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자가속기 거대화의 딜레마

글쓴이
최성우
등록일
2020-09-12 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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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자물리학이 발전하면서 새로운 소립자들이 이론적으로 예견됨에 따라, 이들을 발견하거나 입증할 입자가속기의 중요성도 갈수록 증대하게 되었다. 특히 이러한 실험을 위해서는 양성자 등 극히 작은 소립자를 매우 빠른 속력까지 가속해야 하므로, 높은 에너지를 얻으려면 입자가속기 역시 더욱 거대화할 수밖에 없다. 아울러 가속 궤도를 진공 상태에 가깝게 유지하게 하는 초진공 기술, 매우 강력한 자기장을 얻기 위한 초전도전자석, 초전도가 가능한 저온을 구현하기 위한 극저온 기술 등 어렵기 그지없는 극한 기술들을 필요로 한다. 현재 세계 최대의 입자가속기인 CERN의 거대강입자충돌기(LHC) 역시 이러한 기술들을 적용하여 건설되었다.

 이와 같은 고난도의 과학기술을 동반한 거대한 가속기 장치를 건설하려면, 당연히 막대한 비용을 필요로 하게 된다. 따라서 초대형 입자가속기 건설을 위한 프로젝트를 민간 자금으로 추진하는 것은 매우 어려울 것이므로 국가의 세금이 투입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데 국민이 납부하는 세금이 크게 소요되는 프로젝트를 원만히 수행하기 위해서는, 그 당위성과 필요성을 입증하고 해당 정부 관료나 정치인 등을 설득하는 일 또한 중요하다.
 자연과 우주의 궁극 및 근본적 원리를 속히 밝히고자 열망하는 과학자들의 입장에서는 막대한 돈이 들더라고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국가의 자원을 효율적으로 배분해야 할 책임을 지닌 사람들은 생각이 다를 수 있다. 즉 그처럼 큰돈을 들인 결과 국가와 국민에게 어떤 혜택이 돌아가고 실질적인 효용이 과연 있느냐 의심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입자물리학이라는 학문은 응집물질 물리학, 반도체 물리학, 광학 등과 같이 비교적 빠르고 확실한 산업적 활용을 기대할 수 있는 다른 물리학 분야와는 사정이 다르다. 

 이와 관련해서 미국의 물리학자 로버트 윌슨(Robert R. Wilson; 1914-2000)과 한 정치인이 주고받은 대화는 매우 시사하는 바가 크다. 윌슨은 프린스턴 대학에서 학위를 받았고, 제2차 세계대전 중 원자폭탄을 개발하는 맨해튼 계획에서 사이클로트론 그룹 팀장으로 활동했던 입자가속기 전문가이다. 이후 1967년부터 페르미 가속기연구소의 초대 소장으로 일하면서 많은 공적을 남겨서, 페르미연구소에는 그의 이름을 딴 윌슨 홀이라는 건물이 있다.   
 윌슨은 새로운 초대형 가속기인 테바트론(Tevatron) 건설과 관련하여 1969년 미국 의회의 원자 에너지 관련 합동위원회에서 증언하였는데, 당시 상원의원 존 패스토어(John Pastore)는 엄청난 돈이 들어갈 그 가속기가 무슨 효용이 있느냐고 질의하였다. 즉 “가속기가 국가 안보에 도움이 되느냐?”, “그 프로젝트를 하면 기술이 크게 발전하여 미국이 소련과의 경쟁에서 확실한 우위에 설 수 있느냐?” 등을 집요하게 따져 물은 것이다. 윌슨은 장기적인 관점에서 기술 발전에 도움이 될 수는 있겠지만 그런 측면이 아니라고 강조하면서, “이 가속기가 나라를 지키는 데에는 별 도움이 안 될지라도, 앞으로 이 나라를 지킬만한 가치가 있는 나라로 만들어주는 데에 기여할 것이다.” 라고 답변하였다. 윌슨의 이 말 한마디는 수많은 입자물리학자들의 ’심금을 울리고‘ 자긍심을 북돋워 주면서, 이후 입자물리학의 효용문제 등에 관해서 자주 인용된다.

 그러나 거대 입자가속기를 건설하는 과정에서 정치인, 관료 등을 설득하는 과학자들의 노력이 항상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1990년대에 미국에서 초전도 슈퍼충돌기(SSC; Superconducting Super Collider)의 건설이 중단되고 프로젝트가 폐기된 일이다.
 초전도 슈퍼충돌기는 1982년 무렵 관련 학회에서 필요성이 제기되어, 1986년에 설계가 완성되고 1991년부터 텍사스 주의 시골 마을 지하에서 건설 작업에 들어갔다. 기획과 설계에 따르면 총 투자 비용이 무려 83억 달러가 소요되고, 타원형 가속 터널의 총 길이는 83킬로미터에 이르는 초대형 충돌형 입자가속기였다. 가속 터널 속의 2개의 링에서 각각의 양성자 빔은 서로 반대 방향으로 20테라전자볼트까지 가속되고, 최종 충돌에너지는 40테라전자볼트로 계획되었다. 길이 27킬로미터의 가속 터널 및 최종 충돌에너지 14테라전자볼트의 현 LHC보다 몇 배나 큰 셈이다.
 그러나 1993년 10월, 미국 의회는 투표를 통하여 이미 20억 달러의 비용을 들인 SSC의 건설을 중단하는 결정을 내리고 프로젝트를 최종 폐기하였다. 이른바 와인버그-살람 이론으로 1979년도 노벨물리학상 수상했던 당대 최고의 입자물리학자 스티븐 와인버그(Steven Weinberg; 1933-) 등이 사활적 노력과 치열한 로비로 정치인들을 설득하려 했지만, 결국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다.   
 SSC의 중단은 미국의 관련 물리학자들뿐 아니라, 전 세계 입자물리학자들에게 커다란 충격과 좌절감을 안겨주었다. 자연과 물질의 궁극 및 근본 원리의 탐구를 위해 새로운 초대형 입자가속기에 큰 기대를 걸었건만 중도 폐기되고 말았으니, 입자물리학이라는 학문 분야 자체가 흔들릴 수도 있는 큰 위기를 맞았기 때문이다.
 미국 의회의 다수 의원들이 SSC 프로젝트의 폐기에 찬성표를 던진 이유가 무엇인지 단정적으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다만 아무래도 당시 구소련의 해체로 냉전 구도가 종식되면서, 미국 정부가 SSC와 같은 ’거대과학(Big Science)‘을 무조건 계속 지원해야 할 근거를 찾기 힘들었을 것이라는 점이 가장 큰 이유라 여겨진다.
 아름다운 자연의 이치를 파악하고자 하는 과학자들의 순수한 열망도 중요하겠지만, 그를 위하여 소요되는 막대한 자원의 투입에 관한 사회적 합의 또한 결코 간과할 수 없을 것이다. 이 두 가지가 어떻게 서로 충돌하지 않고 조화를 이룰 수 있을지는 오늘날에도 풀리지 않는 과제로 여전히 남아있다.

                                                      By 최성우

이미지1: 페르미국립가속기연구소의 테바트론 가속기
이미지2: 페르미연구소 초대 소장을 지낸 로버트 윌슨

  • 펭귄 ()

    경제성, 교차 검증이 불가능한 과학은 대부분 사기입니다.  지구에 한곳 뿐인 거대 장비를 가진 연구소에서 실험한 데이타를 근거로 노벨 물리학상 탄 사기꾼 과학자가 10명이 넘습니다. 예를 들면, 블랙홀 두개가 충돌하여 생성된 중력파를 관측했다.  블랙홀은 물리학 기본 법칙 모두를 부정하는 상상의 천체입니다.

  • 돌아온백수 ()

    과학이 합리성을 전제로 하는 것이죠. 누구나 반복할 수 있어야 하는 보편성이 담보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돈이나 다른 자원이 증명하는 것을 막는 다면, 합리성이 담보되기 어렵죠.

    거대 과학의 딜레마입니다.
    그래서, 여러나라의 과학자들이 공동으로 참여해서 보편성을 확보해야 하는데,
    과연, 어디까지 참여시켜야 하는지, 어떤 조건으로 선별할지가 합의가 쉽지 않죠.

    쉽지 않은 문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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