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한붓 그리기"...

글쓴이
최성우
등록일
2003-07-07 2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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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붓 그리기


독자 여러분은 어릴적에 어떤 도형들을 '연필을 떼지 않고' 한 번에 그리기, 즉 '한붓 그리기' 문제들을 접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필자도 소년 잡지의 퀴즈문제로 자주 해 본 기억이 있다. 단순한 심심풀이 퍼즐같은 이 문제에도 꽤 의미있는 수학적 정리가 뒤따른다는 사실을 알아 보는 것도 흥미있을 듯 싶다.
이 문제를 수학적으로 명쾌하게 풀이한 사람은 스위스의 저명한 수학자 오일러(Leonhard Euler; 1707-1783)이다. 또한, 오일러가 이 문제를 해결하게 된 배경에는 이른바 "쾨니히스베르크의 7다리 건너기" 라는 재미있는 역사적인 이야기가 전해 오고 있다.

옛날 18세기 무렵 유럽에 쾨니히스베르크(Konigsberg)라는 도시가 있었다. 오늘날에는 러시아의 칼리닌그라드에 해당되는데, 당시에는 동프로이센의 영토였다. 이 도시를 가로 질러서 큰 강이 하나 흐르고 있었는데, 모두 7개의 다리가 강위에 놓여 있었다.
어느날 이 도시의 시민 하나가 "한 다리를 두 번 건너지 않고, 단 한 번씩으로 7개의 다리를 모두 건널 수 있을까?" 라는 문제를 내었고, 사람들은 재미있는 문제로 여기고, 나름대로 풀어 보려고 애썼다. 또한, 그 방법을 알면 외지인의 관광안내에도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한 많은 시민들이 앞다투어 문제풀이에 도전하였으나, 어찌된 일인지 제대로 풀었다는 사람은 한 명도 나타나지 않았다. 그러는 동안에 이 문제는 널리 소문이 나서, 독일 전역에서도 아주 '유명한' 문제가 되기에 이르렀다.

마침 그 무렵, 당대의 대수학자 오일러가 쾨니히스베르크를 방문한다는 소식이 들려 왔고, 시민들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오일러에게 이 문제를 물어 보기로 하였다. 자신들이 못 푼 문제를 오일러같은 대수학자가 속시원히 해결해 주리라 기대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 문제를 받아 본 오일러는 잠시 생각하는 듯 하더니, 뜻밖에도 "이런 문제는 아무리 생각해봐도 풀리지 않는다." 고 간단하게 대답하였다. 사람들은 실망의 빛을 감추지 못했고, 빈정거리는 사람도 있었다. 오일러는 자신의 말 뜻이 잘못 전달되었음을 깨닫고, "내가 아무리 연구해 보아도 능력이 부족해서 풀지 못하겠다는 말이 아니라, 그 문제는 어느 누구도 풀 수 없는, 다시 말하면 원래부터 답이 없는 문제" 라고 덧붙였다. 어떻게 그토록 쉽게 단정지을 수 있느냐고 어리둥절해 하는 시민들에게, 오일러는 그 원리를 친절하게 설명해 주었다.

쾨니히스베르크의 7개의 다리를 한 번에 건너는 문제를 도형으로 표시해 보면, 결국 위와 같은 도형을 같은 곳을 두 번 지나지 않으면서 붓을 떼지 않고 한 번에 그리는 문제, 즉 '한붓 그리기' 문제로 귀착되게 된다.
그런데, 이처럼 한붓 그리기가 가능한 도형은 홀수점의 개수가 0이거나, 2인 경우에만 해당될 뿐, 홀수점이 그보다 많으면 한 번에 떼지 않고 그리기가 불가능하게 되는 것이다. 위의 쾨니히스베르크의 7다리 문제와 같은 도형은 홀수점의 개수가 4개 이므로, 원천적으로 한붓 그리기가 불가능하게 되는 것이다.

오일러는 한붓 그리기 문제와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2개의 정리를 제시하였다. 첫 번째 정리는 '모든 도형의 홀수점의 개수는 짝수개이다' 라는 것이고, 두 번째 정리는 '도형의 모든 꼭지점이 짝수개이든가, 즉 홀수점의 개수가 0이든가 혹은 단 두 개의 홀수점을 가지는 경우에만 한붓 그리기가 가능하다.' 는 것이다.
두 번째 정리를 좀 더 풀어서 설명하자면, 1) 짝수점만으로 된 도형은 어디에서 출발하여 그려도 마지막에는 제자리로 돌아오는 한붓 그리기가 가능하고, 2) 홀수점이 2개인 도형은 한쪽 홀수점에서 출발하여 나머지 홀수점에서 끝나는 한붓그리기가 가능한데, 홀수점 이외의 지점에서 출발하면 한붓 그리기는 불가능하게 된다는 점이다. 수학에 관심있는 독자분들은 한 번 증명해 보셔도 좋을 듯하다.

역사적인 쾨니히스베르크의 7다리 건너기 문제를 완전하게 해결한 수학자 오일러는 1707년 4월15일, 스위스에서 목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일찍부터 비범한 재능을 보인 그는, 베르누이(Jean Bernoulli; 1667-1748)에게서 수학을 배웠으며, 나중에는 수학뿐만 아니라 천문학, 물리학, 의학 등도 폭넓게 연구하여 많은 중요한 업적을 남겼다.
천부적인 재능에 엄청난 노력을 겸비한 그의 연구는 많은 사람들에게 경탄을 자아 내었으나, 지나치게 눈을 혹사한 나머지 말년에는 실명하고 말았다. 그러나, 그는 맹인이 된 이후에도 더욱 정력적으로 연구와 저술에 몰두하여 방대한 양의 저술과 논문을 남겼다. 1783년 9월7일, 죽기 직전의 순간까지도 천왕성의 궤도 계산과 관련된 연구를 하였다고 전해진다.
오일러가 죽은 후 사람들은 그의 전집을 발간하려 했으나, 너무 양이 방대하고 많은 자금이 요구되었기 때문에 미뤄 지다가, 20세기에 들어서야 비로소 특수출판사가 설립되어 45책에 이르는 오일러 대전집이 발간되었다.
오늘날에도 대학에서 배우는 수학과 물리학의 교과서에 '오일러의 정리' 혹은 '오일러의 공식'으로 이름 붙은 것이 한둘이 아닌 것을 보아도, 그가 학문의 발전에 기여한 공로가 어느 정도인지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 김일영 ()

      초등학교때 공책에 점찍고 한번에 그리는 놀이를 했던 기억이 납니다. 이걸 오일러 공식을 알았다면... 오일러 대전집은 우리나라에는 발간이 되었는지 궁금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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