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 인물] 전혜린

글쓴이
Simon
등록일
2004-10-31 11:03
조회
8,557회
추천
5건
댓글
1건
아직 저는 못읽어 보았습니다. 기회가 닿는다면 꼭 구입해서 읽고 싶네요:

http://www.ohmynews.com/reader_opinion/opinion_view.asp?menu=s10600&no=193918&rel_no=1&code=388549&page=1&sort_name=recom
>>>>>>>>>>>>>>>>>>>>>>>>>>>>>>>>>>>>>>>>>>>>>>>>>
전혜린의 아버지는 알려져 있듯이 전봉덕이다. 근데 개인 가정사의 내부와 외부의 대립적 요소는 아이가 어른으로 성장하면서 그 모순성으로 인하여 내적 부조화의 극치를 보인다. 전혜린은 아마도 이런 모순에 스스로 도피를 한 것이리다. 내칠수도 없고 그렇다고 눈 감고 따를 수도 없는 딜렘마에서 도피를 한 것이다. 이런 도피의 낭만성이 봉건적 가부장의 지배하에 억압되어 잠재되어 있던 자의식이 독립개체로 성장하려는 사람들(특히 여자)에게 호소력을 갖게 되지만 전혜린의 개인의 철학적 사고의 깊이는 부족할 수 밖에 없다. 재미있게도 지금 현재 가장 수구 꼴통적인 헌법학자로 악명 높은 김철수 가 전혜린의 남편이었다. 버림받은 남편...

>>>>>>>>>>>>>>>>>>>>>>>>>>>>>>>>>>>>>>>>>>>>>>>>>>
격정적으로 사는 것- 지치도록 일하고 노력하고 열기 있게 생활하고 많이 사랑하고, 아무튼 뜨겁게 사는 것, 그 외에는 방법이 없다. 산다는 일은 그렇게도 끔찍한 일,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그만큼 더 나는 생(生)을 사랑한다. 집착한다.

밑줄을 쳐가며 읽었던 전혜린의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에 나오는 '일기로부터의 단상' 한 구절이다. 특별히 이 구절을 기억하는 것은 내가 교사로 근무했던 고등학교의 급훈을 바로 여기에서 따왔기 때문이다.

전혜린, 그는 누구인가

도대체 누구이기에 나는 그토록 빠져 있었나. 오래 전에 이미 망자가 되어 버린 그 이름, 전혜린을 나는 왜 사십 년이 지난 후까지 기억하고 있을까. 그의 케케묵은 일기장 속의 한 구절이 왜 우리 학급의 급훈이 되었을까. 그의 책에 나오는 한 줄, 한 줄의 문장에 왜 감격하고 단어 하나하나에 전율을 느꼈을까.

솔직히 말하자면 언제 처음 그를 알게 되었는지 정확한 기억은 없다. 어쩌면 책읽기를 좋아하던 중학교 시절이었던 것 같기도 하고, 오빠와 함께 고등학교를 다녔던 단발머리 시절이었던 것 같기도 하다. 신문을 통해 알았던 것 같기도 하고, 선배나 선생님으로부터 들은 귀동냥으로 알았던 것 같기도 하다.

그렇게 뿌연 기억의 잔상으로만 남아 있는 이름이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를 읽고 난 뒤에, 삶에 대한 나의 태도와 안목에 변화가 있었다는 것이다. 달라진 나를 이해하려면 먼저 내가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아는 게 도움이 될 지도 모르겠다.

나는 사십 여 년이 넘는 긴 세월을 공무원으로 근무하신 아버지의 2남 2녀 가운데 오빠 둘 밑의 셋째였다. 나의 아버지는 성실하고 충직한 공무원으로 말 그대로 '야전 교범'같은 인생을 살아오셨다. 아버지가 받은 수많은 상장과 상패가 이를 입증해 주고 있다.

그러나 이런 반듯함 뒤에 감추어진 그분의 사고 체계는 대단히 획일적이고 규격화, 규범화되어 있었다. 아버지에게는 자유로운 정신이나 사고의 다양함을 인정하는 유연성이나 융통성이 부족했다.

아버지의 원칙은 마치 법과도 같아서 만약 우리가 반항아, 문제아가 되어 삐딱하게 굴기라도 한다면 당장에 찍히게(?) 될 것이었다. 우리는 부모님의 말씀이나 학교의 지시를 잘 따랐던 모범생들이었다. 우리 4남매가 초·중·고 12년을 개근했던 것이나, 별 문제 없이 웬만큼 공부를 했던 것도 알고 보면 이런 분위기에서 나온 당연한 결과이기도 했다.

그런 순탄한(?) 학창 시절을 보낸 나였기에 앞으로의 삶도 그렇게 재미없게, 밋밋하게 흘러갈 것이었다. 그런데 바로 그때, 내가 만난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는 나를 획기적으로 변화시켜 놓았다.

혼자서는 뭘 제대로 못하고, 부모님의 'FM(야전 교범)'을 거스르는 일 따위는 아예 시도조차 하지 않으려 했던 나였다. 그런 내가 세상 밖의 세계에 대해 호기심을 가지고 혼자서 여행을 떠나고, 식구들 몰래 연애를 했던 것도 바로 이 책이 나를 충동질한(?) 결과였다. 물론 나의 아버지는 전혀 모르는 일이었다.

이 책의 저자인 전혜린은 당시로서는 화려하기 이를 데 없는 좋은 이력을 자랑한다. 1934년, 평안남도 순천의 한 유복한 가정에서 자란 그는 소위 명문고라 일컬어지는 경기여중, 고를 졸업하고 서울대 법대에 진학 한다. 그러나 관료적인 냄새를 풍기는 법학에 대해 별 흥미를 갖지 못한 그는 자유로운 학문에 대한 끝없는 열정을 가지고 새로운 땅 독일로 향하게 된다.

뮌헨대학에서 문학으로 전공을 바꾼 그는 비로소 자유로운 영혼의 비상을 하게 된다.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는 이러한 그의 영혼의 자유와 서른둘이라는 짧은 생을 살았던 그의 매혹적이고 투명한 에스프리, 그리고 빛나는 광기를 보여주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감동을 받았던 것은 바로 생에 대한 그의 치열함이었다. 정열이라는 단어만으로 표현하기에는 부족한 '뜨거운 열정' '화수분 같은 열정'이 그에게는 있었다. 퍼내도 퍼내도 계속해서 샘솟듯 나오는 '무한 열정'….

크게 잘난 것 없이 평범해서 '그저 그런' 인생을 살아갔을 내가 전혜린을 만나고 나서는 용감해졌다. 일탈을 용서하지 않는 아버지의 엄격함에 맞서 당당히 반기를 들었고, 아버지의 불합리한 규범에 대해서도 따질 수 있었으니 말이다. 그게 바로 이 책을 읽으면서 그녀로부터 배운 것이었다.

내게 영향을 미쳤던 전혜린의 자유와 열정, 광기는 책 여기저기에 드러나 있다.

내가 지닌 여러 가지 제한이나 껍질에 응결 당함이 없이 내 몸과 내 정신을 예전과 마찬가지로 무한 속에 내던지고 싶다. 그리고 나에게 여태까지 그냥 주어지기만 했었던 생을 앞으로는 내가 의식적으로 형성하고 싶다. 내 운명에 능동적으로 작용을 가하고, 보다 체계화에 힘쓰고 싶다.

서른이라는 어떤 한계선을 경계로 무의식에서 의식으로, 피동에서 능동의 세계로 들어가서 보다 열렬하게 일과 사람과 세계를 사랑하고 싶다. 밀폐된 내면에서의 자기 수련이 아니라 사회와 현실 속에서 옛날에 내가 가졌던 인식애와 순수와 정열을 던져 놓고 싶다.

밤을 새고 공부하고 난 다음날 새벽에 닭이 일제히 울 때 느꼈던 생생한 환희와 야생적인 즐거움을 잊을 수 없다. 머리가 증발하는, 그리고 혀에 이끼가 돋아나고 손이 얼음같이 되는, 그리고 눈이 빛나는 환희의 순간이었다. 완벽하게 인식에 바쳐진 순간이었다.

목적을 가진 생활, 그 일 때문이라면 내일 죽어도 좋다는 각오가 되어 있는 생활, 따라서 온갖 물질적인 것에서 해방되어 타인의 이목에 구애되지 않는 생활이 그것인 것이다.

그는 여성들의 사회적인 각성에 대해서도 이미 오래 전에 날카롭게 지적을 했다. 그의 따끔한 충고는 아이를 키우면서 내게도 좋은 가르침이 되었다.

많은 어머니들은 끊임없이 아이에게 방해받고, 또 스스로 아이를 방해하면서 아이를 사랑하고 있는 방법에 대한 아무런 반성도 없이 24시간을 보내고 있다. '언제나 아이를 위해서 거기 있는 어머니'이다.

그러나 과연 그 여자들은 정말로 있는(現存) 것일까? 있는 것은 그들의 공허한 희망의 메아리뿐이다. 아무도 그 여자들의 존재를 필요로 하고 있지 않았다는 것이 대개의 경우는 조만간에 증명되고 마는 것이니까. 자기 곁을 기꺼이 떠나는 아이들에 대한 어머니의 원한 감정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그들은 스스로의 생을 택하지도, 살지도 않았으므로 결국 남의 생(아이들의 또는 남편의 생) 속에서 그 보상을 찾고자 하는 것이다. 결국 자기 자신이 아무런 생활도 갖지 않은 어머니가 아이들로부터 가장 많은 것을 요구하게 되고, 환멸하게 되는 것은 바로 이때문인 것이다. 가장 풍부한 개인적 생활을 가진 여자만이 아이로부터 가장 적은 요구를 한다.

그와 마찬가지로 이미 끝나버린 생을 지속하고 있는 여자가 아니라 자기를 초월하면서 끊임없이 자기 의의를 찾고 실증하고 있는 여인이 가장 겸손한 어머니인 것이다.


ⓒ2004 작가정신
살아가면서 문득 전혜린과 그의 삶을 떠올려볼 때가 있다. 이 땅에서 그가 살았던 생은 너무나 짧았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전부를 태우면서 치열하게 살았다. 혼신의 힘을 다한 열정적인 삶이었다. 이따금 그를 돌아보며 나는 '역할 모델'로서의 그를 떠올린다.

그에게서 배운 삶에 대한 치열함, 당당함, 그리고 독립적인 사고와 행동은 다시 대를 이어 내 딸들에게도 그대로 전수되고(?) 있다. 그들에게도 아마 좋은 멘토가 될 것이다. 내가 그에게서 받은 감화와 영향력이 내 딸들과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에게도 두루 미칠 것이다.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의 머리말에서 이어령씨가 썼듯이 '짧은 생애를 가득한 긴장 속에서 살기 위하여 끊임없는 욕망을 불태우고' '서른 두 해의 생을 완전하게 산 활화산' 전혜린을 이 가을에 추억한다.
  • ()

      전혜린....저도 감정이 지칠때, 용기가 필요할때 늘 전혜린의 책을 침대 머리맡에 두고 한번씩 읽어보곤 해요. 누군가는 그녀의 글들에 중고등학교시절 잠시 매료됬었지만 커보니 유치(?)하더라는 말을 하던데..전 오히려 나이들수록 다른 매력을 발견하게 되던데요.. 삶에 대한 끊임없는 성찰과 무한한 열정이란 말이 너무도 잘 어울리는 여자.



책/영화/SF

게시판 리스트
번호 제목 글쓴이 등록일 조회 추천
299 [리처드 칼슨] 우리는 사소한것에 목숨을 건다. 댓글 2 김영민 11-24 5210 8
298 [Humor] 외국인들이 본 대한민국 Simon 11-20 4908 11
297 [펀글에 펀글] 황당하고도 웃음넘치는.... 댓글 1 가마솥 11-19 3992 9
296 류비세프 책 샀어요.. 김영민 11-18 5342 68
295 선택에 대한 생각...[본성과양육]을 읽고 댓글 1 dano 11-05 5466 7
294 [책] Basic Electricity, Van Valkenburgh andysheep 11-05 4408 6
열람중 [책 & 인물] 전혜린 댓글 1 Simon 10-31 8558 5
292 [유머] 굳이! 관습헌법인 이유 november 10-25 4282 5
291 [유머] *** 성매매 원하시는 분 연락 주세요 *** 댓글 4 Simon 10-17 4936 6
290 시간을 정복한 남자 류비세프 mhkim 10-16 4758 6
289 제임스 카메론의 어비스에서..... 댓글 2 김형우 10-04 4904 6
288 [퍼온글]한국의 천재들 댓글 1 NPS 09-29 5806 7
287 혹시..기술영업에 대한..책이나 자료를.. 박태영 09-29 4715 4
286 Feynman Lectures on Physics가 번역되었군요. 댓글 1 이승철 09-21 5094 2
285 나는 매일 숲으로 출근한다 - 저자 : 남효창 - 수험생 09-20 4139 3
284 솔라리스 댓글 2 dano 09-18 5210 3
283 남자의 고민 댓글 1 김선영 09-16 4488 0
282 대박났다~~~ 댓글 1 Simon 09-02 4566 0
281 mathematical modeling 관련 책 추천 부탁드려요. xantera 08-15 4384 1
280 지옥으로 간 엔지니어 댓글 3 사색자 08-14 5532 0


랜덤글로 점프
과학기술인이 한국의 미래를 만듭니다.
© 2002 - 2015 scieng.net
모바일 버전으로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