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월드컵 이후의 '기본'/도정일

글쓴이
정문식
등록일
2002-07-29 17:52
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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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 이후의 '기본'/ 도정일

 
교육인적자원부는 내년부터 2007년까지 전국 중고등학교의 도서관을 활성화한다는 계획을 내놓고 있다. 보도에 따르면 도서관이 없는 학교에는 도서관을 신설하고, 도서관 활용도가 낮은 학교들의 경우에는 도서관과 수업을 연계시켜 활용도를 높인다는 등의 내용이 이 5개년 계획에 포함되어 있다. 현재 확보된 총 3천억원의 예산 외에도 교육부는 학교 운영비의 3% 이상을 도서구입에 쓰도록 각 학교에 권장할 것이라 한다.

신문 칼럼이 뭐 다룰 화두가 없어 학교도서관 얘기를 꺼내고 있는가 의아해할 독자가 있을지 모른다. 그런 사람은 월드컵 이후 우리 사회에 떠올랐던 화제의 하나가 “히딩크에게서 배우자”였다는 사실을 기억해주기 바란다. 히딩크에게서 `배울 것’의 핵심은 돈을 어떻게 더 빨리 벌 것인가가 아니라 (돈을 더 잘 벌기 위해서라도) “기초부터 다지고 기본부터 세운다”는 작업이다. 기본을 세우자면 무엇이 기본인가부터 알아야 한다. `기본’에 대한 규정과 셈법이 어떤 것이건 간에, 교육은 모든 사회가 기본이라 생각하는 것의 핵심, 곧 기본의 기본이다. 학교도서관은 시민의 공공도서관과 함께 바로 이 기본의 기본에 관련된 문제이다.

기본을 생각하는 나라라면, 전국 1만5백개 중고교의 20%가 도서관을 갖고 있지 못하다는 사실에 백번 충격을 받아야 옳다. 기본을 아는 사회라면, 도서관을 제대로 운영하는 학교가 전국을 통틀어 겨우 2백 군데에 불과하다는 사실에 깜짝 놀라 기절해야 한다. 물론 아무도 놀라지 않고 기절하지 않는다. 기본이 뭔지 모르기 때문이다. 많은 학교도서실들은 잠겨 있다. 운영할 사서도 책 살 돈도 없고, 수업 자체가 자발적 조사 활동과는 무관한 주입 교육이기 때문에 학생들이 도서관을 찾을 이유도 없다. 문 잠긴 도서실은 선생님들이 옷 갈아입는 곳이거나 한숨 눈 붙이는 장소다. 거미줄 드리운 도서실은 `여고괴담’의 귀신 출몰지이다. 정말로 기본을 생각하는 사회라면, 이런 중등교육에서 어떻게 자발성과 창조성 함양 교육이 가능한지를 진작 자문했을 것이고 대책을 강구했을 것이다.

학교도서관은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되는 곳이 아니다. 그것은 학생들의 자발적 학습과 창조적 연구를 위한 불가결의 기본 시설이며, 도서관 활성화는 공교육 정상화를 위한 필수 절차이다. 중등교육의 정상화 없이 `기본이 선 나라’는 가능하지 않다. 교육부의 이번 계획은 중등교육을 정상화시켜 미래의 창의적 인재들을 길러 내게 하려는 정책적 노력의 일부다. `포스트 월드컵’ 논의에 열 올릴 줄은 알면서 정작 기본에는 투자하지 않고 빠른 성과만을 기대하는 것이 우리 사회의 병폐랄 때, 교육부의 이번 계획은 우리 교육부가 그래도 기본을 생각하는 일에 나설 줄 안다는 안도감과 신뢰를 갖게 한다.

그러나 정권 전체의, 그리고 사회적 인식의 차원에서, 지적해야 할 문제들이 다수 있다. 하나 짓는 데 2천억원이 드는 축구장을 10개씩이나 지은 나라가 `도서관 없는 학교, 책 없는 도서관’이라는, 정상적인 나라라면 생각할 수조차 없는 열악하고 왜곡된 교육환경을 어찌 그토록 오래 방치해올 수 있었는가. 축구장 하나 지을 돈이면 웬만한 학교 도서관 5백 개가 가능하다. 교육부가 5개년 계획에 투입한다는 3천억 예산도 사실은 정권 차원에서는 부끄러운 규모의 것이다. 그 돈으로 어떻게 사서들을 확보하며 콘텐츠 비용을 댈 것인가 교육부 계획에 따르면 우리는 5년 후에야 학생 1인당 10권의 도서관 장서를 갖게 되어 있다. 지금 일본은 학생 1인당 도서관 장서가 55권, 미국은 180권이다. 우리가 5년 후 도달하려는 지점은 지금의 일본, 지금의 미국 수준에도 훨씬 못 미친다. 산술적으로, 우리가 `지금의’ 일본 수준에 이르자면 50년이, `지금의’ 미국 수준에 도달하자면 180년이 더 걸려야 한다.

`기본’을 더 생각해야 하지 않겠는가. 오, `대한민국’이여.

도정일/ 문학평론가·경희대 영어학부 교수


  • 배성원 ()

      글 내용 다 좋은데....끝에 년수 계산이 어째....

  • 정문식 ()

      당장의 처우 개선과 대학원 교육 내실화도 중요하지만, 장기적으로 볼 때 이공계가 항구적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사회 전체적으로 학문과 교양을 존중하는 풍토가 조성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런 분위기 조성을 위해서는 공공 도서관의 내실화와, 초, 중등학교에서의 철저한 독서와 글쓰기 교육이 필요하지 않을까여? 지금처럼 대학 진학을 위해 형식적으로 이루어지는 다이제스트식 독서나, 말장난식 논술로는 결코 '교양 있는 사람'이 양성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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