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SD (엠트론) 사용기

글쓴이
박상욱
등록일
2008-11-05 04:41
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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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부터 말한다: 데스크탑에서는 성능 향상보다 잃는 것이 많다.

전제를 말한다: 이것은 순전히 내 개인적인 사용 경험을 토대로 말하는 것이며 필자는 전문 리뷰어가 아닌 일반 소비자다. 또한 뽑기에 실패한 것 아니냐고 말한다면 할 말 없다. 즉 이것은 지극히 개인적인 사용기이다. 판단은 독자에 맡긴다.


데탑에서 속도나 성능을 결정하는 요인에는 여러 가지가 있고, 하드코어 게이머라면 그래픽카드만 따지면 되겠지만, 나같은 복합적 목적 - 연구, 엔터테인먼트, 생활 등등 - 사용자의 경우엔 메커니컬하게 돌아가는 HDD에 의한 한계에 대해 종종 불만스럽곤 했다.

그래서 왕년에 시도해 본 것들이 SCSI는 물론이고, 일반 유저들에게 RAID가 처음 소개될 무렵 hotpoint니 promise니 하는 RAID 카드들을 구입해서 RAID0 스트라이프 구성을 해대곤 했다. 시게이트 하드가 RAID에 젬병이라는 것을 알고 좌절하며 IBM으로 갈아탄 적도 있고, 어느날 첫날밤 새색시 옷고름마냥 허망하게 풀려버린 스트라이프 볼륨 때문에 눈물로 윈도우와 어플들을 다시 깐 적도 있다. 이 사태 이후 data는 절대로 스트라이프 볼륨에 넣지 않는 버릇이 생겼다.

어느샌가 인텔이 슬그머니 사우스브리지에 RAID 기능을 넣기 시작했다. 옳다쿠나 하고 PCI 카드를 떼어 버리고 메인보드에서 RAID를 구성했지만 성능이 시원찮았고 여전히 불안정했다. 무엇보다 OS를 깔기 위해서는 플로피로부터 드라이버를 올려야 하는 것도 여전히 귀찮았다. 그래도 꿋꿋이 .. 종착역은 웨스턴디지털 랩터 10k 두 대를 스트라이프로 묶은 것이었다. 6 ms 의 접근시간과 110 MB/s 를 넘나드는 전송률은 가장 큰 만족감을 선사했다. 일반 SATA HDD와 동일용량 대비 5배가 넘는 가격이었다.

이런 나에게 SSD의 유혹은 대단한 것이었다. 100 MB/s 를 flat 하게 유지하고 0.1 ms 의 접근시간이란!! 게다가 무소음. 하지만 2008년 초까지 SSD의 가격은 그야말로 닿을 수 없는 곳에 있었다. 2008년 봄, 삼성도 SSD에 뛰어들었고 중소기업 몇 군데가 나름대로 입지를 굳히고 있었다. 가격도 전혀 구입하지 못할 가격은 아니었다. MTRON 이라는 중소기업 제품으로 16 Gb SLC SATA제품을 데스크탑용으로, MySSD 라는 제품으로 8 Gb SLC를 노트북의 익스프레스카드 인터페이스로 각각 구입했다. 이중 지금 쓰는 사용기는 MTRON 16 Gb (MOBI 3000 시리즈)에 대한 것이다.

1. 윈도우 XP를 인스톨하면서 깜짝 놀랐다. 너무 오래 걸렸다..

2. OS를 올린 뒤 각종 드라이버 설치에 이유를 이해할 수 없는 오류가 잦았다.

3. OS 설치가 완료된 뒤, SSD 특유의 엄청난 스피드로 부팅정도는 눈 깜짝할 사이에 끝낼 줄로 기대했었는데.. 지렁이가 겁나 수십마리가 지나가더라...

4. 허걱 이게 뭐야 하고 디스크 벤치마크 툴을 돌려보니 스펙상 전송률과 접근속도가 제대로 나왔다.

5. NCQ를 지원하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AHCI를 활성화하니 전송률이 10%이상 향상되었다. 이건 또 뭔 조화? 부팅도 약간 빨라졌다.

6. 빠른 접근시간을 활용하고자 임시인터넷파일 폴더를 SSD로 설정하고, 페이지파일도 SSD로 설정하였다. 결과적으로, 인터넷 로딩이 HDD보다 더 느리게 느껴졌다. 드득거리는 소리가 나지 않을 뿐...

7. 비스타의 레디부스트와 같은 기능을 XP에서 구현하는 eboostr 라는 프로그램도 SSD로 걸어서 써 봤다. 체감성능 향상 없었다.


이러한 결과를 체험하고 나니 엄청나게 돈이 아까와졌다.. -_-; 노트북에 사용했었다면 만족감이 컸을 것이라 예상된다. 전력 소모도 적을 것이고, 소음은 전무하고, 발열도 훨씬 적을테니까.. 노트북용 5400 rpm 하드들보다는 월등히 빠를 수도 있다. 하지만 랩터 10k RAID0 을 쓰던 사람에게는 [오히려 답답하게 느껴졌다] 비등한 전송률과 압도적으로 빠른 접근속도라는 스펙에도 불구하고 왜 더 느린가?

그 답은, 결국 컨트롤러 기술이 미완성이기 때문에 그렇다는 나름의 결론으로 이어졌다. HDD 업체들이 디스크에 대해 수십년간 발전시켜온 기술이, 여러 개의 메모리에 나누어 저장하고 빼내고 하는 복잡한 기술이 아직 미완성이라는 얘기다. 겉으로는 크게 드러나지 않는 데이터 전송 오류도 분명히 존재하는 듯 싶다. 벤치마크에는 제대로 나와도, 실 사용 상의 복잡한 조건에서는 빠른 HDD보다 오히려 더딜 수 있다는 얘기다.

다시 랩터 RAID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다. 아니, 더 빠르다는 벨로시랩터 RAID를 써보고도 싶었다. 하지만 참았다. 별 지장 없이 돌아가니까.. 그.런.데.

어느날부터 컴퓨터가 눈에 띄게 불안정해졌다. 쓰는 도중에 먹통이 되기도 하고 블루스크린도 자주 보여주고. SSD에 배드섹터가 또아리를 틀고(헉 메모리에도 배드섹터???), 처음에는 SSD는 의심하지 않았고 보드나 메모리를 의심했었다. 그런데 SSD가 [범인은 나에요] 하고 자백하는 데에 오래 걸리지 않았다. 부팅중에 인식이 오락가락 하는 것이다. 인식이 안되다가 전원을 여러번 껐다 켰다 하면 한번 걸리기도 하고 미칠 지경이었다. 한번 켜지면 끄면 안되는 것이다. 대기모드에서 돌아오지 못하는 [수면에서 죽음으로] 현상도 발생했다. 최대절전모드에서 돌아올 때에는 부팅보다 대여섯 배 긴 시간이 걸리기도 했다. 이건 아니다. 이건 정상적인 HDD가 아니다... 컴퓨터에 익숙한 내가 집에 있을 때엔 별 문제가 안된다. 그런데 외국에 며칠 나가 있는 동안 집에서 값비싼 국제 로밍으로 전화가 걸려왔다. 컴퓨터의 부고였다. 전화를 붙들고 리모트로 와이프에게 바이오스에 들어가서 부팅 디스크를 잡아라 껐다가 켜라 등등 쇼를 했지만 컴퓨터는 깨어나지 못했다. 결국 이놈이 문제를 제대로 일으키는구나..

돌아오는 비행기를 타기도 전에 인터넷으로 삼성 스핀포인트F1 1 TB를 주문했다. SSD에게 어이없는 새 역할을 부여할 외장케이스도 함께.. 갖고 있는 정품 윈도XP가 첫버전이라 1 TB를 인식 못하기에 sp3 를 통합해 새 CD를 만드는 쇼까지 하며 SSD를 도려내는 시술을 집행하였다. 랩터 2마리를 RAID잡아 OS를 깔려다 인텔 ICH9R 의 RAID가 랩터의 접근시간을 놀랄만큼 늘려잡는(6 ms -> 11 ms) 신공을 발휘하는 것을 몸소 목격하고는 윈도우상에서 동적볼륨으로 소프트RAID를 잡아 주었다. 결과적으로 삼성 하드는 OS와 데이터, 랩터들은 어플리케이션과 동영상인코딩용으로 사용하게 되었고, SSD는 어이없이 비싼 16 Gb USB 드라이브가 되었다. 속도측정 결과 33 MB/s 가 나왔으니 SATA 인터페이스일때 비해 1/3 수준의 속도지만 시중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MLC USB 메모리보다는 두 배 정도 빠르다. 이건 데톱에서 다운받은 큰 파일을 거실의 Tvix에 물려 볼 때에나 사용해야겠다.

그래서 결과는: SSD가 도려내진 컴퓨터는 모든 면에서 빠르고, 안정적이고, 원활하다. 대기모드와 최대절전모드도 정상적으로 작동이 된다.(당연한 것 아닌가!!!) 다운되는 일도 없고, 디스크 인식 문제도 없다. SSD도 포맷해주니 외장디스크로서의 새 역할이 맘에 드는 듯 얌전하다. 요즘 HDD들도 엄청나게 빨라졌네..


다시 한번 결론: 데톱에 SSD를 달고 OS를 깔면 지렁이가 한마리로 줄어들고 최대절전모드에서 1초만에 돌아오고 엄청난 속도로 윈도가 날아다닐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꿈 깨시라. 데톱에서는 SSD로 인한 성능 향상을, 적어도 현재 기술 수준에서는, 절대로 체감할 수 없다. 동영상 인코딩 등의 전송률이 중요한 용도로는 빠른 HDD RAID가 가격대비 훨씬 낫다. 사지 마시라.

사족: 노트북용이라면, 질러도 좋다.

변명: 혹시 케이블 문제나 보드 문제가 아닌가 의문을 갖는 분들을 위해.. SATA 케이블 여럿 바꿔보고 보드의 SATA 커넥터도 잘 돌아가고 있는 넘들로 바꿔끼워보고, 마스터(빨간색)에 꼈다 슬레이브(까만색)에 꼈다 해 보고, 전원선도 혼자 쓰게 특별대우 해줘 보고 별의 별 짓을 다 했었다. 무엇보다도, 전기를 더 먹는다고 알려진 HDD들은 아무 문제가 없다... 보드는 ASUS고 파워는 Antec임.

  • 어두운날개 ()

     
    플래쉬가 하드 대비 기록 속도면에서 조금 불리하긴 합니다. 하드는 일단 트랙을 찾으면 빠른데 (읽기건 쓰기건), 플래쉬는 특성상 기록 딜레이를 감추기가 힘들겠죠.

    그보다는 소프트웨어 측면에서, 오에스가 하드디스크를 여러모로 최적화해서 사용합니다. (데이터 버퍼링등을 통해서.)  SSD가 좋은게 랜덤 억세스 읽기에서 좋을텐데, 오에스의 버퍼링이 이걸 많이 커버해 주지요.

    특히 부팅 같은 경우에는 부팅시간이 오래 걸리는게 단순히 하드 디스크 읽는 속도가 아니라, 오에스가 이거저거 하는 시간이 상당해서 (랜덤) 읽기 속력 높아진걸로 큰 효과를 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것 같습니다.

    소음/안정성/발열은 물론 다른 이야기.

  • culinar ()

      CD가 처음 도입되었을때 사람들의 반응과 겹쳐져 재미있네요. 조숙한 기술의 남용은 자제 해줘야 할텐데...

  • 긍정이 ()

      박상욱님 고생 좀 하셨군요.. ㅋㅋ 얼마전에도 사내 게시판에 SSD에 대한 논쟁이 엄청 있었는데요.
    하튼 전 PC는 불안정한거 딱 질색이라 좀 있다 사려고 합니다.
    그런데 분명 대세는 SSD로 가는 건 분명 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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