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론물리학과 실험물리학(1)

글쓴이
최성우
등록일
2015-01-26 0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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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래 물리학계에서는 매우 중요한 성과가 있었다. 자연과 물질의 근본을 이루는 기본 입자 가운데 하나로서, 이른바 ‘신의 입자’로 불리던 힉스(Higgs) 소립자의 존재가 입증된 것이다. 힉스 입자란 현대 입자물리학 이론에서 기본 입자들과 상호작용해 질량을 부여하는 입자로서, 1964년에 이 입자의 존재를 예언한 피터 힉스(Peter Higgs; 1929-) 교수의 이름을 따서 지어졌다.
지난 수십 년간 전 세계의 숱한 물리학자들이 힉스 입자를 찾기 위해 애써왔고, 이 입자의 존재 여부에 대해서도 많은 논란이 있었다. 저명한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Stephen Hawking; 1942~)은 오래전부터 힉스 입자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쪽에 100달러를 걸었다는 일화가 해외 언론에 보도된 바 있다. 힉스 입자는 물질이 왜 질량을 가질 수 있는지를 밝혀줄 수 있는 열쇠가 된다. 만약 힉스 입자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은 곧 오늘날 물리학의 기본 뼈대라고 할 수 있는 표준 모형이 전면적으로 수정되어야 함을 의미한다. 힉스 입자의 존재가 입증되어 피터 힉스는 2013년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할 수 있었다.
최근 힉스 입자의 존재를 밝혀낸 곳은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이다. 이 연구소는 힉스 입자의 존재를 밝혀내기 위해 그동안 거대 강입자 가속기(Large Hadron Collider; LHC)를 가동해왔다. LHC는 유럽 입자물리연구소가 몇 년 전에 완공한 세계 최대 규모의 충돌형 원형 가속기로, 둘레가 27킬로미터(km)에 이른다. LHC는 양성자 여러 개를 뭉친 양성자 빔을 빛의 속도에 가깝게 가속시킨 뒤 서로 반대방향으로 회전해 충돌시키는데, 이때 생성되는 입자의 자취를 통해 힉스 입자를 확인할 수 있다.

힉스 입자의 존재에 대한 논의는 일단 그렇다 치고, 과학 특히 물리학에 관심을 가져온 사람들이라면 몇 가지 의문이 생길 만하다. 특히 물리학에서 이론과 실험의 관계에 대한 것들이다. 힉스 입자에 대한 이론이 나온 지가 벌써 수십 년이 넘었는데, 논란이 되어온 근본 이유는 무엇일까? 물리학 법칙이나 원리는 이론적으로 아무리 잘 설명이 되더라도 꼭 실험으로 증명이 되어야만 하는 것일까? 현대 물리학에서도 이론과 실험은 여전히 분리되어 있는가?
융합과 통섭이 중요시되는 요즘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내가 대학과 대학원에 다닐 적만 해도, 물리학의 여러 세부 전공 분야들은 대체로 이론 따로, 실험 따로 분리된 경우가 많았다. 예를 들면, 물리학과 대학원생들에게 전공을 물으면, ‘고체물리학 실험’, ‘입자물리학 이론’, ‘핵물리학 실험’ 따위로 대답했다.

역사적으로도 물리학이라는 과학 분야가 시작되는 과정에서 처음부터 이론과 실험은 분리되어 있었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과학혁명의 구조≫의 저자로서 20세기 최고의 과학사학자로 꼽히는 토마스 쿤(Thomas S. Kuhn; 1922-1996) 역시 “물리과학의 성립에 있어서 수학적 전통과 실험적 전통”이라는 논문을 통해 고전적이고 수학적인 분야와, 경험적이고 실험적인 분야라는 두 갈래로 구분하여 물리학을 이해할 필요가 있음을 설파한 바 있다.
그러나 이론 물리학과 실험 물리학의 역사적 연원 등에 대해 제대로 설명하자면 보다 심오하고도 난해한 논의가 뒤따라야 하므로 이는 차치하기로 하고, 역사적으로 유명한 물리학자 몇 명을 중심으로 이론과 실험에 대해 살펴보는 것이 더 흥미로울 듯싶다.

탁월한 SF작가이자 과학 저술가였던 아이작 아시모프(Isaac Asimov) 박사는 ≪아이작 아시모프의 과학 에세이≫라는 책에서 대표적인 이론물리학자로서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 1879-1955)을, 대표적인 실험물리학자로서 패러데이(Michael Faraday, 1791-1867)를 꼽고 있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은 두말할 것 없이 20세기 최고의 물리학자로서, 상대성 이론 등 그가 세운 물리학 이론들은 여전히 현대 물리학의 기본 패러다임을 이룬다. 물론 그는 이론가로서 업적에 비해서 직접 실험을 하는 작업에서는 그다지 크게 관여하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그의 상대성 이론 등을 실험과는 무관한, 순수하게 수리물리학적인 창작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아인슈타인은 19세기 말에 이른바 ‘고전 물리학의 위기’ 국면에서 당시의 이론적 성과뿐만 아니라 온갖 중요한 실험 결과들을 철저히 이해하고 있었고, 그뿐만 아니라 스위스 특허청 심사관으로 일하면서 접한 온갖 특허 등의 실증적 자료들에도 상당한 관심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는 이른바 ‘사고실험(思考實驗; thought experiment)’ 즉 실제 실험 장치를 사용하지 않고 머릿속에서 생각으로 진행하는 실험들을 통하여 이론을 입증하려 한 것도 사실이다.

마이클 패러데이는 19세기 최고의 실험과학자로 칭송받기에 손색이 없다. 극빈층 집안에서 태어나 제대로 된 과학 교육을 받기는커녕 제본공 같은 고된 일을 하며 전전하면서도 과학자로의 꿈을 키워간 끝에 당대 최고의 과학자가 된 그의 생애는 후세에 큰 귀감이 되기도 한다. 그는 벤젠의 발견 등 화학 분야에서도 중요한 업적을 남겼지만, 물리학 특히 전자기학에서 중요한 발견들을 숱하게 이루어냈다. 전기분해의 법칙, 전자기 유도 현상 등 오늘날 과학 교과서에 나오는 수많은 전자기학 법칙들이 바로 그의 실험을 통하여 완성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반면에 그는 당시의 과학자들로부터 “패러데이 선생은 실험가로는 최고지만 이론가로는 낙제”라는 평을 종종 듣곤 하였다. 오늘날에도 그렇지만 당시의 물리학 이론들이 대부분 수학적 방식으로 표현되었기 때문에, 정식 수학 교육을 받은 적이 없었던 패러데이로서는 다소 생소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패러데이가 물리학 이론에는 서툴렀다고 판단하는 것은 대단히 잘못된 편견이다. 그는 비록 수식으로 표현하지는 못했지만, 전자기의 실체, 전기장의 개념 등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자주 피력하였고 그림으로도 설명하곤 하였다. 패러데이의 이러한 개념은 훗날 맥스웰(James C. Maxwell; 1831-1879)의 이론, 오늘날 이른바 ‘맥스웰 방정식’이라 불리는 수학적 표현과 결합하여 19세기 전자기학의 완성을 보기에 이른 것이다. 따라서 패러데이는 수학적 능력이 다소 부족하기는 했지만, 실험가뿐 아니라 이론가로서도 상당한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고 해야 올바를 것이며, 패러데이를 ‘이론에는 서툴렀던 실험물리학자’의 대표적 사례로 꼽았던 아시모프 박사 역시 그릇된 편견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요컨대 아인슈타인이나 페러데이와 같은 물리학의 대가들은 세간의 선입견과는 달리 이론 혹은 실험 가운데 한쪽에만 능하고 다른 쪽에는 상당히 서툴렀던 것이 아니라, 자신이 직접 했든 안 했든 실은 이론과 실험 양쪽을 다 꿰뚫어보는 통찰력을 지니고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물리학자 가운데 실제로 이론과 실험의 한쪽에는 취약했던 인물, 혹은 이론과 실험 양쪽을 스스로 탁월하게 진행했던 인물의 사례가 있었는지, 그리고 오늘날 물리학에서 이론과 실험은 어떠한 관계인지 등에 대해서는 다음 글에서 보다 구체적으로 논하기로 하겠다.


by 최성우



- 첨부 이미지1: 거대 강입자 가속기(Large Hadron Collinger; LHC) 내부 (출처 : 위키미디어 Julian Herzog)

- 첨부 이미지2: 19세기 실험물리학의 대가 마이클 패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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