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방미인의 물리학자 - 리처드 파인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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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성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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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1-03 1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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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이후의 물리학자 중에서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 1879-1955) 다음으로 뛰어난 인물은 누구일까?” 라고 묻는다면, 필자는 단연코 리처드 파인만(Richard Feynman; 1918-1988)을 꼽을 것이다. 파인만은 자신의 주요 전공인 이론 입자물리학뿐 아니라 다른 분야에서도 두루 두각을 나타내었으며, 특히 나노과학기술, 양자컴퓨터 등 21세기에 크게 각광받는 새로운 첨단과학기술이 탄생하는 데에도 커다란 기여를 하였기 때문이다.
뉴욕시 퀸즈에서 태어난 파인만은 MIT를 졸업하고 프린스턴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으며,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원자폭탄을 개발한 맨해튼 프로젝트에 참여한 적도 있다. 그가 주로 연구한 분야인 양자전기역학(Quantum electrodynamics)은 전자와 전자기장의 성질 및 상호작용 등을 양자역학의 입장에서 설명하는 것으로서, 소립자 이론물리학의 선구적인 역할을 해왔다. 그는 이른바 재규격화이론(Renormalization theory)을 전개하여 양자전기역학을 발전시킨 공로를 인정받아, 같은 분야에서 업적을 남겼던 도모나가 신이치로(朝永振一郞; 1906-1979), 슈윙거(Julian Seymour Schwinger; 1918-1994)와 공동으로 1965년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하였다.
이 과정에서 그가 직접 고안한 파인만 다이어그램(Feynman diagram)은 이론물리학의 여러 분야에 널리 이용되며, 재규격화이론 또한 이론 입자물리학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재규격화이론이란 전자와 전자기장의 상호작용을 양자역학적으로 다룰 때 전자의 에너지와 질량이 무한대로 발산하는 문제를 해결한 것으로, 실제 실험값을 이론에 적용하여 무한대의 값을 유한하게 바꿀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올해 40주기를 맞은 한국인 출신의 세계적 물리학자 고 이휘소(李輝昭; 1935-1977) 박사도 게이지 이론의 재규격화에서 큰 업적을 남겼고, 1999년도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엇호프트(Gerardus ‘t Hooft; 1946- )와 펠트만(Martinus J.G. Veltman; 1931- ) 역시 전자기력과 약력의 재규격화 문제를 해결한 공로를 인정받은 것이었다.
 
그러나 파인만은 다른 분야에서도 많은 업적을 남겼는데, 특히 새로운 과학기술 분야의 태동에 크게 기여한 것은 노벨상을 받은 자신의 주요 전공분야에 못지않은, 아니 그보다 더 중요한 업적으로 볼 수도 있다. 나노과학기술의 개념을 처음 제시한 과학자가 바로 파인만이다. 그는 1959년 12월 캘리포니아공대에서 열린 미국물리학회 정기총회에서 ‘바닥세계에는 빈 자리가 많다(There’s plenty of room at the bottom)’라는 제목으로 강연을 하였다. 이 강연에서 그는 원자 하나하나를 이용하여 사물을 다룰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이것이 물리학의 원리와 어긋나지 않는다고 주장하였다.
따라서 그는 원자와 분자의 세계가 특정 임무를 수행하는 아주 작은 구조물을 세울 수 있는 토대가 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였고, 또한 브리태니카 백과사전에 담긴 모든 정보를 아주 작은 핀 하나에 담을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당시 강연에 참석한 대부분의 물리학자들은 황당한 구상일 뿐이라고 일축하였다. 그러나 1980년대 이후 분자 이하의 세계를 들여다 볼 수 있는 고성능의 주사터널현미경(STM)이 개발되고, 에릭 드랙슬러(Eric Drexler)의 분자기계 이론 등이 구체화되면서 나노과학기술은 더 이상 상상의 차원이 아닌 미래의 첨단과학기술로 각광을 받게 되었다. 파인만의 대담한 발상과 미래과학에 대한 탁월한 통찰력을 칭찬하지 않을 수 없다.

미래의 새로운 컴퓨팅 방식으로 각광받는 양자컴퓨터(Quantum computer)의 개념 역시 파인만에 의해 1980년대에 처음으로 제시되었다. 아무리 반도체 집적회로 기술이 발달한다고 해도, 이를 논리소자로 채용하는 현재의 컴퓨터 방식은 언젠가 한계에 도달할 수밖에 없다. 즉 아무리 고도로 집적한다고 해도 논리소자를 원자 하나 이하로 구현하기는 불가능하며, 또한 원자 단위의 미시세계에서는 예기치 못했던 문제들이 발생하기도 한다. 이러한 기존 컴퓨터의 성능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새로운 개념의 컴퓨터가 바로 양자컴퓨터이다.
양자역학의 불확정성 원리는 서로 다른 특징을 갖는 상태의 중첩에 의해 측정값이 확률적으로 주어지게 되는데, 이를 응용한 양자컴퓨터에서는 이른바 ‘큐비트(Qbit)’라 불리는 양자비트 하나로 0과 1의 두 상태를 동시에 표시할 수 있다. 따라서 데이터를 병렬적으로 동시에 처리할 수도 있고, 또한 큐비트의 수가 늘어날수록 처리 가능한 정보량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게 된다. 즉 2개의 큐비트라면 모두 4가지 상태(00, 01, 10, 11)를 중첩시키는 것이 가능하고 n개의 큐비트는 2의 n제곱만큼 가능하게 되므로, 입력 정보량의 병렬 처리에 의해 연산 속도는 기존의 디지털 컴퓨터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빨라진다. 이러한 양자컴퓨터가 언제 널리 실용화될지는 정확히 예측하기 어렵겠지만, 세계 각국에서 활발히 연구개발을 하고 있고 일부 선진 기업에서는 큐비트의 시제품을 선보이고 있다.

파인만은 또한 우주왕복선 챌린저호의 폭발 원인을 밝혀낸 것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지난 1986년 1월에 7명의 승무원을 태운 우주왕복선 챌린저호가 발사된 지 약 73초 후 공중 폭발하여 승무원 전원이 사망하는 참사가 발생한 바 있다. 동승했던 여교사마저 사망했던 이 사고는 당시 미국인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고, 이로 인하여 미국의 우주개발 계획은 한때 큰 차질을 빚게 되었다.
대통령의 명령에 의해 구성된 조사위원회에 참여한 파인만은, 사고의 원인이 오링(O-ring)이라는 부품에 있었음을 밝혀내었다. 즉 고체 로켓 부스터에 사용된 고무 재질의 오링이 추운 날씨 때문에 탄력을 잃어버린 결과, 고온·고압의 가스가 오링 사이로 누출되어 불이 붙으면서 외부 연료 탱크가 폭발하였던 것이다. 일견 사소해 보이는 작은 부품 하나가 중대한 폭발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경각심을 일깨워주게 되었는데, 파인만은 다재다능한 능력을 다시 한번 발휘했던 셈이다.
형식과 권위를 거부하고 창조적이고 주체적인 사고를 강조했던 파인만은, 근엄한 과학자의 이미지가 아니라 열쇠 수리 등 잡다한 일에도 능한 괴짜 물리학자로도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져 있다. 파인만이 쓴 물리학 교재(Lectures on Physics) 표지뒷면에 게재된, 드럼을 능숙하게 치던 그의 모습을 필자도 본 기억이 난다. 그의 유쾌한 물리학 이야기를 담은 책 ‘파인만씨 농담도 잘하시네’가 국내에서도 번역되어 베스트셀러 반열에 오른 바 있는데, 21세기 융합의 시대에 걸 맞는 새로운 과학기술 인재상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지 않나 생각된다.

                                                                                By 최성우

이미지1: 간략하게 도시한 양자컴퓨터의 원리 (GNU Free Documentation License)
이미지2: 발사 직후 폭발한 우주왕복선 챌린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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