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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펌)'이공계 위기론' 언제 어디서 나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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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성렬 작성일2004-07-05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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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이공계] 1. 외환위기 때 연구원이 '해고 1순위'


설문 결과 분석에 참여한 KAIST 연구팀은 '이공계 위기론은 언제, 어디서, 왜 나왔을까?'라는 의문에도 주목했다. 이공계 위기론을 제기하는 사람들의 시각이 제각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들의 의견을 종합해 보면 이공계 푸대접과 위상추락 등을 지적하는 내용으로 본질의 한 단면씩을 담고 있다. 따라서 이공계 위기론이 제기된 시점과 원인 등을 찾아내는 것도 위기의 본질을 파악하는 열쇠가 될 수 있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① 외환위기에 따른 후폭풍:1997년 외환위기를 계기로 이공계 위기론이 확산됐다는 주장이다. KAIST의 박오옥 기획처장은 "외환위기 이후 정부 출연 연구기관과 대기업체 등에서 연구원이 가장 먼저 감원되는 것을 보고 전 국민의 이공계 위기의식이 뿌리내렸다"며 "똑같이 힘든 공부를 할 바에야 평생 안정된 의사.변호사를 하는 게 낫다는 인식이 퍼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현재 민간 최대 기술연구기관급인 모 연구소의 경우 평균 나이가 36세에 불과하다. 기업에서 '연구원은 구조조정 1순위'라는 말이 유행하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는 설명이다. 당시 정부 출연 연구기관의 정년도 4년 안팎 단축됐다는 것이다.

② 중국에 놀란 기업 아우성:2000년대 들어 국내 기업이 중국 진출을 본격화하면서 이공계 위기론이 제기됐다는 주장이다. 경제단체장.기업인들에게까지 중국의 지도자들은 이공계 출신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이공계 위기라는 목소리가 커졌다. 중국은 장쩌민(江澤民) 전 주석, 주룽지(朱鎔基) 전 국무원 총리,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 겸 총서기 등이 모두 이공계 출신이란 점이 부각된 것이다. 반면 우리는 정부 관료가 대부분 법대.상대 등 인문계 출신이어서 더욱 비교가 됐다는 것이다.

③ 이공계 교수가 먼저 제기:90년대 이후 이공계 관련 대학이 우후죽순처럼 늘어나면서 후유증을 앓고 있다는 주장이다. 이공계 대학은 크게 늘었지만 학생 수는 줄어 위기론이 나오기 시작했다. 일부 교수는 자신들이 연구실에서 데리고 있을 대학원생 수가 줄자 이공계 위기라고 목청을 높였다는 것이다. 실제로 명문대 이공계 일부 학과까지 대학원생 미달사태를 겪는 것은 이와 관련이 있다.

④ 주기적인 이공계 위기론:최근의 이공계 위기론은 유행과 같다는 주장이다. 70년대에 정부가 나서 과학기술정책을 펼 때는 이공계가 인기였는데, 이후 점차 인기가 시들하다가 97년 외환위기를 겪자 기피현상까지 생겼다. 99년께부터는 벤처.정보기술(IT) 열풍이 불면서 한때 인기가 되살아났다가 벤처.IT 열기가 다시 식자 이공계 위기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는 것이다.

◇특별취재팀=김시래(팀장), 염태정.심재우.강병철(이상 산업부), 김남중.강홍준.하현옥(이상 정책기획부), 김방현(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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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7.05 07:18 입력 / 2004.07.05 08:07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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