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 : 경향의 눈]"전투기와 빵과 안보" -- 이런 견해도 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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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1-14 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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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의 눈]전투기와 빵과 안보





〈이대근·논설위원〉


1998년 상반기 어느날 미국 노스 캐롤라이나 세이머 존슨 미 공군기지. F15E 전폭기가 출격한다. 목적지는 플로리다 폭격장. 전폭기는 폭격장에 이르자 콘크리트로 만든 모조 폭탄 BDU-38을 투하한다. 북한 핵공격 훈련이다.


몇 달 뒤 10월9일 서울. 주한미군 레이먼드 아이어스 중장은 외신기자들에게 “북한이 공격할 준비를 하고 있다는 분명한 신호가 있을 경우 북한을 선제공격할 수 있다”고 밝혔다. 셀릭 해리슨도 최근 그의 저서 ‘코리안 엔드 게임’에서 펜타곤의 한국전쟁 공식 시나리오인 ‘작전계획 5027’에 북한 선제공격 가능성이 포함되어 있다고 주장했다. 미 전략사령부(STRATCOM)는 1995년 보고서에서 핵무기 선제사용을 금하는 정책을 거부하고 “미국의 응전이 사후 조치일 수도 있지만, 예방적일 수도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미국이 1994년 10월 서명한 북·미 제네바 기본합의 제3장 1절은 이렇게 되어 있다. “미국은 북한에 대한 핵무기 불위협 또는 불사용에 관한 공식 보장을 제공한다”. 그 다음해 4월 미국은 국제사회에 또 한가지 공약을 했다. “미국이 핵공격을 받지 않는 한 핵무기를 사용하지 않겠다”. 그 1주일 전에는 미국을 포함한 5개 유엔안보리 상임이사국이 “비핵 국가가 핵공격을 받을 경우 적극 지원한다”는 보장도 했다.


미국이 ‘핵불사용 보장’을 하고도 왜 선제공격 운운하느냐고 지금와서 묻는다면, 매우 순진한 질문이다. 합의를 지키고 안 지키고는 미국 마음이기 때문이다. 북한은 최근 러시아라는 새로운 우방을 얻었지만, 여전히 국제적으로 고립무원의 처지에 있다. 이념은 낡았고, 경제는 망가졌고, 군사력은 충분하지 않다. 무엇이 선제공격의 빌미가 될지 알 수 없는 두려움, 하루 하루 생존의 고비를 넘겨야 하는 상황이다. 그 앞에서 ‘제네바 합의’는 한가한 소리일 뿐이다. 북한에 미국의 핵 불사용 보장만 믿고 생업에 종사하라고 누가 말할 수 있는가. 농축우라늄 핵개발 계획도 안보 불안을 느끼는 북한 나름의 ‘합리적 선택’일 뿐이다. 부시 미 행정부가 지난해 ‘핵태세 검토’(NPR)에서 북한 등 7개국을 핵공격 대상 국가로 선정하고 대량살상무기 보유국을 선제공격할 수 있다는 신 국가안보전략을 발표했을 때 북한은 “우리의 선택은 옳았다”고 무릎을 쳤을 것이다.


북한은 지난해 경제관리개선책도 추구하고 대외관계 개선에도 나서 보았다. 그런 변화는 북한을 개혁·개방의 길로 인도할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 그 행진은 미국의 봉쇄에 막혀 있다. 이제 앉아서 죽느냐, 미국과 협상의 길을 트느냐 양자택일만 남아 있다. 결국 북한은 모든 자원을 동원해 미국과의 건곤일척(乾坤一擲)의 승부에 나서야 했다. 그래도 미국은 북한이 안고 있는 불안을 이해하려는 노력도, 탈출구를 열어주려는 생각도 하지 않는다.


물론 이럴 때에도 방법은 있다. 남북간 철도·도로 연결 때 북한이 해본 것이다. 대화하고 상호 침투 가능성을 열어둠으로써 상대를 안심시키는 전략이다. 불안을 쥐고 있는 게 아니라 내놓는 발상의 전환이다. 그게 북한이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를 했어도 남북한이 서로 크게 불안을 느끼지 않는 이유다. 미국이 한국에 ‘안보불감증’ 시비를 걸어도 감동을 주지 못하는 까닭이기도 하다. 그런데 그런 발상의 전환은 사실 미국도 못하고 있다. 세계 최고의 군사비를 쏟아 붓고도, 여전히 불안하다며 전쟁준비를 하는 자신을 돌아보면, 눈치챌 때도 됐는데 말이다. 안보란 군사만 가지고 안된다는 사실을.


지난 1일 취임한 브라질의 노동자 출신 대통령 룰라는 그것을 했다. 전투기 살 돈(7억6천만달러)으로 빵을 사기로 결정한 것이다. 안보도 중요하지만 “그에 앞서 튼튼하고 건전한 사고를 가진 국민이 존재해야 한다”면서 전투기 구입 예산을 ‘기아와의 전쟁’에 투입키로 했다. 그는 불안이 밖이 아니라 안에서 나오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음이 틀림없다.


그런 전환이 없이는 설사 북·미 불가침 조약을 체결한다 해도 북·미간 평화는 오기 어렵다. 클린턴 행정부 때 북·미 공동성명에서 북한안전을 보장했음에도 불구하고 부시 행정부의 체제보장이 필요하듯, 북·미는 또 다른 불가침 공약을 위한 ‘북핵 위기’를 필요로 할 것이다. 남미 좌파 대통령의 통찰력이 돋보인다.


〈이대근 grt@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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