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글] "세계적인 민간연구소가 되려면....?"

글쓴이
최성우
등록일
2002-09-06 11:03
조회
6,410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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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1건
사실, 자꾸 미국과 같이 우리와는 역사적 배경과 전반적 사정이 판이하게
다른 나라의 예만 들면서, `우리는 왜 그렇게 못하느냐'는 식의 질타는 평
소에 필자로서 크게 내키지 않는 일이기는 하지만, 아무래도 마땅한 `벤치
마킹' 대상을 찾기 쉽지 않은 마당에 이번에 한번만 더 거론하지 않을 수
없겠다.

오늘날 미국 경제를 주름잡는 세계적인 대기업들은 오랜 역사와 전통에 빛
나는 민간연구소들을 두고 있는 경우가 많으며, 이들은 미국 과학기술 발
전에 핵심적 역할을 담당해 온 바 있다.
외형적으로도 수위를 다투면서 `경영학의 귀감'으로도 자주 거론되는 제너
럴 일렉트릭(GE)사는 바로 발명왕 에디슨의 개인연구소가 그 모태다. 몇 년
전 공룡 통신기업 AT&T사로부터 루슨트 테크놀로지사로 분리돼 나온 벨 연구
소는 물론 전화기의 발명자 벨로부터 유래된 곳으로서, 트랜지스터 등 온갖
신기술 신발명품의 산실로 꼽혀왔다. 2000년도 노벨물리학상 수상자 킬비를
배출한 텍사스인스트루먼트(TI)사는 반도체기술의 대표적 기업으로 알려져왔
고, 듀폰사 중앙연구소는 노벨화학상 수상자만도 여럿 배출하면서 화학산업의
발전에 견인차가 돼왔다.

1970년대 이후 우리나라 기업들도 산하에 민간연구소들을 설립해왔고, 이
들 중 상당수는 우리 나라가 몇몇 분야에서나마 세계적 경쟁력을 갖는 제
품들을 선보일 수 있게 된 데에 나름대로 기여를 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
나 과연 민간 연구소들에 대한 인식이 제대로 돼 있는지, 또한 그들이 기
대에 걸맞는 구실을 하는지는 심히 의문이다.

진정한 연구개발의 목적보다는 세금 감면 등 정부로부터의 온갖 혜택에만
눈이 어두워 설립했던 태생적 한계는 지금이라도 과연 극복됐는가.
영업이나 생산 부문에서는 연구소를 `하는 일도 없이 돈만 축내는' 집단으
로 보고 있지는 않은가. 심지어 최고 경영층조차도 연구개발의 특성에 대
한 이해도 없이 기초적 투자는 소홀히 한 채 `왜 당장 히트상품을 개발해
내지 못하느냐'고 다그치지는 않는가.

그 어렵던 IMF 구제금융시대가 닥치자, 정부출연 연구기관들도 마찬가지였
지만 바로 미래의 희망이 돼야 할 연구원들이 `제1순위'로 무더기로 내몰리
지 않았던가. 미국의 대기업들이 1930년대에 세계대공황이라는 최악의 환경
에서도 고급연구인력들을 보호하고 자유로운 기초연구를 보장해, 듀폰 같은
경우 나일론이라는 빅히트상품을 결국 성공시겼던 예와는 너무도 대조적이었
다.

근대적 기업과 과학기술의 역사가 일천한 우리 나라의 민간연구소들로서는
미국의 경우처럼 기초과학 연구까지 선도하면서 과학기술 발전에 중추적
구실을 하기는 힘들지도 모른다. 그러나 각 기업들이 내거는 화려한 구호
들과는 달리 `무늬만' 세계적인 연구소가 되지 않으려면, 연구원 및 경영진
의 겸허한 반성과 치열한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최성우/과학평론가hermes21@nownuri.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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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21세기를여는열쇠] 세계적 민간연구소 되려면...
뉴스제공시각 : 2001/1/29
출처 : 한겨레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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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배성원 ()

      그들 연구소와는 근 반세기 길게는 100년 정도의 터울이 지는군요. 그것도 급변하는 20세기에서. 앞으로 얼마나 시간이 흘러야 그 터울을 극복할 수 있을까요? 100년? 100년이라도 낙관적이지요...2배로 달려야 된다는 뜻인데. 아무리 기술 발전이 거의 포화상태에 도달했다 하더라도 윗글에서 언급한 주요 '마인드'의 문제는 100년도 더 걸릴겁니다.

  • 정문식 ()

      미국 또한 처음부터 이성적인 사회는 아니었을 것입니다. 마크 트웨인의 '도금시대'나 도스타인 베블렌의 '유한계급론'을 읽어 본다면 100년 전의 미국 사회는 지금의 한국 사회보다도 더 요지경이었져... 그러나 미국이 오늘날과 같은 길을 걸어 올 수 있었던 것은 시민들의 끊임없는 투쟁, 양식 있는 지성인의 건재, 유능한 지도자(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 같은 이), 이들을 현실화할 수 있는 막대한 경제력,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사회 구성원들을 각성시킬 수 있는 역사적 시련(대공황, 양차 세계 대전 등)을 많이 겪었기 때문이져... 저는 현재 한국의 경제력과 앞으로의 성장 잠재력으로 본다면 우리가 바라는 '좋은 사회'를 만들 수 있는 여력은 충분하다고 봅니다. 다만 부패한 사회 구조 때문에 잠재력이 있으면서도

  • 정문식 ()

      발휘를 못 하고 있는 것이져... 쉽게 말하자면 머리는 좋은데 공부하기를 싫어하는 학생이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게으른 천재'를 깨우기 위해서는 어떤 강력한 계기가 필요하듯이, 현재의 한국 사회가 각성을 하기 위해서는 어떤 역사적 시련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불행 반 다행 반으로 현재 그러한 길로 가고 있고여... 문제는 그러한 시련을 당해야 할 사람들은 교활하게 내빼고 아무 죄 없는 사람들이 역사가 주는 고통을 뒤집어쓴다는 것인데, 앞으로 호되게 당한다면(마치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처럼) 그런 꼼수도 불가능하지 않을까여? 다만 우리 사이엔지가 할 수 있는 일은 '과학기술'이라는 수단을 이용하여 그 때 민중들이 겪을 고통을 완화시켜 주는 게 사명이 아닐까 합니다.

  • 임호랑 ()

      그런데도 한쪽에서는 21세기는 과학기술의 시대가 아니고 지식경제의 시대니, 문화컨텐츠를 늘이고 디자인이나 영상/게임산업을 늘여야 한다고 하니.... 과연 그 정도로 세계가 탈과학기술 패러다임인지, 이제는 과학기술 발전은 멈췄는지.... 과학문맹이라는 것이 이렇게 무섭습니다. 자기에게 안 보이니까 없다라고까지 생각하는 겁니다. 한번으로도 부족해서 두번씩이나 IMF를 맞아야 할지.... 조국의 앞날이 정말 걱정됩니다. 그런데도 법조인이나 문과 경영인 들이 국가를 지도하겠다고 하니, 나라꼴이 어떻게 될런지... 대통령이 힘이나 안쎄면 또 몰라...

  • 정문식 ()

      그러나 불행하게도 국제 사회는 한국의 지도층이 나태하게 있을 정도로 한가롭지 않습니다. 그리고 정치경제적으로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 지도 알 수 없는 상황이고여... 지금 소위 기득권층이라는 자들도 그러한 세계적 단위의 정치경제적 재앙이 닥친다면 더 이상 도망칠 곳도 없을 것입니다. 지난 IMF 때는 그래도 힘 있고, 돈 있는 자들은 어디론가 내뺄 수 있는 이른바 '개구멍'이 많이 있었지만, 앞으로 그런 것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어쩌면 그러한 상황이 되어야 진정한 사회 개혁이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져... 현대의 자본주의가 그래도 이성적이며 인도적인 모습을 갖추게 된 것도 대공황과 히틀러로 상징되는 파시즘의 발호, 2차 세계 대전이라는 누구도(심지어 백만 장자라도) 피해갈 수 없는 무서운 재앙을 겪

  • 정문식 ()

      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아무튼 앞으로 역사의 흐름을 조용히 지켜보면서, 과학기술과 과학기술자의 '역사적 사명'(쓰고 보니 무슨 국민교육헌장 같군...)은 어디에 있는지 생각해 보는 것도 의미있는 일일 것입니다.

  • 김용국 ()

      최성우님께서 예를 들어주신 미국 기업의 세계적 연구소들을 보면 미국 외에도 다른 나라에도 연구소를 세워 활발한 연구를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IBM Research의 경우에는 이스라엘/스위스/일본/중국 등에 연구소를 두고 뉴욕의 Watson에 못지 않는 활발한 연구를 하고 있지요.

  • 김용국 ()

      개인적으로 무척 궁금했던 것 중의 하나는, 이러한 유수 기업의 연구소가 한국에 올 수는 없었을까 하는 것입니다. 지금은 수포로 돌아갔겠지만, 2000년 중반까지만해도 루슨트의 벨랩이 대전에 들어선다는 이야기에 가슴이 뛰기도 했는데 아무리 봐도 외국계 기업들은 한국에 연구/개발을 하는 기반을 만들려 하지 않는 까닭이 뭔지 모르겠습니다.

  • 김용국 ()

      이런 '제대로 된' 민간 연구소가 생기게 되면 국내 기업들에 자극도 되고 좋을텐데 말이지요. 혹자는 흘러가는 말로 국내에 있는 외국계 기업 사주들이 제조/개발/연구 하는 부분을 들여오기 싫어한다고 하던데(귀찮고 이익을 만들기가 영업을 하는 것보다 상대적으로 어려우니) 설마 이런 것이 사실은 아니겠지요..?

  • 김용국 ()

      아뭏든 최성우님의 지적은 무척 공감하고 있습니다. 국내 기업 소속 연구소가 Develop만을 하는 곳이라는 불리는 불명예를 어서 씻었으면 좋겠습니다.

  • 배성원 ()

      제대로 된 외국계 기업이 들어오지 않는 이유-뭘까요? 접근성 고려해서 수도권에 지을려니 땅값이 너무 비싸다. 아닐까요?^^. 농담이고요. 뭔가 심층적인 원인이 있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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