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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고시를 보게 되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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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연생 작성일2002-05-15 2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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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원래 자유게시판에 있는 것이지만 여기다가 전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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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공무원은 위에서부터 대통령 - 장관 - 차관 - 국장 - 실장 - 부장 - 과장 - 사무관 - 주사 - 서기의 순으로 계층제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어떤 위치에 있건 각자의 위치에서 나름대로 "국가"의 의사를 결정하는 과정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대통령의 목소리에는 장관의 의지가, 장관의 목소리에는 국장들의 의지가, 국장들의 말에는 결국 사무관들의 의지가 녹아있기 때문입니다.
(특히나, 대통령의 머릿속이 텅텅 비어있다면 더욱 그러하겠죠...)

그러나, 가능하다면 조금이라도 더 상위직에 있는 편이 좀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물론 거기에는 개인의 적성과 능력의 문제가 있습니다.
누구나 국가적 과업의 수행에 참여할 수 있기는 하나, 능력이 허락하면 좀 더 높은 위치에 가는 것이 효율적이기에 각자 자신의 역량에 맞춰 자신의 길을 선택하여야 할 것입니다(그것을 그 개인의 잘나고 못나고의 문제로 환원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처음에는 저도 행정고시를 준비했고 실제로 재경직 1차에 합격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같이 고시를 준비하던 친구(이 친구는 정치학과) 하나가 저에게 사시를 권해서 결국 사시로 방향을 돌린 것입니다.

친구 : 야, 네가 고시공부하는 줄은 몰랐다.

나 : 응,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됬다.

중략

친구 : 그런데 너 왜 고시공부를 하려고 마음먹었냐?

나 : 음. 고위 관료가 되어서 이나라 과학기술을 진흥시키는 것이 내 꿈이다.

친구 : 그럼 네 목표는?

나 : 글쎄... 최대한 높은 지위에 오르는 것이 더 큰 일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유리하겠지. 이를테면 과학기술처 장관이나 상공부 장관. 가능하면 국무총리.

친구 : 그러냐? 그렇다면 행시를 볼 것이 아니라 사시를 보지 그러냐?

나 : 왜?

친구 : 행시 합격해 봐야 기껏해야 국장이다. 만약 장관을 노린다면 사시를 본 후 사회적 명망을 쌓아서 정치가가 되야 한다.

나 : 그러냐?


희화적으로 쓰기는 했습니다만, 대충 이런 사유로 저는 행시 1차에 합격했음에도 그 다음해 2차는 응시하지도 않고 막바로 사시로 전향한 것입니다.

나이 30을 넘게 먹고 이딴 소리 하는 것도 우습지만, 세상에는 저같은 사람도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니, 있는 정도가 아니라 많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같은 사람이 10명이 있어야 그중에 장관도 나오고
50명 쯤 있어야 그중에 국무총리도 나오고
100명 쯤 있어야 대통령도 한 명 나오고 하지 않겠습니까?

우습게 들릴지 모르나, 그래서 저는 이 게시판에 글을 쓰는 것입니다.
왜 하필 이공계냐고요?
"이공계"이기 때문에 인문계보다 더 뛰어나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이공계" 출신 중에서도 어쩌다 한명씩은 대정치가가 나와야 이나라가 제대로 굴러가지 않겠습니까?

어떤 분은 냉소적으로 어떤 분은 따뜻한 눈길로 저에게 "잘해 봐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예, 잘 하겠습니다. 정말 잘 해 보겠습니다.

그러나, 저 하나로는 턱도 없습니다.
저같은 사람이 많아야 비로소 저같은 사람이 "잘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다시 한 번 부르짖는 것입니다. "이공계생들이여 고시공부를 하라"고 말입니다.

물론, 붙는 사람보다 떨어지는 사람이 더 많을 것입니다.
그러나, 어찌 전사자를 각오하지 않고 전쟁을 시작할 수 있단 말입니까?
떨어질 것을 각오하지 않는다면 어찌 우리가 저들 - 리스크를 감당하고 그 위치에 오른 사람들 - 을 일방적으로 매도할 수 있겠습니까?

안정된 진로 - 이 표현을 싫어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만, 우리 솔직해집시다. 우리는 분명 인문계생들보다는 안정된 진로를 가지고 있습니다 - 를 놓치기 싫어하면서 그 안정된 진로 속에서 성장해 나가다가 어느날 정치가나 관료로 발탁되기를 바란다면 저들은 우리더러 도둑놈 심보라고 욕할 것입니다.

댓글 1

1님의 댓글

1

  구구절절 옳은 말씁니다...쩝...우리모두 반성해야 합니다...감나무 밑에서 감 떨어지기를 기다렸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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