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사때의 기억들

글쓴이
300ZX
등록일
2002-10-19 13:20
조회
5,766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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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건
댓글
11건
제가 경험한 범주내에서 말씀드리는 것이오니 오해 없으시길 바라겠습니다.

미국 xx대학 박사과정에 있는 학생입니다. 저는 한국에서 석사를 끝 마치지않고
미국에 와서 다시 석사부터 시작했었습니다. 당시의 분위기는 한국과 전혀 달라서
처음에는 조금 혼란스러웠습니다. 한국에서는 모모 기업과 공동으로 개발하는
그런 연구원 같은 생활을 계속해왔는데 미국에 오니 석사과정이 프로젝트는 커녕
숙제하기에 바빠서 한편으로는 학부로 다시 내려온것 같다는 실망도 많이 했었죠.
그런데 몇 학기 지나고보니 생각이 달라지더군요. 제가 다녔던 미국 학교는 표현이
조금 웃기실지 모르겠지만 학교는 학생을 교육 시키고 생각할 시간을 많이 주는
교육 기관이지 학생들의 노동력을 필요로 하는 회사가 아니라는 점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한국에서는 이상하게도 대학원에서 전공 공부를 체계적으로
심화시켜 공부한다는것 자체가 어딘가에 구걸하는 모습과 같지 않나 생각되는군요.
표현이 조금 과장 되었지만 학교에서 공부한다는 생각보다는 일한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었기 때문입니다. 보통 학생들도 그런가부다 생각했었던것 같고요.
저의 경우 프로젝트가 논문 테마와 연결된다고 해도 관련된 이론을 누구한테도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배워보질 못했고 거의 독학이었습니다. 당시 제가 하고 싶은
분야와 잘 맞아서 그런대로 재미가 있어서 다행이긴 했었습니다.

학교의 가장 기본인 수업은 교수님 마다 다르지만 일단 자기가 관심없는 분야의
강의는 귀에 잘 들어오지 않았고 전체적으로 대학원 수업은 그냥 교수님들의
개인기가 녹슬지 않게 해주는 그런 시간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평가역시도 평소에
안면이 있는 교수님은 매정하지 않게 학점을 주셨었죠. 그렇지만 미국에서 지겹지만
꾸준히 수업을 듣다보니 교수님들의 수업준비와 학생들의 참여는 한국의 그것과는
사뭇 다르다는것을 많이 느꼈습니다. 레포트를 받아보면 정말 자세히도 들여다봤다는
감동과 두려움이 교차합니다. 혹시 다른 한국의 대학에서도 교수님이 직접 대학원생들의
레포트를 그렇게 철저하게 체크해 주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지겹도록 평가에
공정한 것은 미국에서 수업을 들어본 분이시라면 공감하실겁니다. 지금 느끼는 한가지
의문은 외국에서 학위하신 분들이 많았는데 어떻게 수업이 그렇게 차이가 나는가
하는것입니다. 연구소화 되어버린 전체적인 한국학교 분위기 때문일까요?

처음 미국에 와서는 쏟아지는 숙제와 보고서, 각종 시험에 감히 조교는 커녕
프로젝트 참여는 정말 딴나라 이야기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니
석사과정은 수업을 통해서 반 강제적이나마 체계적으로 배워야할 시기이지
싼 노동력을 제공하면서 도제식 분위기를 익히는 시기는 아니라는겁니다.
물론 한국의 대학원 생활은 수업에서 다루지 못하는 실제적인 일들을 긴박하게
처리하는 경험을 할 수 있어서 장점이 있지만 반면에 조금더 개인의 미래에
초점을 맞추어보면 그만큼 또다른 기회를 놓칠 수 있는 치명적인 단점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무튼 제가 한국의 학교들을 이렇다 저렇다 평가할 입장은
아니며 그 사정을 모르는것도 아니지만 이제는 한국의 학교들이 다시 학교 본연의
모습을 찾아야할 때가 아닌가 싶어서 한 말씀 올려보았습니다.

  • 트리비어드 ()

      정말 동감입니다. 우리나라 교수들이 하는 말이 미국에도 우리처럼 많은 장비는 없다고 하는데...연구를 안하고 개발을 하려니까 장비가 필요한 겁니다.

  • 사색자 ()

      꼭 그렇지만은 않은거 같습니다. 미국에서 석사과정중에 받은 지식전수체계에 대해서 쓰신거 같은데, 영국은 그와는 반대입니다. 수업석사과정이 있기도하지만, 대부분의 리서치과정 (연구석사 그리고 박사과정)은 코스워크가 없습니다. 옥스브릿지와 같이 일부 예외적으로 코스워크를 요구하는 대학이 있다고 (카더라통신) 하지만 대부분의 영국대학은 코스워크를 필요로하지 않고 학생 스스로 문제를 헤쳐나가는 방식입니다. 지도교수는 토론의 상대자역할을 해줍니다. 문제를 파악하고 관련이론을 습득하고 해결해나가는 과정은 전적으로 학생의 책임입니다.

  • 사색자 ()

      따라서 연구과정이라는 석사과정 이상부터의 수업은 제가 보기에는 님의 주장처럼 체계적으로 지식을 "배움"의 시기라고 단정지을 수는 없을거 같습니다. 한국의 많은 부분들이 미국의 거울역할을 하기때문에 미국식 체계가 모범답안으로 보이는거 같습니다만, 조금만 눈을 돌려보면 세상이 더 다양하다는 것을 느끼실 수 있을겁니다. 당장 영어 액센트만 해도 미국식 액센트를 정답으로 가르키지만 실제로 72개국의 CW를 포함한 국가의 표준영어는 영국액센트쪽에 가깝지 않나 싶네요. (실상은 영국에도 표준영어가 없습니다만..:)  ) 여하튼, 노동력의 착취가 한국대학원의 문제이긴 하지만, 수업체계나 지식습득 체계에 대해서는 미국이 정답일 수도 없고, 한국은 나름대로의 방향으로 나아가도 무방하리라 봅니다.

  • 배성원 ()

      하하하...사색자님^^ 어느 시스템이나 제대로 된다면 어느 쪽인들 어떻습니까? 어느 쪽이든지 결론은 학생들이 공부하게끔 한다는 것 아닐까요? 한국은....한국의 대학원 생활은 수업에서 다루지 못하는 실제적인 일들을 긴박하게....해보는 거의 직장생활이지요. 가장 큰 차이점은 거기 있다고 생각합니다. 소위 잘 나간다는 몇몇 대학에서도 마찬가지 입니다. 이런 식으로 대학원의 알맹이가 주저앉아 버린다면 외부적인 시스템을 아무리 개혁해도 근본적인 치유는 힘들다고 생각합니다. 현재의 석.박사 과정은 어찌보면 자신의 실력향상 보다는 교수의 편의에 더 많이 희생되고 있다고 봅니다. 책보고 고민해야 할 시간에 해주어야 할 일-공부가 아닌-이 너무 많습니다. 원래 그 일을 해야 할 사람은 누구일까요? 교수일까요?

  • 배성원 ()

      물론 교수가 많은 부분을 스스로 해결해야 겠지만 과도하게 요구돼는 페이퍼 잡은 외부적 환경부문에서 줄여주어야 하고 대학내 지원조직에서도 지금보다 좀 더 근거리에서 실제적인 지원업무를 맡아주어야 할 겁니다. 교수와 대학원생들을 연구와 공부의 자리로 돌려놓아 주어야 우리 대학의 살길이 열릴겁니다.

  • 사색자 ()

      배성원님 말씀도 새겨 듣겠습니다. 제가 한국에서 대학원 동기들과는 친하게 지냈지만, 직접 대학원 생활을 해보진 못해서요. 한번은 대학원 동기의 프로젝트가 몇개나 걸려있는가 물어보니 열손가락으로 꼽다가 더 기억 안나서 못세겠다고 하더라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이런 황당한 일들때문에 프로젝트를 해나가면서 배운다는 실용주의적인(?) 취지가 무색해지는 것이지, 프로젝트를 수행하면서 테마를 잡고 공학적 지식을 심화한다는 자체가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배성원님 말씀대로 이렇든 저렇든 결국 원생으로 하여금 스스로 고민을 하고 배워나가도록 하면 된다고 봅니다. 그런데, 영국에서는 보통 프로젝트 혹은 테마 하나를 잡고 그것을 최소 3년간의 기간을 연구해가면서 학위논문을 써나갑니다. 한국처럼 복수개의 프로젝트를

  • 사색자 ()

      위에서 말씀드린바와 같이 한 개인에게 책임지우면 배성원님 말씀대로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잡무만 하다가 졸업하는 경우가 생깁니다. 이것은 어떤 식으로든지 막아야 할 악습이라고 봅니다. 그런데, 프로젝트 개당 걸린 수입도 문제라서 학생 한명당 프로젝트 혹은 테마 하나로는 실험실 유지가 힘들다는 것이 또 다른 문제점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결국 학계에 주어지는 프로젝트비 또 그안에 포함된 연구원의 인건비는 저평가되어있지 않나 추측을 해봅니다. 프로젝트 수주단계에서부터 이공계 저평가가 시작되는 것은 아닌가요? 단적으로, 프로젝트에 포함된 인건비가 5년전과 비교해서 어느정도 상승하였는가 궁금하네요.

  • fall ()

      위에서 좋은 말씀들 많이 해주셨는데요. 프로젝트를 수행하고나도 별로 도움이 안 되는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물론 도움이 되는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만.. 도움이 안된다는 경우는.. 업무(?) 내용이 학문적인것에서 많이 벗어나는경우 몇달동안 고생해서 결과 보고서 제출해도.. 남는 논문도 하나없고.. 특허도 없고.. 그렇다고 돈을 많이 버는것도 아니구요.. 결국 졸업하는데 별 도움을 주지 못하는 경우입니다.

  • fall ()

      더 큰문제는 이러한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학생이 처음부터 결정권이 전무하기 때문에 울며겨자먹기로 일을 해야한다는 문제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 쉼업 ()

      제 생각엔 석사과정 부터는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고 봅니다. 학부로 돌아간 듯이 책만 잡고 앉아 있는 것은 별로고요, 그런 경우라면 빨리 졸업하고 박사로 넘어가야 한다고 봅니다. 다만, 대부분의 한국의 경우처럼 너무 프로젝트에 얽메여 학술적인 능력배양을 도외시해선 안되겠지요.

  • 쉼업 ()

      미국의 대학도 마찬가지로 학생들의 노동력을 필요로 하는 회사가 되어가고 있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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