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로 다가온 ‘딥 임펙트’

글쓴이
최성우
등록일
2006-10-27 1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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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의 장면이나 소재가 이미 현실로 나타난 예는 이미 적지 않으며, 미래의 첨단과학기술 시대에는 이와 같은 일들이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또한 새로운 과학기술을 예측하는 것이 아니라 하더라도 비슷한 경우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지구와 소행성의 충돌 가능성 역시 그 대표적 사례의 하나이다.
혜성이나 소행성과 같은 작은 천체가 지구와 충돌할 수도 있다는 끔찍한 가설을 주제로 한 대표적인 SF영화로는 비슷한 시기인 1998년에 개봉된 '딥 임팩트(Deep Impact)'와 ‘아마겟돈(Armageddon)'이 있다. 이들 영화들은 물론 국내에도 소개되어 나름의 인기와 관심을 모은 적이 있다.

그런데 영화 ‘딥 임펙트’가 제작 중이던 1997년 12월, 국제천문연맹은 소행성 하나가 2028년 10월경 지구에 약 3만9천 km까지 접근하여 충돌할 가능성이 있다고 발표하여 전 세계를 경악하게 만들었다. 영화의 감독조차도 ‘현실이 영화를 닮으려 하는’ 데에 전율을 느꼈다고 한다. 그러나 ‘1997XF11'이라 명명된 이 소행성의 궤도를 다시 정밀 계산한 결과, 처음의 예상이 계산착오였음이 밝혀져 안도의 한숨을 쉬게 되었다.
영화의 개봉을 앞두고 시기적으로도 절묘하게 맞아 떨어진 탓에 영화의 흥행을 노린 의도적 해프닝이 아니었을까 하는 의구심도 나올 법한데, 아무튼 소행성이나 혜성과의 충돌이 황당한 공상만이 아니라 현실로 다가올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준 계기가 된 것은 틀림없다.

과거 지구의 역사를 보더라도 소행성이나 혜성과 충돌한 흔적들을 상당히 많이 발견할 수 있다. 미국 아리조나 주의 거대한 운석 구덩이를 비롯하여, 지구상에는 소행성 등의 충돌로 인하여 생겼을 것으로 추정되는 분화구가 이미 100여개 이상 되는 것으로 알려진 바 있다. 우리나라 양구군의 휴전선 부근의 위치한 해안분지, 즉 함몰된 모양이 화채 그릇을 닮았다고 하여 이른바 ‘펀치 볼(punch bowl)’이라 불리는 곳 역시 과거 소행성의 충돌로 인해 생긴 특수 지형이 아닌지 추정되기도 한다.
아직 논란이 많기는 하지만, 공룡이 갑자기 멸종한 가장 유력한 원인으로서 6천 5백만 년 전 유카탄 반도에 떨어진 소행성과의 충돌을 꼽고 있다. 그 소행성은 약 15km의 크기로서, 위력은 1억 메가톤 정도로 추산되며 공룡들을 비롯한 당시 지구상의 생물 종들을 절반 이상 멸망시킨 것으로 보인다.

지구와 소행성 혹은 혜성과의 충돌은 가장 가깝게는 20세기 초에도 일어났다. 1908년 6월 30일 오전 7시쯤 시베리아 퉁구스카 지역의 원시림 위로 거대한 불덩이가 꼬리를 끌며 맹렬한 속도로 날아가더니, 숲에 떨어지기 직전에 불기둥이 치솟으면서 굉음과 함께 폭발하였다. 이로 인하여 부근의 수많은 나무와 동물들이 불에 탔고, 폭발로 인한 충격파는 런던의 기압계에도 감지될 정도였다. 그 폭발력은 히로시마에 떨어진 원자폭탄 1000개 정도에 해당했는데, 만약 대도시의 인구밀집 지역에 떨어졌더라면 수십, 수백만의 희생자를 내는 대참사가 발생했을 것이라고 한다.
이 퉁구스카의 대폭발은 운석구덩이와 같은 충돌의 흔적을 남기지 않아서 그 정체를 놓고 갖가지 설이 분분하였고, ‘X파일’ 시리즈 등을 포함하여 외계인이나 UFO, 미스터리를 주제로 한 드라마나 영화에도 자주 등장한 바 있다.
통구스카 대폭발의 정확한 실체에 대해서 아직 논란이 있긴 하지만, 직경 60m 정도 되는 작은 혜성에 의한 충돌이었을 것이라는 설명이 가장 유력하다. 가스와 얼음이 주성분인 혜성의 머리는 충돌 후에 증발하고 말았을 것이므로 아무런 흔적을 남기지 않았을 것이라는 추측이다.
지구에 접근한 것은 아니었지만, 슈메이커-레비 혜성은 1994년 7월 목성에 충돌하여 대단한 우주 쇼를 연출한 바 있다. 목성과의 충돌을 불과 16개월 정도 앞둔 1993년 3월에 미국의 천문학자 슈메이커와 레비에 의해 발견된 이 혜성은 목성의 주위를 주기적으로 공전하던 혜성이었다. 작은 천체망원경으로도 잘 관측될 정도였던 이 충돌장면은 아마추어 천문가 등 천체 관측자들에게는 좋은 볼거리였겠지만, 목성표면에 커다란 상처를 남겼는데 지구상의 모든 핵무기를 동시에 폭파시킨 것보다 수백 배 이상의 충격을 주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지구에 접근하여 앞으로 지구와 충돌할 가능성이 있는 소행성이나 혜성 등을 지구근접물체(NEO; Near Earth Object)라 부르는데, 최근에 발견된 몇 개의 NEO들은 천문학자 등 '소행성 감시단'의 주목을 받고 있다. 지금도 세계의 여러 관측소에서는 끊임없이 소행성을 관측하고 있다.
이들은 발견된 연도를 따서 이름을 붙이는데, 앞서 지구와의 충돌 가능성이 제기되었던 1997XF11은 1997년도에 발견된 것이다. 이밖에도 지구와의 충돌 가능성이 확률적으로 무시할 수 없을 정도라고 언급된 소행성들은 상당히 여럿 있었다.
2000년 11월 3일 국제천문연맹은 소행성 2000SG344의 지구충돌 가능성에 관한 공식입장을 발표한 바 있다. 이 문제의 소행성은 “2030년 9월 21일 지구 근처를 통과하며, 충돌확률은 5백분의 1, 새로운 관측 자료가 추가되면 확률은 더욱 낮아질 것”이라는 내용이 전해지면서 그날 저녁의 뉴스가 소행성 충돌의 파괴력과 공룡멸종 등 자극적인 화면들로 채워지는 소동이 일기도 하였다.
그러나 다음날 새로 발견된 관측 자료를 토대로 하여 다시 계산한 결과 충돌가능성이 매우 줄었다는 정정 발표가 나오면서 과학자들은 ‘늑대를 거짓으로 알린 양치기 소년’ 취급을 받기도 왔다.

물론 1997XF11, 2000SG344 등을 비롯하여 그 동안 언론지상에 발표되었던 여러 소행성의 충돌 가능성이 제대로 면밀히 검토되지도 않은 채 공개되거나 성급히 보도되면서 이런 해프닝이 일어나기도 하고, 일부 언론들에 의해 지나치게 선정적으로 부풀려지기도 한다. 또한 처음 발견초기에는 가까운 장래에 충돌이 예상됐다가, 관측 자료가 추가되면서 다시 궤도를 계산한 결과 충돌 가능성이 배제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국제 소행성 센터 등 NEO 감시팀은 지구와의 충돌 가능성이 있는 소행성들을 항상 예의 주시하고 있는데, 현재 이들 소행성들의 ‘블랙리스트’에는 수백 개 정도가 올라가 있다고 한다. 그러나 지구 인근 소행성 중 존재가 규명된 것은 전체의 일부에 불과하며, 나머지는 지구로부터 거리가 너무 멀어 관측이 매우 어렵기 때문에 더욱 문제가 된다. 관측된 소행성들은 궤도를 정밀하게 계산하고 컴퓨터 시뮬레이션 등을 통하여 앞으로의 진로를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지만, 관측이 불가능한 소행성들은 언제 지구와 충돌할 지 현재로서는 전혀 알 수가 없으므로 더 큰 위협이 될 수 있다.

한편 영화 '딥 임팩트(Deep Impact)'와 ‘아마겟돈(Armageddon)'에 묘사된 소행성의 모습이나 여러 장면들은 과학적 진실에 얼마나 가까울까? 두 영화만을 비교하자면, 일단 딥 임펙트가 아마겟돈보다는 보다 그럴듯하게 만들어졌다고 볼 수 있다. 여감독 미미 레더가 저명한 SF작가 아서 클라크(Arthur C. Clake)의 ’신의 일격‘을 원작으로 하여 만든 딥 임펙트는 NASA의 천문학자를 비롯한 여러 과학자들의 자문을 받은 덕인지, 혜성을 비롯하여 여러 과학기술적인 묘사가 사실에 가깝고 뛰어난 면들이 꽤 많다.
반면에 돌진해 오는 소행성의 위협에 맞서 석유 굴착기 기사들이 지구를 구하러 출동한다는 브루스 윌리스 주연의 아마겟돈은 미국식 영웅주의를 떠올리게 하는 상황 설정도 좀 우습거니와, 과학적인 측면에서도 잘못된 측면들이 적지 않다. 즉 지구보다 훨씬 작을 수밖에 없는 소행성 위에서의 중력 묘사가 앞뒤가 맞지 않는 등, 허점투성이이다.
이 두 SF영화에서는 소행성과 지구의 충돌을 막기 위한 방법으로서 모두 '특공대'가 출동하여 핵폭탄을 이용하여 폭파시키는 등의 장면이 소개되지만, 이것은 그리 바람직한 방법이 아니다. 핵폭탄으로 소행성을 박살낼 수 있을지 여부도 미지수이지만, 설령 폭파에 성공한다 하더라도 소행성의 작은 파편들이 지구로 떨어져 더 광범위한 지역에 피해를 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소행성과의 충돌을 피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소행성에 힘을 가하여 궤도를 바꾸는 것으로서, 이를 위해서는 작은 동력체를 소행성에 착륙시켜 지속적으로 힘을 가하는 것이 매우 효과적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 방법도 위험 소행성이 미리 발견되어야 수십 년 정도의 시간을 두고 궤도 변경을 할 수 있는 것이지, 충돌 예상 1-2년 전에 발견되어서는 시행하기가 대단히 어려울 것이다.
몇 년 전에는 ‘유진 슈메이커’라 불리는 소행성 탐사선이 사상 처음으로 에로스 소행성의 표면에 성공적으로 착륙함으로써 소행성 탐사에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사랑의 신에서 이름을 딴 에로스(Eros)는 길이 33km, 반지름 13km인 고구마 모양의 소행성으로 뉴욕 맨해튼 정도의 크기이며, 지구에서 3억km 이상 떨어진 곳에서 태양 주위를 돌고 있다.

작년인 2005년 7월 초에는 드디어 영화 같은 일이 벌어져서 전 세계 사람들을 흥분시킨 바 있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의 우주 탐사선으로부터 충돌체를 발사시켜서 혜성 '템펠1'과 부딪히게 하는 인위적인 혜성 충돌 실험을 사상 최초로 성공시킨 것이다. 이 우주 탐사선의 이름은 바로 영화 제목을 딴 ‘딥 임펙트’호 였고, 여기서 발사한 충돌체는 약 24시간 동안 시속 3만7천㎞의 속도로 80만㎞를 날아 혜성과 충돌했는데, 충돌체가 혜성의 표면에 부딪히는 순간에 불꽃이 이는 장관이 연출되고 얼음덩어리로 보이는 파편들이 튀고 가스가 대량으로 나왔다고 한다.
과학자들은 그 실험이 “날아가는 총알에서 또다시 총알을 발사해 다른 날아가는 총알을 정확한 시간에 정확한 장소에서 맞추는 것과 같다"고 비유할 정도로 공학적 계산의 정확성이 비약적으로 증가했다는 점에서 더욱 쾌거로 받아들인 바 있다. 또한 혜성 내부에는 태양계 생성 당시의 물질로 예상되는 것들이 비교적 원상태 그대로 남아 있는 것으로 추정되므로, 앞으로 태양계 생성 초기의 신비를 밝힐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영화 속의 장면과 똑같지는 않았지만, 아무튼 영화 속에서나 상상했던 혜성의 충돌 실험을 성공시켰다는 것은 그만큼 미래 과학기술의 지평이 우리의 예상보다 훨씬 빨리 열릴 수 있음을 반증한 것이라 하겠다.

최 성우 (한국과학기술인연합 운영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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