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연구소에서도 배출되는 노벨과학상(1) - 응용/상품화 업적

글쓴이
최성우
등록일
2019-10-23 1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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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노벨화학상은 리튬이온전지의 개발 및 상용화에 기여한 세 명의 과학자, 즉  미국의 존 구디너프(John Goodenough; 1922- ), 영국 출신의 스탠리 휘팅엄(M. Stanley Whittingham; 1941- ), 일본의 요시노 아키라(吉野彰; 1948- )에게 돌아가게 되었다. 리튬이온전지는 IT 및 에너지 기술 등 여러 분야에 걸쳐서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을 뿐 아니라, 화석에너지의 사용을 줄일 수 있는 친환경 기술이라는 점에서 이번 수상자 결정은 시대적 요청을 반영한 것으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세 사람 중에서 우리가 가장 주목할만한 인물로는 아무래도 일본의 요시노 아키라를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일본의 8번째 노벨화학상 수상자인 그는 현재 일본 메이조대학(名城大学) 교수를 겸하고 있지만, 민간 기업인 아사히 카세이(Asahi Kasei; 旭化成)에서 오래도록 일해왔고 이번의 노벨상 수상 업적 역시 거기서 근무하던 시절 이룩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민간기업연구소에서 이룩한 업적으로 노벨과학상을 거머쥐는 일이 이제는 그다지 낯설지 않다. 기초연구와 응용기술 연구, 그리고 제품개발 및 상품화 연구의 경계가 갈수록 흐릿해지고 융합연구가 가속화되는 오늘날, 특히 2000년대 이후의 과학 분야 노벨상 역시 시대적 추세를 어느 정도 반영하는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민간 기업의 상품화 연구 역시 충분히 노벨상을 받을 수 있는 중요한 업적으로 평가되는 일은 앞으로 더욱 늘어날 것이다.
 물론 과거에 민간연구소에서 배출한 노벨상 수상자들의 업적이라고 해서 모두 응용기술 개발이나 상품화 연구에 국한되었던 것은 아니지만, 민간연구소의 노벨과학상 수상에 대해 다각도로 고찰해 보는 일은 상당히 중요한 의미가 있을 듯하다.
   
 올해 노벨화학상을 받을 요시노 아키라 교수와 최근 매우 유사한 경우로는, 2014년도 노벨물리학상을 공동으로 수상한 나카무라 슈지(中村修二; 1954- )를 들 수 있다. 일본인 출신이라는 점 이외에도, 민간기업 시절 이룩한 연구성과로 노벨상을 받았고, 이후 대학에서 강의한 점 역시 데자뷔를 보듯 동일하다. 또한 수상 업적인 청색LED의 개발 및 상용화로 IT분야뿐 아니라 에너지 시장에도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오면서 친환경이라는 시대적 과제에도 부응하는 점 역시 매우 유사하다.
 그는 니치아화학공업(日亜化学工業) 시절에 질화갈륨(GaN) 소재의 고휘도 청색 LED 개발하고 실용화에 성공한 공로로, 미국의 산타바바라대학(UC Santa Barbara) 교수로 자리를 옮긴 이후인 2014년에 다른 두 명의 일본인 과학자와 공동으로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하였다.
 나카무리 슈지는 또한 노벨상 수상 이전부터 크게 유명해져서 이미 세계적인 인물로 떠오른 바 있다. 즉 그가 개발한 청색LED 덕분에 니치아화학공업은 조그마한 중소기업에서 세계적인 대기업으로 성장한 반면에 대가는 턱없이 적었고, 그는 회사를 상대로 200억엔이라는 거액의 직무발명보상 청구소송을 제기하여 큰 화제가 되었다. 이 소송은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세계적으로 직무발명제도에 관해 큰 관심을 불러일으켰고, 결국 만족스럽지 못한 법원의 판결 결과에 크게 실망한 그는 “기술자들이여 일본을 떠나라”라는 유명한 말을 남기기도 하였다.

 2000년도 노벨 물리학상 공동 수상자인 집적회로의 창시자 잭 킬비(Jack S. Kilby; 1923-2005) 역시 매우 주목할만한 경우이다. 민간기업인 텍사스인스트루먼트(TI)에서 근무하던 시절의 업적으로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을 뿐 아니라, 기초과학보다는 상용화 기술의 업적으로 노벨상을 받은 21세기 최초의 사례로 꼽을 만하기 때문이다.
 킬비는 1958년에 세계적인 전자회사인 텍사스인스트루먼트(TI)사에 입사한 후, 이듬해에 반도체 공정을 이용하여 트랜지스터와 다이오드, 저항 등의 여러 회로 소자를 한 개의 기판 위에 일체화시켜서 제작하는 집적회로를 세계 최초로 개발하는 데에 성공하였다. 
 물론 킬비가 처음에 개발한 방식은 1개의 게르마늄(Ge) 칩 위에 집적시킨 트랜지스터와 축전기, 저항 등의 부품들을 미세한 금선으로 수작업을 통하여 일일이 연결시키는 식이었기 때문에 곧바로 대량생산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는 집적회로의 개념을 특허로 출원하여 등록을 받았다. 이른바 ‘킬비특허’라 이 특허는 거의 같은 시기에 비슷한 것을 개발한 다른 기업과 분쟁을 겪기도 했지만, 오랫동안 반도체IC 기술의 원천특허로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면서, 특허 보유 기업인 텍사스 인스트루먼트 사에도 막대한 이익을 안겨왔다.
 CCD(Charge Coupled Device; 전하결합소자)를 발명하여 2009년도 노벨 물리학상을 공동으로 수상한 윌러드 보일(Willard Sterling Boyle; 1924-2011)과 조지 스미스(George Elwood Smith; 1930- ) 역시 유사한 측면이 있다. 즉 민간기업인 벨연구소에서 근무하던 시절의 업적으로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하였고, CCD 역시 오늘날 광범위하게 응용되는 중요한 제품기술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두 명의 과학자가 모두 물리학자 출신으로서, CCD의 발명은 상품화뿐 아니라 기초과학에서도 마찬가지로 의미 있는 중요한 업적이라는 점에서 꼭 ‘민간기업의 상품화 연구에 의한 노벨상’으로만 보기에는 어려운 측면도 있다.
 이처럼 민간기업이 배출한 노벨과학상 중에서 응용기술, 상품화 연구가 아닌 기초과학의 연구로 큰 업적을 남긴 경우는 다음번 글에서 살펴보기로 한다.

                                                                          By 최성우

이미지1: 휴대전화 등에 널리 쓰이는 리튬이온전지 (GNU Free Documentation License)
이미지2: 킬비가 발명한 세계최초의 IC복제본 ( ⓒ Florian Schaffer)

  • Hithere ()

    Irony하게도 공학에 노벨상이 없는 이유는 공학을 하면 당연히 사업화가 되서 돈이 안되는 기초과학에만 노벨상이 있다는 믿거나 말거나 한 이야기와는 좀 다르게 결국 사업화가 다방면으로 되는 원천기술이 노벨상이 되네요....원천기술을 개발한 분들은 알고 개발한 걸 까요, 아니면 우연으로 어쩌다 개발한 것일 까 궁금하기도 합니다.

  • 댓글의 댓글 최성우 ()

    노벨상의 과학 부문에 물리, 화학, 생리의학만이 있는 이유는, 순전히 상을 창시한 노벨의 유언에 따른 것입니다. (기술/공학, 지구과학은 물론 수학조차도 없습니다. 특히 수학상이 없는 이유에 대해 여러 설들이 많습니다만...) 아무튼 노벨은 '인류에 공헌하는' 과학으로는 세 분야만을 꼽았거나, 나머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겠지요...
    기초과학 연구와 원천기술의 개발이 우연인가 목적에 따른 R&D의 산물인가는, 경우에 따라 다릅니다. 예를 들어 나일론의 발명과 상품화는 뜻하지 않은 우연한 결과와 행운이 계기가 되었던 반면, 트랜지스터의 발명은 처음부터 진공관을 대체할만한 소자의 개발을 목표로 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기초연구에 대해 최근에 제가 쓴 칼럼 글이 하나 있는데, 나중에 이곳에도 올리겠습니다.)

  • 묵공 ()

    노벨상 수상자 트렌드에 대한 예리한 관찰과 분석입니다.
    공학, 혹은 기술에도 기초공학 혹은 원천기술이 있습니다. 이는 과거 기초과학, 혹은 기초연구 영역과 마찬가지로 이 세상에 없던 새로운 영역에 관한 것입니다.
    결국 본질은 과학이나 공학이나 같은 부분이 있다는 것입니다.

    통상 공학은 응용과학으로서 기초과학은 없는 것으로 화석화된 지식처럼 아는 분들이 많은데, 이런 고정관념을 깨는 것이 최성우님이 지적한 노벨상들이라고 생각합니다.

  • 댓글의 댓글 최성우 ()

    제가 작년의 신문칼럼 등을 비롯해서 그동안 여러번 언급을 했습니다만... 최근의 노벨상 트렌드 변화는 '기초, 응용 및 상품화' 연구개발의 경계가 갈수록 모호해지고 융합이 일반화되는 현대 과학기술의 특징과 시대적 요청을 반영했다고 생각합니다.
    19세기말에서 20세기초만 해도 중요한 발명과 기술의 상당수가 기초과학과는 거의 무관하게 이루어졌기 때문에... (예를 들면 증기기관의 탄생이 열역학보다 먼저 였고, 비행기를 발명한 라이트형제나 전구 등을 발명한 에디슨이 유체역학, 물리학이나 재료공학 등에 탁월한 지식을 보유하고 있었던 것도 전혀 아니었습니다.) 
    기초과학 영역 만큼이나 중요한 응용과학으로서 '공학'이라는 학문 분야가 체계화된 것은 거의 20세기 중후반으로 봐야할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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