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이 '접은'영화, 소니는 '올인'

글쓴이
이민주
등록일
2004-05-19 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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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이 '접은'영화, 소니는 '올인'
세계 전자업계 맞수의 엇갈린 선택




전자업계의 한·일 맞수인 삼성과 일본 소니가 핵심 콘텐츠 산업으로 꼽히는 영화 산업을 두고 엇갈린 행보를 보여 주목된다. 전세계 디지털 전자제품 시장에서 정상을 다투는 두 기업이 자신들의 제품과 연관성이 높은 영화 산업에 관해서는 서로 다른 길을 가고 있다.
삼성은 지난 1999년 일찌감치 영화 산업을 정리하고 휴대폰·반도체·디지털가전 등 하드웨어 제품에 주력하고 있는 반면, 소니는 최근 극도의 영업 실적 부진 속에서도 거액을 들여 미국 할리우드의 메이저 영화사 인수를 추진하고 있다.

 
 ▲ 소니의 이데이 노부유키 회장(사진 가운데)이 작년 10월 28일 앞으로 3년간 2만명의 직원을 구조조정 차원에서 감원한다고 공식 발표하고 있다./ 로이터
 
 
◆ 소니의 뜻밖의 결정

외신들에 따르면, 일본 소니는 최근 미국 할리우드의 대형 영화사인 MGM에 대한 인수를 적극 추진하고 있다. MGM영화사는 ‘007 시리즈’ ‘닥터 지바고’ 같은 히트작 등 총 4000여편의 영화에 대한 판권을 갖고 있는 80년 역사의 미국 7대 메이저 영화사 중 하나. 특히 이번 협상에는 소니뿐 아니라 미국의 또 다른 메이저 영화사인 유니버설과 워너브러더스도 관심을 갖고 있어 소요 자금이 엄청날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영국의 주간 경제전문지 이코노미스트는 최근 소니가 MGM측에 제시한 금액이 50억 달러(약 6조원) 규모에 이른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최근 소니의 내부 사정이 상당히 좋지 않다는 점에 비추어볼 때 이런 소니의 움직임은 상당히 뜻밖이라는 분석이다. 소니는 몇 년 전만해도 전세계 최고의 전자업체로 인정받았지만 최근들어 세계 시장은 커녕 일본 내부에서도 형편없이 ‘망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가장 큰 이유는 실적 부진. 최근 소니가 발표한 2003 회계연도(2003년 4월∼2004년 3월) 실적 자료를 보면, 소니의 영업이익은 약 989억엔(약 1조원)을 기록, 1년 전의 절반 수준으로 급감했다. 내수 경기 회복 등에 힘입어 일본 내 대부분의 메이저 경쟁사의 영업이익이 증가했지만, 유독 대표기업으로 꼽히던 소니만 이처럼 쪼그라들었다. 게다가 전체 매출의 60%를 넘게 차지하는 가전 부문에서는 353억엔(약 4000억원)의 영업 손실을 기록, 한해 전 414억엔 흑자에서 적자로 돌아섰다.

작년부터는 기업의 시가 총액에 있어서도 경쟁사에 밀리고 있는 상태다. 내부적으로는 한 때 한 수 아래로 여겼던 경쟁사 캐논에게, 대외적으로는 한국의 삼성전자에게 추월당했다. 지난해 초에는 1000억엔이 넘는 분기 순손실 실적을 발표하고 이에 따른 엄청난 규모의 주가 하락을 겪으면서 일본 대표기업으로서 자존심을 구겼다.

게다가 소니는 이미 지난 1989년 콜럼비아 트라이스타라는 미국 7대 영화사 중 한 곳을 인수해 운영하고 있다. 콜럼비아 트라이스타는 90년대 말까지만 하더라도 이렇다할 히트작을 내놓지 못해 소니 경영진을 애타게 만들었던 애물단지였다.

 
 ▲ 삼성의 이건희 회장(오른쪽에서 두번째)이 지난해 10월 10일 황창규 사장(오른쪽)과 함께 첨단 디지털 전자 제품을 살펴보고 있다. 
 
◆ 하드웨어에 주력하는 삼성

반면 세계 전자업계의 맞수인 삼성은 1990년대 말 일찌감치 영화 산업과 발을 끊었다. 삼성은 1980~90년대 계열사별로 진행하던 영화·비디오 사업을 모아 지난 1995년 삼성영상사업단이라는 조직을 출발시켰지만, 매년 수백억원의 적자를 기록하자 4년 만인 1999년 IMF외환위기 직후의 어수선함 속에 사업단을 폐지했다.

삼성영상사업단은 설립 초기 ‘대기업이 영화 산업에 뛰어들어 시장을 독식하려한다’는 기존 영화인들의 거센 저항에도 불구하고, 의욕적으로 사업을 펼쳤다. 삼성전자 등에서 자금을 댔고, 삼성물산·삼성전자·제일기획이 파견한 인력 등 500여명 규모로 조직을 운영했다.

영상사업단은 당시 한국형 블럭버스터영화의 원조격인 ‘쉬리’를 제작하고, ‘레옹’ ‘제5원소’같은 영화를 수입하는 등 약 4년간 의욕적으로 사업을 펼쳤지만, 결국 그룹 방침에 따라 정리됐다. 삼성 관계자는 “실적 부진에다 IMF외환위기 직후 수익성이 낮은 사업 구조조정 차원에서 정리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삼성은 이 이후로는 영화 산업에 참여하지 않고 있다. 대신 삼성은 2000년대 들어 전자산업에서 비약적인 발전을 이뤄냈다. 삼성전자만 하더라도 올해 1분기 영업이익이 4조원 이상을 기록, 일본 소니는 물론, 세계 초일류기업인 인텔, IBM, 노키아를 큰 차이로 따돌렸다. 영업이익 규모로만 보면, IT제조업체 중 세계 1위라는 설명이다.

삼성은 앞으로도 영화 사업 게획은 없다고 밝히고 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휴대폰, LCD, 반도체 등에서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고 있는데 수익성이 불투명한 사업에 새로 뛰어들 이유가 전혀 없다”며 “지금처럼 고부가가치 하드웨어 사업에 주력한다는 방침”이라고 말했다.

다만 삼성이 떠난 이후 국내 영화 산업은 전성기를 맞았다. 삼성이 마지막으로 투자했던 쉬리는 600만명이란 사상 유례없는 관객을 동원했고, 이후 ‘친구’ ‘공동경비구역JSA’ ‘살인의 추억’ ‘실미도’ ‘태극기 휘날리며’같은 히트작이 잇따르면서, 한국 영화는 세계 시장의 주목받는 콘텐츠로 떠오르고 있다.

 
 ▲ 지난 1월18일 삼성전자 윤종용 부회장이 미국뉴욕에서 열린 글로벌 로드쇼에서 사업 전략을 설명하고 있다. 
 
◆ 영화 산업이 변수될까

소니의 뜻밖의 행보에 대해 전문가들은 대체로 두 가지 관점에서 분석하고 있다. 하나는 소니가 주력 사업을 전자제품에서 아예 소프트웨어·콘텐츠쪽으로 틀었다는 것이다. 미래에셋증권 김경모 연구실장은 “소니는 기존 하드웨어 양산 산업에서는 더 이상 실익이 없다고 판단하고 게임, 콘텐츠 등에 주력하겠다는 판단을 한 것 같다”며 “실제 반도체, LCD등 나머지 10여개의 사업부는 다른 업체와 제휴를 맺어 생산하거나 다른 업체로부터 양산품을 공급받는 식으로 사업을 재조정하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MGM인수만 하더라도 이 영화사가 갖고 있는 기존 영화 판권을 활용해 DVD등의 판매를 크게 높이겠다는 전략이라는 해석이다.

 
 ▲ 소니의 이데이 노부유키 회장이 2002년 6월 12일 일본 도쿄에서 열린 외신기자와의 간담회에서 영화 '스파이더 맨'을 커버스토리로 다룬 타임지를 들고 소니의 엔터테인먼트 산업 전략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AP
 
 
하지만 자주 거론되던 ‘소프트웨어 촉매제론’에 소니가 여전히 확신을 갖고 있다는 해석도 만만찮게 나오고 있다. 지난 수십년간의 전자·IT제품 발전 추이를 보건대, 하드웨어 시장의 주도권은 결국 소프트웨어 공급업체가 쥐더라는 것.

1980년대 말 소니가 콜럼비아사를 인수한 것처럼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는 자동차의 양쪽 바퀴’라는 전제하에 이번 인수도 추진중이라는 설명이다. 실제 53년간 소니에서 근무한 오가 노리오 소니 명예회장은 최근 회고록에서 “미국 콜럼비아 영화사 매입은, 가정용VCR기기 시장에서 소니의 ‘베타맥스’방식이 경쟁사의 ‘VHS’ 방식에 패배하면서 계획하기 시작했다”며 “만일 소니가 영상소프트웨어를 갖고 있었다면 이런 흐름은 달라졌을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물론 예전처럼 소프트웨어 판권을 갖고 있다고 해서 하드웨어 제품까지 배타적으로 공급해 성공하리라는 보장은 없다. LG투자증권 이왕상 연구원은 그러나 “굳이 배타적 제품 공급을 거론하지 않더라도 앞으로 전자제품은 각종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등이 서로 뒤섞이는 디지털컨버전스(digital convergence)형이 주를 이룰 것”이라며 “그런 과정에는 결국 콘텐츠를 가진 업체의 경쟁력이 남다를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소니가 일본 언론들로부터 ‘부업에 신경 쓰느라 본업을 소홀히하고 있다’는 등의 숱한 질타를 받으면서 영화 등 엔터테인먼트 사업에 어찌보면 무모할 정도로 투자하는 것도 결국 이런 신념을 가졌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이 때문에 소니의 이런 행보가 이미 삼성에 전자업체 주도권을 빼앗긴 소니가 영상산업을 성장동력으로 삼아 다시 한번 새로운 도약을 이뤄내는 계기가 될지, 아니면 위기에 몰려 무모하게 ‘올인’하는 자충수를 두는 것이 될지, 그 결과를 눈여겨볼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마찬가지로 삼성 역시 휴대폰·LCD·반도체로 구성되는 황금 분할 구도가 끝나는 시점, 예컨대 대만과 중국업체의 추격이 본격화되는 시점에, 이미 포기한 영상산업이 아닌 어떤 새로운 카드로 후발업체들을 다시 한번 따돌릴 수 있을 지에 관심이 쏠리는 대목이다.

(탁상훈기자 if@chosun.com )



http://www.chosun.com/w21data/html/news/200405/200405190120.html (원문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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