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료전지 시대는 오는가 - mobile 전자기기

글쓴이
박상욱
등록일
2003-09-24 14:40
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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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나가는 금융 컨설턴트인 김과장은 이번 미국 출장길에도 노트북 컴퓨터를 챙겼다. 11시간의 비행이 시작되자마자 스튜어디스를 불러 묻는 말은 항상 똑같다. “노트북 배터리를 충전해야하는데. 도와주시겠어요?” 센트리노 기술을 앞세운 인텔을 필두로, 전자회사들이 저전력 설계에 매진한 결과 소용량 리튬이온 배터리로도 5시간에 이르는 사용시간을 제공한다지만, 이는 이론상의 수치이고, 몇가지 작업을 하거나 DVD영화라도 한편 보면 금새 저전압 경고가 들어오곤 했다. 비행기가 북태평양 상공을 한참 날고 있을 때 쯤, 김과장 옆자리에 탄 남자의 노트북 화면에도 저전압 경고가 떴다. 승무원에게 보조 배터리 충전을 부탁해 놓은 김과장은 회심의 미소를 띄었다. 앗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옆자리의 남자는 서류가방에서 안약병처럼 생긴 것을 꺼내더니, 뚜껑을 열고 노트북에 무언가를 짜 넣는 것이 아닌가? 잠시 후, 옆자리 남자의 노트북 화면의 정보를 보고 김과장은 소스라치게 놀랐다. ‘남은 사용 시간 9시간 30분’! 그 남자는 김과장을 향해 씩 웃으며 말했다. "난 sciengineer요." ㅋㅋㅋ

<사진1>내년 상용화를 목표로, 리브레또 노트북에서 시연중인 도시바의 DMFC
<사진2>수소를 이용하는 캠코더

2005년 봄쯤 일어날 수 있는 상황을 상상해 보았다. 김과장 옆자리의 남자가 사용한 전지는 직접메탄올형연료전지(DMFC:Direct methanol fuel cell)이고, 짜 넣은 액체는 묽은 메탄올 수용액이다. 연료전지는 충전이 필요 없이 연료의 보충만으로 에너지를 회복한다. 에너지 밀도가 무척 높아 리튬이온 전지와 같은 부피의 연료전지 셀로 며칠간 노트북 컴퓨터를 구동할 수 있다. 연료전지 작동에 필요한 몇가지 부속-마이크로펌프, 제어장치, 배기 및 냉각장치등-을 포함하느라 셀이 작아지더라도 기존의 2차전지에 비해 두 배 이상 오래 작동한다.

여러 가지 종류의 연료전지중에서, 휴대용 전자기기에 적합한 것은 고분자전해질형연료전지(PEMFC:polymer electrolyte fuel cell)과 직접메탄올형연료전지이다. 고분자전해질형연료전지는 수소를 연료로 사용하고, 공기중의 산소를 이용한다. 자동차같이 넉넉한 탑재공간이 있다면 수소의 저장은 큰 문제가 되지 않지만, 노트북 컴퓨터나 PDA를 위해 고압 수소 봄베를 지고 다닐 수는 없기 때문에, 휴대용으로 사용하기 위해선 간편한 수소 저장의 문제가 가장 큰 걸림돌이다. 처음에는 수소저장합금이 시도되었는데, 그 부피와 무게가 만만치 않고 수소의 재충전도 문제라 지금은 거의 이용되지 않는다. 초소형 수소 봄베도 시도되었으나 휴대용인지라 안전성에 문제가 있다. 그래서 요즘 시도되는 휴대용 PEMFC에는 메탄올에서 수소를 필요할 때마다 뽑아내는 소형 개질기(reformer)를 장착하거나, 화학물질(주로 금속수소화물)을 이용해서 수소를 발생시키는 방식으로 개발되고 있다. PEMFC는 기술적으로 안정기에 접어들었으며, 수소를 이용하기 때문에 DMFC에 비해 높은 기전력과 전력을 쉽게 얻어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DMFC가 충분히 발전하기 전까지, 방송용 ENG카메라등 전력 소모가 큰 기기를 중심으로 먼저 상용화될 것이라 전망된다.

DMFC는 묽은 메탄올 수용액을 사용하기 때문에 연료의 재주입이 간단하고, 안전성도 매우 높다. 보급이 활발히 이루어질 경우 편의점이나 가판대에서 1회용 라이터나 알카라인 전지를 구입하듯이 메탄올 용액을 살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현재까지 개발된 기술중에서는 휴대용 연료전지에 가장 적합하다고 할 수 있다. 문제는 아직 기술적 완성도가 그리 높지 않아 단위부피당, 단위질량당 에너지밀도도 부족하고, 장시간 작동시 성능 안정도등 난점이 많다. 그래서 휴대전화, PDA등 전력 소모가 적은 모바일 기기를 위한 것부터 개발되고 있다. 2004년 출시를 목표로 여러 업체가 개발중이나 리튬이온전지에 비해 가격과 크기에서 경쟁력이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연료전지가 모바일 기기용으로 사용될 때의 가장 큰 장점은 역시 충전이 불필요하다는 것이다. 전원을 켜 놓은 상태에서, 충전 대신 연료 주입만으로 지속적인 사용이 가능하다. 배터리 교환을 위해 전원을 꺼야 하고, 보조 배터리를 가지고 다녀야 하며, 보조 배터리가 없다면 충전할 동안은 꼼짝할 수 없는 2차전지와 비교할 수 없는 특장점인 것이다. 그러나 연료전지의 미래가 마냥 장미빛인 것은 아니다. 첫째로, 세계적으로 수많은 과학기술자들이 매달려 있는 것도 무색하게 기술 발전이 너무 더디다. 연료전지의 개념은 이미 19세기말 등장했으며 1960년대 제미니 계획, 아폴로 계획에서 이미 적용되었다. 연료전지 자동차와 전자제품의 시제품이 등장한지는 20년 가까이 되었다. 그런데도 일반인이 구입할 수 있는 시장 제품은 아직 없는게 현실이다. 그사이 리튬이온전지와 리튬폴리머전지는 눈부시게 발전하여, 고용량 소형 제품이 대량 생산되어 가격 경쟁력까지 갖추었다. 전자제품 메이커들의 저전력 설계기술도 발전하여 같은 전지로도 예전보다 두세배의 사용시간을 확보하고 있다. 모바일용 연료전지를 개발하던 회사들은, 리튬이온전지로도 일주일을 버티는 휴대전화용으로는 이미 경쟁력을 상실했음을 깨닫고, 좀 더 전력 소모가 높은 PDA, 노트북 컴퓨터, 캠코더, 군용 제품쪽으로 방향을 선회했다.

백금 촉매를 사용할 수밖에 없고 대량생산이 어렵다는 점도 연료전지가 시장에서 성공할지 낙관할 수 없는 이유이다. 원가 절감을 통해 리튬이온전지를 따라잡더라도, 마켓 셰어와 수익률에 있어선 뒤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초기 연료전지 제품이 다소 덩지가 크고 가격이 비싸더라도, 충전없이 장시간 휴대기기를 사용하고자 하는 사용자는 분명히 존재할 것이고, 시장 진입의 성공은 기술 발전을 가속화할 것이다. 70년대 1차전지를 사용하던 휴대용 기기들이 80년대 니켈카드뮴 전지를 거쳐 90년대 리튬이온전지로 대부분 대체된 것과 같이, 2010년대엔 연료전지가 그 자리를 차지할 것이다. DMFC 이후의 기술로 여러 가지 형태의 연료전지가 연구되고 있으며, 미생물이나 효소를 이용하는 것도 있고, 에탄올을 연료로 쓸 수 있는 것도 있다. “어, 연료전지의 연료가 떨어졌네. 어떻게 하지?” 하다가 마시던 소주를 부어넣는다는 얘기도 우스개소리만으로 들리지는 않을 날이 올 것이다.

  • 최희규 ()

      갑자기 글 읽다가 생각이 났는데, 연료전지를 들어 부을 것이 아니라, 밧데리 바꾸듯이 바꿔끼우는 팩을 개발하면 돈좀 되겟는데요... 요즘 사람들은 간편한 것을 더 좋아하니... 그리고... 분체를 이용하면 좀더 효율좋은 연료전지가 나올 것도 같은데... 제가 그쪽에는 문외라...

  • 박상욱 ()

      희규님 맞습니다. 이미 촉매 쪽에서 고분산 촉매 입자와 pore size가 크고 표면적이 무지하게 넓은 담체(지지체라고도 하죠) 개발쪽으로 많은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촉매는 2 nm정도까지 내려갔고요. 표면적이 활성탄소의 6배 이상 크게 나오도록 인위적으로 pore크기를 조절한 탄소 담체를 개발하고 있습니다. 오늘자 신문에도 났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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