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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 자랑하다 알맹이 뺏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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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스 (195.♡.37.71) 작성일2007-08-28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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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인의 한 수] 기술 자랑하다 알맹이 뺏긴다


한국 기업인들 비즈니스 협상력 ‘제로’…준비도 고민도 별로 안해
‘협상의 귀재’ 변종원 거성통상 사장



얼마 전 한 중소기업 사장의 깊은 탄식을 들은 적이 있다. 그는 중국 기업들에 그가 보유한 기술을 파는 한편 중국에서 동업할 파트너를 찾고 있었다. 하지만 1년여 만에 그는 결국 기술을 모두 빼앗기고 동업자는 찾지도 못했다.

속임을 당한 게 아니었다. “어, 어” 하는 사이 협상을 하던 중국 기업들에 가진 것을 송두리째 내주고 말았다. 서둘러 협상 관련 책을 뒤져봤지만 게임은 벌써 끝난 뒤였고 자신과 비슷한 상황을 찾아볼 수도 없었다.

대형 서점에 가보면 협상에 관한 책이 무수하게 깔려 있다. 그만큼 협상이 중요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막상 책들을 들여다보면 갈증이 시원하게 해결되지 않을 때가 많다. 주로 변호사나 정부, 단체들이 협상 주체가 되는 사례가 많아 기업에서 일어나는 또 다른 차원의 협상과는 거리가 있기 때문이다.

서울 역삼동에 있는 변종원(51) 거성통상 사장을 찾아간 것은 바로 이런 이유에서였다. 그는 많지 않은 국내 협상전문가 중 거의 유일한 기업 출신으로 현재 기업체를 대상으로 협상에 대한 실전 강의를 하고 있다. 경북대 금속공학과를 나와 엔지니어로 회사 생활을 시작했지만 삼성코닝에서 15년 동안 전 세계를 뛰어다녔던 덕분이다.

이 기간 동안 그는 해외 공장 건설 및 생산에 필요한 각종 기술, 설비, 부품, 소프트웨어, 경영 기법 등을 들여오거나 수출하기 위해 각국 기업을 상대로 600회가 넘는 국제협상을 했다. 중국에만 200번 넘게 출장을 갔고 인도행 비행기를 탄 횟수가 40번이 넘는다. 홈 앤드 어웨이(home & away)가 협상의 속성임을 감안하면 중국 기업과 400번, 인도 기업과 80번가량 협상 테이블에 앉은 셈이다. 그렇게 누빈 나라가 15개국이다.

송용로 전 삼성코닝 사장이 “협상의 귀재라고 하는 중국인과 인도인들이 파트너로 인정했던 사람”이라고 했을 정도다. 그는 2003년 독립, 기업을 대상으로 협상에 대한 코치와 교육을 하고 있다.

굳이 세계화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요즘 국내 기업의 해외 기업 접촉 빈도가 급증하고 있다. 크고작은 협상도 비례해 늘고 있다. 하지만 큰 소리에 비해 실속은 형편없다는 게 공통된 토로다. 왜 그럴까? 변종원 사장은 3시간 넘게 열변을 토해냈다.

우선 한국기업인 중에는 협상을 국제회의나 미팅 정도로 생각하는 이가 많다. 협상 자체를 쉽게 생각하기 때문에 기법도 허술하기 짝이 없다. 얼마 전의 일이다. 기술력이 뛰어난 한 중소기업 연구소장이 변 사장에게 자문했다.

몇 개월 전까지 자신들이 가진 기술을 도입하려 애쓰던 한 유럽 기업으로부터 연락이 없는데 방법이 없겠느냐는 것이었다. 어떤 일이 있었는지 묻자 연구소장은 협상 의제이던 제품의 화학성분표를 건네준 뒤부터 연락이 없다는 것을 기억해냈다. 그게 문제였다. 맛보기를 보여준다고 한 것이 알맹이를 다 줬기 때문이다.


▶1956년생. 경북대 금속공학과 졸업. 삼성코닝에서 15년 동안 15개국을 상대로 600여 회의 기업 간 협상을 진행했다. 중국 200번, 인도 40번 이상 출장을 간 협상 전문가다. 2003년 독립해 기업체를 대상으로 협상 자문과 함께 교육 컨설팅을 하고 있다.


“일단 협상에 나선 상대는 만나기 전 이미 60~70% 정도 공부한 상태입니다. 최선의 공부를 하고 들어오는 거죠. 그러고는 모른 체 하면서 물어봅니다. 유도 심문이죠. 대개 협상을 얕보는 이들은 맛보기라면서 자신들이 가진 것을 자랑할 때가 많습니다. 문제는 그 자랑 속에 핵심 노하우가 들어있다는 점이죠. 절대 유념해야 할 것은 기술수출 협상을 할 때는 방법을 알려주지 말고 결과만 말해야 한다는 겁니다. 예를 들면 ‘우리 기술로 세계 최고 수준의 제품을 만들 수 있다’ 이렇게 말이죠.”

이는 중국인이 잘 쓰는 수법이다. 정부 승인을 받아야 한다면서 기술의 일부를 달라는 요구를 집요하게 한다. 예를 들면 “일본 기술보다 당신네 기술이 더 좋다는 것을 정부에 설명하려면 어떤 기술인지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 수법에 말려 기술 일부를 건네주는 순간 협상은 끝난다. 공짜로 기술을 건네줬기 때문이다.

대개 기술을 수입하는 기업은 부사장급이 협상 대표로 나온다. 부사장급이면 관련 분야 전문가다. 이들은 일부만 보고도 전체를 금방 파악할 수 있다. 이럴 때는 “이 기술이 필요하다고 당신네 정부를 설득하는 것이 당신의 일이다. 말로 할 수 있는 자리라면 내가 가겠다”고 해야 한다.

조심할 게 한 가지 더 있다. 대개 엔지니어나 중소기업 경영진은 비밀 유지에 서명하면 핵심 서류를 보여줘도 된다고 여기는 이들이 꽤 있다. “비밀 유지 계약했는데 좀 보여주면 어떠냐”는 것이다. 하지만 비밀 유지 서명은 협상이 본격화됐다는 것이고, 제3자에게 알리지 말라는 의무일 뿐이다.

마무리에 약한 것도 변 사장의 눈에 자주 띈다. 한국 기업의 세 번째 약점이다. 치열한 협상을 해놓고도 계약서 작성을 꼼꼼히 하지 않는 이가 많고, 계약서 서명까지 더할 나위없이 잘하고도 결국 뒤통수 맞는 일이 많다.

왜 그럴까? 협상 테이블 타결로 계약이 끝난 것으로 생각하는 이가 많고, 계약서에 서명한 것으로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협상의 치열함은 계약서에 서명한 것으로 정리되고, 계약서 서명은 계약의 전초전일 뿐 계약의 전부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계약 이행 과정이다.

“요즘 한국 기업들이 중국이나 인도 기업에 기술을 이전해주는 사례가 많아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기술이전 과정에서 핵심 기술이 유출되고 있습니다. 현장에서 그 일을 담당하는 파견 엔지니어들에게 계약서 내용을 제대로 교육시키지 않기 때문이죠. 엔지니어들은 돈에 대한 감각이 떨어지기 때문에 핵심 기술이 얼마나 중요한지, 얼마나 큰 돈으로 변하는지 잘 몰라요.”

기업 경영진이 여기에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이유는 실제로 이 과정에서 많은 핵심 기술이 빠져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에 파견된 기술자 중 ‘가면 안 오는’ 이가 점점 많아지는 것이 좋은 예다. 뇌물과 거액을 제시하는 유혹에 넘어가는 것이다.

변 사장은 “기술자 100명이 나간다고 하면 기술 유출 통로가 100개라고 봐야 한다”면서 “유출 비율을 5% 미만으로 막기만 해도 잘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5명 정도는 어쩔 수 없는 것으로 간주해야 할 정도로 유출이 많다는 얘기다.



협상 때 의견 대립 피하지 마라


“국정원 눈 밖에서 일어나는 합법적인 유출이 훨씬 많아요. 기술이전에도 전략이 필요합니다. 그러려면 세계 시장을 정확하게 알아야 하고, 얼마나 어떻게 순차적, 단계적으로 줘야 하는지에 대한 면밀한 전략을 세워야 합니다. 10을 줘야 하는데 30을 주면 그만큼 손해죠. 기술격차를 어떻게 유지할 수 있느냐가 바로 경쟁력입니다.”

협상 책에는 나오지 않지만 협상 담당자들이 알아야 할 게 또 있다. “가끔 협상 테이블에서 감정적인 앙금이 쌓일 때가 있는데 그때는 반드시 그날 저녁 회식을 하는 게 좋다”는 게 그가 경험한 노하우다. 이렇듯 식사는 마음을 얻는 만국 공통어다.

하지만 꼭 기억해 둘 것이 있다. 한국에 온 그들을 극진히 대접해줬다고 그들 나라에 갔을 때 똑같은 접대를 기대하지 말라는 것이다. 나라마다 다른 접대문화가 있기 때문이다. 기대를 가지면 실망하게 되고 실망은 협상에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친다.

친밀감이 생겼다고 의견 대립을 회피하는 것도 한국인에게 나타나는 특징이다. 하지만 이건 금물이다. 의견 대립은 협상의 속성이기 때문이다. 의견이 다르기 때문에 머리를 맞대고 합의를 도출해내는 것이 협상인 까닭이다. 친해졌다고 쉽게 예스(Yes)하고, 감정이 격해졌다고 쉽게 노(No) 해서는 안 되는 이유다.

“ ‘협상쯤이야…’ 이렇게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담당자가 바쁘니 이번에는 영어 잘하는 김 과장이 가봐’. 이건 착각입니다. 올림픽 출전 선수는 선발전을 힘겹게 치른 후에도 태릉선수촌에서 더 치열한 훈련을 합니다. 그것도 모자라 해외 전지훈련까지 합니다. 협상도 마찬가지입니다. 준비 많이 한 쪽이 주도권을 잡죠. 제 경험상 100% 준비도 부족해요. 200% 정도 준비해야 합니다. 협상 내용은 물론이고 외모와 옷차림까지 모든 것이 준비에 달렸습니다. 여기서 알아두어야 할 것은 상대방도 그렇게 준비한다는 겁니다. ”

그는 “능력은 노력에서 시작된다”고 말했다. 안 되는 것을 되게 하는, 능력 있는 협상가의 조건이 바로 노력이라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그에게 “한국 기업인에게 부족한 것을 딱 한마디로 하면 무엇이냐”고 했을 때도 그는 이렇게 말했다.

“딱 하나요? 준비 부족이죠. 준비가 너무 부족해요. 질리도록 고민하고 연습해야 합니다. 고민할수록 답이 나와요.”

협상 테이블에 앉은 당신, 혹시 이렇습니까?

■협상을 국제회의나 미팅 수준으로 생각한다. ‘진한’ 맛보기를 보여주면서 상대를 꺾으려 한다
■비밀 유지 서명을 하면 계약은 다 된 것이나 다름없다
■계약서에 서명하면 모든 게 끝난 것이다
■상대편이 한국에 왔을 때 접대를 잘해줬으니 상대편도 우리가 갔을 때 응당 그렇게 하는 것이 국제 매너다
■의견 대립은 가급적 피하는 게 좋다


협상 테이블 심리학
상대방의 다리는 마음 읽는 신호등?

"협상 테이블에서는 상대방이 말하는 게 진짜인지 거짓말인지 판단하느 게 가장 중요합니다. 그들의 말이 진짜라면 빨리 동의하는 게 힘을 아끼고 신뢰를 얻는 비결이죠. 하지만 진짜인데도 동의하지 않으면 우리쪽에도 손해지만 신뢰도 잃게 됩니다. 결국은 진실게임이죠."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상대의 마음을 읽는 게 협상의 중요한 포인트가 된다. 그렇다면 협상 테이블에서 알아두어야 하라 가장 기본적인 심리학은 뭘까? 협상 책에 잘 나오지 않은 변종원 사장만의 노하우를 물었다. 그는 "행동을 유심히 관찰하면 많은 것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테이블에 앉은 사람 전원을 다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중 특히 협상에 약한 사람을 잘 보면 많은 것을 알 수 있어요. 예를 들어 그들이 거짓말을 하면 그의 얼굴에 순간적인 표정 변화가 일어나거든요."

투명 테이블이라면 상대방의 다리를 관찰할 필요가 있다. 사람은 본능적으로 머리에서부터 멀어질수록 인위적인 통제가 힘들어진다. 다른 말로 하면 다리와 손은 '자기도 모르게' 마음을 표현한다는 의미다. "특히 다리는 심리를 나타내는 신호등입니다. 다리는 떨거나 하면 분명 초조하거나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유능한 협상가는 협상 테이블뿐만 아니라 협상 전 상황에서부터 분위기를 유리하게 이끌어간다. "해외에서 서 협상할 때 예약을 상대 기업에 맡기지 않는 게 좋습니다. 출장비와 인적 사항이 노출되기 때문이죠. 어쩔 수 없다면 외국인이 많이 묵는 호텔로 부탁하는 게 좋습니다. 또 거래 금액이 클수록 규정이 허락하는 한 고급호텔에 묵어야 합니다. 기선을 제압하는 방법이죠. 자신에게 익숙한 곳을 협상장으로 선택하는 것도 좋은 협상법입니다."

그는 "좋은 협상에는 '한 방에 타결' 같은 건 없다"면서 "협상은 티끌 모아 태산"이라고 말했다. 하긴 어떤 일이 그렇지 않겠는가.


서광원 기자 (araseo@joongang.co.kr)  [903호] 2007.08.27 입력



협상이라는게 이래서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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