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직장일기 - 기술유출과 보안에 대한 단상

글쓴이
관전평
등록일
2002-10-06 09:41
조회
4,085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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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8건
최근의 "기술유출"관련 사건을 접하고 한국의 전 직장과 미국의 현 직장에서의 보안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한국에 있는 직장에서는 출,퇴근때마다 엑스레이, 마그네틱탐지기등등의 방법까지 동원해가며 보안을 강조했죠.  한국의 전 직장과 비교해서 현재 있는 직장의 보안상태를 살펴보면 한심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몇 억불짜리 프로젝트의 진행상황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노트북을 들고 집으로 출퇴근하는 사람들이 널렸지만, 한 번 보자는 사람도 없습니다.  이 사람들이 중점을 두는 보안조치는 그런 하드웨어보다는 사람에 있습니다. 지금까지 제가 본 미국식 보안조치는 다음과 같더군요.

1. 프로젝트의 관리를 철저하게 중앙집중화합니다.  대부분의 엔지니어는 한 부분만을 담당하게 하고 전체를 볼 수 있는 기회를 주지않지요.  굳이 알려고하면 모를 것도 없지만, 그렇게 한가하게 만들어주지는 않죠.  이를 위해서는 조직의 슬림화가 중요합니다.  매니저의 수를 최소화하는 것이죠.  한국처럼 중간관리자를 많이 만들어 놓으면 기술의 유출위험이 그만큼 커진다고 봐야죠.

2. 쓸데없는 문서를 남기지않습니다.  한국은 ISO다 뭐다해서 문서화를 강조하고, 무슨 일을 하던지 보고서로 만들어서 산처럼 쌓아놓죠.  주간보고, 월간보고, 실험보고... 참 지겹죠.  쌓아봏고 보지도 않으면서...  여기는 그대신 엄청 똑똑한 매니저를 뽑아서, 웬만하건 개 네들이 다 기억하고 있게합니다. 

3. 핵심인력을 따로 관리합니다.  중요인력들에게는 부사장,디렉터급의 멘터를 붙여서 집중관리하고, 때로는 고위층회의에 참가시키거나, 경영자교육을 시킨다거나, 외부 학회에서 회사를 대표해서 참가해서 유명해지도록하는 등 확실하게 애정을 표현해주죠.  승진과 급여에서 엄청 차별을 주는 건 당근입니다.

4. 그래도 이런 넘들이 스카웃 되어가는 경우, 1) 엄청난 가운터오퍼를 하거나, 2) 법률팀을 붙입니다.  어떤 사람은 separation interview용지가 책한권 분량이 되는 경우도 봤습니다.  그안에는 구체적인 기술분야에 대한 예를 쓰고, 이런 이런 기술을 니가 가는 회사가 이런이런 형태로 개발해서 발각되면 넌 끝장이다 이런 합의를 하지요. 대신 그 이외의 이유로 시비거는 경우는 별로 없습니다.  한국처럼 지저분하게 이게 내 기술이니 니 기술이니하고 싸우는 경우가 적은 것은 이렇게 평소에 계약에 철저한 문화의 결과가 아닐까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글을 쓰고 나니, 한국식 종적 조직구조, 계약문화의 차이, 인력관리의 미숙함등이 한국 기업에서 "기술유출" 논란이 일게 되는 원인이 되고 있는 듯 싶군요.

저도 여기서는 꽤나 한국에 대한 애정을 표현하는 척하지만, 기술과 관련되어서는 가급적 선을 짓습니다.  다른 미국회사 사람들은 안그러는 데, 의외로 한국 분들중에는 기술과 관련된 내용을 너무 구체적으로 물어보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같은 한국사람이니까 기술을 좀 누설해도 되지않느냐는 생각을 하시는 것인지, 기술보안과 관련된 윤리의식이 결여된 것이지는 모르지만 혹시 그런 애매모호함이 오히려 자신이 갖고있는 기술을 유출하게 되는 계기가 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한국회사에서 나오는 기술논문들이 안보여줘도 될 것까지 다 보여주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 낮은 기술보안의식을 보여주는 다른 예가 될 지도 모른다는 얘기로 끝을 맺지요.


 

 

  • 준형 ()

      관전평님 오래간만에 글 쓰셨네요^^

  • 쉼업 ()

      미국회사도 엄청 보고서 많다고 들었는데, 미국에서 계시던 분이 한국회사로 옮겨와서 보고서 체제를 엄청 강화했던(양적으로 주간,월간 등) 경험이 있거든요. 미국도 회사마다 다른건지..

  • 임호랑 ()

      참 아이러니한 부분인데요... 제가 체험해본 영국이나 미국회사의 경우, 기술보고서를 열심히들 작성하게 하지만, 우리처럼 행정보고서(일일, 주말, 월말, 분기, 반기 보고서)나 각종 근거서류(집행서류, 회계서류, 출장결산 등)가 거의 없습니다. 똑똑한 매니저와 사무원 선에서 거의 다 끝나죠. 우리는 유교적 대면(face to afce) 문화이면서, 일본식 서류문화(서류 근거주의)도 갖고 있습니다. 반면, 서구의 경우 문서문화이면서도 문서발생을 꼭 필요한 경우만 합니다. 역설적인 것 같지만, 나름대로 자기 문화를 발전시키면서 합리적인 선을 찾아가는 거지요. 이런 기술업무문화 개선없이 선진국 요원함다.

  • 관전평 ()

      보고서와 관련된 오해를 풀기위해 첨언하자면, 제 직장에서는 대부분의 실험과 관련된 자료들이 제가 프린트하고 풀로 붙이지않아도 데이터베이스로 처리가 됩니다.  굳이 제가 보고서를 쓸 필요가 없죠.  필요한 자료는 생기는 데로 팀룸에 넣어놓고 보면 그만이고요.  그러고보니, 미국에 있다 한국엔 간 후배가 그러더군요.  미국에서는 시스템이 하는 일은 한국에서는 일일이 손으로하고 있더라고요.  제가 너무 편하게 살다보니, 그 점을 간과했네요.

  • 인과응보 ()

      우리는 흔히 상급자에게만 보고하면 상급자가 알아서 위로 보고하고, 최상층부는 만나기조차 힘들지만, 일본기업은 업무관계로 말단이 최상층부를 만나기가 그렇게 어렵지 않습니다. 일본 어느기업은 최상층부에서 말단이 하는 일까지 일일히 알도록 월단위로 보고합니다. 다시말해 상부와 말단이 알아야할 업무가 다르다고 생각하는 우리나라 기업과는 차이가 있죠. 나쁘게 말하면, 중간간부의 기능이 약화되거나 유명무실해질수가 있읍니다. 심지어 요즘 일본의 어떤기업은 메트릭스 조직까지 만들어서, 서로다른 중간간부들이 서로 견제하도록 만들었읍니다. 미국이건 일본이건 중간관리자의 역할이 축소되는 것은 공통점인것 같습니다.

  • 인과응보 ()

      하지만 대기업에서 이런 조직들이 효율을 발휘하려면, 최상층부의 관리자는 management와 research & development 둘다 할수 있어야합니다. 완전히 슈퍼맨이 되어야하지요. 그래서 제가 있었던 연구소장(전무급)의 별명도 슈퍼맨이었읍니다. 전무로 경영을 하면서, SCI논문을 자기혼자의 힘으로 쓰더군요. 거짓말인줄 알았는데, 정말 혼자힘으로 써서 공동저자도 없이 발표하는 것을 보았읍니다.

  • 김용국 ()

      관전평님의 말씀을 들으니 정말 제가 있는 곳의 상황이 한 눈에 들어 오는 것 같습니다. 한가지 요즘은 한국기업에서도 그룹웨어등을 많이 사용한다고 들었습니다. 덕분에 보고서나 문서들을 종이로 남기진 않지만, 그래도 여전히 소모적인 작업이 많은 것은 사실입니다. 어찌보면 미국에서는 일종의 job security 라는 암묵적 동의하에 문서화작업을 대충하는 경향이 있는 것도 같습니다만....전 아직 경험이 많지 않아서 잘 확신은 못하겠네요.

  • 김용국 ()

      job security 라는 웃지못할 단어는 정말 심각하게 작용하는 것 같습니다.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남에게 다 알려주지 않으면서 일을 같이 해나가는 것을 상상해 보십시요. 상당히 갑갑해 지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이런것은 자기 위치를 지키기 위한 일종의 기본 방어 행동으로 이해가 되고 있다니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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