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배들에게 하고 싶은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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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이름은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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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0-30 1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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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공학과 관련된 이야기입니다.)
나는 수도권 캠퍼스 전자과를 남들보다 한학기 더 다니면서도 훨 낮은 학점으로 졸업했어. 2.5가 안되니 말 다했지.

어릴때부터 전자가 취미였어. 초딩때 라디오조립 머 이런거 도대회까지 나가고..용돈 모아서 007회로 시리즈 이런 책 사서 보고..
수능을 봤는데 개판인거야..사실 고1때는 수능이 상위 0.2%안에 들었는데 그래서 공부를 안했어..다른 과목은 공부를 안해도 부자 망해도 3년은 간다고 하던 가락으로 하는데..수학만은 안되더라..내신에서 수2는 가 였지..수능에서도 다른 모든 과목에서 2점밖에 안까였는데 수학은 반타작했으니..

재수하려고 술로 날을 지새우는데 부랄친구가 사람 하나 만들겠다고 내이름으로 특차에 원서를 넣은거야.. 근데 붙었다고 등록하라고 전화가 오더라..그날이 크리스마스 이브였는데 묘하더라고..나는 한번도 전자를 업으로 할 생각이 없었어..과학을 좋아해서 이과를 가긴 했는데 수학은 바닥이지..맨날 소설책과 만화책만 끼고살고..근데 막상 붙으니까 가고 싶더라고.. 사립대인데다 집에 형편도 많이 좋지는 않았는데 안되면 알바해서 반수할 생각 하고 가겠다고 부모님한테 말씀드렸지..

근데 가자마자 난생 처음 여자친구가 생긴거야..그래서 생각도 없던 전자공돌이로 살게 됐지..그때가 벌써 10년이 넘었네..

근데 일단 가니깐 수업이 내가 생각하던게 아닌거야..영화같은데서 보던 거랑은 딴판이지..안그래도 수학이 안되는데 모든 수업에서 수학 문제만 풀고 있고..내가 회로 설계할 때는 공식보고 계산기 간단히 두드리면 되는거 아냐..개념만 알면 되지..근데 교수는 개념적인 질문하면 대답도 못하고 엉터리로 가르치고..매 시험은 수학 시험이고..점점 수업을 안나가게 되더라고..대신 집에서 자작에만 몰두했지..수업 나가면 교수랑 싸우기나 하고..

군대 다녀오고 선후배 졸작 도와주다 보니 소문이 나서 군대 다녀오니 교수들이 부르더라..4년을 연구실에서 석박사 가르치고 논문 쓰고 일년짜리 프로젝트를 한달에 하나씩 하면서 살았어..연구소 관련 회사들도 프로젝트 의뢰 오고..정신없는 날들을 보냈어..학생, 연구원 회사원 졸작조교..학부생인데 4잡을 하면서 보냈어..

그러면서 더러운 꼴 많이 봤지..특히 돈에 미친 교수들..학점 세탁하러 온 박사들.. 물론 그들이 다는 아니지만 내가 보기엔 반이 넘어..엔지니어링 분야까지 정치판이더라고..원래는 석박사도 하고 싶었는데 이건 아니다 싶더라고.. 다 때려치고 나와서 취업을 했지..졸업도 하기전에..졸업은 그놈의 공업수학 때문에 결국은 한학기를 더 다녔지.

지금은 나름 분야에서는 세계1위 하는 외국계 회사에서 고속 승진하면서 살만 찌고 있어..아까 말했던것 처럼 내 학점은 2.5가 안되고 토익 605점이야. 졸업하려고 기를 쓰고 본거지. 자격증 하나도 없어.

지금 내가 후배들을 보면 다들 좋은 스펙 만들기에 여념이 없어..다들 이름만 들으면 아는 좋은 회사 가려고 하지..근데..그거 잘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거다..너네가 알아봤자 아는 회사는 일반인들 상대하는 회사가 다지..스펙 잘만들어 좋은 회사 갔다 치자..그뒤는 어쩔건데..내동기들..다들 지금 잘릴 걱정 하고 있더라고..큰회사일수록 많이 뽑기 때문에 들어가기 쉽고 그만큼 더 뽑아야 하기 때문에(정치권과도 연관이 있고 유지 비용 등) 더 많이 자른다..너희들이 수학 문제만 풀고 소스만 봐서  학점 잘 만들고 학원 다녀서 토익 점수 잘 만들지는 몰라도 절대 그게 너희들한테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말이지.

엔지니어링은 기술직이야..너희가 아무리 수학 문제를 잘풀고 토익을 잘 맞아도 그거 실무에서는 아무런 쓸데가 없어..너희가 너희 나름대로의 회로를 만들어 보면 알겠지만 계산값..시뮬값..참고사항 정도이지 절대적인 수치는 될 수 없다..영어..외국 엔지니어랑 의사소통이 되는게더 중요해..

기술직이니 만큼 남들과는 차별되는 자기만의 전문성이 더 중요해..전기든 전자든 고민하는 뉴비들은 그딴거 다 필요없어..다 알아야해..자기한테 어떤게 더 재미있는지 보고 그쪽으로 진로를 정하는거지 다른 학문이 아니야..어떤 과를 나오든 다 사회 나오면 같은 과 취급 받는다.
제일 중요한건 실무야..니가 사장이라 생각해봐라..한애는 박사인데 수학문제도 잘풀고 논문도 많이 썼어..근데 내 회사에는 돈이 안돼..근데 다른 애는 교육이고 나발이고 필요없이 바로 우리 회사에서 돈을 만드네..너같으면 누굴 뽑겠냐..

학교에서 배우는 건 기본 소양이야..그걸 이용해서 니가 차별화를 해야지..영어학원 다니고 이력서 쓰는 교육만 받는다고 뭐가 되니..너를 이용해서 돈을 못만드는데..전자과 학생들 졸작도 사서 내는 애들이 태반인데 그정도만 혼자서 할 능력만 돼도 떵떵거리면서 산다고..스펙 좋은 애들? 회사오면 스펙'만' 좋은 애들은 고문관들이야..뽑을때도 인재가 없어서 뽑기는 하는데 뽑아 놓고서도 골치거리라고..너희들 그거 아니? 너희들은 취업대란이라고 난리를 치지만 회사들은 뽑을 사람이 없다고 난리야..

너희와 후배 선배들을 통틀어 회로도 하나 던져주면 그거 해석할수 있는 놈들이 몇이나 되니? 뭐 필요한 기능 하나 말하면 그거 회로로 짤 수 있는 놈들은 더 없겠지..너희가 비싼 돈들여 배운 것들이 다 그걸 위해 배운 거지 수학 문제 풀려고 배운거 아니잖아? 너희 과제 많고 수업 따라가고 학점 만들기만도 벅찬거 알아.. 근데 그게 절대적인게 아니라는 말을 하고 싶은거야.. 본질이 무언지.. 정작 나는 취미가 업이 되니 괴로워..회사에서 시달리다가 집에 와서 또 하고 싶겠어?

전자란 분야가 잘 알면 참 재미있는 분야야..누구한테는 공식 외워서 푸는 수학과목 이상도 이하도 아닐수 있지만 이해하는 사람 한테는 이렇게 재미있는 분야가 없어..하나씩 재미로 자기만의 회로를 만들어 봐..모르면 동아리도 있고 소문난 선배도 있고..하다못해 무능한 교수라도 찾아가면 그래도 너보다 좀 더 아는 석박사를 연결해 줄 거야..이게 당연한 건데 우리 나라에서는 차별화가 되네..MIT같은데는 걍 과정중에 있는건데..

동기 친구들 신년회 가서 좀 마시고 와서 정신없이 썼어..기분 나쁜 애들도 있을지 모르겠는데 걍 술취한 형이 하는 말이라 샐각하고 들어..이미 1/3은 회사 잘리거나 그만두고 1/3은 마지못해 다니고 있더라..너희들도 같은 비율로 미래가 결정되어 있겠지..나는 그 안에서 차마 올해 승진하고 연수입은 억대 찍었다 말 못하겠더라..학교 다닐때는 졸업도 제때 못하고 학점은 개판인 찌질이라 놀림 받았는데..미친듯이 먹고 내가 다 계산하고 왔어..

세상 일은 다 때가 있는 거라던 어른들 말이 헛소리가 아니야.. 너희들 때가 아니면 할 수 없는 것들이 많아..술취해서 주저리주저리 썼는데 간단히 요약해 줄게..

1. 스펙 만들 시간에 전공에 더 몰두해라. 근데 전공도 이해 못할정도의 영어와 수학으로는 안돼..

2. 전공에서 수학은 개념을 누구나 쉽게 알기 위해 도식화 해 놓은거야. 너희가 개념을 모르면 수학문제 외워서 학점 잘 받아봤자 소용없어..단 공무원 지망생, 여학우 제외.

3. 너희가 대학에 온 순간부터 전자회사 연구원이라 생각해라..필요한건 웬만하면 만들어쓰고..회로도 보면 설계자의 의도가 뭔지 고민하고 뭔가 스마트하게 동작하는 물건을 보면 그것의 회로를 고민해라.

4.언어랑 전자, 악기는 계단식으로 실력이 는다. 명심해라..그리고 기본을 익히면 그 이후는 전문가에게 배울 필요가 없다.

5. 전문성을 가져라..어차피 전기든 전자든 제어든 다 알아야 한다. 그중에 제일 흥미로운걸 하나 골라라.

그리고 제일 내가 후회하는거 두가지..

6. 방학때는 놀아라..나는 방학때도 회사 다니고 연구소에서 교수 돈벌어주느라 시간 다보냈는데 인생에서 마지막으로 여유롭게 놀수 있는 시간이다. 대신 할땐 미친듯이 해라.

7.  돈에 너무 목매지 마라..돈이 행복의 척도는 아닐 뿐더러 세상에 공짜는 없다. 많은 연봉은 너의 노력의 결과이자 회사는 너의 연봉보다 최소 3배 이상의 이익을 얻는다. 편한 생활을 위해 많은 돈을 원하면 그만큼 니가 미리 고생해라.

그리고 마지막으로..

8. 재미있게 즐겨라..그냥 마지못해 하는 사람들은 괴롭겠지만 전자라는 분야가 알면 알수록 어떤  영화보다도 스릴있고 재미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기본 베이스는 옴의 법칙, 간단한 트랜지스터 회로만 이해해도 다 이해가 가능하다. 그걸 그 기본 베이스로 바꾸는 것이 복잡한 수식으로 표현된 개념이긴 하지만..

  • 난머지? ()

      위의 글도 맞는 분야가 있겠지만....산수 중요해요,
    일례로써, 스맛폰에 들어가는 모뎀 알고리듬 다 산수에요.... 산수로 모델링하고 분석하고 어떤 넘이 좋은지 많이 활용합니다.... 위의 예도 한가지 경우라고 보면 됩니다.

  • 세아 ()

      원글 쓰신 분께서 수학에 대해 "개념을 누구나 쉽게 알기 위해 도식화 해 놓은거야" 정도로만 생각하게 되는 것에 수학 교육의 문제도 있는 듯 합니다.

    전공이 전공인지라 외국에서 여러 공학분야에서 수학을 활용하여 멋드러진 것들을 해 내는 경우를 자주 보게 되고 그것을 설명하는 글들도 자주 접하게 됩니다. 그런 재미난 응용들 중 상당히 많은 경우에는 공학수학 수준, 혹은 수학과 2, 3학년 수준의 수학이 쓰일 정도입니다. 더 고급 수학은 거의 쓰이지 않지요. 예를 들어 구글의 검색알고리즘의 뼈대는 대학 2학년 선형대수학이 쓰이거든요.

    사실 우리나라에서 제대로 배우기만 하면 저런 응용에서 쓰이는 수학 정도는 다들 이해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자기가 배운 수학을 그렇게 응용하는데에 써먹을 수 있다는 것을 생각조차도 못하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누구나 다 배우는 대학 2학년 선형대수학으로 누구는 구글을 만드는데 다른 누구는 그저 계산하는 과목 재미없다 생각하고 끝나니까요.

    조금 더 전공 수학이 어떻게 쓰일 수 있는지를 넓게 알리는 노력이 필요할텐데요. 예를 들어 미국수학회 같은 곳은 수학이 산업현장에서 어떻게 쓰이고 있는지를 알리는데 아주 큰 노력을 기울이고 있거든요. 그렇지만 아직 우리나라 수학계의 덩치가 그정도까지 힘을 쓰기에는 여력이 부족하네요.

  • dk ()

      글쓴이 주장은 한마디로 회사서 일 잘하는 엔지니어 양성에는 전문대학의 질적 고급화입니다. 사실 학사 수준 회사일은 엑셀이나 C등 기타 툴을 얼마나 입체적으로 잘 쓰는가에 달려있죠. 전공을 심각하게 생각해야 할 요소가 거의 없어요.

  • 지복 ()

      틀린 말 하나도 없네요. 사회에 나오면 실력 오직 그거 하나뿐이죠. 우리나라는 머리 좋은 애들이 너무 시험성적 잘받는 데 노력을 다 쏟아버리는 안타까운 일이 벌어지는 거 같습니다.

    수시나 정시 때문에 그거 준비만 2~3년 한 다는 게 말이됩니까? 중학교 때 과학고 준비하는 애들까지 포함하면 더 심하죠.

    실리콘 벨리의 경우 물론 명문대 생도 많고 그들이 일반적으로 뛰어난 것은 맞지만, 학위가 없거나 별볼일 없는 대학 나온 경우도 허다합니다. 아무래도 업종이 업종이다보니 특히 프로그래머의 경우 뛰어난 프로그래머 중에는 정말 고졸만 한 사람들도 있죠.

    근데 그게 중요한가요? CS 박사 받은 사람들보다 코딩 실력이 좋은데.. 업무효율이 100배 이상은 좋은데 아무 상관 없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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