윈도우즈의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

글쓴이
avaritia
등록일
2009-10-20 17:39
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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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은 엄청 거창하지만, 매우 평범하고 평균적인 일반 유저의 입장에서 써본다.

윈도 비스타는 MS에 뼈저린 실패를 안겼다. 물론, 회사가 기우뚱 할 정도의 처절한 실패를 한 것은 아니다. XP를 단종시키면서, 적어도 PC 제조사들이 새 PC에 인스톨해 판 만큼은 팔렸으니까. 판매 초기 불거졌던 고사양 논란, 느려터졌다는 비난도 몇년간의 하드웨어의 발전 덕에 이제는 크게 느껴지지도 않는다.

하지만, MS에 있어서 시장의 외면보다 더 아픈 부분은, 많은 유저들이 윈도우에 신물이 난 데다가, 더이상 발전할 여지도 없다고 결론 내린 것이다. 악플보다 무플이 무섭다고 했던가. 좀 다르지만, 새 제품에 비난이 쏟아지는 것보다 더 무서운 것이, 새 제품이 나와도 "그게 그거지 뭐..." 하는 심드렁함인 것이다.

MS의 반전카드인 윈도7 이 출시된다. 이미 쓸 사람은 다 쓰고 있기도 하지만, 유저들의 반응은 역시 미지근하다. 윈도2000 에서 XP로 넘어갈 때의 열광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윈도7은 XP에 비해 분명 화려해졌고, 비스타에 비해 좀 더 최적화가 이루어졌으며, 보안이 강화되었고 멀티코어와 SSD등, 신기술에 대한 대응이 개선되었다.

하지만 일반 유저들이 느끼기에는 '윈도XP의 새단장 버전' 정도로 여겨지는 것이 현실이다. 화려한 시각효과는 보기에 이쁘지만 없어도 그만이고, 그것이 조금이라도 컴퓨터를 굼뜨게 만든다면 신경만 쓰인다. 강화된 보안이나 신기술 지원은 눈에 보이지 않는 부분이다. 많은 리뷰어들을 비롯해 일반 유저들이 신경쓰고 보는 부분은 -어찌 보면 OS 성능에 크리티컬한 요소도 아닌- 부팅속도다. 부팅이라는 것이, 대부분의 경우 하루에 한번 하는게 고작이다. MS는 [부팅 속도가 그렇게 신경쓰이면 대기모드를 사용하라]고 권장하곤 한다. 예전과는 달리 살아 있는 백그라운드 서비스가 누적적으로 증가하는 것도 아니고 컴퓨터가 눈에 띠게 느려지는 것도 아니며, 하드웨어 기술의 발전으로 대기모드에서도 굉장히 낮은 전력만을 소모하므로, 컴퓨터를 끄는 대신 대기모드를 사용해도 좋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많은 유저들은 여전히, 컴퓨터를 끈다. 재부팅은 많은 것을 해결해 주고 OS를 신선하게 유지시켜 준다고 믿는다. 그리고, 부팅 속도야 말로 내 컴퓨터가 얼마나 빠른지, 얼마나 깨끗한지, OS가 얼마나 가벼운지, MS의 엔지니어들이 최적화에 얼마나 공을 들였는지 등등 모든 것의 척도로 삼아버린다.

부팅 속도라는 면에서 비스타는 XP에 비해 엄청나게 실망스러웠고, 윈도7 홍보 담당자는 향상된 부팅 속도를 강조했다. 하지만 여러 리뷰 사이트에서 윈도7의 부팅속도가 XP보다 빠를 것이 없다는 것이 까발려졌다. 한마디로, -그 모든 개선사항을 무시한 채 - "너네 뭐했냐?" 는 말이다.

이때를 틈타 애플에서 Snow leopard 를 내어 놓으며 MS를 조롱하기 시작했다. 맥OS는 오래 전부터 MS로 하여금 컴플렉스를 느끼게 하는 대상이었다. 윈도1.0, 3.0, 3.1 부터 윈도98, 2000, ME, XP... 에 이르는 작업은 '이쁜 GUI의, 블루스크린 없는 맥OSI 따라잡기' 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Snow leopard는 MS의 아픈 부분을 심히 건드렸다. 새로운 기능이라고는 한 개도 없으면서 사이즈만 줄였다는 것이다. 더 슬림하다는 것은 더 가볍고 더 빠르다는 이미지를 - 실제 성능과 꼭 직결되지 않더라도 - 주기에 충분하다. 게다가 업그레이드 작업은 빠르고 간편하며, 가격 또한 착하기 그지없다. 윈도 다시깔고 어플리케이션 다시 설치할 생각에... 눈 튀어나오는 가격이 붙은 윈도7은 여러모로 밉상이다.

꽤 많은 유저들이 이 기회에 맥으로 갈아타는 것을 생각하기도 한다. 하지만 역시 '익숙함과의 결별'이라는 벽이 존재한다. 맥OS는 애플에서 만드는 맥에서만 돌아간다. - 이론상 PC에서도 돌릴 수 있겠지만, 애플이 각종 드라이버를 제공하지 않는다 - 맥은 평균적으로 비싸다. 비슷한 사양의 HP제 컴퓨터와 비교하면 비슷하다. 하지만 맥은 조립품도, 대만제도, Dell 도 없다. -한국 유저들에게는, 사파리에서 보이지 않는 플래시로 가득한 국내 웹사이트들과, 액티브X없이는 아무 일도 처리 할 수 없는 환경이 또다른 문제가 된다.

맥으로 갈아타는 것을 망설이게 되는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과연 애플이 컴퓨터를 언제까지 만들 것인가?" 라는 질문에서 찾을 수 있다. 더 나아가서, 개인용 컴퓨터라는 것은 어떻게 될 것인가?

개인용 컴퓨터는 어떤 정점에 다다른 듯한 느낌이다. 많은 사람들이 컴퓨터를 '덜' 이용하기 시작했다. 컴퓨터에 환멸을 느껴서, 자연으로 돌아가고 싶어서가 아니다. 컴퓨터가 제공하던 기능을 다른 기기들도 제공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한때 email 을 확인하기 위해 PC를 항상 켜 놓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많은 사람들이 블랙베리, 아이폰, 다른 핸드폰이나 모바일 기기에서 이메일을 확인한다. 블로그에 글을 올리거나 소셜 네트워킹 서비스에서 시시덕거리는 데에도 컴퓨터가 필요없다. 멀티미디어를 즐기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컴퓨터의 용도는, MS가 한때 꿈꾸었던 [통신, 방송, 엔터테인먼트...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는 디지털 센터]로부터 점점 멀어져가서, 원래의 용도였던 사무기기로 돌아가고 있다. 바꾸어 말하자면, 'MS의 꿈'이 무너져 내리고 있다.

한 예로, 최근 주변 기기의 트렌드를 보면 컴퓨터로의 종속을 거부하고 있다. 최신의 프린터들은 특정 컴퓨터와 물리적으로 연결되지 않는다. 새로 나온 HP 복합기들은 전원 코드 외에는 아무 것도 꼽을 필요가 없다. Wifi 와 블루투스를 이용해 스캔과 인쇄 기능을 완벽히 제공한다. 한 대의 컴퓨터 뿐 아니라 다른 기기들도 얼마든지 프린터에 연결될 수 있는 것은 당연하다.

몇년 전만 해도 인터넷전화를 이용하려면 PC에 헤드셋을 꼽아서 써야 했다. 지금은 standalone 형 인터넷 전화기들이 대세다. 주택 내의 wifi 망을 이용하는 skype 무선단말기도 여러 종류가 나와 있다. PC를 경유할 필요가 없음은 당연하다.

개인용 맥을 여전히 만들어 팔고 있는 애플은, '컴퓨터가 중심이 되는 세상'을 허무는 데에 열심이다. 어찌보면 같은 회사 내에서 모순적인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랩톱 -또는 노트북- 컴퓨터는 어떠한가?

88년에, 도시바에서 나온 초기 랩톱 PC를 써보고 와우! 했던 기억이 있다. 기억을 좀 더 거슬러 올라가 보면 이렇다. 타자기가 있었고, 전기식 타자기가 있었다. 이것이 전자식 타자기로 바뀌었고, 초보적인 워드프로세서로 바뀌었다. 제법 발전한 워드프로세서에는 몇 줄 정도 표시할 수 있는 흑백 액정이 있었고, 플로피디스크드라이버가 내장되어 문서를 저장할 수도 있었다. 이것은 도트프린터(또는 잉크젯)와 워드프로세서 전용 컴퓨터가 합쳐진 형태였다. 흑백 액정창이 점차 커지면서 뚜껑을 열고 닫는 형식이 되었다. 최초의 랩톱 PC는 이 '워드프로세서'에서 프린터 부분을 제거하고 대신 IBM PC-XT 를 심었고, 흑백 액정 화면을 달았다. 이것이, 펼치면 화면이 위로 열리고, 아래쪽에 키보드가 있는 현재의 랩톱PC의 전구체다. 생각해 보라. 타자기로부터 내려오는 이런 '진화의 유전자'가 없었다면, 휴대용 PC가 굳이 현재와 같은 형태를 지닐 필요는 없는거다.

태블릿 PC가 계속 시도되고, 키보드 분리형의 진짜 태블릿 PC도 여러 제조사에서 출시된 적이 있지만, "컴퓨터라면 키보드가 달려 있어야 한다. 그것도 아래 쪽에" 라는 사회적 고정관념은 좀처럼 깨지지 않았다. 노트북 컴퓨터라면 반드시 데스크톱 PC와 같은 OS를 구동하고 동일한 기능을 제공해야 한다고도 믿었다. 하지만 그것이 점차 바뀌고 있다. 앞서 말한대로, 컴퓨터의 기능을 빼앗아 가는 기기들이 늘어나면서 '컴퓨터의 형태'에 대한 고정관념이 허물어져 가고 있다. 또한 OS에 대한 생각도 바뀌고 있다. 윈도우즈는 이제 구시대의 OS로 여겨지고 있다. 윈도7이라고 해서 예외가 될 수는 없다. 심하게 말하자면, '내 개인용 컴퓨터의 OS는 윈도XP로 끝날 것이고 그것으로 충분'하고, '컴퓨터로 하던 많은 일들을 다른 기기 - 더 빠르고, 특화된 기능을 제공하고, 더 가볍고, 선 없이 어디서든 인터넷에 연결되어 있는 - 로 하겠다' 고 선언할 사람들의 수가 늘어나고 있다.

스마트폰용으로 새로 발표된 윈도 모바일 6.5는 '제법 심각한 농담'처럼 여겨지고 있으며 윈도 모바일 7은 나오든 말든 개념치 않겠다는 반응들이다. 전통의 동맹 삼성전자가 옴니아2에서 윈도를 채용해 주는 최후의 의리를 발휘한 가운데, 윈도 모바일을 지탱하던 HTC와 소니에릭슨은 작별을 선언했다. 윈도 모바일은 데스크탑용 윈도보다 먼저 멸종할 것이 확실해 보인다.

맥OS의 미래, 즉 PC OS에 기반하고 있는 또다른 OS의 수명은 어떻게 될 것인가? 애플이 내년 초 발표할 것으로 보이는 iTablet 이 중요한 변수가 될 것이다. iTablet 이 맥북의 태블릿 버전이 되고 Snow leopard에 기반한 OS를 갖게 될지, iPhone/iPod touch 의 대형 버전처럼 나오게 될지가 변수다.(현재로서는 후자가 유력하다. App store를 끌고 나가야 한다) iTablet 이 '타블렛 맥북'이 아니라면 [데스크톱 PC의 사무기기화]와 [데스크톱 OS의 내리막길]은 분명해 질 것이다. 이것은 iTablet 이 실패한 시도로 끝나더라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윈도 신제품 출시가 '전세계의 거의 모든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던' 시절은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윈도를 중심으로, PC를 중심으로 모든 것이 통합되는 미래는 오지 않을 것이다. 멀티미디어, 게임, 음성/화상통신, 전자문서, 인터넷 접속까지 수많은 기능들을 몇몇 가지에 특화된 더 '가삣한' 기기들에 자리를 내어 줄 것이다. 윈도의 차기 버전은 OS의 순수한 기능으로, 'white OS'로 돌아가야 하고, 윈도 패키지에 포함되던 각종 기능은 app store를 통해 자유롭게 추가되도록 바뀔 것이다. 차기 OS는 클라우드 컴퓨팅에 대한 대응이 보강될 것이다. 개인 소비자가 OS 패키지를 구입해서 개별 라이선스를 받아 사용하는 형태는 사라질 것이다. 아예 메인보드상의 플래시메모리에 얹혀 나올 것이고(embedded와는 약간 다른 개념일지도 모르겠다) 'DVD를 넣어 HDD에 OS를 설치한다' 라는 말은 '테이프레코더에 카세트테입을 넣고 load 명령어를 친 뒤 재생해서 오락 한번 띄우는데 30분이 걸렸지' 라는 말처럼 지나간 추억이 될 것이다. 뜬금없는 상상 - 그렇게 되면 생존을 위해 인텔과 MS가 합병해야 하나? '윈텔'이라는 비아냥이 현실이 되어 버릴지도 모를 일이다.

  • 공도링 ()

      재미있는 글이네요. 잘 읽었습니다.

  • 언제나 무한도전 ()

      저도 추천 한 표.

  • 돌아온백수 ()

      사무용으로 오래오래 살아남을 거라고 봅니다. 사람들이 의외로 보수적입니다. 특히나 화이트 컬러들은 변화를 아주 싫어하는 경향을 보이죠.

  • 흙빛 ()

      온라인 게임을 하려면 역시나 윈도우 기반 PC죠...-_-;
    그런데 그 용도 외에는..코딩을 한다던지..일처리할 때 빼곤 저도 거의 PC를 쓰지 않습니다..

  • 이장선 ()

      윈도우즈의 과거와 현재, 미래에 관해서 번뜩이는 통찰력을 보여주는 글이었습니다. 참, 생각해보면 빌 게이츠의 윈도우즈가 초반에 꽉 잡는 덕을 엄청나게 봤죠? 운영체제같이 규모가 거대한 상품은 경쟁상대가 비교적 뜸하기 때문에 초기에 고객들을 잡아 '익숙함'을 이용하게 되면 상상도 못하는 독점을 할 수 있게 되잖아요. 하지만 그것도 이제 슬슬 끝이 보이는가요? 하기사 오래도 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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