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라리 고학력 실업을 방치하라. 인력저수조 땜빵은 이제 그만!!! - 박상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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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sop2
등록일
2004-01-26 1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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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름    박상욱
 
제 목    차라리 고학력 실업을 방치하라. 인력저수조 땜빵은 이제 그만!!!
 
오늘 조간신문들은 일제히, 이공계 석박사 실업자들에 대해 정부가 보조금을 줘서라도 일부 취업시키겠다는 기사가 실렸다.

중소기업 부설 연구소에 취업하는 박사는 연봉 2천8백, 석사는 2천2백 정도를 주고, 중소기업에 취직하는 경우 30%정도의 인건비를 정부가 찬조금 형식으로 지원한단다. 그리고 대학이나 출연연에서 비정규직으로 연구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경우 박사 월150만원(연봉 1천8백만원) 석사 월 120만원(연봉 1천4백40만원)을 지급한다고 한다. 이것을 천오백명 수준으로 확대한다고 한다.

정말 답답하다. 물론, 취업이 안되어 목이 타는 사람들에게는 그나마 이러한 형태의 비정규직 취업, 박봉 취업이라도 감지덕지 고맙게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것은 구조적으로 이공계를 두 번 죽이는 짓이다.

중소기업이든 대기업이든, 기업은 이공계 석박사를 채용할 때 정부가 '정해준' 가이드라인 이상의 연봉을 줄 필요가 없어진다. 정부가 이공계 석박사 인력시장에 개입해서 발목을 단단히 잡아준 셈이다. 표면적으로는 미취업 인력을 위한 정책처럼 보이지만 장기적, 제도적, 시스템적 관점에서는 이공계 석박사 인력의 가격을 후려쳐준 것과 다름없다.

이공계 기피현상이 심화되고 있는 속에서, 중고생을 둔 학부모들은 이공계 관련 기사를 예의주시 하고 있다. 오늘의 기사를 본 학부모들이 어떤 생각을 했을까?

"오마나! 이공계 석박사 나와도 이리 실업자가 많구나. 박사해도 백수가 되는구나. 오마나! 정부에서 '대우해준답시고' 주는 연봉이 1800만원이구나. 중소기업에 겨우겨우 취직해도 받는 '상한선'이 2천8백만원이구나."

일반 국민들에게는 아직도 석박사라면 꽤나 공부 많이 한 '선생'축에 든다. 금융권은 말할 것도 없고 대졸 일반 사무직으로 취업해서 받는 연봉이 어느 정도 선인지 잘 아는 국민들이 이공계 석박사의 위치가 어떠한지 금방 눈치챌 수 있을 것이다. 정부는 이런 대책을 과연 이공계 지원책이랍시고 내어 놓고 있단 말인가?

대학 부설 연구소나 출연연에 비정규직으로 취업하는 박사, 완전한 파리 목숨이다. 1년짜리 채용계약이 끝나면 또 계약이 된다는 보장이 없고, 다른 곳에 정규직으로 취업할 수 있다는 보장도 없다. 몇년 비정규직과 백수 생활을 전전하다 보면 나이는 30대 후반에 이르고, 그야말로 아무 곳에도 갈 수 없는 상황에 이른다. 비정규직 포닥으로 당장 풀칠은 할 수 있겠지만, 연봉 1800으로 미래를 위한 준비를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통닭집이라도 차릴 자금을 모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결국 비정규직 포닥 지원 정책이라는 것은 정부가 나서서 이공계 박사들을 '한번 코풀고 버리는' 휴짓조각으로 만드는 일에 다름아니다. 인재를 헐값에 소모하고 연소시켜버리는 것이다.

나라 살려보겠다는 싸이엔지가 생긴지도 2년이 넘었다. 그동안 인재 해외유출을 막기 위한 노력도 많이 했다. 국내 이공계 상황을 개선해서 제발 고국에 붙어 살게 해달라는 것이고, 국가 경쟁력을 계속 제고시켜 나가기 위해 이공계 전문인력들이 국내에 있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그런데 정부에서 아직도 정신 못차리고 계속 이런 인력 저수조 개념, 땜빵질 개념, 코딱지 묻혀 벽에 붙인 곧 떨어질 유리액자 같은 개념을 고집하면, 나 자신부터 생각이 달라질 수밖에 없는거다. 선진국은 당연하거니와 어느 개도국을 가도 이보다 못한 대우를 받겠는가? 세계는 넓고 갈 곳은 많은거다. 많은 이공계인들이 미국 유학이나 연수를 선호하는 것은 돌아와서 좀 더 나은 대우를 받을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외국에 아예 뿌리박고 살러 나가는 것이라면 굳이 미국만을 고집할 필요가 없다.

정부는 단단히 정신차리라. 인력 저수조 개념에 대해서는 이미 수차 경고를 날린 적 있다. 천오백명의 비정규직은 이공계를 더 깊은 암흑의 구덩이로 끌고 내려가는 것이다. 백자리라도 좋으니 정규직 자리를 늘려라. 현재 비정규직으로 일하고 있는 사람들부터 정규직으로 전환하라. 저수조의 물고기들 밥줄 돈으로 차라리 출연연을 신설하라. 교원을 확충하라. 이공계 출신이 갈 수 있는 자리의 범위와 숫자를 늘려라. 이것은 그나마 아직 이땅에 애정이 남아있는 사람의 마지막 충고이다.


 
 

  노숙자 글을 읽다보니 맥을 정확히 짚어 내는 현실감이 생생하게 전달됩니다.(목에 핏줄이 보이는듯) 2004/01/08   
 
  노숙자 마이동풍이라 할지라도, 이글을 회원들의 노력으로 여러군데 퍼 날랐으면 좋겠습니다 ~ 2004/01/08   
 
  김덕양 오늘의 명언, '정부의 과학기술 인력저수조 개념' = '코딱지 묻혀 벽에 붙인 곧 떨어질 유리액자 같은 개념'. 밑줄 쫙 긋고 백번씩 복창해야겠습니닷!!!  2004/01/08 x 
 
  cantab 오늘 아침부터 정부의 헛다리 짚는 정책 때문에 열받아 있는 상태였는데 현장과학기술인으로서 느끼는 감정을 그대로 전달하는 좋은 글을 올리셨군요. 노숙자님 말대로 이 글 여기저기 퍼날라야겠습니다. 해당정부부처와 청와대 게시판부터요. 2004/01/08   
 
  김일영 회사들은 고급인력에 대해서 고민을 할 필요가 없는게 현실입니다. 회사가 우는 소리만 내면 국가에서 알아서 인력을 대주는 평편이었으니까요. IMF 때 수많은 학생들이 취업이 안되자 대학원으로 몰아넣었고 이제 그들이 졸업하는 시점에서 다시 그들에게 싼값에 중소기업에 들어가라는 것은 현 이공계 문제를 더욱더 깊은 암흑속으로 떨어뜨리는 결과가 분명합니다. 당장 이러한 정책은 취소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2004/01/08   
 
  쉼업 너무 흥분하지 마세요. 선택은 당사자가 하는 겁니다. 2004/01/08   
 
  이민주 벼랑끝에 세워놓고.. 다른곳을 다 막아버리면.. 갈곳은 벼랑으로 떨어지는 수밖에 없다는... 2004/01/08   
 
  song 정확하게 지적해 주시는군요~ 사실 대다수의 중소기업이나 벤처에 석박사들이 가면 무슨일을 하겠습니까? 업무 내용중에 80~90%는 전공과 관련이 없을 확률이 상당히 높을것 같습니다. 따라서 출연연이나 중고교쪽의 교원쪽에 집중적인 이공계 인력의 재배치가 이루어지면 좋겠네요. 2004/01/08   
 
  김일영 정부의 이런 간섭이 계속해서 시장을 왜곡하고 있는 것입니다. 무리한 인력확충으로 인력들에 대한 대우는 급격하게 떨어지고 이젠 갈 곳마저 없는 상황이 연출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을 또 왜곡하면 결국 악순환의 고리는 영영 끊을 수 없게 됩니다. 이러한 정책은 취소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안타까운 일이 있을 지 모르겠지만 결국 또 이러한 일을 하면 부메랑은 더 커져서 돌아올 것이 분명합니다. 2004/01/08   
 
  맹성렬 지난 인수위때 이 문제가 거론되서 그렇게 해서는 안되는 이유를 수차례 전달했는데 결국 이 모양이군요. 정부 관료들의 대증책에 이제 진저리가 납니다. 이쯤되면 이제 머리에 붉은 띠 매고 데모라도 해야하는 것 아닌가요?  2004/01/08   
 
  김선영 관료들의 머리에는 앞뒤의 일은 생각할 필요가 없나봅니다. 당장에라도 할 수 있는 일만 하는건 초등학생도 잘 할텐데... 정부관료가 되기위한 머리는 어느정도가 적정수준인지 적나라하게 알게 해주는군요. 2004/01/08   
 
  Simon 그냥 아무 생각없이 이공계 인력 막연하게 늘여온 국내 대학가와 과거 정책 입안/승인자들을 화형에 처해야... 2004/01/08   
 
  준형 가만히 라도 있으면 중간이라도 가지... 2004/01/08   
 
  이민주 이공계 교수들도 같이 화형에 처해야.. 정원 마구 늘릴때 자기 세력이 는다고 오히려 반기던 사람들....많이 받았던 인원들이 갈데 없으니..이젠 나몰라라.. 대학원에 들어가니.. 중국집에서 영수증 끊어오라.. 가짜 장부를 만들라 사기 보고서 만들라... 2004/01/08   
 
  이민주 취업할때는 나몰라라~~ 2004/01/08   
 
  황인용 어휴... 참 까깝하네요... 2004/01/09


2004년 1월 8일, 회원자유게시판에서
http://www.scieng.net/zero/view.php?id=now&page=8&category=&sn=off&ss=on&sc=on&keyword=&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5121

  • 장재호 ()

      저도 마찬가지 입니다. "고용을 보장"해 달라는 소리가 아닙니다. "고용 안정"을 원하는 것입니다. 이 두말의 진의를 정부나 정책입안자 들은 잘 알아 들어야 할 것입니다.

  • 한윤기 ()

      사람들이 많이 하는 비유를 들어 이런 정책은 구멍난 배의 구멍을 고치지 않고, 배를 증축하는거와 같군요. 심각한 것은 이런 정책을 보고 잘 모르는 사람들은 이공계가 나아진다고 굳게 믿고 있더군요. 당장 우리 아버지가 그러시거든요. 그런게 아니라고 설명해 드리는데 한참 걸렸습니다. 인기에 편승하는 정책은 이젠 정말 화가 나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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