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기술유출인가, 마녀사냥인가 - 한물간 기술도 1조원대 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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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ieng office
등록일
2004-12-20 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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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ㅣ기술유출인가, 마녀사냥인가]

한물간 기술도 1조원대 가치?
해당 기업 ‘눈덩이 피해’ 선정적 발표 난무 … “산업 크기보다는 얼마나 보호할 기술인지가 중요”
 
“예상 피해액 1조원 이상?”

최근 빈발하는 ‘기술 유출’ 사건은 거의 대부분 ‘1조원’이라는 천문학적인 피해액을 자랑(?)한다. 국가정보원에 따르면, 1998년부터 올해 8월까지 적발된 해외 기술 유출 건수는 51건으로 예상 피해액만 44조원에 달하고 있는 것.

액수가 커질수록 국민적 관심 또한 높아졌고, 당초 ‘반도체’에 머물러 있던 ‘첨단기술’이란 수식어도 휴대전화 PDP LCD 온라인게임 등으로 점차 확대됐다. 이에 언론들도 덩달아 ‘수조원’이라는 천문학적인 ‘예상 피해액’을 경쟁적으로 보도하고 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계산하기 나름이지만 너무 지나친 사례가 많다”는 조심스러운 견해를 내보이기도 한다.

검찰과 언론의 주장에 따르면 예상 피해액이 1조원을 훌쩍 넘는다는 현대시스콤의 2.5세대 CDMA 기술이나 A사의 TFT-LCD 컬러 필터 기술 유출 피해액은 과연 어떤 계산법에 따라 나왔을까.

우선 ‘1조원대 CDMA 기술’이라는 계산은 생각보다 단순하게 도출됐다. CDMA 기술은 1994년 국가 연구개발 프로젝트로 매년 정부 예산 781억원을 포함해 1조원 이상을 들여 민ㆍ관이 합동으로 개발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2.5세대 기술은 이미 시장에서 퇴물이 된 상황. 한물간 구세대 기술은 대개 ‘시장’ 가치로 평가받기 때문에 이 기술을 보유하고 있던 현대시스콤의 주가를 고려하면 터무니없다는 반론이 가능하다.

LCD 기술은 이미 20년 전 개발되었으며, 대부분의 특허는 일본이 갖고 있다. 더구나 우리나라는 한때 A사보다 더 앞선 기술을 갖고 있던 하이닉스의 자회사 ‘하이디스’를 정부가 앞장서 중국에 팔아넘긴 전력까지 가지고 있다.

검찰은 이에 대해 “‘연구개발비 3700억원과 향후 1조3000억원 피해’는 수사 과정에서 해당 기업들이 밝힌 예상 피해액일 뿐이다”고 말한다. 그러나 ‘3700억원’이란 연구개발비는 A사가 6세대 TFT-LCD 공장에 총투입한 설비 및 인건비 총액에 해당하고, 게다가 ‘1조3000억원’이란 금액 역시 국내 6세대 TFT-LCD의 매출액 전체를 예상 수출 피해액으로 계산한 수치. 이미 우리가 7세대 공장을 짓고 있는 현실에서 6세대 LCD 공정의 일부인 ‘컬러 필터’ 제작 기술 유출에 따른 예상 피해액이라고 보기에는 지나치게 많은 액수라는 지적이다.

 
물론 검찰은 “결과를 얻기 위해 투입되는 총량 전체를 피해액으로 보는 것도 일리 있다”는 반론을 펼치고 있지만, 전문가들은 “공정기술자 3명이 대만으로 건너가서 1조원의 피해가 우려된다면 진작 보안을 철저히 하거나 혹은 그만한 대접을 하지 그랬냐”는 조롱 섞인 반응까지 내보이고 있다. 실제로 기술경제학에서는 ‘이익-비용-시장 접근법’ 등을 통해 기술가치를 평가 하고 있지만, 특허 분쟁이 아닌 ‘영업관련 자료’를 놓고 피해액을 따진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지적이다.

삼성경제연구원 임영모 수석연구원은 “기술 유출 피해를 산정할 때 실제 산업의 크기보다는 해당 회사가 얼마나 보호하기 위해 노력한 기술인지가 더욱 중요하다”고 말해 눈길을 끌었다. 임 연구원은 “우리나라 역시 선진국의 기술을 끊임없이 모방해온 나라이지만 일본의 도요타같이 영업비밀을 공개한다 해도 배울 수 없는 것이 허다하다”면서 “기술이란 뒤쫓는 이들과의 접촉을 끊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는 혁신을 통해 기술을 발전시켜나가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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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공안부 축소 첨단기술 유출 수사로 선회

올 들어서만 24건. 첨단기술의 해외 유출 사건이 끊이지 않고 일어나면서 정부의 대응 방안도 빨라지기 시작했다. 국가정보원이 올해 초 먼저 대(對)산업스파이 부서(산업기밀보호센터)를 만든 데 이어, 법무부가 진작부터 추진해오던 검찰 조직개편안에 ‘산업기밀보호담당관실’ 설치를 포함시킨 것.

검찰은 10월 초, 서울중앙지검 컴퓨터수사과에 ‘기술유출범죄수사센터’를 설치하고 ‘기술 유출’ 사건에 대해 적극적으로 국가정보원과 찰떡 호흡을 과시해왔다. 올 7월부터 피해 업체의 고소·고발이 없이도 수사할 수 있다는 개정된 영업기밀법 덕분에 수사기관이 움직일 수 있는 여지가 넓어졌기 때문이다.

일선 지검의 컴퓨터수사부를 첨단범죄수사부로 개명하는 일을 추진하고 있는 검찰은 지난 십수년간 첨단산업 분야의 수사 인력을 꾸준히 길러왔기 때문에 수사 역량에 별다른 문제가 없다고 자신하고 있다.

현재 법조계에서는 “기술 유출 수사 분야를 앞으로 대폭 축소가 예상되는 공안부서의 대안으로 여기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냉소적인 시각과 “국익을 지키기 위해 검찰이`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은 고무적인 현상”이라는 의견이 엇갈리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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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호재 기자 demian@donga.com
 발행일 : 2004 년 12 월 23 일 (465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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