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남자의 탄생

글쓴이
Simon
등록일
2003-05-04 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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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자의 탄생 전인권 지음 푸른숲 펴냄·1만3000원

'권위의 영광'에 빼앗긴 남성 자아


한국 남성들만큼 편하고 동시에 고통스러운 삶을 사는 사람들도 없을 것 같다. 한국 남성들은 남성이라는 단 한 가지 이유만으로 존재의 우위를 점하는 상황을 아무 고민 없이 받아들인다. 한국 남성들에게서는 거의 공통적으로 ‘남자다움’의 신화에 대한 맹목적인 추종, 주체의 결여, 인상적인 미성숙, 그리고 숭고함에 대한 감각의 결여 등이 발견된다. 그러나 그들은 행복해 보이지 않는다. 그들은 ‘남자다운 남자’가 되기 위해서 일생 동안 엄청난 심리적 억압을 겪으며 살아간다. 그리고 절대로 진실로 사랑하는 방법을 배우지 못한다.

정치학자 전인권씨는 <남자의 탄생>에서, 한국 남성들의 특질들이 어떻게 구성되는지 이해해 보려고 시도한다. 그는 어느 날 문득, 자신이 자신에 대해 거의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는 것, 그리고 외적인 성취들의 축적에도 불구하고 마음 깊이 불행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는 그 원인을 이해하기 위해 ‘자가정신분석’을 시작한다. 그것은 통렬하고 아름답다. 그는 어린 시절 자신을 키운 부모님의 공간으로 돌아가 본다. ‘아버지의 공간’과 ‘어머니의 공간’으로 나뉜 그 공간에서 그는 자신에 대한 완벽한 환상 속에서 성장한다. 아버지는 거의 추상적인 개념처럼 존재한다. 어머니의 살가움, 부드러움, 사랑, 그리고 현실적 지배에 비하면, 그는 군림하되 통치하지 않는 영국 국왕처럼 추상적인 존재이다. 아버지는 거의 신 같은 존재이다. 어머니는 하루 종일 신의 영광이 완벽해지게 만들기 위해서 시간을 쪼개고 쪼개서 사용하는 뛰어난 능력의 성스러운 하녀이다. 지은이는 이런 상황 안에서 ‘동굴 속 황제’로 키워진다.

지은이의 독창성은 이러한 정체성 형성 과정 안에서 한국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신분적 정체성’ 형성의 특질을 동시에 읽어낸다고 하는 사실이다. 그 어떤 것도 그 자체의 가치에 의하여 의미가 부여되지 않는다. 모든 것은 수직 방향으로 배열되어 있는, 이미 확정되어 있는 정체성을 주입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자신의 얼굴을 가지지 못한 어머니는, 이 정체성의 형성이 아무 탈없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능란한 술수를 무의식적으로 익힌 뛰어난 신의 에이전트로 움직인다. 어머니는 형제들 각자를 ‘분할해서 사랑’하고, 그렇게 함으로써, ‘분할해서 통치’한다.


지은이는 가정이라는 단위 안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이러한 수직적 정체성의 주입이 국가-사회 단위에서도 고스란히 반복되고 있다고 진단한다. 이러한 추상적 정체성의 형성은 한국 남성들에게서 독립적인 주체성의 형성을 가로막는다. 개인은 없다. 모든 것은 ‘아버지 조국과 가문과 사회조직의 영광’을 위하여 유보되어야 한다. 그 조국-가문-조직의 영광스런 아들이 되기 위하여, 아들은 독립적 자아를 구성하는 데 실패한다. 그는 일종의 조직원이다. 보스는 남성으로서의 ‘안전빵’인 존재 의미를 분양해 주지만, 잔혹한 복속을 명령한다. 어느 날부터인가, 아들의 마음에 복수의 열망이 싹트기 시작한다. 그러나 아들은 감히 ‘아버지 살해’를 실현하지 못한다. 그는 다만 추상적인 해결에 매달릴 뿐이다.

어쩌면 전인권으로부터 한국남성들의 자기 분석이 맹렬하게 시작될지도 모른다. 이 뒤늦게 찾아온 자아 찾기 열망은, 진정한 근대적 주체를 구축하기 위한 대장정의 출발인지도 모른다. 한국 남성들이여, 부디 그 일에 성공하기를, 조직원이 아닌, 홀로 존재를 향하여 출발하는 독립적인 주체들이 되어 주기를, 그리고 이윽고, 존재는 존재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구축된 존재의 의지적 유보 안에 있다는 것을 이해하게 되기를. 마치 자신의 아름다움을 감당할 수 없다는 듯이, 그것을 그냥 내보이면 그 잔인한 아름다움에 사람들의 눈이 멀어버릴까 봐 걱정스럽다는 듯이, 얼굴에 엷은 베일을 드리우고 사람들 곁으로 내려오고 있는 오월 햇살처럼.

쓴이: 시인 김정란
펀곳: Rannie.net


책/영화/S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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