축과하면 그나마 쫌 알아주고 전기과 하면 전봇대 타고 전자과???

  • 진현석 ()

      전자과는 그나마...유명한 반도체(S사)땜에 ...그렇지만 전자과 나와서 거기 많이 안가는데ㅜ.ㅜ

  • 진현석 ()

      위이 얘기는 미팅나갔을때 (적어도 대학물먹은 비이공계 생각)정말 공대출신이 무얼하는 제대로 아는 사람들이 있을까요?

  • 이동우 ()

      진현석님 말에 대체로 공감합니다만, 인문계와 이공계... 어차피 서로를 모르는것이 아닐까요...? 어차피 이공계의 사람들도 인문계에서 뭘배우는지 모르긴 마찬가지입니다...

  • 김진일 ()

      자연과학 하시는 분들도 힘내십시요! 솔직히 정말 돈은 안돼지만 님들이 없으면 정말 그나마 이 나라의 기반인 기초과학이..

  • 김진일 ()

      와르르 ~~ 무너집니다.. 그리고, 정당한 대우를 받기 위해 함께 동지의식을 가지고 .. 나아가길 바랄 뿐입니다.

  • 김진일 ()

      러시아나 중국이 아무리 가난해도 무시할 수 없는 것이.. 기초과학과 그에 뿌리를 둔 응용과학들이 잘 연계되면서 꾸준한 발전을 이루기 때문 아닙니까?

  • 과학도 ()

      물리도 응용/실험물리냐 이론/순수물리냐에 따라 돈벌이 정도가 다릅니다..이론물리쪽이 내용도 훨 어렵고 돈벌이도 아무래도..저희학교 물리과는 응용.실험쪽 성격이 강해서..

  • 과학도 ()

      글구.. 어디 물리과신지 모르겠지만..이공계중 마니(가장)돈벌이가 안된다는건.. 좀 비약이 아닌가 싶네요. 저희학교 물리과 분들 봄 반도체,전자,통신,컴퓨터,정보처리,광전자등..

  • 과학도 ()

      으로 주로 가시고..머이공계가 힘든거야 말할것도 없지만.. 타 이공계 과에 비해 특별히 취직 못하시는건 없는듯 싶은데..물론 이거 역시 실험,응용 물리쪽이 아무래도 그렇다는 거겠죠

  • 소요유 ()

      힘내세요. 저도 물리에 비하면 우리나라에서 마이너 학문을 전공한느 사람이니까요.  남들이 뭐라하든 자기 길을 가는 것은 아름답습니다. 

  • 소요유 ()

      속편하게 처자식과 먹고살며 자기가 하고 싶을 일을 맘놓고 한다는 자부심으로 살아가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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