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 소요유님과의 물리학의 계층 문제에 대한 토론의 보충자료

글쓴이
과학도
등록일
2002-05-06 0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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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로 저의 답을 대신하고 싶군요. 물리학에서 최근에 자주 거론되는 scale 법칙이
일종의 패러다임으로서 과학계(사회과학 포함) 전반에 자리잡아 가고 있다는 말을
들어왔는데 그 뿌리가 사실 최근은 아니었군요. 아무튼 이론이 커버하는 스코프의
계층성에 관한 문제에 있어 물리학 내부적으로는 잘 해결되 나간 것으로 보이는군요.
scale law라는 보다 보편적인 법칙으로요..

아래 글과는 약간 차이가 있지만 제 개인적인 결론은.. master theory는 분명 있지만
인간의 인지적 한계로 인해 어느정도의 이해용이성이 보장되는 정도의 복잡함을
상한으로 두고 각 계층마다 이론이 (어느정도의 통약불능성을 가지고) 달리 존재하는것이
치명적이지는 않다는 것입니다. (너무 편의적인가요..? ^^;)


세리자와  Access : 28 , Lines : 122 
물리학에서의 계층의 문제 

근대 물리학자들의 화두라고 하면 '자연의 단순성'입니다.
자연은 아주 복잡한 양태를 보이지만, 물리학자들은 그 자연이
단순한 몇 개의 구성체들과 그 구성체들을 지배하는 몇 개의
법칙들이 좌우한다고 믿습니다. 아인슈타인 등과 같은 위대한
물리학자들의 자연의 단순함에 대한 미학적 집착은 종종 일반인들을
놀라게 하고 감동하게도 하지요.

이런 자연의 단순성에 대한 신념이 물리학의 발전을 급속도로 이끌어
왔음은 사실이지만 생각해보면 매우 이상한 점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자연 그 자체가 단순하다는 것은 사실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자연이
단순하다고 물리학이 발견한 법칙들이 단순할 이유는 없지요.

예를 들어, 현대 물리학의 표준이론(Standard theory)를 봅시다.
표준이론은 6종류의 쿼크, 6종류의 렙톤, 3종류의 게이지 입자,
1개의 힉스입자들로 중력을 제외한 우리가 아는 모든 물리현상을
기술하는 이론입니다. 그 방정식은 넵킨 한 장에 쓸 수 있을 정도로
단순하고 많은 대칭성이 존재하는 우아, 단순, 명쾌한 이론이죠.

그런데, 이 표준이론이 현실의 실험장치로 오면 우리가 보는 시그널들은
지저분해집니다. 이론을 정확하게 풀기란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에 그
근사치를 구하는데 이 근사값에 대한 보정항이 무한대로 많이 존재합니다.

하지만 좀 더 에너지수준이 낮아지면, 3개의 쿼크가 양성자나 중성자같은
핵자들을 구성합니다. 그리고, 전자가 하나 더 달라붙어서 수소원자를
형성하죠.

즉, 표준이론의 관점에서 보면 수소원자는 틀린 모델, 혹은 근사적으로만
맞는 모델입니다. 표준이론이 가지는 풍부한 다른 현상들은 수소원자에
수많은 보정을 주고, 실험을 해보면 실제로 표준이론이 맞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자연의 단순성이라는 것은 매우 현혹시키는 개념이죠. 우리는
자연의 단순성이라는 개념에 근거해 수소원자 모델을 발견합니다. 그러나,
표준이론의 관점에서 보면, 아니 궁극의 이론의 관점에서 보면 우리가
수소원자 레벨에서 보는 물리가 단순해야 할 이유는 전혀 없습니다.
그러나, 물리학의 역사적 발전과정은 자연의 단순함에 대한 신념이
지속적으로 각 스테이지에서 우아한 단순함을 지닌 이론들을 발견하면서
진행되어 왔습니다.

두 가지 가능성이 있을 것입니다. 하나는 인류가 운이 좋아서 이 우주의
자연법칙이 몇몇 스테이지마다 극도로 단순한 것인가 하는 것이고, 두번째는
우리가 발견하는 모든 물리법칙들이 반드시 우아한 단순성을 띄어야 하는
어떤 이유가 존재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1982년 노벨상을 수상한 물리학자 윌슨의 재규격화군 이론은 그 이전까지
물리학자들이 생각하던 물리학이란 무엇이며 무엇을 하는 것인가에 대한
인식을 그 뿌리부터 뒤흔들어 놓았습니다. 윌슨이 제시한 답이 바로
두번째였기 때문입니다.

윌슨에 의하면 보편적인 물리법칙이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 대신 모든
물리법칙은 항상 스케일을 동반합니다. 어떤 물리법칙이 어떤 에너지
(혹은 길이, 시간 등등) 스케일에서 정의되면, 이 물리법칙은 재규격화군
변환에 의해 더 낮은 스케일의 물리법칙으로 바뀝니다. 이런 변환에 의해
하나의 물리법칙의 스케일 변화에 따른 흐름(renormalization group
flow)이 형성됩니다.

그런데 이런 흐름이 끝나거나 시작되는 고정점(fixed point)들이 있습니다.
윌슨이론의 관점에서 물리학은 바로 이 고정점들을 찾는 작업입니다. 보통
흐름이 끝나는 점을 IR 고정점, 흐름이 시작되는 점을 UV 고정점이라고
부릅니다.

UV 고정점은 무한대로 큰 에너지 스케일, 혹은 다르게는 무한대로 작은
길이 스케일에서 정의되는 물리법칙입니다. 우리가 어떤 이론을 세운다고
하는 일은 바로 UV 고정점을 하나 잡는 작업입니다.

IR 고정점은 무한대로 작은 에너지 스케일, 혹은 무한대로 큰 길이
스케일에서 정의되는 물리법칙입니다. 우리가 어떤 이론을 푼다는 것은
그 이론이 어떤 IR 고정점이나 그 근처로 어떻게 흘러 들어가는지를
연구하는 것이죠.

예를 들어 표준이론은 하나의 UV 고정점입니다. 고정점에서 물리법칙은
단순하고 머리나쁜 인류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고정점에서
재규격화군 변화를 취하면 낮은 에너지 스케일의 물리법칙으로 점점
바뀌어지면서 점점 복잡해지기 시작합니다. 단순한 이론은 많은 보정항들에
의해 복잡해지고 이론이 애초에 가졌던 수많은 대칭성들은 이들 보정항들에
의해 파괴됩니다. 이 현상은 에너지 스케일이 낮아지면서 계속 진행됩니다.

그런데, 이 흐름은 어느 순간에 새로운 UV 고정점을 스치게 됩니다. 바로
수소원자 모델이라는 UV 고정점입니다. 이 두 UV 고정점에서 출발하는
두 흐름은 점점 더 가까워지면서 같이 흘러갑니다.

물리학은 자연법칙 그 자체를 발견한다기 보다는 이런 고정점들을 발견하는
작업입니다. 고정점에서 물리법칙은 단순하기 때문에 우리는 신비스럽게도
우리가 발견하는 자연법칙들은 항상 우아한 단순함을 지녔다고 착각합니다.
그러나, 진짜 자연법칙의 재규격화군 흐름을 발견한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우리는 그 흐름에 충분히 가까운 곳에 위치한 고정점들을 하나하나 발견해
나가는 것 뿐입니다.

또 하나 예를 들어보면 상대론같은 UV 고정점이 있습니다. 이 고정점에서는
로렌츠 대칭성 덕분에 물리법칙은 아주 단순해지죠. 그런데, 재규격화군
변환을 하면 이 로렌츠 대칭은 파괴되어 버리고 아주 지저분하고 이해하기
힘들어집니다. 그런데, 어느 스케일에서 고전역학이라는 UV 고정점을
스치고 지나갑니다. 이 스케일에서 여전히 상대론의 재규격화군 흐름은
좋은 대칭성이 없는 지저분한 물리법칙입니다. 그런데 고전역학은
갈릴레이 대칭성 덕분에 아주 단순해지죠. 그래서 우리가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그래서 상대론의 재규격화군 흐름을 가지고 이해하는 것보다
고전역학을 가지고 물리를 기술하는 것이 이해하기 편해집니다.

따라서 궁극의 이론이라는 말도 이런 관점에서 보면 어불성설입니다. 모든
이론은 우리가 실험할 수 있는 (혹은 장래에 실험할) 에너지 스케일
아래에서 발견한 고정점들입니다. 조율사가 완벽한 조율을 하기 위해서는
무한한 시간이 필요하듯이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이론이 궁극의 이론이라는
것을 알기 위해서는 무한히 높은 에너지 스케일에서 새로운 고정점이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을 테스트해야 합니다. 그러기는 불가능하죠.

물리학에서 계층은 이렇게 고정점들과 재규격화군 흐름들에 의해 나타납니다.
각각의 고정점들을 직접 비교하면 각각 다른 단순성과 대칭성을 지닌 서로
전혀 다른 체계로 보입니다 (로렌츠 대칭성을 지닌 상대론과 갈릴레이
대칭성을 지닌 고전역학처럼). 그러나, 재규격화군 흐름에서 보면 이런
모순은 없지요.. 고전역학 고정점의 스케일에서 보면 상대론은 고정점에서
있었던 그런 대칭이나 단순성을 거의 잃어버리고 고전역학에 근사적으로
가까워지지요.

이런 아이디어는 양자장론이나 통계물리학의 가장 어려운 부분에 속하는
내용이기 때문에 그렇게 잘 알려져 있는 것은 아닙니다만, 점점 많은
곳에 응용되고 있죠.. 비선형 동력학계라던가..
 

  • 소요유 ()

      개인적으로 숲 보다도 나무를 탐구하는 입장이어서인지  큰 틀의 통일된 이론의  효용성에 대하여 구체적을으로 접할 기회는 많지 않습니다.  사실 제가 관심있는 영역에는 현재의 계층적 구조 중 맞는 것을 쓰는게 사실 편하게든요. 그런데 전 이 계층은 자연의 자체 문제라기 보다도 이를 받아드리는 인간 인식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이를테면 우주가 행성계-성단-은하계-은하단-초은하단 등등으로 이해하면 현상학적으로 계층적 구조로 볼 수 있겠지만 사실은 이렇게 계층적 구조로 나누어 보는 것은 단지 인간이 이해하기 편하기 때문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전 계층적 우주론 근저에  요소적자연과 - 즉 환원적 자연관이 깔려 있다고 봅니다.  이게 옿다, 그르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이분법적 사고가 옳다 그르다는

  • 소요유 ()

      것을 주장하고 싶었던 것이 아닙니다. 자연에대한 입자-파동의 이분법적 사고는  뉴톤과 맥스웰로로 대변되는 고전역학 범위내에서는 여전히 유효하고, 현재도 아주 활발하게 '잘' 쓰이는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스케일 이론의 근저는 결국 요소적 자연과, 환원적 자연관의 다름 아님이라고 봅니다.  즉 자연을 하나하나 뜯어서 이해하면, 그 전체를 이해할 수 있다는 생각이지요. 이게 자연과학의 발전을 막는 것인지  아닌지는 두고 봐야 하겠지만  결국 현대과학조차도 흐름은 이러한  철학적 배경, 즉 인식론적 배경을  벗어나지 않고 있다고 봅니다.

  • 소요유 ()

      오늘도 전 사실 하나하나 뜯어내서 살펴보고 있는데, 잘되야 할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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