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공계 위기, 기업은 인재타령할 자격 있나? - 최성우

글쓴이
sysop2
등록일
2004-03-22 0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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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최성우 (2004/02/12, Hit : 1022, Vote : 4) 
 
제목  [칼럼] 이공계 위기 - 기업은 인재타령할 자격 있나?
 



역시 최근에 컬티즌 이라는 웹진에 실은 글입니다만... 
  http://www.cultizen.co.kr/content/?cid=1501

  저번 1주일 간은 그곳 홈의 머릿글로 있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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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성우 hermes21@ch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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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평론가. 한국과학기술인연합 운영위원. 서울대 물리학과 및 대학원 졸업, LG전자 연구소 선임연구원 역임, 현재 사단법인 21세기 프론티어 운영위원이며, 저서는 [과학사 X파일] [상상은 미래를 부른다] 등이 있다.


"민간기업 연구소에서 연구개발 현업에 종사하는 사, 오십대 이상의 연구원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이공계 출신으로 각광받는 몇몇 스타급 CEO들은 있어도, 오래도록 연구개발 현업에 종사하면서 성과와 능력에 걸 맞는 대우를 받는 '마스터급' 연구원들이 즐비하다는 얘기는 어느 기업에서도 들어본 적이 없다."


이공계 위기 - 기업은 인재 타령할 자격 있나? / 최성우



근래 청소년들의 이공계 기피현상과 총체적인 과학기술계의 위기 상황으로 국가 경쟁력에 암운을 드리우는 마당에, 다들 나라의 장래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그 와중에 우리 기업들 역시 요즘 특히 목청을 높이고 있다. 산업 현장에 쓸 만한 인재가 없다고 벌써부터 아우성인 것이다.

아니, 청년 실업률이 급증하여 '이태백'이라는 신조어가 생기고, 박사학위를 마친 고급 이공계 인력들 대다수도 자리를 못 잡고 열악한 처우를 감내하며 임시, 비정규직으로 떠도는 마당에 산업현장에는 인재가 없다니, 도대체 이게 어찌된 일인가?

기업들의 주장인즉, 대학의 교육이 기업에서 요구하는 수준을 충족시키지 못하여 대학/대학원 졸업자들을 신입사원으로 받아도 재교육에 적지 않은 비용과 시간이 소요된다는 것이다. 또한 요즘 젊은이들의 현장 근무 기피 풍조를 탓하기도 하고, 마치 소비자가 마음에 안 드는 제품을 구입처에 반품하듯, 채용 후에도 업무 능력이 만족스럽지 못한 인력은 대학 측에 '인재 리콜'을 요구하겠다는 용감한 주장도 서슴없이 나온다. 한마디로 우수 이공계 인력을 양성, 배출해야 할 대학이 제 역할을 다 하지 못하고 있다는 불만인 것이다.

세계의 유수 업체들을 상대로 전쟁터와 같은 피 말리는 경쟁을 계속해야만 하는 업체들의 입장을 헤아린다면, 그들의 투정을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또한 오늘날의 이공계 대학과 교육시스템에 적지 않은 문제가 있는 것은 분명 사실이며, 기업들의 불만과 요구사항 중에 귀담아 들을만한 부분들도 없지 않다.

그러나 기업은 제 몫과 할 일을 다 하고 있는데, 대학만 문제라는 식의 태도는 과연 합당한 것인가? 불행히도 전혀 그렇게 보이지는 않는다. 먼저 지극히 원론적인 것부터 살펴본다면 학문 탐구라는 대학 교육의 목적까지는 거론하지 않더라도, 이공계 대학 자체가 '직업 훈련원'이 될 수는 없는 일이다. 산업 현장에서 요구하는 기술의 발전 및 변화 속도가 너무도 빠를 뿐만 아니라, 기업들마다 필요로 하는 지식과 기술이 천차만별일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대학에서 기본적 문제 해결 능력과 자질을 갖춘 인력은 양성할 수 있을 망정, 당장에 현업에 투입하여 단기간 내에 가시적인 성과를 낼 만한 인력을 요구하는 것은 무리이며, 재교육의 책임은 어디까지나 해당 기업에 있다는 대학 측의 반론도 일정 정도 설득력을 갖는다.

어떤 이들은 선진국의 경우 최우수 이공계 인재들이 대다수 산업 현장과 민간기업 연구소에 몸담고 있으면서 첨단제품 개발과 신기술 발전에 크게 기여하고 있는 반면에, 우리나라의 경우 이공계 박사의 70% 이상이 대학에만 몰려 있다면서, 우수 인재들의 지나친 대학 선호 풍조를 개탄하기도 한다. 해외 유학파들도 넘쳐나는 최근에는 좀 달라졌겠지만, 얼마 전 까지만 해도 외국에서 학위를 받은 이들은 귀국 후에 국내 기업에서 1-2년 정도 머무르면서 자리를 탐색을 한 후에 대학 교수로 옮겨가는 것이 거의 정석 코스인 듯이 여겨지기도 하였다. 꽤 오래 전에 모 대기업의 이미지 광고에서 세칭 미국 명문 이공계 대학의 박사들이 'OO박사들'이라면서 차례로 클로즈업되는 장면이 꽤 인기를 끈 적이 있다. 필자는 당시에 속으로 '저 분들이 업체에 몇 년이나 있을까?' 하고 의문스러웠는데, 아니나 다를까 1년이 지나기 무섭게 반 이상이 대학으로 옮겨갔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우리나라 최우수 이공계 인력의 대학 편중 원인은 아주 간단하다. 기업 연구소보다는 대학이 직장으로서 훨씬 높은 '비교 우위'에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시쳇말로 허접한 대학의 교수라도 민간기업 임원보다 높게 평가할 만큼 '교육자'를 우러러보는 사회적 풍조, 자유롭고 자기시간도 많을 뿐 아니라 정년이 거의 보장되는 안정성도 겸비한 '교수'라는 직업이 지니는 매력과 프리미엄도 간과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바꾸어 말하면, 우리 기업의 연구소는 최우수 이공계 인재들에게 그만큼 '좋은 직장'이라는 인식을 주고 있지 못하다고 풀이할 수밖에 없다.

민간기업 연구소에서 연구개발 현업에 종사하는 사, 오십대 이상의 연구원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이공계 출신으로 각광받는 몇몇 스타급 CEO들은 있어도, 오래도록 연구개발 현업에 종사하면서 성과와 능력에 걸 맞는 대우를 받는 '마스터급' 연구원들이 즐비하다는 얘기는 어느 기업에서도 들어본 적이 없다. 미국의 대기업들은 1930년대 세계 대공황이라는 최악의 상황에서도 우수 인력들을 최대한 보호하고 연구개발에 매진하여 이후에는 대박을 터뜨린 반면에, 우리 나라 기업들은 IMF 구제금융 당시 우수, 고급인력을 따지지 않고 '당장에 돈 되기 어려운' 쪽부터 무조건 몰아내기에 급급할 정도로 '연구개발' 이라는 개념 자체가 정립되어 있지 못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민간기업 연구소에서 40이 넘은 나이에 승진도 마다한 채 좋아하는 연구개발만을 수행하다가 재작년에 노벨화학상을 받은 일본의 다나까 연구원이, 우리 나라 기업에서 있었더라면 진작에 '무능력자'로 몰려 쫓겨났을 것이라는 지적이 설득력 있게만 다가온다.

과연 우리나라 기업들은 인재를 인재로서 대우해 줄 여건과 의지를 갖추고 있는가? 심지어 제대로 된 인재를 가려내고 잘 활용할만한 능력이라도 있기나 한가? 항상 눈앞의 실적과 이익에만 급급하여, 필요할 때에는 모셔왔다가 용도가 다 하면 재교육의 기회마저 박탈한 채 나 몰라라 팽개치려 하는 건 아닌가? 기업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인재가 아니라, 실컷 부려먹고 언제든 폐기 처분할 수 있는 '값싸면서 성능 좋은 소모품'인 것은 아닌가?

아직도 툭하면 인재 타령을 늘어놓는 기업들은 한번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보기 바란다. 남의 눈의 티끌은 보여도 자기 눈 안의 들보는 보지 못한다고 하였다. 지금의 청소년 이공계 기피현상에 커다란 원인의 한 축을 제공한 기업들이, 자기 반성과 개선 노력 없이 피해자인 듯 변신하여 남의 탓만 한다면 이는 후안무치한 일이다.

그렇다고 산업 현장과 대학 교육 사이의 간극을 메우려 거의 노력하지 않고 시대적 변화와 요청을 수용하는 데에도 게으른 일부 대학들의 구차한 변명에까지 다 면죄부를 주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다. 이공계 대학들 역시 뼈를 깎는 각오로 자기 혁신과 시스템의 개선에 나서지 않고 언제까지나 '자기들만의 성'에 안주하려 든다면, 머지 않아 공멸(共滅)을 면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김일영 (2004-02-13 12:01:19) 
 
'값싸면서 성능 좋은 소모품'으로 인재를 대하니 나오는 제품도 값싸고 소모품적인 제품밖에 못만드는 거라고 봅니다. 질좋고 오래가며 정말 누가봐도 정말 대단한 제품을 만드는 것은 기계가 아니라 사람이 먼저 하는 것이죠. 그만큼 뛰어난 인재를 잘 대우하고 이들에게 비전과 안정을 주는 것이야말로 기업이 제일먼저 개선해야할 일일 것입니다. 
 
 
 
한윤기 (2004-02-14 11:10:06) 
 
아.. 감동입니다. 속이 다 후련하군요. 인턴으로 일해보니까 여기 엔지니어 분들의 사기는 -_- 정말 저보고 이공계 하루라도 빨리 떠나라고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기업에게 가장 큰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연구 인력을 중시하는 기업은 정말 우리나라에는 없는 건가요. -_- 
 
 
 
슈나리 (2004-02-14 11:19:36) 
 
삼성의 행태는 더웃 우습습니다. 거래처로부터 약간의 향응만 받아도 온갖 징계를 해대면서 자신들은 수백억씩 뇌물로 갖다바치는군요.. 정말 가관입니다. 
 
 
 
구창환 (2004-02-16 10:03:03) 
 
세계의 유수 업체들을 상대로 전쟁터와 같은 피 말리는 경쟁을 계속해야만 하는 업체들의 입장을 헤아린다면, 그들의 투정을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 이런 아량도 필요 없다고 생각합니다. 연구원이 어디 사람입니까? 총알이지 프로젝트팀이라고 좀 진득하게 놔 두는게 어디 있었나? 하여간 무슨 체계라는게 없다는게 느껴집니다. 회사 어려우면 1순위 퇴출대상이고, 개발초기와 양산 빌드업시에 소같이 부려 먹는 연구원이지, 그 담부턴 뭐 앞날이 깜깜하고.. 행정, 사무들은 턱하니 자리 잡으면 ...어이구.. 참.. 




2004년 2월 12일 과학기술 정책/칼럼 게시판에서

http://www.scieng.net/zero/view.php?id=science&page=2&category=&sn=off&ss=on&sc=on&keyword=&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6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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