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 탐사 로켓과 로스트 테크놀로지

글쓴이
최성우
등록일
2024-04-24 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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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성우의 과학기술 온고지신④

지난 1960~1970년대 미국의 아폴로 계획 이후 50여 년 만에 다시 인간을 달에 보내기 위해 추진되고 있는 국제적인 우주탐사계획, 즉 아르테미스 프로젝트에는 우리나라도 참여하고 있다. 그런데 시험 로켓 발사 등 관련 소식이 전해질 때마다, “인간은 달에 간 적이 없고 아폴로 우주선의 착륙 장면 등 모든 것은 조작되었다”는 식의 달 착륙 조작설이 불거지곤 한다.
물론 근거 없는 황당한 음모론에 불과하지만, 일부 대중들 사이에서 고장 난 레코드처럼 끈질기게 반복되면서 여전히 불식되지 않고 있다. 그나마 그 이유로 들먹이는 가장 ‘합리적인 의심’의 하나는, 과거에 인간을 달까지 보낸 로켓이 있었는데, 아르테미스 계획을 위해 새로운 대형 로켓인 SLS(Space Launch System, 우주발사시스템)를 개발했다니 이해가 안 간다는 지적이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연합국을 괴롭힌 V2 로켓의 주역이었던, 독일 출신 폰 브라운 박사가 아폴로 계획을 위해 개발한 새턴V 로켓은 오늘날까지도 역대 최강의 로켓으로 평가받는다. 그러나 미항공우주국(NASA)이 이처럼 우수했던 로켓을 부활시키지 않고 2011년 이후 퇴역한 우주왕복선의 엔진을 바탕으로 SLS를 새로 개발하느라 막대한 비용을 허비한 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1972년 12월에 발사된 마지막 달 착륙 유인우주선인 아폴로17호를 마지막으로, 아폴로 프로젝트가 종료되고 연구팀들도 뿔뿔이 흩어지다 보니 새턴V 로켓 엔진 기술 등이 사장되어 잊히고 말았다. 물론 설계도는 남아 있지만 워낙 수정이 많아서 최종 도면에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고, 수많은 부품을 비롯한 개발 기술·노하우 등도 제대로 기록되거나 보존되지 않았다. 컴퓨터를 이용한 설계가 일반화된 오늘날과는 달리, 당시는 모든 도면을 일일이 손으로 그리던 시절이었다. 

즉 새턴V 로켓 엔진이 전래가 끊긴 ‘실전기술(失傳技術)’이 되고 만 것이다. 역사적으로 실전기술의 사례는 대단히 많은데, 특히 기밀 유지와 보안이 중요한 전쟁 무기 분야를 꼽을 수 있다. 대표적 예로서 ‘그리스 불(Greek fire)’이라고 불린 일종의 고대 화약이 있었다.
670년경 무렵에 시리아 출신의 기술자 칼리코니스가 발명했다고 하는데, 오늘날 정확한 성분을 알기는 힘드나 황·주석(酒石)·수지·암염·경유 등을 혼합한 반액체 상태로 추정된다. 적군의 함선을 향해 화염방사기처럼 뿌리거나 항아리에 담아서 투석기로 던지는 방식으로 실전에 사용되었다. 한번 불이 붙으면 물로도 잘 꺼지지 않았기 때문에 특히 해전에서 효과적이었다고 한다. 
그리스 불을 주로 사용했던 동로마제국, 즉 비잔틴제국이 수많은 외침을 받고도 천년 동안이나 지속될 수 있었던 데에는 이 무기의 힘도 컸는데, 이를 만드는 방법을 철저히 비밀로 하여 보안을 유지했다고 한다. 임진왜란 당시에 활약한 거북선이 실제 철갑선이었는지 여전히 논란이 되고 있는데, 이 또한 일종의 실전기술인 셈이다. 
문화예술 분야에도 잃어버린 기술이 적지 않은데, 신비로운 비색(翡色)을 지닌 고려청자의 제조기법, 초고가의 명품 악기로 유명한 스트라디바리우스 바이올린 등도 한동안 전승이 끊겼거나 오늘날에도 재현이 어려운 실전기술이다.
이외에도 여러 분야에서도 유사한 실전기술들은 무척 많고 그 이유 역시 다양하다. 그런데 위의 사례에서 보듯이 특히 비밀 유지와 보안에만 너무 치중하다 보면, 활발한 교류를 통한 기술의 발전이 저해되면서 결국 실전기술이 되고 만다는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 
또한 새턴V 로켓 엔진처럼 국가적 역량을 총동원하여 개발한 중차대한 기술이 불과 50년도 안 되어서 전래가 끊기고 마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생길 수도 있다. 즉 제아무리 첨단기술이라 해도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지식이나 노하우, 즉 암묵지 등이 제대로 보존, 전달되지 않거나 기술 생태계가 취약점을 노출할 경우, 순식간에 ‘로스트 테크놀로지’로 전락할 수도 있다는 중요한 교훈을 되새겨야 할 것이다.


최성우 과학평론가

< 교수신문 2024. 4. 24 >

이미지1: 새턴V 로켓을 채용한 아폴로11호의 발사 장면
이미지2: 적군을 그리스 불로 공격하는 동로마제국의 함선을 묘사한 12세기의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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