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달력"에 대하여 잠시...

글쓴이
최성우
등록일
2002-12-31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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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이 2002년의 마지막 날이군요...      
한해를 보내는 마당에, '달력'에 대하여 이것저것 잠시 알아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듯하여 아래에 제 글을 하나 첨부합니다.
(정확한 책 제목은 잘 기억이 안납니다만...) '달력과 권력'의 관계에 대해서만 쓴
책도 있는데, 이렇듯 달력이라는 것이 단순히 날짜만 알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국가적 통치 행위에 있어서도 매우 중요한 의미를
차지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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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달력 이야기 "  

                                            최성우 (과학평론가; hermes21@nownuri.net)
                                            - '과학사 X파일(사이언스북스)' 中에서 -                        


독자 여러분 중 달력을 보실 때마다 다음과 같은 의문을 품는 분들이 계실 것
이다. 먼저, 많은 달 중에서 왜 하필이면 2월은 28일밖에 없는가? 윤년에도 기껏
해야 29일이니, 다른 달에 비해 푸대접을 받고 있는 셈이다. 그리고 대개는 큰달
(31일)과 작은 달(30일)이 한 번씩 번갈아 가면서 있는데, 왜 유독 7월과 8월은
연달아서 큰 달로 되어 있는가?
또 영어의 접두어에 관심 있는 분은 잘 아시겠지만, 9, 10, 11, 12월을 나타내는
단어의 접두어가 사실은 라틴어로 7, 8, 9, 10을 의미하는 점도 의문과 혼란을
자아내게 한다.
이것에 얽힌 이야기를 설명하자면, 상당히 길다. 고대 로마시대 이래의 서양달
력의 변천사와 연관이 되어 있다.

현재 우리가 쓰고 있는 서양식 역법인 그레고리달력은 태양력이고, 1년이 365
일에 4년에 한번씩의 윤년, 그리고 400년에 3번은 윤년이 없다. 즉, 끝이 100단
위로 끝나는 해 중에서 앞 숫자가 4의 배수가 아닌 해들, 예를 들어 1900년은
윤년이 아니다. 태양을 기준으로 한 지구의 공전주기인 평균태양년이 365.2422일
이기때문에, 이런 식으로 소숫점 이하의 날을 보정해 주면, 적어도 몇 천년 동안
은 정확한 달력을 제공해 줄 수 있을 것이다.  
이 달력의 유래는 고대 로마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고대 로마의 역법은 또
한 고대 그리이스 태음력에서 영향을 받은 것으로 추측되는데, 1년이 10개월, 총
304일로 되어 있는 태음력으로 나머지는 무시되었고, 한겨울의 61일은 아예 달
력의 날짜 자체가 없었다.
첫달은 전쟁의 신 마르스의 이름을 따서 '마르티우스'라고 붙였고, 둘째달은 꽃
이 핀다는 뜻의 '아페릴레', 셋째, 넷째달은 여신들의 이름을 따서 '마이아', '유노
나'라고 붙였으며, 다섯 번째 달부터는 그냥 숫자를 따서 이름을 붙였다. 9, 10,
11, 12월의 영어 단어가 라틴어로 7(Septa), 8(Octo), 9(Nova), 10(Deca)을 뜻하
는 이유도, 고대 로마의 달력은 10개월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1년의 처음에 '야누아리우스'(영어의 January)가, 마지막에는 '페브루
아리우스'(영어의 February)가 추가되어 12달이 되었다. 즉 지금의 2월은 원래 1
년의 맨 마지막달이었기 때문에 나중에 태양력으로 전환된 이후에도 28일밖에
남지 않게 되는 원인이 되었다. 그리고 이후에 몇차례의 혼란을 겪은 후에야 각
달들은 지금의 위치에 오게 되었다.  
당시 로마에서 달력을 관리하던 제관들은 자신들이 편리한대로 달들을 덧붙이
거나 빼는 바람에 혼란이 심하였고, 윤달을 넣는 방법이 잘못되어 3개월 정도
계절과 달력의 날짜가 틀리기도 하였다.  

한편, 이집트에서는 오래전부터 태양력을 쓰고 있었는데, 수리시설을 위한 측량
학, 실용적인 수학, 천문학 등이 일찍부터 발달했던 이집트는 계절의 흐름과 일
치하는 태양력을 역사상 최초로 채택한 것이었고, 이에 따르면 농사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나일강의 홍수가 언제 올 것인가를 알 수가 있었다.  
그후 로마의 통치자 율리우스 카이사르(Julius Caesar; B. C. 100-44; 영어식 발
음으로는 줄리어스 시저)가 이집트 정벌을 나갔을 때 그곳 사람들의 편리한 태
양력을 알게 되자, 이를 본떠서 1년을 12달 365일, 4년에 한 번씩 윤년을 두는
율리우스력을 제정하였다. 7월은 카이사르의 생일이 있는 달이라서 그의 이름을
따서 'July'라고 부르게 되었고 8월은 그의 조카인 아우구스투스(Augustus; B.
C. 63 - A. D. 14)황제의 전승일을 기념하여 'August'로 부르게 되었다.
그런데, 큰 달(31일)과 작은 달(30일)이 한 번씩 교대로 되었으나 7월은 큰 달
인데 비해 8월이 작은 달이 되자 아우구스투스가 불만을 느껴서, 최초에 마지막
달이었던 페브루아리우스에서 하루를 떼어서 자신의 달인 8월마저 큰 달로 만들
었기때문에, 2월은 29일에서 하루가 더 줄어서 평년에는 28일밖에 남지 않게 되
었다.
그러나, 4년마다 한번씩의 윤년 만으로는 365.2422일의 평균태양년을 온전히 보
정할 수는 없었던 법이었기때문에, 그후 많은 세월이 흐르자 상당한 오차가 생
기게 되었다. 즉 율리우스 달력의 1년은 실제보다 0.0078일이 길어서 130년에 하
루 정도의 오차가 나는데, 16세기가 되자 그 차이가 무려 10일이나 나게 되었던
것이다.
이로 인하여 기독교의 명절인 부활절이 천문관측 결과, 성경의 기록과 다르게
되는 등의 문제가 생기자, 로마 교황 그레고리우스(Gregorius) 13세는 1582년에
다시 달력을 교정하여, 오늘날과 같은 그레고리달력이 만들어지게 되었다. 이 과
정에서 10일이 삭제되어 1582년 10월 5일은 곧바로 10월 15일이 되었다. 그레고
리달력은 400년에 97번의 윤년을 두는 셈이므로, 1만년에 사흘 정도의 오차가
생기는 정도이므로 적어도 앞으로 몇 천년 동안은 다시 달력을 손질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고대 중국을 비롯한 동양에서도 달력은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천문현
상은 '천자'라 일컬어지는 중국 황제의 통치행위와도 긴밀한 관련이 있다고 여겨
졌기 때문에, 달력은 역대 왕조의 중요한 관심사항일 수밖에 없었다.
한(漢)나라의 무제(武帝)는 태초력(太初曆)이라는 태음력을 시행하였는데, 이 달
력에서는 태음력과 태양력의 차이를 정확하게 보정하는 방법이 시행되었다. 즉
태양력의 1년은 365.2422일인데 비해, 태음력의 1삭망월은 29.5일이기 때문에 1
년에 11일 정도의 차이가 나는데, 19년에 7번의 윤달을 두는 이른바 '장법'을 실
시하여 이를 보정했던 것이다. 서양에서는 고대 그리이스의 천문학자인 메톤
(Meton)이 발견했다고 해서 '메톤주기(Metonic cycle)'로 알려져 왔는데, 고대
중국사람들은 그보다 훨씬 앞서서 알고 있었고, 이는 오늘날의 음력에도 그대로
적용되고 있다.  
일찌기 '동양 최고의 천문대'라는 첨성대를 건축한 바 있는 우리의 선조들은 일
찍부터 방대한 천문 관측을 행하였고, 조선시대 세종대왕때에 만들어진 칠정산
(七政算)은 매우 우수한 달력이었다. 언젠가 TV 프로그램 등에서도 소개된 바
있지만, 내편 3권과 외편 5권으로 구성된 이 칠정산은 정인지, 정초, 이순지 등
이 이슬람의 회회력(回回曆), 원나라의 수시력(授時曆) 등을 참고해서 우리에 맞
도록 만든 것으로서, 세계적으로 자랑할만한 우리의 문화유산의 하나이다.
비록 얼마 지나지 않아 중국의 압력으로 인하여 다시 중국식 역법으로 바뀌고
말았지만, 그 당시 세계에서 자기 고유의 역법을 가지고 있던 나라는 중국, 이슬
람, 조선 등 불과 몇나라에 지나지 않았다고 한다. 지금으로부터 약 100년전인
갑오경장때에 고종임금이 서양의 태양력을 채용하기로 함으로써 우리나라에서도
태양력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현행 달력인 그레고리력은 우리나라를 비롯해서 세계 대부분의 나라에서 쓰이
고 있으나, 여기에도 불합리한 점들이 꽤 있다. 각 달마다 날짜의 수가 28일에서
31일로 들쭉날쭉하고, 어떤때는 7년간 평년이 계속되기도 하는 점 등을 들 수
있다. 그리하여, 이러한 결점을 없애고자, 많은 사람들이 달력의 재개정을 위해
노력한 바 있다.
프랑스대혁명 직후, 프랑스에서는 요일의 폐지와 10진법을 기본으로 하는 시간
단위의 채택 등을 골자로 하는 '공화력'을 한때 시행했었고, 1930년대에 미국에
서 발족한 세계 달력협회는 '세계력'이라는 개정달력을 내놓은 바 있다. 세계력
의 1달은 31일이나 30일로만 이루어지게 하였고, 1년을 4개의 분기로 나누어 매
분기마다 요일과 날짜를 일치하게 하는 등 보다 합리적으로 만들려 하였다.
그러나, 이와 같은 달력의 개정에 일부 나라들이 찬성하기도 하였으나, 많은 나
라에서 종교상의 이유, 기타 관습이나 다른 이유들을 들어 반대하였기 때문에
아직까지는 그레고리달력이 가장 보편적인 세계 공용 달력으로 쓰이고 있다.
달력은 가장 과학적이고 실용적인 견지에서 만들어져야 하나, 지금까지 세계
각국의 달력변천사를 보면, 그 나라의 정치, 경제, 종교, 문화 등의 모든 면과 긴
밀히 관련되어 왔기 때문에, 모든 나라들이 기존의 관습을 버리고 보다 합리적
인 새로운 달력을 채용한다는 것은 기대하기가 쉽지 않을 듯하다.  


  • 소요유 ()

      좋은 글입니다.  사실 달력이라는 것의 의미가 "날에 이름을 붙이는 방법"이라는 사실을 모르면 여러가지를 오해할 수 있습니다.  달력을 만드는 것은  단순한 수학이나 과학을 넘는 그 민족의 생존과 직결되는 그 무엇인가와 결부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하루 하루, 한달, 1년에 이름을 붙여주는 방법을 나라나 시대에 "다라 그 지배 이념에 "다라 달력을 만들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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