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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물리학자가 ‘아이폰 얼리어답터’로 들뜬 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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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닐라아이스크림 작성일2010-03-20 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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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노벨상이 안 나오는 이유]


물리학을 하다보면 ‘한국은 언제쯤 노벨상 받느냐’는 질문을 종종 받게 된다.
그런 질문 받을 때마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말을 해야 할지 막막할 때가 많았는데, 아이폰이 등장하면서 그런 고민이 사라졌다.
아이폰이 던진 이 모든 화두를 과학계로 비춰 보면 한국에서 왜 아직 노벨과학상이 나오지 않았는지 어느 정도 답이 나오기 때문이다.
(물론 나를 포함해서 대다수의 과학자들은 노벨상을 위해서 연구하지 않는다. 다만 한 사회의 기초과학 수준을 재는 통속적인 척도 가운데 하나로 이해해 주기 바란다.)

먼저, 기초과학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오직 연구에만 몰두할 수 있는 환경이 아직도 마련되지 못했다.
기초과학은 원래 돈벌이와는 거리가 멀다.
그래서 정부가 돈 되는 분야만 지원하면 기초과학은 굶어죽는다.
돈이 되는 분야는 굳이 정부가 나서지 않더라도 대기업들이 투자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정부의 할 일은, 사회 전체적으로 매우 중요하지만 돈이 안 되기 때문에 자신이 직접 나서지 않으면 안 되는 분야를 지원하는 것이다.
물론 이 때에도 과학자의 입장에 서느냐 관료의 입장에 서느냐에 따라 그 결과는 아이폰과 쓰레기폰의 차이만큼이나 달라질 것이다.
과학자들이 과학 이외의 것들에 별 신경을 쓰지 않고 연구할 수 있어야 세계적인 성과가 나온다.

둘째, 한국의 과학교육에서는 새로운 규칙과 체계를 만들어낼 수 없다.
초중고는 물론이고 대학이나 대학원에서도 우리는 “주어진 문제풀이”에만 길들여져 있다.
그러나 정작 과학의 발전에서 중요한 것은 새로운 질서를 발견하고 그에 맞는 규칙을 세우는 일이다.
여기서는 답을 푸는 것보다 문제를 설정하는 것이 훨씬 중요하며, 그에 따른 “과제수행”에서 창의적인 결과가 나온다.
물론, 새로운 질서를 세우기 위해서는 기존의 질서를 잘 알아야만 한다.
하지만 기존의 질서 속에서만 해답을 찾으려는 사람은 결코 새로운 질서를 찾아 그 틀을 깨고 나갈 수 없다. 과학은 본질적으로 전복과 혁명의 연속이다.

해마다 10월이면 주위에서 우리는 언제쯤 노벨과학상 받느냐는 질문을 하곤 한다.
언론에서도 아쉬운 김에 한국의 수상 유력자들을 앞다투어 보도한다.
하지만 실제 관련 분야 종사자들에게 수상 가능성을 직접 물어보면 십중팔구는 회의적인 반응을 보인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경우 연구 성과의 근원적 뿌리는 외국 학자들에게 있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가 아무리 훌륭한 스마트폰을 내놓더라도 그저 아이폰의 아류에 지나지 않는 것과 비슷한 이치이다.


셋째, 획일적이고 소통이 막힌 사회에서는 창의적인 사고가 나올 수 없다.
이것은 상식에 속한다. 한국의 영화와 드라마가 경쟁력을 키워서 헐리우드에 맞설 수 있고 한류 붐을 일으켰던 밑바탕에는 정권교체와 민주주의의 확장이 있었다.
이 덕분에 표현의 자유가 만개할 수 있었고 창의적인 상상력이 날개를 달았다.
만약 이런 분위기가 10여 년 더 지속되었더라면 아마 한국의 과학계도 새로운 바람을 탈 수 있었으리라고 나는 확신한다.

그렇지 않고 거짓과 위선이 판치고 힘 센 사람들의 논리만 일방적으로 유통되는 사회에서는 창의적인 상상력을 꽃 피우기 어렵고 기초과학의 발전을 기대할 수도 없다.
단순한 문제풀이는 과학 활동 과정에서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으며 결국에는 창조적인 스토리를 과학적으로 구축할 수 있는 능력이 뒷받침되어야만 한다.
예전보다는 많이 좋아졌지만 여전히 한국의 연구실에는 상명하복의 유산이 남아 있다.
이런 분위기에서는 생산적인 토론과 획기적인 아이디어가 나올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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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폰 얘기 지겨우신 분들도 계시겠지만, "아이폰 사태(?)"를 통해 과학자 입장에서 답답하게 느껴지는 현재 대한민국 사회구조의 현실을 잘 설명하는 글이라고 생각해서 퍼왔습니다.

댓글 5

MiguelAngelCotto님의 댓글

MiguelAngelCotto

  동감합니다~.

지지지님의 댓글

지지지

  상명하복  -->  "윗사람"의 훈계에 호통에 익숙해져 창의적인 사고의 스위치를 끄는...

빡쎈 수능공부 --> 상상의 날개릴 펼친 시간도 전문 영재교육을 제대로 받을 시간도 없음

오덕후처럼 보이면 안된다는 압력 및 사회성 강요 --> 전문적으로 한 분야를 파고들어봤자 관리자들만 승리하는 세상이라서 사기 저하



결국 노벨상이 안 나오게 되지요

Neo Blue님의 댓글

Neo Blue

  그래도 언제가는......

그대로님의 댓글

그대로

  대체적으로는 동의합니다.
그러나 비록 획일적이고 소통이 막힌 사회인 경우일지라도 확율적으로도 제한적이긴 하겠지만 개인적인 역량에 따라 창의적인 사고가 나올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아나로그의추억님의 댓글

아나로그의추억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사이언스온에도 들어가봤는데, 역시 멋진 사이트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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