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反)과학기술주의 - 라부와지에의 처형과 유나바머

글쓴이
최성우
등록일
2016-03-27 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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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고수의 인간 바둑기사와 ‘세기의 대결’에서 승리한 인공지능 알파고는 대중들에게 놀라움과 두려움을 동시에 안겨준 듯하다. 영화 ‘터미네이터’ 등을 떠올리면서, 이러다가는 미래에는 인공지능과 로봇에게 인간이 지배를 당하는 것 아니냐고 우려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 듯하다.
미래를 디스토피아로 묘사하는 여러 SF영화들에서 반(反)과학기술 장면들이 간혹 등장하기도 하는데, 이와 유사한 일들이 실제로 일어난 적이 있다.
 
- 단두대에서 처형당한 근대 화학의 아버지 -
연소이론으로서 ‘플로지스톤이론’을 깨뜨리고, 산소결합설을 확립했으며, 질량보존의 법칙을 발견하는 등, 화학 전반의 기초를 세워 ‘근대 화학의 아버지’라고 추앙받는 프랑스의 화학자 라부와지에(Antoine Laurent de Lavoisier; 1743-1794)는 프랑스대혁명의 소용돌이가 한창이던 1794년, 사형을 선고받고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졌다. 그의 나이 51세로, 과학의 발전을 위해서 한창 일할 수 있는 아까운 때에 비극적으로 삶을 마감한 것이었다.
라부와지에와 같은 훌륭한 과학자를 단두대로 몰아넣은 것은, 세금징수관이라는 그의 직업이었다. 정부를 대신하여 세금을 거두어들이는 세금징수관은 대다수 국민들에게 공포와 저주의 대상이었고, 1789년 프랑스대혁명이 일어나서 자코뱅 산악파가 집권한 후로는 모든 세금징수관이 체포되어 재판을 받게 되었다. 재판장은 라부와지에가 세금징수관으로서 프랑스 국민들로부터 온갖 착취와 수탈을 일삼았으며, 국가에 납부하여야 할 많은 돈을 횡령하였다고 몰아 붙였다.

라부와지에는 그간 과학자로서 국가에 공헌한 점을 고려하여 정상참작을 호소하였고, 자신의 중요한 실험을 위하여 재판을 2주일만 늦춰 달라고 청원하기도 하였으나, 재판장은 “공화국은 과학자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라고 답하였다고 한다.
라부와지에가 처형된 이후, 여러 과학자들은 그의 죽음을 매우 애석하게 생각하였는데, 특히 유명한 수학자 겸 물리학자인 라그랑지(Joseph Louis Lagrange; 1736-1813)는 “그의 머리를 치는 데에는 1분도 걸리지 않았지만, 그와 같은 머리를 다시 만드는 데에는 백년이 걸려도 부족할 것이다”라고 말하였다.

라부와지에의 비극적인 죽음은 프랑스 대혁명이라는 당시의 시대적 배경과 관련하여, 오늘날에도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한다. 자코뱅 혁명주의자 입장에서는 ‘착취 받는 민중들의 고통을 외면했던 오만한 과학자의 자업자득격인 말로’라고 생각했겠지만, 상당수 과학자들의 입장에서는 ‘과학기술의 중요성을 깨닫지 못한 민중들의 무지와 분노가 빚어낸 어처구니없는 결과’라고 해석할 수도 있을 것이다.
아무튼 그의 죽음은 한 세금징수관에 대한 처벌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당시의 과학을 ‘지식귀족들에게 독점되고, 대다수 민중을 수탈하는 과학’이라고 규정하고, ‘새로운 민중의 과학’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 자코뱅주의자들의 사고와도 긴밀한 관련이 있다고 할 것이다. 또한 이와 비슷한 사조는 그 이후에도 과학의 발전에 의한 폐해가 지적될 때마다 간간이 역사상에 등장한 바 있고, 자주 반(反)과학주의로 나아간 바 있으며 오늘날도 예외는 아니다.

- 과학기술자들에게 폭탄 테러를 자행했던 유나바머 -
몇 년 전 국내에서도 개봉된 바 있는 SF영화 ‘트랜센던스(Transcendence)’를 보면, 획기적인 인공지능을 개발하려는 컴퓨터 과학자에게 반(反)과학기술단체가 테러와 공격을 서슴지 않는 장면이 나온다.
사실 인류 역사상 과학기술에 대한 반대 움직임은 상당히 오래 전부터 있었다. 산업혁명이 한창 진행되던 19세기초 유럽에서 나타났던 러다이트 운동(Luddite Movement), 즉 기계파괴 운동 역시 그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고, 20세기에도 격변기마다 정치적인 변혁 주장과 아울러 문명비판론이 고개를 들면서 현대 과학기술에 대한 반감이 커지곤 하였다.

그리고 영화에서처럼 컴퓨터를 개발하는 과학자 등에 대해 무자비한 테러를 실제로 감행하여 큰 충격을 준 이가 있었으니, 이른바 유나바머(UnABomber)가 그 주인공이다. 현대 문명이 인류를 파괴한다는 문명 혐오주의자였던 그는 20여 년간 숲속 오지에서 은둔생활을 하면서, 1978년부터 컴퓨터기술자 등 과학기술과 관련 있는 사람들에게 우편물 폭탄테러를 자행하여 수십 명의 사상자를 냈다. 그는 처음에 주로 대학과 항공사를 공격해 대학(University), 항공사(Airline)와 폭파범(Bomber)의 조합 의미로 유나바머로 불렸다.
유나바머는 미국연방수사국(FBI)의 추적을 받던 중, 1995년에 테러를 중단하는 조건으로 주요 언론지에 현대 과학기술 문명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피력한 논문을 게재해 달라고 요구함에 따라, 뉴욕타임스와 워싱턴포스트지에 그의 논문이 실리기에 이르렀다. ‘산업 사회와 그 미래(Industrial Society and Its Future)’라는 제목으로 3만5000자로 된 그의 논문은 현대 산업사회와 첨단 기술문명을 신랄히 비판하는 내용으로서, 정연한 논리를 갖춘 명문으로 여기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결국 동생의 제보를 받고 체포된 유나바머의 본명은 시어도어 존 카진스키(Theodore John Kaczynski)로서, 그의 정체는 놀랍게도 하버드 대학을 졸업하고 버클리 대학 교수를 지낸 바 있는 천재 수학자여서 더욱 큰 충격을 주었다.

유나바머처럼 극단적인 행동을 하지는 않지만, 미래의 첨단과학기술에 대해 우려와 경고를 하는 이들은 저명과학기술자 중에도 더 있다. 유명 컴퓨터업체인 썬마이크로시스템즈사의 공동 창립자인 빌 조이(Bill Joy; 본명은 William Nelson Joy)가 대표적인데, 그는 일찍이 한 잡지에 ‘미래는 왜 우리를 필요로 하지 않는가(Why the Future Doesn’t Need Us)‘라는 글을 발표하여, 첨단과학기술의 발전이 인류의 종말을 초래할 수도 있다고 경고하여 적지 않은 파문을 일으킨 바 있다.
그는 대표적인 첨단기술인 유전공학(Genetics), 나노공학(Nanotechnology), 로봇공학(Robotics) 등의 세 분야를 예로 들어 GNR로 지칭하면서, 이들 기술에 의해 인간의 개성이 말살되고 급기야는 인류가 파괴될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물론 과학의 오용(誤用) 및 첨단기술의 부작용에 대한 우려와 경고는 그냥 지나쳐버릴 수만은 없으며, 연구개발 단계에서부터 이를 사전에 감안할 필요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인공지능 등을 다룬 상당수의 디스토피아적인 SF영화들이 상업성 등으로 그 우려와 공포가 지나치게 과장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반(反)과학기술로는 어떠한 해결책도 마련할 수가 없음을 유의하여야 할 것이다.

                                                                                      By 최성우 


이미지1: 지명수배 시절의 유나바머에 대한 스케치
이미지2: 아내와 함께 한 라부와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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