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행운 - 전리층의 존재와 원자핵의 발견

글쓴이
최성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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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2-02 1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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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기술의 발전에서 우연과 행운이 실마리를 제공한 경우는 매우 많다. 즉 우연한 실수가 뜻밖의 계기가 되거나 꿈에서 영감을 얻거나 어린이들의 놀이에서 힌트를 얻는 경우 등인데, 이른바 세렌디피티(serendipity)라 불리며 이를 다룬 교양과학서적들도 적지 않다.
 필자 역시 이에 관련해서 여러 차례 글을 쓴 적이 있는데, 상당수는 워낙 널리 알려져서 이제는 진부한 느낌마저 없지 않다. 그러나 이처럼 인간의 행위에 의한 세렌디피티가 아닌, ‘자연의 섭리’ 자체가 행운으로 작용하는 드문 경우도 있다.

< 무선전신의 대서양 횡단을 가능하게 한 전리층의 존재 > 
 앞서서 언급한 적이 있지만, ‘노벨 발명상’ 혹은 ‘노벨 공학상’이라는 분야는 없기 때문에, 인류의 생활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획기적인 발명품이나 기술적 진보를 남기고서도 노벨상을 받지 못한 인물들이 적지 않았다. 기초과학과 응용기술, 공학의 경계가 급격히 모호해지는 2000년대 이후에 와서야, 기초과학보다는 기술적 성취에 가깝게 보이는 업적들로 노벨상(주로 노벨 물리학상)을 받는 이들이 늘고 있기는 하지만, 초기의 과학 분야 노벨상은 노벨의 유언에 따라 기초과학의 발전에 공헌한 이들로 한정되었다. 발명왕 에디슨(Thomas Edison; 1847-1931)조차도 노벨상을 받은 적이 없다. 
 여기에서 다소 예외로 보이는 경우가 무선전신의 발명으로 1909년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 마르코니(Guglielmo Marconi; 1874-1937)이다. 무선전신의 연구는 물론 상당한 전자기학 지식이 바탕이 되어야 하겠지만, 마르코니는 발명가이자 사업가로서 역량을 발휘한 인물이지, 전자기학 자체를 연구하여 업적을 남긴 물리학자로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필자의 개인적 생각으로는 마르코니가 물리학자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노벨 물리학상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무선전신의 발명 그 자체라기보다는 그것을 실용화하는 과정에서 전자기파의 실체 등을 잘 파악 수 있게 된 점이 아닐까 싶다. 즉 그는 당대 최고의 물리학자들보다도 더욱 큰 공헌을 남겼다고 볼 수 있다. 

 그중 대표적인 예가 바로 전리층(Ionosphere; 電離層)의 존재 발견이다. 당시 대부분의 물리학자들은 전자기파를 이용한 무선통신이 단거리는 가능할지 몰라도, 장거리 통신은 불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즉 지구가 둥글기 때문에, 송신한 전자기파가 수신기에 도달하지 못하거나 계속 위로 올라가서 결국 대기층에서 소멸되고 말 것이라고 본 것이다. 그러나 마르코니는 그들의 설명을 받아들이지 않고 무선전신의 연구를 계속하여, 영국과 프랑스 사이의 도버해협을 횡단하는 무선통신을 실현시켰을 뿐만 아니라, 대서양을 사이에 둔 영국과 캐나다의 대륙 간 무선 송수신에도 성공하여 세상을 놀랍게 만들었다.
 물리학자의 회의적 예상과는 달리 원거리 무선통신이 가능했던 것은 바로 지구 상공에 존재하는 전리층 덕분이었다. 대기권에서 이온 등으로 이루어진 전리층이 전자기파를 반사시키는 역할을 하여, 대륙을 가로질러 그 먼 거리까지 도달할 수 있었던 것이다. 물론 마르코니도 처음부터 전리층의 존재를 알고서 원거리 무선전신 실험을 한 것은 아니었으므로 행운이 따랐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개발자의 뚝심이 결국 최종 승리를 거둔 사례로서 오늘날에도 깊이 되새겨볼만한 교훈을 준다고도 하겠다. 마르코니는 결국 무선 연구 분야의 라이벌이자 동료였던 물리학자 브라운(Karl F. Braun; 1850-1918)과 공동으로 1909년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하였다.

< 고전역학적인 해석으로도 가능했던 원자핵의 발견 >
 원자핵의 존재를 처음으로 발견한 영국의 과학자 러더퍼드(Ernest Rutherford; 1871 -1937)의 산란 실험은 잘 알려져 있다. 과학의 역사에서도 대단히 중요한 실험의 하나로 꼽히는데, 그는 원자의 구조를 알기 위해 애쓰는 과정에서 금으로 만든 아주 얇은 막에 알파(α)입자를 발사하여 충돌시키는 실험을 조교들과 함께 수행하였다.
 대부분의 알파 입자들은 거의 그대로 통과하였지만, 일부는 큰 각도를 이루면서 산란되거나, 아예 금막을 통과하지 못한다는 놀라운 결과를 얻게 되었다. 그는 이 실험결과를 잘 분석하여, “원자는 대부분 빈 공간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원자의 중심부에는 양전하를 띤 원자핵이 있고, 그 주위를 음전하를 띤 전자가 돌고 있다”는 이른바 ‘유핵 원자모형’을 1911년에 발표하였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지 않은가? 원자나 전자와 같은 극미(極微)의 세계에서는 고전역학이 아닌 양자역학의 법칙이 적용된다. 물리학과 학부나 대학원에서 배우는 양자역학의 교과서에는 대개 맨 마지막장에 산란 이론(Scattering theory)이 상세히 나와 있기도 하다. 
 따라서 러더퍼드 역시 이 산란실험을 제대로 해석하기 위해서는 뉴턴의 운동방정식이 아닌, 양자역학의 슈뢰딩거 방정식을 적용해야만 하는데, 당시에는 양자역학이 정립되기 훨씬 이전이었다. 즉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원리나 슈뢰딩거의 파동방정식이 나온 것은 1925년 이후이다. 그러면 러더퍼드는 어떻게 산란실험을 통하여 원자핵의 존재를 밝혀낼 수 있었을까?

 그 이유는 매우 ‘다행스럽게도’ 러더퍼드의 산란실험은 고전역학으로 풀이하나 양자역학으로 풀이하나 거의 똑같은 결과가 나오기 때문이다. 즉 빠른 속도로 운동하는 계에서는 원칙적으로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을 적용해야 하지만, 빛에 비해 너무도 느린 대부분의 운동계에서는 고전역학을 적용해서 풀어도 거의 무방한 것과 유사한 이치이다.
 만약 전자(electron)의 질량이 양성자(proton)의 약 1800분의 1 정도로 작지 않고 양성자나 원자핵에 비해 큰 차이가 없다거나, 포텐셜의 분포가 실제와 크게 달라서 고전역학적인 해석과 양자역학적인 해석이 크게 달라지는 상황이었다면, 러더퍼드는 원자핵의 존재를 밝혀내기가 매우 어려웠을지도 모른다. 따라서 이러한 ‘행운’이 아니었더라면 원자 구조의 해석을 비롯한 현대과학의 발전도 상당히 늦추어졌을 가능성이 크다.
 다만 러더퍼드의 산란실험에서도 빠른 알파입자로 가벼운 원소의 핵에 매우 가깝게 접근시킬 때에는, 이들 입자들의 상호작용에서 나타나는 힘이 고전역학의 역제곱법칙에 따르지 않게 된다. 러더퍼드는 그 이유를 핵 내부의 복합적인 구조 때문이라고 설명하였으나, 나중에 양자역학이 발전함에 따라 고전역학과는 다른 양자역학적인 효과 때문임이 밝혀졌다.
 
                                                                                    By 최성우

이미지1 : 원거리 무선통신을 가능하게 하는 전리층 (저작권자: Savant-fou)
이미지2 : 러더퍼드 산란실험_기존의 원자모델에 따른 예상(위)와 실제의 실험 결과(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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