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하버와 암모니아 합성

글쓴이
최성우
등록일
2003-07-02 18:15
조회
14,782회
추천
1건
댓글
0건
<사진 설명> 암모니아의 대량 합성 방법을 개발한 하버(위)와 보쉬(아래)




화학자 하버와 암모니아 합성


비료의 3요소는 무엇인가? 라는 질문에 대해 여러분들은 초등학교 적부터 질소(N), 인산(P), 칼륨(K)이라고 배워왔을 것이다. 그런데, 화학비료를 발명한 사람들이 누구인지는 아직 잘 모르시는 분들도 있을 것이다.

화학비료를 처음 발명한 사람은 유기화학의 창시자라 불리는 리비히(Liebig; 1803-1873)가 꼽힌다. 그는 암염 중의 염화칼륨 성분을 추출해서 칼륨비료로 사용했고, 동물을 뼈를 갈아 만든 골분에 황산을 섞어 제조한 과인산석회를 인산비료로 썼다. 이후 다른 화학비료를 만드는 방법도 잇달아 개발되는 한편, 남미의 칠레에서 주로 나는 칠레초석이 질소비료로 널리 쓰였다. 칠레초석의 주성분인 질산나트륨으로부터 질소비료를 만들어 식물에 공급하는 것이었는데, 유럽 각국의 농토에는 먼 남미에서 수입된 칠레초석을 원료로 한 비료가 많이 뿌려졌다.

그런데 크룩스 방전관을 발명하여 X선 발견의 실마리를 제공했던 영국의 화학자 크룩스는 1898년에 칠레초석이 곧 고갈될 경우에 대비하라고 경고하였다. 즉, 전세계의 밀 수확은 지나치게 칠레초석에만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당시의 추세라면 수십년 안에 칠레초석이 바닥나서 세계적인 대기근이 올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대안으로서, 공기 중의 질소로부터 인공적으로 질소비료를 합성하는 방법을 속히 찾을 것을 권고하였다.

당시 영국 과학진흥협회 회장이었던 크룩스의 이발언은 세계 각국에 큰 충격을 주었다. 특히 그 당시에 영국이나 프랑스처럼 해외에 식민지를 많이 가지고 있지 못했던 독일로서는 더욱 큰일이 아닐 수 없었다. 만약 전쟁으로 뱃길이 막히기라도 한다면 독일은 엄청난 위기에 몰릴 것이 뻔했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독일의 과학자들은, 공기 성분의 80%를 차지하는 질소로부터 화학비료를 개발하는 방법에 열중하였다. 그때까지는 아무 쓸모도 없는 '죽은 공기'로만 여겨졌던 질소가 인류를 먹여 살릴 수 있는 귀중한 자원으로 떠오른 것이었다.

그중 한사람이었던 칼스루에 공과대학의 프리츠 하버(Fritz Harhber; 1868-1934)는 1908년 질소와 수소로 암모니아를 합성하는 이론을 발표하였다. 암모니아로부터 질산을 만들 수 있는 방법은 오스트발트(Wihelm Ostwald; 1853-1932)에 의해 제시되었으므로, 암모니아를 대량으로 합성할 수 있다면 질소비료 문제가 해결되는 셈이었다. 그러나, 반응조건이 200기압과 온도 500℃라는 엄청난 고온, 고압을 요구하였기 때문에 이를 실용화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오늘날의 기술로는 그다지 어렵지 않겠지만, 당시로서는 200기압과 500℃를 견디는 가마솥을 만드는 것도 보통 문제가 아니었던 것이다.

이 일에 도전한 것은 당시 독일 최대의 화학회사였던 바스프 사의 기술자 칼 보쉬(Karl Bosch; 1874-1940)였다. 바스프 사는 하버의 암모니아 합성법 특허를 구입하였고, 보쉬를 비롯한 바스프의 기술진은 하버 교수와 함께 실용화를 위한 공정개발에 나섰다. 오늘날의 연구개발 과정에서 빈번히 볼 수 있는 '산학협동' 연구가 시작된 것이었다.
처음에는 가마솥이 압력을 견디지 못하고 폭발하는 등, 숱한 어려움과 위험이 있었으나, 공정을 개선하고 좀 더 값싼 촉매를 찾으면서 제조효율을 높이려 수많은 실험을 계속한 끝에, 1913년 9월에 드디어 실용적인 암모니아의 합성에 성공하였다. 화학교과서에도 소개되었듯이, 이러한 암모니아 합성법은 그들의 이름을 따서 '하버-보쉬법'이라 불린다.

그러나, 하버와 보쉬의 암모니아 합성 성공 직후인 1914년 7월, 전 유럽은 제1차 세계대전의 포화에 휘말리게 된다. 영국, 프랑스를 비롯한 연합군은 해상봉쇄를 통하여 칠레초석이 독일로 들어가지 못하도록 철저히 막았다.
칠레초석은 질소비료의 원료일 뿐 아니라, 화약을 만드는 데에도 쓰였으므로 전쟁시 매우 귀중한 자원이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연합군 측에서는 화약의 원료가 바닥난 독일이 오래 버티지 못하고 곧 항복할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놀랍게도 독일은 전투에서 충분한 화약을 쓰면서 4년간이나 전쟁을 지속하였다.

1918년 전쟁이 연합군의 승리로 끝나고, 독일의 주요 시설이 연합군에 접수된 후 그 비밀은 풀렸다. 카이저 빌헬름 연구소장으로 일하던 하버가 독일 군부의 요청으로 암모니아로부터 질산을 제조하여 화약의 원료로 제공했던 것이다. 아울러 암모니아로부터 질소비료도 만들 수 있었기 때문에 독일은 예상보다 오랫동안 버틸 수 있었다. 하버는 전쟁 중 독가스를 화학무기로 이용하는 연구에도 참여하였으나, 실전에서 별 효과를 거두지는 못했다.

하버는 화학반응에서의 열역학 연구와 암모니아 합성법 발견의 공로로 1918년도 노벨화학상 후보로 지명되었다. 그러나, 각국의 수많은과학자들이 이에 반발하였다. 독일의 입장에서 보면 하버는 헌신적이고 애국적인 과학자였겠지만, 연합군 측에서 보면 적국의 전쟁을 도운 '전범'이었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하버를 반인도주의적 범죄자라 비난했고, 심지어 다른 노벨상 수상자는 전쟁이 끝난 후 열린 시상식에 참석을 거부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하버는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전쟁 후에도 독일의 부흥을 위한 여러 연구에 혼신의 힘을 쏟았다. 그는 유태인 출신이었지만, 자신이 독일국민이라는 것을 자랑스러워했고, 많은 사람들은 그를 애국적인 화학자라 인정하였다.

그러나 1933년 나찌가 정권을 잡은 후 상황은 급변하였다. 히틀러의 유태인 박해정책에 따라 모든 유태인의 공직 취임은 금지되었고, 하버의 연구소에서도 많은 유태인 학자들이 탄압을 받고 쫓겨났다. 나찌정권은 예전의 공로를 고려해서인지 하버에게만은 예외를 인정하겠다고 했으나, 하버는 동료들과 차별대우를 받기 싫다고 항의하면서 연구소장직을 사임할 뜻을 밝혔다. 하버는 영국으로 건너갔고, 이듬해인 1934년 여행 도중 스위스에서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한편, 암모니아의 합성법인 하버-보쉬법은 1차대전 후 세계 각국으로 전파되어 질소비료 생산에 이용됨으로써 식량의 증산에 크게 기여하였다. 또한, 과학자 하버와 기술자 보쉬의 산학협동 결과 성공한 암모니아 합성의 실용화는 이후 과학기술의 발전에 있어서 중요한 연구개발의 모델을 제시해 었다고 볼 수 있으며, 질소비료 제조산업은 거대화된 현대적 중화학공업의 시초가 되었다.
우리나라에서도 1960년대 이후 경제개발이 본격화되면서 건설된 울산의 질소비료 공장은 한동안 중화학공업의 상징처럼 여겨져 왔다.

목록


과학기술칼럼

게시판 리스트
번호 제목 글쓴이 등록일 조회 추천
1342 [이야기] 히틀러와 나치 하의 과학자들 댓글 1 최성우 07-16 8131 1
1341 태양전지 자동차로 3,700킬로미터를 달린다 김덕양 07-16 5264 0
1340 [해외] 벼 태풍걱정 끝 댓글 1 최희규 07-14 5102 0
1339 에린 브로코비치 2탄? - 이번엔 정크 사이언스 ! 댓글 2 Simon 07-13 7223 0
1338 컬럼비아호 이전 아틀란티스호 귀환 때도 문제 있었다 Simon 07-11 6576 0
1337 [이야기] 나폴레옹과 3인의 수학자 ... 최성우 07-11 7400 0
1336 [해외] NASA - 현재까지 가장 오래된 혹성발견 최희규 07-11 4875 0
1335 [해외] 콜럼비아호 폭발 원인 재현실험 최희규 07-09 6265 0
1334 [연재] 연료전지 시대는 오는가 (1) 자동차 - 3 박상욱 07-09 5465 0
1333 [이야기] "한붓 그리기"... 댓글 1 최성우 07-07 8576 0
1332 해파리서 추출한 형광 단백질 (GFP)의 비밀 Simon 07-07 13821 0
1331 [동향] 제4회 한국 에어로졸 & 입자공학 학술대회 최희규 07-07 5552 0
1330 [연재] 연료전지 시대는 오는가 (1) 자동차 - 2 댓글 5 박상욱 07-04 6782 1
1329 [이야기] "컴퓨터의 최초 발명자는 누구인가?" 댓글 2 최성우 07-04 47252 1
1328 5개의 쿼크로 이루어진 입자 발견 불만이 07-02 7389 0
열람중 [이야기] 하버와 암모니아 합성 최성우 07-02 14783 1
1326 [연재] 연료전지 시대는 오는가 (1) 자동차 - 1 박상욱 07-02 5623 0
1325 NEC - 획기적인 기술, 2년 내 실용화 최희규 07-02 4697 0
1324 X-선 천문위성 찬드라 (Chandra), 차가운 암흑 물질 (cold dark matter) 모형을 지지하… 소요유 07-01 5147 2
1323 [이야기] "대륙은 살아 있다" 댓글 1 최성우 06-30 5099 0


랜덤글로 점프
과학기술인이 한국의 미래를 만듭니다.
© 2002 - 2015 scieng.net
모바일 버전으로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