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책방으로 밀려나는 과학문고들[펌]

글쓴이
멍멍이
등록일
2003-08-27 11:45
조회
6,172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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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최종규님의 7월 23일자 기사입니다.*

<1>

`헌책방으로 밀려난다'는 말은 안 좋은 말입니다. 이 말은 자칫하면 헌책방으로 들어오는 책은 `안 팔리'거나 `반응이 안 좋거'나 `시대에 뒤떨어지거나 처져'서 한물 간 책들뿐이라는 소리로 잘못 알아듣는 사람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지난날 나왔던 과학문고와 요즈음 나오는 과학문고를 살피면 그야말로 `헌책방으로 밀려나는' 정도를 넘어서 제대로 알려지지도 못하고 읽히지도 못한 채 묻혀 버릴까 아주아주 걱정스럽습니다.

_67349_38[3].jpg헌책방을 다니며 드문드문 낡은 신문뭉치를 만납니다. 지난달 가운데 무렵이었습니다.

서울 독립문에 있는 헌책방 <골목책방>에서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 관련 <조선일보>가 있는 신문뭉치를 보았던 그날입니다.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을 대문짝만하게 실은 신문뭉치를 싸들고 집으로 와서 하나씩 펼쳐보았지요. 그렇게 낡은 신문뭉치를 펼쳐보다가 1970년대 <서울신문>도 여러 장 보았습니다.

박정희를 찬양하는 많은 신문기사 속에서 `문화 지면'도 하나 봅니다. 그때 본 문화면 한쪽에는 평론가 김현씨가 쓴 글이 있고, 그 옆에는 새로 나온 책을 소개하는 글이 있군요. 김현씨가 1970년대 어둡던 유신 독재 때 왜 <서울신문>에 글을 썼는지는 모를 일입니다. 글삯을 받고자 썼는지, <서울신문>에서 청탁해 온 글을 쓰지 않으면 어디로 끌려가던 때라서 그랬는지 알 수 없습니다.

그건 그렇고. 제 눈길은 김현씨 글이 아닌, 바로 그 옆에 있는 책소개로 넘어갑니다. 그 책소개는 새로 나온 책을 다섯 권 소개합니다. 그 가운데 네 권, 아니 네 가지 책이 `문고판'입니다. 참으로 놀라운 일입니다. 그때가 `문고판 호황기'였다고는 하지만, 문화 지면 한구석을 차지하고 있는 책소개 지면에 이렇게 4/5나 차지할 수 있다는 것. 놀랍지 않습니까?

요즘 책소개 지면을 보면 `손바닥 책'을 소개하는 글을 찾아보기는 아주 어렵습니다. 책방에서 진열도 제대로 하지 않지만 신문 지면에서 제대로 소개하는 모습 또한 찾아보기 아주 어려워요.

한 권에 240원에서 360원씩 하던 책. "현대과학신서 1차분 10권"이 다 나왔다며, 이 10권을 다 사면 책값이 2920원이라고 합니다. 이때 함께 소개된 <미국의 대극동 정책> 한 권이 1200원임을 생각한다면…. <미국의 대극동 정책> 두 권을 사고 조금 더 보탠 값으로 무려 '현대과학신서' 10권을 살 수 있었습니다. 요즘은 손바닥책 값이 좀 오른 편이지만, 그래도 같은 값이면 더 많이 살 수 있습니다.

_67349_38[1].jpg다음은 그때 <서울신문>에서 '전파과학사 현대과학신서'를 소개하며 쓴 기사입니다.


이 문고의 특징은 집필자가 과학계의 권위, 중진, 신예를 망라했고 그 내용이 과학론까지 포함한 과학 전반에 걸친 `토픽'을 골랐으며 값이 싸서 누구든지 쉽게 구할 수 있다는 점 ..

<2>

요즈음도 `과학 이야기를 담은 책'을 곧잘 만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지난날 `전파과학사'가 그러했듯 "누구나 싼값으로 과학 이야기를 담은 책을 사서 주머니에 넣고 다니며 가볍게 읽으며 익힐 수 있도록 만든" 책은 만나기 힘듭니다. 있기는 있어도 다른 손바닥책들처럼 눈길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제 대접, 제 값을 못 받는다고 할까요.

`아카데미서적'에서 펴내는 "와이 북스(Why books)"는 요즘 새책방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과학 문고'입니다. 1990년대 중·후반부터 나오고 있는 책으로 한 권에 6000원 안팎 합니다. 손바닥 책치고 눅지 않은 책값입니다. 하지만 지금 우리 출판계-서점계에서는 널리 읽히기 좋은 가벼운 손바닥 책이 5000원 아래로 책값이 내려갈 때 진열과 배본이 참 어렵습니다. `책방에서 책 팔아서 남는 돈(마진)'이 적다고 잘 대접하지 않고 있어요.

_67349_38[4].jpg새책방 진열이 어렵고, 눈여겨 찾지 않으면 좀처럼 보이지 않는 `과학문고'입니다. 헌책방을 다니면서 1970년대에 나왔던 "전파과학사 과학문고"를 틈틈이 사서 읽습니다. 줄거리가 좀 어려운 책도 많으나 끈기 있게 책을 읽어가노라면 남다른 재미와 그동안 제대로 몰랐던 과학 이야기를 살갑고 알뜰하게 느낄 수 있습니다. 새책방에서도 "아카데미 와이북스"를 곧잘 찾아봅니다.

저는 그동안 "아카데미 와이북스"로 세 권을 사서 읽었습니다. <무라카미 카즈오 지음/김팔곤 옮김-유전자로부터의 메세지>, <요네야마 마사노부 지음/현종오 감수-이온 인터뷰>, <오바라 히데오 엮음/신영준 감수-만물의 죽음> 이렇게요.

앞으로는 나머지 열일곱 권도 하나씩 찾아서 읽을 생각입니다. 시간은 퍽 걸리겠지만, 줄거리도 좋고 쉬우며 재밌어서 끈기있게 스무 권을 다 읽어낼 꿈을 꾸고 있습니다.

1. 눈으로 보는 힘과 운동 (후지이 키요시 지음)
2. 인간은 어디까지 진화하는가 (가네코 류이치 지음)
3. H₂O... 수소 둘 산소 하나 (우에다아리 히사시 지음)
4. 새로운 과학론 (무라카미 요이치로 지음)
5. 퍼즐로 도전한다 IQ 150 (사사야마 토모오 지음)
6. 술술 읽히는 과학 (즈치다 켄쇼 원문 감수)
7. 유전자로부터의 메세지 (무라카미 카즈오 지음)
8. 수학기피증을 없애 주는 책 (다무라 사부로 지음)
9. 제2의 지구는 있는가 (이소베 슈조 지음)
10. 대장 X-파일 (사카타 타카시 지음)
11. 물리 질문 상자 (츠즈키 타쿠시 지음)
12. 만물의 죽음 (오바라 히데오 엮음)
13. 이온 인터뷰 (요네야마 마사노부 지음)
14. 전기 상식 백과 (가쿠지 마코토 지음)
15. 함수 따라잡기 (곤다이라 켄이치로,간바라 타케시 지음)
16. 구름,바람으로 읽는 기상 (이다 무즈지로 지음)
17. 화학 반응은 왜 일어나는가> (우에노 케헤이 지음)
18. 에너지로 따져 보는 현대 물리학 (오노 슈 지음)
19. 지혜로 여는 생물학 (요시노 코우이치 지음)
20. 알면 득이 되는 생활 수학 (세마네 히로시 지음)

제가 사서 읽은 책 날개에 이런 책들이 소개되어 있군요. 모두 일본 책을 우리말로 옮긴 판입니다. 일본에서 펴낸 책이라 우리 문화와 정서와 안 맞는 대목도 있어요. 펴낸이나 옮긴이들은 그런 대목을 헤아려서 글 속에 나오는 상황이나 주인공 이름을 많이 다듬고 고쳐서 우리들이 읽기 좋도록 손을 봤습니다.

그런데 이런 느낌도 듭니다. 일본 아이들과 어른들이 참 부럽다고요. 많은 일본 과학자들은 누구나 손쉽게 재밌게 읽을 수 있는 책을 꾸준하게 펴내고 알리는 일도 함께 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우리 나라에도 이름나고 훌륭한 과학자가 퍽 많을 텐데, 자신들이 알고 느끼는 재미있는 과학 이야기를 손쉽고 널리 풀어서 나누는 책을 엮을 생각까지는 잘 못한다는 느낌입니다.

_67349_38[2].jpg어쩌면 우리 나라에서는 `과학책 수요'가 너무 없어서 내봤자 안 팔릴 게 뻔하니 안 만드는지도 모를 일이에요. 우리는 어릴 적에는 누구나 "나는 과학자가 될래요" 하고 자기 미래를 꿈꾸지만, 정작 읽을 만한 과학책이 드물고, 나이가 들어가면서도 과학책을 가까이 하지 않을 뿐더러, 읽으면 좋을 과학책은 거의 소개도 안 되고 제대로 알려지지도 않으니 이래저래 새책방에서 묻히고, 헌책방에서도 어렵사리 자기 자리를 차지한다는 느낌입니다.

<3>

손바닥책 소개가 신문지면 책소개에서 4/5를 차지하던 일은 참 그리운 옛날이야기가 되었습니다. 손바닥책 한 권을 내도 `줄거리가 알차고 좋으'면 어김없이 지면을 내어주며 소개하던 지난날은 참 옛날이야기입니다.

그립습니다. 값싸고 알찬 손바닥책을 새책방 어느 곳에서든 손쉽게 만날 수 있던 지난날이 그립습니다. 좋은 이야기를 싼값으로 살 수 있도록 책을 엮는 출판사 분들이 그립고, 제대로 진열을 해줄 서점이 그리우며, 알뜰한 손바닥책을 꼼꼼히 살펴서 소개를 해줄 언론매체 기자들 책소개 기사가 그립습니다. 더불어 좋은 과학책을 잘 알아보면서 즐거이 사서 읽고 나눌 책 손들이 그립고요.

"아카데미 와이북스"는 부디 오래오래 새책방에서 만날 수 있는 책으로 자리잡아 가면 좋겠습니다.

  • 김하원 ()

      약간의 아마추어리즘(?)도 이럴 땐 좋다는 느낌입니다. 메이저 프로언론이라면 여러가지 이유에서 이런 기사를 싣기 어렵겠지요..

  • 준형 ()

      아, 종규형이 쓰신 글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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