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현실과 사이버네틱스 기술은 어디까지 가능할까?

글쓴이
최성우
등록일
2006-05-18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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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여러 영화에서 자주 다루어져온 중요한 소재 중의 하나로 가상현실(Virtual Reality)과 사이버네틱스(Cybernetics) 기술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제 이들 기술은 SF영화나 소설에서만 머물지 않고 이미 실제로 여러 방면에서 응용, 적용되고 있으며, 각광 받는 미래의 첨단과학기술 분야이다.
또한 이들 용어가 대단히 폭넓은 의미로 쓰이고 있기도 한데, 예를 들면 이미 우리에게 너무도 친숙한 인터넷이라는 사이버 공간, 각종 온라인 게임의 세계 등도 넓은 의미로는 가상현실의 일종이다. 이는 가상공간, 즉 사이버스페이스(Cyberspace)라는 단어의 유래를 생각해 보면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용어가 처음으로 나온 것은 윌리엄 깁슨(William Gibson)이 1984년에 선보인 ‘뉴로맨서(Neuromancer)’라 SF소설로부터이다. 특이한 느낌을 주는 이 소설의 제목은 아마도 '신경'을 의미하는 'Neuro'라는 접두어에 ‘마법사(necromancer)'를 합성한 것으로 보이는데, 뉴로맨서는 SF의 역사에서도 기념비적인 의미를 지니는 소설이다. 또한 인터넷과 컴퓨터, 정보기술 등이 몰고 올 미래의 사회상을 매우 예리하게 전망하고 있으나, 대단히 비관적인 관점에 서 있는 디스토피아(Distopia) 소설이기도 하다.

이 소설에서 처음 등장하는 사이버스페이스는 컴퓨터 칩을 인간의 뇌에 이식함으로써 만들어지고 연결되는 공간이다. 한때는 일본식 번역 표현대로 ‘전뇌공간(電腦空間)’이라고도 지칭했으나, 지금은 사이버스페이스라는 용어 자체가 일상적으로 널리 쓰이고 있다. 물론 인터넷 공간을 주로 의미하는 오늘날의 가상공간과 똑같이 일치하지는 않을지 모르지만, 뉴로맨서에서의 사이버스페이스 역시 거대한 컴퓨터 망에 연결되어 어떤 다국적 기업에 의해 지배되는가 하며, 해커들이 정체불명의 상대와 목숨을 건 사투를 벌이는 등, 지금의 사이버스페이스 모습과 놀랄 정도로 흡사한 면들이 많다.
1990년대 이후 가상현실 등을 소재로 한 영화가 매우 많은데, 이들은 거의 모두 이른바 ‘사이버펑크(Cyberpunk)'의 원조라 불리는 윌리엄 깁슨의 뉴로맨서로부터 영향을 받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92년에 첫 작품이 선보이고 이후 속편들도 나온 ‘론머 맨(The Lawnmower Man)’에서는 지능이 낮은 사람을 가상현실을 통해 교육시켜서 뛰어난 능력을 가진 사람으로 만들고, 주인공이 가상공간을 돌아다니면서 기이한 체험들을 하는 장면들이 나온다. 가상현실 기술 중의 하나로서 SF영화에서 자주 등장하는 장면 중의 하나가 바로 ‘사이버섹스(Cyber sex)'인데, 론머 맨에서도 나오지만, ’데몰리션 맨(Demolition Man)‘에서도 역시 남녀 주인공이 미래 사회에서 에이즈 등의 공포로 인하여 실제의 육체관계 대신에 헬멧 비슷한 기구를 쓰고 사이버 섹스를 나누는 대목이 나온다.

키아누 리브스 주연의 SF 액션물 ‘코드명 J (Johnny Mnemonic; 1995)’는 박진감 넘치는 사이버펑크 영화의 하나인데, 이 영화는 원작자가 바로 윌리엄 깁슨이다. 이 영화에서는 인간 뇌와 컴퓨터 간의 극단적인 휴먼 인터페이스 장면이 생생히 묘사되는데, 자신의 뇌 속에 들어있는 실리콘칩 메모리 확장장치를 이용해 비밀정보를 전달해주는 일을 하는 주인공은 항상 여러 가지 위험이 뒤따르게 된다. 즉 그가 전달해야 할 정보가 용량을 훨씬 초과하여 무리하게 메모리를 저장하는 경우, 입력된 정보를 재빨리 다운로드 시키지 않으면 목숨이 위험하게 되고, 정보를 탈취하려는 대기업이 고용한 전문 킬러들의 추격을 받으며 사경을 헤매는 장면도 나온다.

‘토탈리콜(Total Recall)'과 ’매트릭스(Matrix)‘에서는 실제 현실과 구분하기조차 극히 어려운 가상현실의 세계를 그리고 있다. 토탈리콜에서는 두뇌의 기억 속에 화성 여행의 기억을 집어넣음으로써, 화성 여행을 대신한다는 미래의 가상현실 체험방법이 나온다. 여행을 다녀온 기억이 고스란히 남기 때문에, 고생하며 직접 우주선을 타고 여행을 갈 필요가 없고 비용과 시간을 훨씬 절약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영화에서 남자 주인공으로 나오는 아놀드 슈왈츠 제네거 역시 가상현실 여행사에서 이를 시도하다가, 자신이 과거에 실제로 화성에서 활동했다가 지워진 옛 기억과 가상 여행이 뇌 안에서 충돌하면서 몸부림치는 장면이 나온다.
워쇼스키 형제가 각본, 감독하여 거의 전 세계적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끈 바 있는 영화 매트릭스에서는 인공두뇌를 가진 컴퓨터(AI; Artificial Intelligence)에 의해 인간의 기억마저 지배되는 ‘매트릭스’(Matrix)라 불리는 매우 끔찍한 가상현실이 소개되고 있다. 인간의 자궁, 컴퓨터의 회로망 등 여러 가지 중층적 의미를 지닐 수 있는 이 영화의 제목 자체가 많은 것들을 시사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인간들은 태어나자마자 그들이 만들어낸 인공 자궁 안에 갇혀 AI의 생명 연장을 위한 에너지로 사용되면서 AI에 의해 뇌세포에 매트릭스라는 프로그램을 입력 당하고, 그 안에 있는 동안 인간의 뇌는 AI의 철저한 통제를 받아 기억마저 그들에 의해 입력되거나 삭제된다는 우울한 내용이다.

영화 매트릭스에서 저항군의 대장 모피스가 컴퓨터에 맞서 진실과 자유를 향한 전쟁에 같이 나선 네오에게 다음과 같이 묻는 장면이 나온다. 네오, 너무나 현실 같은 꿈을 꾸어본 적이 있나요? 만약 그 꿈에서 깨어나지 못한다면, 꿈 속의 세계와 현실의 세계를 어떻게 구분할건가요?"
이 장면은 중국 고전인 장자(莊子)의 <제물론(齊物論)>에 나오는 호접몽(胡蝶夢)의 이야기를 연상하게 한다. 즉 “언젠가 내가 꿈에 나비가 되었다. 훨훨 나는 나비였다. 내 스스로 아주 기분이 좋아 내가 사람이었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이윽고 잠을 깨니 틀림없는 인간이었다. 도대체 인간인 내가 꿈에 나비가 된 것일까? 아니면 나비가 꿈에 인간인 나로 변해 있는 것일까?” 라는 고사이다. (昔者莊周夢爲胡蝶. 栩栩然胡蝶也. 自喩適志與, 不知周也. 俄然覺, 則蘧蘧然周也. 不知周之夢爲胡蝶與, 胡蝶之夢爲周與.)
호접몽은 이것이 함축하는 철학적인 의미로 인하여 가상현실을 다룬 여러 작품이나 영화 등에서 간혹 차용되기도 하는데, 우리나라에서도 몇 년 전에 나온 SF영화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도 마찬가지이다. ‘(동화에 나오던) 성냥팔이 소녀를 구하고, 그녀의 사랑을 얻어라’ 라는 메시지로부터 출발하여 게임 속의 가상 세계와 현실 세계를 넘나들면서 액션과 무협, 판타지 등을 선보이는 이 영화에서, 감독은 호접몽을 상징하는 커다란 나비의 그래픽 장면을 등장시킨바 있다.

사실 어찌 보면 호접몽처럼 가상의 세계와 현실의 세계를 구분하기 어려운 것은, 먼 미래의 얘기가 아니라 진작 벌써부터 시작되었는지도 모른다. 청소년 뿐 아니라 어른들마저도 온라인 게임의 상대방과 실제로 만나서 싸움을 벌인다는 얘기는 이제는 그다지 뉴스거리도 되지 못하고, 게임에서 사용되는 무기 등의 여러 아이템이 고가에 거래되거나 가상의 화폐가 진짜 화폐나 마찬가지로 경제적 가치를 지니게 된 것은 오래 전부터이다. 게임 중독에 빠져서 사회부적응 현상 등을 보이는 일부 청소년들은 새로운 사회문제로 등장하고 있다.
그간 여러 베스트셀러 소설을 내서 명망 있는 소설가로도 널리 알려진 모 대학의 국문학과 교수는 최근에 어느 잡지에 기고한 글을 통하여, 인간의 오랜 역사 속에 나타났던 혁명, 정의, 신념, 배신 등의 개념과 체험이 온라인 게임을 통해서도 재판될 수 있다는 놀라운 가능성에 주목하라고 언급한 바 있다. 즉 접속한 사람들이 게임 속에서의 숭고한 승리로 눈물을 흘리는 등, 가상현실에서 체험한 것들이 접속자들의 사상과 생각마저 바꿔 놓을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하였다.
또한 이미 여러 방면에서 활용되고 있는 가상현실 기술들 자체가 어찌 보면 현실과 구분이 어려울 정도로 흡사해야 더욱 효과적 일수 있을 것이므로, 가상현실과 실제 현실의 혼동을 갈수록 피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의료계에서는 가상현실 기법으로 고소공포증, 폐쇄공포증 환자들을 치료하고, 미국 NASA 및 여러 나라에서는 가상의 시뮬레이터로 우주비행사, 전투기 조종사 등을 훈련시키며, 여러 회사에서 제품의 생산 및 테스트 등에서도 관련 기술들을 이미 응용하고 있는 현실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가상현실과 사이버네틱스 기술의 궁극은 과연 어디까지 가능할 것인가? 위에서 언급한 코드명 J와 더불어, 일본 SF 애니메이션인 공각기동대(攻殼機動隊, Ghost In The Shell; 1995)를 한번 살펴볼만한 필요가 있을 듯하다. 시로 마사무네의 원작 만화를 오시이 마모루 감독이 독특하게 재탄생시킨 공각기동대에서, 주인공 쿠사나기 소령은 신체의 대부분이 기계로 되어있는 ‘사이보그(Cyborg)'로서 사이버 네트의 세계와 공안 관계의 특수 테러 등을 전담하는 조직(공각기동대)의 요원으로 등장한다.
그는 각종 사이버 범죄를 배후 조종하는 '인형사'라는 존재를 확인하는데, 이는 정부의 비밀 계획에 의해 정보의 바다에서 태어난 새로운 생명체로서 기업 탐사, 정보 수집, 공작 등의 임무를 수행하는 유령(Ghost)과 같은 존재이다. 인형사와 아울러 쿠사나기 역시 자신의 존재에 대한 자각과 동시에 깊은 회의에 빠지게 되는데, 인간과는 달리 자손을 남길 수 없는 이들은 서로 융합하여 복제가 아닌 생명의 창조를 이루고자 한다. “네트워크의 세상은 넓다”고 외치면서 어디론가 사라져가는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무척 의미심장한데, 후속작 ‘이노센스(Innocence, Ghost In The Shell; 2004)’에서 부활한 그들의 활약이 펼쳐진다.

이처럼 인간의 기억 전체 혹은 정신을 육체로부터 온전히 분리하여 다른 신체에, 혹은 기계나 사이보그, 네트워크 등에 이식한다는 것이 앞으로 과연 가능할까? 이는 단순한 과학기술 차원의 문제만이 아니라, 근대의 저명한 철학자 데카르트(Descartes; 1596~1650)의 심신이원론, 즉 정신과 육체는 별개로 존재한다는 주장 이래로 숱한 철학적 논쟁을 거쳐 온 문제이기도 하다. 공각기동대의 원제인 ‘기계적인 육체에 깃든 유령(Ghost In The Shell)’은 바로 이를 상징적으로 함축하고 있다.
물론 인간 뇌에 비해 턱 없이 부족한 컴퓨터 기억 용량을 비롯하여, 오늘날의 과학기술 수준으로는 무척 요원한 일이겠지만, 그보다 앞서서 인간의 기억, 뇌의 작용, 정신의 실체 등이 먼저 명확히 밝혀져야 할 것이다. 또한 ‘생명’이라는 용어의 정의 자체가 바뀌어야할지도 모를 일이다.


최 성우 (한국과학기술인연합 운영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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