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지섣달 꽃 본 듯이 날 좀 보소~ (세시풍속과 24절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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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빈
등록일
2011-12-13 0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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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지섣달 꽃 본 듯이 날 좀 보소~ (세시풍속과 24절기)

 밀양아리랑 1절에 나오는 ‘동지섣달’. 동지는 1년 중 밤이 가장 긴 날이며 섣달은 음력 12월을 말한다. 아리랑 속 ‘동지섣달’이란 가사에는 1년 중 가장 춥고 밤이 긴 날에 님을 그리는 서정이 담겼다. 오죽하면 꽃이 필 리 없는 추운 겨울, 눈 속에 핀 꽃을 본 듯 반갑게 나를 좀 봐달라고 할까. 이처럼 구전돼 오는 노래와 생활상 깊숙이 24절기는 숨어 있다. 우리도 24절기를 알면 님을 향한 멋진 노래를 지을 수 있지 않을까. 노래의 영감이 된 동지(冬至)와 그로부터 보름 앞서 있는 대설(大雪)을 알아보자.

겨울은 추워야 제맛 ‘대설’

 대설은 24절기 중 21번째 절기로 양력으론 12월7~8일경에 들어있다. 우리는 보통 음력 11월에 드는 동지와 대설 때부터 겨울에 들었다고 보지만, 서양에서는 추분부터 대설까지를 가을로 여긴다.

 대설부터 기온이 차고 집집마다 농한기 채비를 하니 농사력에 따라 살아갔던 우리 조상에게는 겨울절기에 해당했다는 것이 맞겠다. 옛 중국에서는 대설부터 동지까지를 삼후로 나눠 그 징후가 짙어짐을 알았다. 초후(初候)에는 산박쥐가 울지 않고, 중후(中候)에는 범이 교미하여 새끼를 치며, 말후(末候)에는 여지(荔枝: 여주)가 돋아난다고 하는 것이다.
 
대설이란 말만 들으면 눈이 무척 많이 올 것 같지만 실제로 눈이 많이 오는 경우는 드물다.
하지만 우리 선조들은 ‘눈은 보리의 이불이다’라고 할 정도로 이 시기에 눈이 오길 바라고 ‘겨울은 추워야 제 맛’이라고 했다. 그래야 동해(凍害)를 적게 입어 보리 풍년이 들기 때문이다. 요즘에는 겨울만 되면 냉해 피해를 입어 수확을 못 내는 농가 소식이 연일 보도된다. 보리도 추워야 강해지고 사람도 추워야 각종 바이러스의 감염으로부터 강해진다. 인내의 계절이 있어야 결실이 맺어지는 것이 이치 아닌가!

24절기의 왕은 아무래도 ‘동지’다. 겨울이 춥지 않게 여겨졌다면 옷을 대충 여미고 15일 후 동지로 가자.

밤이 긴 동지, 팥죽을 먹는 이유는
 동지는 양력으로 12월 22일, 음력으로는 11월경에 들어있다. 1년 중 낮의 길이가 가장 짧고 밤의 길이가 긴 동지는 ‘완전한 겨울(冬)에 이르렀다(至)’해서 동지라 한다. 예로부터 동짓날에는 팥죽을 먹는 풍습이 있었다. 심지어 전래동화에는 도깨비를 쫓기 위해 팥죽을 쑤어 곳곳에 놔두었다는 얘기도 전해진다.
 
동지를 지나면 본격적으로 해의 길이가 길어진다. 이 절기가 지나고 나면 태양이 새롭게 생명력을 갖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동지를 예부터 ‘아세(亞歲, 작은 설)’라고 불렀다. 팥죽은 붉은 팥으로 죽을 쑤어 찹쌀을 동그랗게 뭉친 새알심을 넣는데 이 새알심은 태양을 상징한다. 어른들은 동지에 팥죽을 먹어야만 진짜 나이를 한 살 먹는다고 했다. 이것은 마치 설날에 떡국을 한 그릇 먹어야 나이를 먹는다고 여긴 것처럼 주술적 차원에서 팥죽 먹기를 신앙 의례적으로 지켜왔던 것이다. 민가의 풍습 하나에도 이처럼 천지의 기상과 문화가 숨어 있는 나라, 품격 높은 미풍양속을 갖고 있는 나라가 결코 다른 나라에 지배를 받을 민족이 아니라고 했던 한 외국인 선교사의 말이 스치듯 지나간다.

 옛날 민가에서는 팥죽을 쑤어 사당에 올리고 장독, 대문, 뒷간 등에 올려 두었고 대문 설주와 인방에 발라 잡귀가 들지 못하도록 했다. 붉은색이 음습한 귀신을 쫓는데 효과가 있다고 믿고 행한 것이다.
 
그러나 동짓날에 무조건 팥죽을 먹은 것은 아니었다. 애동지라고 해서 음력 11월 초순에 동지가 들면 팥죽을 쑤지 않았는데 이때 죽을 먹으면 아이들이 병에 걸려 죽는다 해서 동지를 지키는 것을 금했다. 이억영 선생의 ‘동지’에서 볼 수 있듯 우리 조상들은 동짓날에 우물에 팥을 넣어 물을 말게 해 질병을 막고, 팥죽을 초상집에 보내 악귀를 물리쳤다.

 실제 팥은 적소두라고 해서 심장의 습기를 빼는 기능을 한다. 한의학에 따르면 동지에 팥죽을 먹으면 추위로 뭉쳐 있던 심장의 박동을 도와준다고 한다. 수분이 많으면 심장 활동이 느려지기 때문이다. 우리 조상들이 한의학을 배웠던 것도 아닌데 그 풍습에 담긴 문화가 참으로 격조 높고 과학적이다. 추운 겨울 아이들은 방학을 맞아 집에서 컴퓨터 게임을 즐기느라 정신이 없겠지만 팥죽 한 그릇 놓고 24절기에 대한 이야기꽃을 피워보는 것은 어떨까?

출처: 글마루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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